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44
권왕에게서 시선을 뗀 케일은 라온에게 눈짓했다.
“돌아가자.”
혈교로.
“알았다, 인간아!”
우우우-
검은 마나가 갑판 위에 다시금 텔레포트 진을 만들어갔다.
곧 떠나려는 케일을 바라보던 권왕이 망설이다가 말했다.
“…김 공자! 청천향이 무너지면서, 뭔 일이 벌어지려는 건가?”
파아앗-!
환한 빛에 휘감기며 케일은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확인하러 갑니다.”
그래야, 대책을 세울 테니까.
권왕의 비장한 표정과 겁먹은 전 신녀의 표정 등이 케일의 앞에서 사라져갔다.
그때, 하늘을 잡아먹는 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 이거 아무래도, 음.
눈을 감으며 텔레포트 마법에 몸을 맡기는 케일에게 하늘을 잡아먹는 물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과 바다가 모두 밀려올 것 같은데?
빌어먹을.
거친 말과 함께 눈을 뜬 케일은 청천향 건물 바로 앞에 있는 광장에서 눈을 떴다.
그때였다.
저릿.
순간 심장께 쪽이 저려왔다.
“으-”
동시에 라온의 신음이 들려왔다. 케일은 곧장 손을 뻗었다.
날개를, 몸을 웅크린 라온이 보였다. 그리고 잘게 떨리는 날개를 본 순간, 케일은 곧장 라온을 품에 끌어다 안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허억, 헉.”
“크윽.”
광장 한가운데로 텔레포트를 했음에도 누구 하나 케일을 향해 검을 겨누는 적이 없었다.
모두 무릎을 꿇거나 엎어진 채, 아니면 간신히 선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툭. 툭.
케일은 라온의 등을 대충 쓰다듬었다.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아.”
떨림은 없었다.
다만, 두려움과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인간아… 이건 뭔가……?”
라온이 케일에게 진심으로 무언가의 정체에 대해 묻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케일은 그 안에 담긴 것이 미세한 두려움이라는 사실에 짜증이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케일의 품에 안겨있던 라온이 고개를 들어 조금씩, 조금씩, 본인을 떨게 만들었던 존재를 바라봤으니까.
케일 역시도 그쪽을 바라봤다.
스스슷—-
바람이 불어왔다.
자연 바람이 아니었다.
넘실거리는 푸른 기운. 그 푸른색이 빛나고 있었다. 마치 빛을 머금은 바다처럼, 총천연색의 아름다운 푸른 빛깔은 수백, 수천 가지의 청색이 뒤섞여 실로 바다와 같았다.
그 기운이 일렁일 때마다 바람이 불었고, 그 바람에 실린 기운에 케일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그때, 지배하는 아우라가 반응했다.
-호오. 꽤 하는데?
드래곤 피어.
대부분의 생명체를 두려움에 빠지게 만드는 기운.
그와 유사하면서도 전혀 다른 기운이 케일의 피부에 닿았다.
“인간아.”
라온이 고개를 빼꼼 들이밀었다. 이제 하나도 떨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꼼지락댔다.
고개를 숙이니 라온이 보였다.
“나 이제 괜찮다!”
고룡 에르하벤. 그가 뿜어내는 드래곤 피어를 같은 용인 라온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낯선 기운은 어린 용에게 잠시 두려움을 안겨줄 수 있을 터.
아무리 용이래도 이제 6살인 라온이지 않은가.
케일은 라온을 감싸 안던 팔을 풀었다.
조금 팔이 저렸지만, 무시했다.
대신 다른 곳을 바라봤다.
지배하는 아우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이 기운, 이거 아무래도 수만, 아니 수십만의 생명으로 만든 거 같은데?
저벅.
케일이 걸음을 내디뎠다.
그의 눈에 담겼다.
검을 바닥에 박으며 숨을 몰아쉬는 최한이.
혈마의 정면에 선 그는 바다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푸른 기운 앞에서 한없이 그 존재가 작았다.
고작 한 명의 인간일 뿐이었으니까.
콰직.
최한은 숨을 몰아쉬었다. 검을 박은 지붕에 금이 갔다.
하지만 그는 정면만을 응시했다.
혈마와 눈이 마주쳤다.
“꽤 재밌지만, 오래 상대해 줄 수는 없겠구나.”
그녀는 평온해 보였다.
푸른 기운 속, 그녀의 새하얀 머리칼이 그림처럼 나부꼈다.
“후우.”
최한은 옆에서 깊이 숨을 내쉬는 팀장 이수혁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최정수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최정수가 혈마를 공격했을 때.
팀장의 힘 덕에 아주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 최정수의 백룡이 혈마를 물어뜯을 듯 달려드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갑자기 혈마에게서 막대한 기운이 표출되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기운에 최정수가 튕겨져 날아갔다. 백룡은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듯 푸른 기운에 잠겨 순식간에 잡아먹혔다.
‘하.’
최한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비로소, 그는 깨달았다.
‘이게 진짜 혈마구나.’
샤올렌의 검은 피 가문. 화이언스 가주는 별것 아니었구나.
‘그래, 이게 말이 되지.’
그는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수십만 명의 목숨을 빼앗고 그 생명력을 자신의 기운으로 만들었어.’
그런 사람이 만든 기운은, 이렇게 강대해야 말이 맞다.
단순히 깨끗하고 순수하기만 하다면 말이 되지 않았다.
왜냐면,
‘수십만 명의 목숨. 그 무게는 무엇보다도 무거울 테니까.’
어떻게 보면 에르하벤 님의 드래곤 피어보다 더 강하다.
아무리 용이라도, 고작 하나일 뿐인 존재가 뿜어내는 기운이 수십만 명의 목숨이 만들어내는 기운의 무게보다 무거울 순 없으니까.
“쯧.”
혈마가 혀를 찼다.
“여기서 내 전력을 쓰게 될 줄은 몰랐구나.”
그녀는 최한과 그의 뒤에 선 채 고개를 숙인 수이 칸을 향해 인정한다는 듯 말했다.
“인정하마. 너희는 훌륭하다.”
그녀의 시선이 지붕 아래로 잠깐 향했다.
“하아, 하아-”
“허억, 어, 어머니.”
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몰아쉬는 소혈마 후보 두 명.
그들의 푸른 머리칼은 검게 변하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푸른 기운이 솟구쳐 올라, 혈마의 기운에 스며들었다.
그 광경을 보던 최한은 실소를 흘렸다.
‘소혈마 후보도 결국 혈마를 위한 존재였어.’
혈마는 자신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소혈마 후보들의 기운을 빨아들여 제 기운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소혈마 후보 은과 백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간 훌륭하게 성장했구나. 좋은 기운을 가졌어. 멋지게 자라나서 이 어미는 기쁘구나.”
어찌 저렇게 할 수가 있을까.
최한이 그리 생각한 때.
스스스—-
다시 바람이 불었다.
더 거세졌다.
“시간 낭비는 그만하고 싶구나.”
혈마가 기운을 일으켰다.
마치, 해일과도 같은 푸른 기운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거대한 파도가 생겨나듯 혈마를 중심으로 기운이 치솟아 올랐다.
그 기운은 정확히 최한과 수이 칸 쪽으로 향했다.
저벅.
혈마가 한 걸음을 내디뎠다.
쿵!
최한은 심장이 크게 떨렸다.
막대한 기운이 저를 덮쳐오려는 게 느껴졌으니까.
저 수많은 생명을 담은 기운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저건 늪이다.’
바다가 아니다.
늪이다.
한번 빠져들면, 머리카락 한 올까지 모두 빨아들여 그 목숨을 빼앗아버리는, 그런 늪이다.
최한은 저 푸른 기운에 삼켜지는 순간, 제 기운이 빨려 들어가 존재마저 사라질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무공인가?’
어찌, 혈마는 이런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지?
그때, 혈마의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천향에 무슨 일이 생긴 듯하니, 얼른 너희를 해결하고. 너희와 아피토유 녀석들이 벌여놓은 일을 해결해야겠구나.”
스스스—-
푸른 기운이 더 거대하게 치솟아 올랐다.
“음.”
혈교에 당도한 남궁세가의 검선은 그 기운 앞에서 겨우 서 있을 수 있었다.
흉한 꼴을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허억.”
“크윽.”
이미 세가의 무인들은 이 거대한 기운 앞에서 제대로 숨조차 못 쉬고 있었으니까.
‘마치-’
그래, 그것과 같구나.
검선은 거대한 푸른 기운을 보며 떠올렸다.
운남성.
그곳의 성벽을 무너뜨렸던 김 공자의 해일. 그것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검선은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아니야.’
그것보다 더 강대하다.
혈마가-
‘더 위야.’
그 사실에 검선은 온몸에 힘이 빠지는 듯했다.
누가 저 기운을 막을 수 있을까.
다른 의미로 검선은 숨이 막혀오는 듯했다.
스스로의 무능에 그는 숨을 잘 쉴 수가 없었다.
저벅.
그렇기에 한 걸음 내디뎠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 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본능적인 두려움이 그의 몸을 옥죄었으니까.
그럼에도 걸음을 또 내디뎠다.
그의 앞에 선 천마. 저자가 이미 걸어가고 있었으니까.
질 수는 없다.
그러다 문득 혈마가 주변을 둘러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저들을 향했다.
피식.
혈마는 얕은 웃음을 흘렸다.
비웃음조차도 아니었다.
“가엽구나.”
그녀는 딱 그 한마디만 했다.
순간 검선의 얼굴이 일그러진 그때.
“뭔 헛소리야.”
혈마가 멈칫했다.
스슷-.
푸른 기운이 만들었던 바람이 멈췄다.
그녀의 고개가 아래로 향했다.
저벅저벅.
태연하게 그녀를 향해 걸어오는 이가 있었다.
그녀를 올려다보며 다가오는 사람. 그 사람의 눈빛은 상당히 삐딱했으며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그리고 거침이 없었다.
파닥파닥.
그 사람의 등 뒤에는 어린 검은 용이 날개를 파닥이며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를 붙잡지도, 막아서지도. 심지어 쳐다보지도 못했다.
우우—
공기가 진동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푸른 기운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거대한 기운이 지금 걸어오는 저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왔으니까.
“…어떻게-”
어떻게 이 기운을 밀어내지……?
혈마는 그 생각을 하자마자 흠칫하며 고개를 숙였다. 제 팔을 내려다봤다.
소름이 돋아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내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한 때. 온화하던 얼굴에, 그 미간에 처음으로 주름이 생겼을 때.
“혈마.”
삐딱한 자세로 저를 올려다보는 한 사람.
케일 헤니투스는 혈마를 보며 툭 던지듯 물었다.
“너 왜 용 흉내 내냐?”
라온이 케일에게 말했다.
‘인간아, 저 기운 드래곤 피어랑 많이 다른데, 이상하게 또 아주 흡사하다. 뭔가, 드래곤 피어를 보고 만든 기운 같다!’
기운의 근본은 다르나, 그 기운을 사용하는 방향이 드래곤 피어와 유사하다고.
‘음, 그 드래곤 피어를 내가 설명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뭔가 드래곤 피어와 그 느낌이 비슷하다.’
케일은 라온이 건넨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드래곤 피어.
그것은 용이 이 지상에 자신들만이 고귀한 존재라고 알리는 것처럼, 용을 제외한 모든 것은 먹잇감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겨주려는 것처럼.
격이 다른 것을, 아니, 알아서 경배하라고 인간의 본능에 각인시키려는 공포와 같았다.
‘그리고 혈마는 이와 유사해.’
그녀가 뿜어내는 기운은 마치 자신이 이 세상에 유일한 고귀한 존재이니, 고개를 숙이라고 그리 말하는 것 같았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라고.
수십만의 생명을 품은 유일한 존재가 자신이니까.
케일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그는 혈마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너 용 이기려고 이 기운 만들었지?”
푸른 피 가문과 보라 피 가문.
그 두 가지를 놓고 봤을 때.
혈교를 지키는 진법. 그 중요하고 귀중한 진법의 중심에 있는 핵은 보라 피 가문 용이 준 것이다.
용이 없으면 만들지 못했다.
즉, 혈교는 아피토유의 용들에게 빚을 졌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상하 관계가 있을 터.
그래서 케일은 찔러보았다.
그리고 답을 얻었다.
케일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정답인가 보네?”
혈마의 일그러진 입가를 본 케일은 얕은 웃음을 흘렸다.
이를 본 혈마의 입이 마침내 열렸다.
“감히-”
혈마는 아래의 케일을 내려다보며 기운을 움직였다.
스스—
푸른 기운이 다시 움직였다.
거대한 푸른 파도가 케일에게로 향했다.
마치 운남성에서 케일이 만든 파도가 성벽을 덮치기 직전, 그 찰나의 순간처럼.
케일이 이를 가만히 올려다보던 그때.
누군가가 반응했다.
-감히.
지배하는 아우라.
그가 우습다는 듯 읊조렸다.
-지가 신이야?
피식.
케일은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중후한 목소리로 저렇게 방정맞게 말하는 것도 능력이다 싶었으니까.
-케일, 허세는 우리가 안 져!
그 말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게 발을 굴렀다.
쿵—!
하지만 공기가 진동했다.
“……!”
혈마의 눈이 커졌다.
푸른 파도는 멈췄다.
움직일 수 없었다.
“허억.”
혈마가 순간 제 목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저를 응시하는 케일.
그의 주변 공기가 일렁였다.
‘어, 어떻게-’
그녀는 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아주 공포스럽고 무서운 무언가가 저를 죽일 것만 같은 감정을 느꼈으니까.
혈마는 무엇이 저를 이렇게 두렵게 하나 생각했다.
하지만 본능처럼 깨달았다.
살면서 마주해 본 적이 없어서, 배워본 적도 없어서.
머릿속에 정립조차 되지 않은, 설명조차 할 수 없는 공포스러운 괴물.
저를 잡아먹어 버릴 괴물이 눈앞에 있었다.
저 남자.
마른 체격의 저 인간이 그 괴물이구나.
혈마는 제 몸과 숨이 모두 지배당하는 것만 같았다.
케일의 머릿속으로 지배하는 아우라가 말했다.
-남의 목숨을 훔쳐서 제 것인 것마냥 구는 녀석은 겁쟁이일 뿐이야.
-수십만의 생명을 빼앗아야만 경배를 받을 수 있는 기운보다는 허세라도 스스로 세운 기운이 더 나아.
굳은 혈마의 어깨 너머.
-봐. 진짜 맹수가 겨우 겁쟁이한테 굴할 리가 없다니까.
케일은 최한, 팀장과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아주 멀쩡해 보였다.
그러라고 시간을 벌어주었으니, 마무리는 저들 몫이다.
케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마를 묶어둔 찰나.
두 사람이 움직였다.
-그런데 케일, 아직 나 전력으로 해본 적 없다?
지배하는 아우라의 허세를 들으며, 케일은 이를 잠시 지켜보았다.
이제 혈마의 끝일 테니까.
서걱.
먼저 움직인 것은 팀장 수이 칸이었다.
그의 철검이 푸른 기운의 끝자락을 잘라냈다. 그리고 그 틈새에 파고들며 혈마에게로 향하는 길을 만들어갔다.
“…….”
이를 누구보다도 기민하게 느낀 이는 혈마 본인이었다.
그녀는 케일의 기운에 온몸이 묶이고 숨마저 제대로 쉴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저 왜소한 사람에게 기가 눌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니-
“그건-”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