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38
아마 기분 탓이리라.
-인간아, 거의 다 왔다!
라온의 말대로, 조금만 더 가면 청천향 건물이 위치한 작은 광장에 도달한다.
‘속도를 좀 더 올리라고 해야겠어.’
왠지 꺼림칙한 기분에 케일이 그렇게 마음먹었을 때, 혈교 7호가 걸음을 멈췄다.
스윽.
최한이 혈교 7호의 어깨를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어?’
뒤이어 케일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팀장와 최정수, 론, 비크로스가 각자의 무기 손잡이에 손을 올려두었다.
-…인간아, 이상하다.
주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무기를 찬 사람의 숫자가 늘었어.’
더불어 작은 광장에 행렬을 맞춘 채 움직이는 인원들이 꽤 보였다.
마치 순찰을 나가는 듯, 혹은 어딘가로 수색을 가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더불어 이들을 지휘하는 몇몇 이들은 직급이 높아 보였다.
“…어떻게 알았지?”
백 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순간, 흠칫했다.
케일의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백 노에게로 향했으니까.
‘아니다. 내가 아니야.’
백 노가 그의 시선이 자신의 머리 위, 푸른 불빛을 뿜어내는 전등으로 향한 것을 깨달은 순간.
케일의 손이 움직였다.
“윽!”
호야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골목길 벽에 그를 밀쳤다.
“크윽!”
그리고 그 두건을 벗겼다.
푸른 머리칼이 푸른 불빛 아래 그 모습을 드러낸 그때.
“하.”
케일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의 입꼬리가 비틀리듯 올라갔다.
푸른 머리칼은 검게 변해있었다.
푸른 불빛 아래서.
“…으으…….”
호야와 케일의 눈이 마주쳤다.
그가 겁에 질린 얼굴로 시선을 피할 때, 케일은 나직이 속삭였다.
“들켰네.”
* * *
청혈도.
혈교에서 가장 존엄한 자인 혈마가 머무는 곳이었다.
“명아.”
“네, 어머니.”
소혈마 후보 명은 혈마를 향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혈마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그녀와 시선을 마주해서는 안 된다.
“호야와 윤이가 돌아왔다고?”
“네. 두 사람의 기운이 감지 되었습니다.”
“운남에서 패했다고 들었는데, 그 아이들이 둘이서만 도망쳐서 이곳에 왔을까, 아니면 인질이 되어서 여기에 왔을까.”
명은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답을 할 때가 아니었다.
답은 혈마가 내릴 터.
“이미 답은 나왔구나. 호야와 윤이가 도망을 선택하지는 않았겠지. 명아, 신녀님은?”
“윤이와 호야의 기운을 감지한 순간, 바로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시게 했습니다.”
“은과 백. 두 아이가 호야와 윤이를 맞이하러 갔니?”
“네, 어머니. 두 사람이 곧 다 해결할 겁니다.”
“그래. 중요한 행사가 있는데, 시끄러워서는 곤란하지.”
스륵.
명은 누군가 일어서는 기척을 느꼈다.
여기서 허락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자는 혈마뿐이니, 그녀가 일어선 것이리라.
사락. 사락.
옷자락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숙인 명은 제 시선에 들어오는 하얀 머리칼을 볼 수 있었다.
푸른 불빛을 받아, 푸르게 보이는 백발.
눈을 감았다.
어머니의 모습을 함부로 보아서는 안 되었으니까.
“내가 나서야겠구나.”
명의 몸이 멈칫했다.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아. 단순히 무림인들이 할 재간이 아니구나.”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명은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가 뿜어내는 차가운 기운에, 너무 시려서 숨이 막히게 만드는 이 기운에 몸을 떠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니까.
“운남에서 밀려서 해남으로 무림인들을 유도한다는 게 호야의 마지막 소식이었지?”
“네, 어머니.”
“거짓이구나.”
스으으으—-
공기가 움직였다.
바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바다에 드리운 해무처럼. 서서히 보이지 않는 기운들이 움직인다.
혈마가 한 걸음 내디뎠기 때문이리라.
“우리의 낙원이 들켰구나.”
혈마가 명을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분명 청천향으로 갔을 것이다. 이 낙원으로 무림인들이 들어올 방법은 바다를 잠재우는 것뿐이니. 이곳을 가르쳐준 호야와 윤이 덕에 핵을 없애면 된다는 것도 알겠지. 명아.”
“네, 어머니.”
“호야와 윤이는 네가 죽이거라.”
명의 몸이 잘게 떨렸다.
“네, 어머니.”
그녀는 생각했다.
‘멍청한 것들.’
호야와 윤은 멍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리한 편이다.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곳으로 돌아온 것일 테고. 자신들의 머리칼에 반응할 푸른 불빛에 대한 설명을 빼서 혈교에게 적에 대한 정보를 주고 싶어 했을 터.
그래야 본인들이 어느 정도 공을 세운 것이 될 테니까.
그러나 명이 그들의 선택에 대해 답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였다.
‘스스로 죽었어야지.’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가장 좋은 답이었다.
명의 표정이 굳어지려는 찰나.
혈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아, 아프지 않게 편히 죽여주려무나.”
“…네, 어머니.”
“명아, 고개를 들어보렴.”
명은 굳은 표정을 풀었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웃었다.
“명아, 너의 미소는 참으로 보기 좋구나.”
“감사합니다, 어머니.”
혈마는 명의 짧게 다듬어진 머리칼을 쓰다듬은 후, 대전을 벗어났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명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뒤따라 움직였다.
오늘 밤은 왠지 길 것 같다.
‘너, 이렇게 살고 싶냐?’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얼마 전, 이름이 지워진 세계.
죽어버린 세계를 방문했던 때를 떠올렸다.
어머니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잠시 들렀던 그 세계.
아피토유.
그곳에서 만났던 한 남자.
‘너, 용을 믿냐?’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던, 청년이라기엔 소년 같아 보이고. 소년이라기엔 청년 같아 보였던 사람.
‘너, 지금 네가 속한 데가 싫지?’
명은 안 그래도 뒤숭숭한 제 마음을 뒤흔들었던 이를 떠올렸다.
‘그대는 누구기에 나에게 이런 소릴 하는 것이오?’
짜증을 내며 불만을 표하던 명에게 그는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그렇소. 당신은 본인이 누군지도 말하지 않고,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그대는 이쪽 사람이 아닌 것 같다만. 내가 이대로 그대를 잡아버리면 그쪽은 죽는 거 모르오?’
‘내가 누군지 궁금해?’
으음.
고민하는 척하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자신을 표현했다.
‘나 용 사냥꾼.’
그의 자유로운 미소가 생각났다.
‘난, 드래곤 슬레이어지. 그것도 최초의 드래곤 슬레이어.’
명은 곧 생각을 털어냈다.
잠시 만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져 다시는 만날 수 없었던 이였다.
“후우.”
그녀는 숨을 들이마시며 걸음을 옮겼다.
푸른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을 자신은 벗어날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그저 저 빛을 따라갈 뿐.
“!”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녀의 눈동자에 검은 용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하늘로 솟구치며 주변 건물 지붕을 무너뜨리는 것이 보였다.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지?
그것도 이렇게 빨리?
그녀의 걸음이 신속하게 굉음이 들린 곳으로 향했다.
* * *
들킨 것을 깨달은 순간, 케일이 할 수 있는 행동은 간단했다.
“최한.”
호야의 목덜미를 최한이 움켜쥐었다. 그 곁으로 최정수가 붙어 섰다. 혈교 7호도.
“론.”
론이 소혈마 후보 윤의 얼굴을 가리던 포대를 벗겨냈다.
겁에 질렸음에도 웃고 있는 윤의 얼굴이 케일의 시야에 담겼다.
“윽!”
하지만 윤은 곧 신음을 토해냈다.
론이 그녀의 뒷덜미를 움켜쥐었으니까.
그런 그의 곁에 비크로스와 팀장 수이 칸이 함께했다.
“흩어져.”
곧 최한과 론을 중심으로 나뉜 두 무리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한 명은 서쪽, 다른 한 명은 동쪽.
동시에 케일은 웃음을 흘렸다.
최한이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보았으니까.
콰아아아앙—-!
검은 용의 형상을 한 오러가 건물 하나를 무너뜨렸다.
-인간아, 역시 최한이 잘한다!
그러니까 말이야.
본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안단 말이지.
시선 끌기를 제대로 했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또 부서뜨린다.
콰아아아아—–!
또.
콰아아아앙!
그리고 또.
-…인간아, 이래도 되나?
…몰라.
케일은 대충 최한이 날뛰는 광경을 외면했다.
그의 시선이 청천향으로 향했다.
“가볼까?”
케일의 말에 라온이 답했다.
-좋다!
남은 이는 케일과 라온, 백 노인뿐이었다.
그리고 케일에게는 이렇게 셋이면 충분했다.
만능 용 라온이 있었으니까.
“!”
백 노인이 멈칫했다. 그는 자신의 몸이 투명하게 변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더불어 두 발이 땅에서 떨어져 위로 서서히 떠오르는 것도 느꼈다.
“라온. 지붕으로 가자.”
“알았다, 인간! 오랜만에 인간하고 나하고 둘이서 턴다! 히히!”
백 노인은 깡그리 무시하는 발언을 한 라온은 신이 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곧장 비행 마법을 펼쳤다.
“좀 더 빠르게.”
케일의 요구대로 아주 빠르게.
그 덕인지 케일은 10층에 이르는 청천향의 꼭대기에 솟아오른 10각의 지붕에 신속하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케일은 그 속도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예감이 안 좋아.’
뒤통수가 이상하게 많이 서늘했다.
이럴 때 꼭 뭔 일이 터졌다.
‘아니지. 이미 터졌나?’
아래를 내려다보니, 곳곳에서 무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 수가 상당했지만.
‘징글징글하네.’
무엇보다도 전투 복장도 하얀색인 것은 물론, 여전히 가면을 쓰고 있는 모양새가 참으로 눈에 거슬렸다.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콰아아아—!
최한이 또 부순다.
콰아아아아—콰아아아—!
…이수혁 팀장, 저 인간도 부수네.
동쪽 서쪽. 두 팀은 본인들이 걸어가는 길을 알리기로 마음이라도 먹은 듯 그냥 다 때려 부수고 있었다.
“인간아! 다 때려 부순다!”
묘하게 신난 듯한 라온의 목소리는 무시했다. 어쩔 수 없었다. 이상하게, 케일은 마음이 찜찜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마음 상태에 신경 쓰고 있을 겨를은 없었다.
‘일단, 상황은 벌어졌어.’
혈교가 잠입을 알아챘다.
언제 혈마가 이곳에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아마도 곧 혈마가 모습을 드러내겠지.’
물론 혈마가 나설 급이 아니라며, 그 아래의 수하들이 나타날 수도 있으나. 어쨌든 지금 혈교의 대응으로 보아 이 상황을 가볍게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곧 큰 행사도 펼쳐질 예정이니까.
그런 상황에서 케일은 지금 잠입이 들키고, 잘못하면 정체도 들킬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이왕 이리된 거.’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난장판부터 만든다.’
이를 위해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무림인들을 불러들인다.’
정사마.
그 세 곳에서 끌어모은 정예들을 이 도시와 바다에 뿌린다.
그러면 알아서 절로 난장판이 벌어질 것이다.
이 꽤 크지만 그럼에도 작은 도시를 넘어 바다에서까지 싸움판이 벌어질 터.
혈교가 분산될수록, 질보다 양이 앞서는 무림인들에게 유리할 터.
‘그리고 이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뿐이지.’
바로, 진법의 핵을 바로 부순다.
‘나쁠 것 없는 판단이야.’
신녀와 오르세나 공녀들을 찾는 건 난장판이 펼쳐졌을 때, 슬그머니 움직이면 될 것이다.
‘그래. 그렇게 하자.’
여지껏 싸웠던 곳 중에 난장판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렇게 생각하니 케일은 찜찜함이 상당 부분 가셨다. 물론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긴 했다.
‘…혈마가 어느 정도이려나?’
혈마와 혈교. 그들의 강함은 샤올렌의 검은 피 가문과 비교하면 상당할 것이라 예상되었다.
그렇기에 때에 따라서 중원 사람들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 케일 일행이 나서야 할 상황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 보였다.
‘어쨌든 그것도 진법 핵부터 부수고 생각하자.’
타닥.
케일의 두 발이 지붕 위에 내려섰다.
“백 노.”
“크흠. 왜, 왜 그러나?”
묘하게 더듬는 말투에 케일은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봤다. 투명화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케일은 웃으며 물었다.
“왜 그래? 너도 속이는 게 있나?”
“난-”
“아냐, 됐어. 어차피 상관없어. 속여도.”
이제 혈교 놈들이라면 그냥 지긋지긋하고 귀찮아진 케일이었다.
그는 제 할 말만 했다.
“이 아래에 장치가 있다고?”
“그래. 최고 꼭대기 층에 진법 장치가 있다.”
해남 주변 바다를 다스리고, 이 도시를 가리는 진법 장치.
이 장치의 중심에 아피토유의 용들이 준 핵이 있다고 했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결계를 부수는 방법은 모른다고?”
“그렇다.”
청천향의 꼭대기 10층.
그곳 전체가 거대한 결계로 뒤덮여 있다고 했다.
이는 모두 진법 장치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진법실로 들어가는 방법은 결계의 입구를 통하는 길뿐이다.”
백 노인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입구는 혈마와 신녀. 그리고 문지기만이 열 수 있다.”
“그 문지기가 혈마의 스승이랬지?”
“그렇다. 혈마의 어릴 적 스승이지. 그가 진강시들과 함께 지키고 있어. 여하튼 이 세 사람만이 입구를 열 열쇠를 지니고-”
백 노인은 입을 다물었다.
케일과 라온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