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47
청천향 10층.
그곳의 바닥과 천장에 새겨져 있던 10각의 진법.
그것이 지금 허공에서 보랏빛을 뿜어내며 사라지고 있었다.
케일은 그 진법을 보고 거친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라온, 비행 마법!”
그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바닥과 천장에 각각 다른 문양으로 새겨졌던 진법.
그 위아래가 바뀌어져 있었다.
케일은 그 진법의 기이한 문양을 정확히 기록해 둔 상태였다.
상징적이었지만, 대충 무엇을 표현했는지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던 진법.
바닥에 새겨진 진법은 땅과 산, 바다의 형상을.
그리고 천장에 새겨진 문양은 하늘과 비, 구름을 나타내고 있었다.
지금 그것이 위아래가 바뀌었다.
즉, 하늘과 땅이 뒤집혔다.
우르르르—
하늘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질수록 케일은 등 뒤로 식은땀이 났다.
이거 큰일이 벌어진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그런 그에게 난감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케일, 바다를 잠재워야 할 거 같은데?
하늘을 잡아먹는 물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묘하게 그 목소리는 난감해하면서도 들떠 있었다.
“제길!”
이를 들은 케일은 거친 말을 내뱉지 않을 수가 없었다.
***
푸른 기운이 솟구쳐 하늘로 사라지는 광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마교의 하늘이라 불리는 천마는 등 뒤로 탄성을 감추지 못하는 노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한 마리의 이무기가 하늘로 승천하는 것 같군.”
검선이었다.
천마는 그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제 눈빛을 저 노인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
혈마와 최한의 싸움.
그 모든 것을 천마는 온전히 보았다.
사실 그는 그 자리에 뛰어들려고 했다.
최정수, 최한, 이수혁. 그들의 싸움판에 끼어들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혈마가 일으킨 가공할 거대한 기운 때문이 아니었다.
처음에 그 기운을 마주했을 때는 순간 천마라는 위치를 잊고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을 뻔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참아내었고, 점점 더 그 기운 속에서 스스로를 바로 세울 수 있었다.
물론 이는 그 거대한 기운이 천마 본인을 바로 노린 것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버틸 만했다.
하지만-
‘김해일.’
그 녀석의 기운이 혈마를 막아선 순간, 천마는 자신이 싸워야 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잠시 넋을 놓아버렸다.
‘그건-’
예전 그의 앞에서 김해일이 그 기운을 펼쳤던 적이 있었지만.
‘비교도 할 수 없다.’
그때가 한 줌의 모래와 같았다면, 이번에 그가 느낀 것은 드넓은 모래밭과 같았다.
그것을 깨닫게 되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의 끝은 어디지?’
김해일. 그 녀석은 전력을 다하는 것 같지 않았다.
천마는 현경이라는 무공의 경지에 오르며 조금은 자연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김해일 저 녀석이 사용하는 기운의 근간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티끌을 들여다보았다.
‘없다.’
저 녀석의 기운 속에는 자연이 없다.
다만 끝을 알 수 없는 광대한 무언가를 느꼈을 뿐.
‘그렇다면 무엇이 담긴 것일까?’
천마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 답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곧 답을 알게 되었다.
‘최한.’
그 녀석의 몸에서도 혈마, 김해일과 비슷한 기운이 일어났다.
물론 두 사람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그것은 분명 내공도, 최한이 사용하던 힘도 아니었다.
“하.”
그리고 그 힘의 한 톨을 느낀 순간, 천마는 깨달았다.
최한도, 김해일도.
그 안에 담은 것은 자연이 아니구나.
‘인간이다.’
저들이 뿜어내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진 무언가였다.
그러니 혈마가 다르게 보였다.
혈마가 가진 것이 무수히 많은 인간들로 엮어진 감옥이라는 것을.
쿵. 쿵.
천마는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그는 누구에게도 제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왜냐면-
‘오랜만이구나.’
왜냐면, 설렜으니까.
강해질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찾았다.
화경을 지나 현경을 지나 자연경.
특히 자연경은 자연과 같아진다고 하여 그리 명명된 경지였다.
하지만 저 두 사람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특히, 최한을 보는 순간 그는 인지했다.
자신이 나아갈 길에 대해서.
‘굳이 자연이 될 필요가 없다.’
인간. 그 자체로도 길을 열 수가 있구나.
그것도 다른 존재들과 다른 나라는 존재만의 길을.
‘미치겠다.’
너무 설렌다.
그는 오늘 자신이 가야 할 이정표를 찾아냈다.
‘최한.’
저 녀석을 참고하자.
김해일은 이미 자연을 담고 있으니, 그는 천마와 맞지 않다. 오히려 최한이 천마와 닮았다.
이미 그전에도 그의 오러에 서린 기운을 닮았다고 느끼지 않았던가.
‘자연경?’
그 경지는 잊자.
나로서 온전히 서자.
그것이 맞다.
천마는 심장이 거세게 뛰면서 동시에 제 손끝에 무언가가 잡힐듯한 기분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검을 들어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검술을 펼치고 싶었다.
그의 입꼬리가 점점 더 올라갔다.
현경 중반.
현 중원 무림인들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천마는 자신이 나아갈 길을 정했다.
‘언젠가 나도 나만의 길을 기운으로 뿜어낼 수 있게 된다면-’
그리되면.
‘그때는 한바탕 즐거이 놀아보고 싶구나.’
특히 최한 저 녀석과.
혈마가 사라진 자리. 홀로 서 있는 최한을 바라보는 천마의 눈동자에 호승심과 승부욕이 타올랐다.
그때였다.
“음.”
천마는 멈칫했다.
그의 시선이 저 멀리 바다 쪽으로 향했다.
등 뒤로 다급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긴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모여야 합니다!”
무림맹 총군사 제갈미려였다. 그녀는 분명 해안가 쪽에서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고 있지 않았던가?
굳은 표정의 천마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옆에는 권왕 목현이 있었다.
“아무래도 진법에 뭔가 일이 생긴 것 같네.”
그 말이 끝난 순간, 천마는 곧장 몸을 움직였다.
제갈미려와 사마평도 함께였다.
특히 사마평은 어느새 합류하며 말했다.
“일단 김 공자님께 가지요.”
정사마의 대표 세 명이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 넋을 놓고 혈마와 최한의 전투 현장을 바라보던 무림인과 혈교도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렸다.
그들을 옥죄는 기운이 모두 사라졌음을 깨닫고 겨우 숨을 편히 내쉬려는 찰나.
우르르르—
비로소 그제야 하늘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단순한 천둥소리라기에는 범상치 않았다.
아니, 본능적으로 두려움이 일게 하는 소리였다.
우르르–
그리고 그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져 왔다.
이를 체감한 때, 그들은 몇 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정신 차려라!”
개방의 호송이 장로부터 시작하여.
“혈마는 죽었다, 혈교도들은 모든 무기를 내려놓아라!”
“혈교 내의 민간인들을 찾아! 한데 모아! 지금 해안가로 아무도 못 가게 해!”
“지금 바다의 저게 안 보여? 배를 띄우기 전에 일단 사람들 수부터 파악해야 할 거 아냐!”
“싸움이 문제가 아니다!”
곳곳에서 정파, 사파, 마교의 고수들이 총군사의 지시에 따라 주변을 정리하여 나갔다.
우르르르-
다시 하늘이 울었다.
누군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읊조렸다.
“천둥소리가 들리는데, 어째서 벼락이 보이지 않지?”
그리고.
“왜, 검기만 한 거야?”
울부짖으며 점점 더 다가오는 하늘은 사방을 어둡게 만들었다.
그리고 해안가에서 섬의 중심부로 뛰어오는 이들에게 조금씩 들려왔다.
철썩.
점점 더 거칠어지는 바다의 외침이.
불길함이 조금씩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더 이상 밤하늘의 선명한 별빛과 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 멀리 어둠이 곧 저를 덮칠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그 어둠을 응시하고 있던 한 사람.
케일은 입을 열었다.
“설명 좀 알아서 해줘.”
“네, 도련님.”
다가오는 무림인들을 상대하는 것을 론에게 넘기고 시선을 돌렸다. 론은 비행 마법으로 공중에 떠올라있던 몸이 자연히 아래로 향했다.
“인간아, 나 이거 분석이 안 된다!”
진법을 들여다보고 있던 라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아까는 진법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걸로 변했다! 마법도 아니고, 이게 뭔지 모르겠다!”
라온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것은 관찰하고 배우면 되지만.
“자연이 밀려온다!”
하지만 지금 저기 다가오는 거대한 자연은 라온이 감당하기에도 컸다.
점점 더 빠르게 다가오는 기운은 처음과 달리 점점 더 커지고 집약되어-
“인간아, 저 정도면 섬은 물론이고 저 육지까지 닿을 거다.”
해남섬과 내륙 해안가까지 덮칠 것이라고 라온이 진지하게 조언했다.
“원래는 이렇지 않았는데, 혈마가 무너지고 난 후로 부쩍 빨라지고 강해졌다! 마치 그걸 기다린 것 같다!”
그 말에 케일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러고 보면 이 진법에 그나마 편히 접근할 수 있는 이가 혈마라고 했다.’
즉, 진법이 혈마의 기운을 안다는 소리였고.
이 진법은 아피토유 용들이 장난을 쳐놨다.
“이야.”
급박한 와중에 저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아직 실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피토유 용들이었지만.
‘무서운 놈들이네?’
그들의 심계가 아주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인간아, 분명 저 보라색 기운은 용의 기운이 섞였는데 정확한 정체를 모르겠다.”
“후우.”
케일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으니.
‘일단 해보자.’
그는 품에서 보랏빛 원석을 꺼내 들었다.
진법의 핵이 거칠게 진동했다.
케일은 위아래가 바뀐 진법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10각은 진법은 모두 보랏빛 기운을 뿜어냈다.
그리고 서로 그 기운이 연결되어 하나의 10각 기둥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케일은 보랏빛 기운이 만든 반투명한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진법의 핵을 되돌려 놓으면, 혹시 멈출지도 몰라.’
급하지 않게, 하지만 망설임 없이.
케일은 손을 뻗었다.
콰앙!
“크윽!”
“인간아!”
그리고 그의 몸이 튕겨졌다.
라온이 급하게 케일을 붙잡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케일은 땅바닥에 처박혔을 것이다. 그 정도의 반탄력이 케일을 덮쳤다.
“인간아, 괜찮나?”
“어.”
케일은 저릿저릿한 오른팔을 주무르며 진법을 응시했다.
“…아예 안 되네.”
진법이 핵을 거부한다.
그리고 핵도 진법을 거부한다.
서로가 서로를 밀어냈다.
‘미치겠네.’
어떡하지?
하늘을 잡아먹는 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 하늘보다 바다가 크게 일어날 것 같다. 해일이 섬을 덮칠 거야.
알아, 나도 안다고!
일단 섬사람들은 내륙으로 옮겨?
아니지, 저 해일이 내륙 해안가도 덮칠 것 같다고 하잖아.
“하.”
기가 찬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아니, 이 아피토유 용들은 미친 건가?’
혈교만 없애던가.
이 정도 크기의 힘은 거의 재난이잖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겠는가?
짜증이 치솟았다.
‘빌어먹을.’
머릿속이 복잡해지던 때, 라온이 다급하게 말했다.
“금 용 할배는 알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 맞다!
케일은 품에서 신물인 거울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곧장 영상통신을 연결했다.
알베르 크로스만, 왕세자에게 연결해서 에르하벤을 불러달라고 하면 될 터.
거울 위로 화면이 떠올랐다. 곧 왕세자와 만날 터.
“김해일!”
그때,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무너진 건물 잔해더미. 그중에서 꽤 무거운 벽 일부를 들어 올린 최정수가 한 사람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쿨럭!”
강시를 만들던 백 노인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크윽.”
10층 진법을 지키고 있던 혈마의 스승, 문지기가 기절한 채로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해일 님.”
그리고 최한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혈마 후보 명의 뒷덜미를 잡아 들어올려 보였다.
“라온, 저 셋 다 끌고 올라와!”
“알았다, 인간아!”
케일의 지시에 따라 그 세 명이 위로 올라왔다.
물론 그들의 목덜미와 멱살을 잡고 있는 최한과 최정수도 함께였다.
“다 정신 차리게 해.”
“나, 나는 정신 차렸네!”
백 노인이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자신의 멀쩡함을 피력했다.
케일은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 진법, 왜 이렇게 되었는지. 고칠 방법은 무엇인지. 아는 거 다 말해.”
저도 모르게 지배하는 아우라를 풍기는 케일이었다.
그만큼 급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걸 나 혼자는 막을 수 없다고!’
하늘을 잡아먹는 물이 바다를 잠재우자고 말했지만.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
운남성 성벽을 무너뜨리는 일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저건.
정말로 자연재해 그 자체를 막아서야 하는 일이니까.
그러니 최우선적으로 진법으로 해결을 볼 방법을 찾아야 한다.
‘멈출 수 없다면, 적어도 약하게 만들 방법이라도 찾아야 해!’
케일의 살벌한 시선 때문일까, 백 노인은 빠르게 답했다.
“모, 모르네. 이런 상황은 예상조차 못 했어-”
그때, 거센 소리가 들려왔다.
쫘악!
고개를 돌리니 최정수가 문지기의 뺨을 거하게 후려쳤다.
그리고 한마디 툭 내뱉었다.
“이미 깨어난 거 다 알고 있다.”
문지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알고 있는데 왜-”
왜 뺨을 때렸냐고 말하려던 문지기는 코앞까지 다가온 케일을 보고 멈칫했다.
“넌 아는 거 있어?”
“…나도 모르네. 나는 저 진법을 만들 당시 근처를 보지도 못했어.”
케일은 등 뒤를 돌아보았다.
“하아.”
소혈마 후보 명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도 모른다.”
케일이 눈을 질끈 감은 그 순간.
-뭔 일이야?
알베르 크로스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더불어 또 다른 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케일이 바로 눈을 떴다.
라온의 마법으로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신물. 그 거울 위 화면에 자리한 알베르 크로스만. 잔뜩 피곤해하는 그 얼굴 옆에 에르하벤이 나른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에르하벤 님!”
케일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진법을 보여주었다.
-왜 이래?
저를 보고 다급한 케일의 얼굴에 멈칫했던 에르하벤은 이내 진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곧 툭 내뱉었다.
-저거-
무언가를 알아챈 듯한 모습에 케일은 저도 모르게 에르하벤을 재촉했다.
“에르하벤 님, 뭔지 알겠습니까? 저게 뭔데요? 네?”
-어? 아니, 저런 기운의 흐름은- 음.
망설이는 그에게 케일이 한 번 더 물었다.
“뭔데요? 그냥 다 말해보세요!”
저 해일을 나 혼자 막다가는 피 토하거나 기절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골로 갈지도 모른다고!
그렇다고 다른 이들이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린 라온이 피를 토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저건 저렇게 존재할 수가 없는 힘인데.
“아, 그니까 뭔데요!”
저도 모르게 불경한 어투가 줄줄 흘러나오는 케일이었다.
-아니, 그, 그게 너도 알 텐데?
당황한 듯한 에르하벤이 얼떨떨한 얼굴로 케일을 쳐다보며 툭 내뱉었다.
-저거 세계수들이 쓰는 힘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