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53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띠링!
슬쩍 케일의 얼굴이 펴졌다.
띠링.
오. 웬일로 이 녀석이 바른말을 하지?
케일의 입꼬리 한쪽이 삐쭉 위로 올라갔다.
25장. 거래가 성립되었습니다
케일은 금으로 도배가 된 훈련장 바닥에 아주 조심스럽게 앉았다.
소혈마 후보 명의 묘한 눈빛이 보였다.
“왜?”
그의 무심한 어투에 명은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케일은 그 모습에 관심을 끄고는 신물 거울을 보며 입을 열었다.
“3일을 기다리라고?”
바로 내일 떠난다는 케일의 말에 중원이는 3일만 기다렸다가 보상을 받고 가라고 말해왔다.
띠링.
호오.
케일의 입에서 작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는 정말 놀랍다는 얼굴로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중원아.”
번쩍거리는 금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있던 라온이 멈칫했다. 그리고 그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해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사근한 투로 말을 건넸다.
“나에게 3일이라는 시간은 엄청 귀한 거야. 그 가치는 알고 있겠지?”
거울이 조용하다.
“중원아. 내가 묻잖아. 내 3일의 가치, 알지?”
띠, 띠링!
“그래. 잘 알아서 다행이구나. 하하!”
케일이 아주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도 된 듯 호방한 웃음을 시원하게 터트렸다. 그러다가 그 웃음기를 머금은 채 말했다.
“중원아, 그럼 내 귀한 3일까지 보내면서 기다린 만큼 그 보상은 참 커야겠다. 그렇지?”
“그런데 중원이 원래는 샤올렌만큼 보상을 못 준다고 했던 거 같은데. 알고 보니까, 가진 게 좀 있나 보다?”
띠…링.
케일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그때, 라온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무언가를 알아챈 듯한 표정이었다.
“샤올렌에서보다 더 힘들었어.”
“맞다!”
라온이 냅다 끼어들었다.
검은 용은 케일의 옆에 자리 잡고 앉아서 거울을 보며 말했다.
“우리 인간, 엄청 힘들었다! 그리고 나도, 최한도, 다 고생했다! 그리고 샤올렌에서보다 더 엄청 오래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말하다 보니 감정이 격해졌는지, 라온이 앞발로 바닥을 내리쳤다.
쿵!
금으로 된 바닥이 움푹 파였다.
케일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온은 콧김을 뿜으며 외쳤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머리가 팡팡!”
쿵쿵!
팡팡 소리에 한 번, 쿵쿵 소리에 한 번. 케일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리고 몸도 팡팡!”
쿵쿵!
케일이 또 움찔했다.
“다 터질 뻔했다! 우리 인간 큰일 날 뻔했다!”
쾅!
결국 어린 용의 통통한 두 앞발에 금으로 된 바닥은 깊은 구멍이 뚫려버렸다.
‘…더 살벌해졌단 말이지.’
역시 살벌한 용이다.
케일은 슬그머니 라온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띠…띠링…….
“이런 것들도 다 감안해서! 보답을 준비해야 한다!”
처음에는 보답 때문에 반짝이던 눈이 말하다 보니 화가 난 것인지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띠링!
“세계수 힘?”
라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케일의 한쪽 눈썹이 들리려는 찰나.
콰아앙!
바닥에 다시 구멍이 뚫렸다.
중원이가 딸꾹질을 하든 말든, 케일은 놀란 얼굴로 라온을 바라봤다.
날개가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검은 용의 얼굴에 분노가 어렸다.
쒸익 쒸익. 얼마나 화가 났는지 콧김은 물론 입에서도 분노의 숨쉬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케일은 괜히 자세를 바르게 하고 가만히 두 손을 앞으로 두고 입을 다물었다.
“…씨익, 씩.”
한참 숨을 몰아쉬던 라온이 냅다 다다다 외쳐댔다.
“그건 내가, 우리가 고생해서 봉인시킨 힘이다! 그걸 왜 네가 가져가라 말라 하냐! 중원이 너 바보냐!”
쾅!
“아니면 사기꾼이냐? 지금 우리 뒤통수치려는 거냐?”
쾅!
“아니면 그거 주는 걸 보답이라고 생색낼 작정이냐?”
콰앙!
콰앙!
“…그래서?”
라온이 나직이 되묻는 말에 케일은 움찔했다. 순간 라온에게서 에르하벤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맑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그래서?’라고 읊조리는 모양새는 론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제일 살벌한 두 노인을 닮아버렸네.’
케일은 본인을 가장 많이 닮았다는 것을 모른 채, 가만히 있었다. 이럴 때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최고였다.
중원이가 당황했다.
그때, 케일이 슬쩍 끼어들었다. 온화한 목소리로.
“중원아.”
다정한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힘차게 답하는 중원이에게 케일은 이어 말했다.
“너 우리가 우습니?”
라온이 콧김을 뿜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케일의 화사한 미소를 보고는 다시 날개를 파닥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케일은 저 녀석이 왜 저러나 모르겠으나, 단숨에 분노가 사그라든 모습에 만족했다.
살벌한 용은 무서우니까.
물론 그 와중에도 케일은 할 말은 이어갔다.
“가만히 보니까, 중원이 너는 참 약은 것 같아.”
지금껏 느꼈던 바를 케일은 차분하고 부드럽게 전했다.
“맨날 아기 세계라고, 잘 모른다고, 힘이 없다고, 가진 것도 없다고. 그렇게 말해왔는데, 막상 들여다보니까, 아니네? 중원아, 이게 무슨 일일까? 응?”
띠…….
“중원이는 우리가 아주 우습나 보네. 그렇지? 그러니 여기 이 세계에서 해야 할 일, 정말 힘들게 겨우 해내고 나서 이제 떠나려고 하는 사람들 떠나는 것도 막고, 되도 않는 보상을 보답이라고 내밀고, 거기다가 그걸 당연하다는 말로 기만하려고 하고. 참, 재밌다. 그치?”
띠잉…….
사실 케일이 중원에서 얻은 게 꽤 있기는 했다.
막시리언. 그 용이 남겨둔 힘 덕에 하늘을 잡아먹는 물을 엄청나게 강화할 수 있었고, 충전식 힘도 얻었다.
더불어 세 가지 물건은 아피토유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케일이 얻은 것일 뿐, 중원이 준 건 아니다.
또한 중원이가 중간중간 균형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케일에게 부담이 오지 않게 노력한 것 같았으나.
‘그건 결국 본인의 세계를 위해서였잖아?’
케일은 거울 화면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이틀 뒤에 간다.”
띠링!
케일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무심한 눈길로 거울을 내려다봤다.
“2일 안으로 준비해. 보상이든 뭐든.”
그는 툭 내뱉었다.
“날로 먹으면 안 되지. 그렇지?”
“자, 중원아, 할 수 있다?”
띠…링!
그때, 잠자코 있던 라온이 외쳤다.
“내가 지켜본다!”
띠링.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차라리 저렇게 말했다면 별말 안 하겠지만, 라온이 고생해서 봉인한 세계수 힘을 대가로 준다니. 아무리 동자승 조각상이 중원이 것이지만 그건 아니었다.
케일의 기색을 알아챈 것인지 중원이가 다시 말했다.
띠링.
저 혼자 그렇게 말하더니 잠잠해졌다.
이틀 뒤에 알아서 잘 준비해 올 것 같다.
라온이 반짝이는 눈으로 케일을 쳐다봤다. 그 모습에 케일은 무심하게 라온의 뒤통수를 두드려주었다.
“히히.”
그때였다.
콰아앙—-!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청혈도 전각 전체가 흔들렸다. 이에 놀란 케일이 천장을 바라보며 외쳤다.
여기 무너지면 안 된다고!
“내 금!”
이 금덩이 다 떼고 난 뒤에 무너지든가!
얼굴이 구겨지며 얼른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라온에게 말했다.
“올라가자.”
“응! 인간아, 얼른 가서 살펴보자!”
라온이 심각한 얼굴로 다급하게 말했다.
이를 소혈마 후보 명이 멍하니 바라보더니 한 인간과 한 용의 뒤를 터벅터벅 따라갔다.
그리고 케일은 폭발이 일어난 곳이 3층임을 깨달았다.
그곳은 어릴 적 혈마가 지냈던 침실이 있는 곳으로, 최한과 론에게 맡긴 곳이었다.
듣기론 지금은 혈마 침실은 2층이었다.
“무슨 일이지?”
큰 폭발은 아니었던지, 전각은 무사했다.
케일은 3층의 자욱한 연기를 대충 손으로 휘저어대며 침실 쪽으로 향했다.
“케일 님.”
최한이 묘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장난감 상자를 살펴보는데 갑자기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장난감 상자?”
아. 어릴 적 쓰던 침실이랬지.
케일의 시선이 명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바로 입을 열었다.
“혈마가 일곱 살까지 살았던 방으로, 혈마는 어릴 적 사용했던 물건을 어느 누구라도 손대지 못하게 했다.”
“너도?”
“…그래, 나도.”
케일의 시선이 다시 최한에게로 향했다.
“침실은 다 부서졌나?”
폭발이 일었으면, 그 결과는 좋지 못할 테니까.
“네. 다행히 대부분의 물건들은 살펴본 후였습니다.”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단호하게 답하는 최한이었지만, 그 표정에는 묘한 아쉬움이 남겨져 있었다.
보통 그런 폭발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그 물건이 귀중하다는 것을 뜻했으니까.
물론 케일도 그 부분에서는 아쉬움을 느꼈다.
아피토유.
용이 지배하는 세상.
잃어버린 세계.
그곳은 아무래도 지금까지 방문했던 어떤 곳보다도 최악의 전장일 것 같았으니까.
최한이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조금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상자를 열자마자 폭발하는 바람에-”
“아냐, 너나 론이 살폈다면 충분히 주의를 기울였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툰카나 최정수면 몰라도.
론이나 최한은 물건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살폈을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이 건드렸음에도 폭발이 일어났다는 건 진짜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미련 두지 말자.’
케일은 깔끔하게 마음을 접었다.
“…그래도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다니-”
“물건도 하나밖에 못 건지고.”
음?
케일은 하던 말을 멈추고 최한을 바라봤다. 그때, 침실 안쪽 연기 속에서 론이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도련님, 장난감 상자 속에 있던 물건입니다.”
어떻게 이걸 폭발 속에서?
케일의 눈동자에 담긴 의문을 읽은 것일까. 론이 온화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
“폭발하기 직전, 이 물건만 그 재질이 달라 보여 일단 빼내고 봤습니다.”
역시 최한과 론을 붙여두기 잘했다.
케일은 재가 묻은 물건에 시선을 두었다. 론은 어디선가 꺼낸 손수건으로 물건을 닦아 그에게 건넸다.
“아무래도 장난감 같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보는 형태더군요.”
케일의 시선이 물건에 꽂혔다.
“어?”
그의 입에서 어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그러나, 인간아?”
라온이 의아해하거나 말거나, 케일은 물건을 집어 들었다.
분홍 솜사탕과 하늘색 구름으로 꾸며진 귀여운 물건.
케일은 그걸 보다가 중얼거렸다.
“…이거, 아동용 태블릿인데?”
김록수일 적 그가 사용했던 태블릿 같은 디자인과는 궤가 달랐지만, 귀여운 그림과 말랑말랑한 촉감의 케이스로 감싸인 이건 분명 태블릿이 맞았다.
그것도 어린이용.
케일은 케이스를 살펴보다가 멈칫했다.
세계를 넘나들기 시작한 후로, 그는 모든 글자를 다 읽을 수 있었다.
죽음의 신 안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기에 한자를 읽듯이 태블릿에 그려진 글자도 알아볼 수 있었다.
사실 이건 글자보다 상표에 가까웠다.
주식회사 투명.
케일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검은 피, 푸른 피.
그가 해치운 사냥꾼 가문 두 곳.
남은 곳은 이제 세 곳이다.
혈교에 함정을 설치했던 아피토유의 ‘보라 피’ 가문.
검은 피 화이언스 가주가 언급하는 순간 죽음을 맞은 그 글자, ‘오색 피’ 가문.
그리고 마지막으로 ‘투명 피’ 가문.
케일은 잠시 고민하다가 전원 버튼을 눌렀다.
꾸욱. 조금 길게 누르자, 화면이 켜졌다.
다행히 배터리가 남아있던 것일까.
케일은 화면을 응시한 채 최한에게 말했다.
“아무도 근처로 못 오게 해. 소혈마 후보는 다른 데로 보내고.”
케일은 심장이 뛰었다.
왠지 모르게 뭔가 엄청난 것을 발견할 것만 같았다.
혈마가 어린 시절 지냈던 곳에서 발견된 태블릿.
전혀 이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사실 한국에서 빼면 본 적도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주변이 조용했다. 케일은 이를 느끼지도 못한 채 화면을 바라봤다.
곧 화면이 켜졌다.
(주)투명.
그 글자가 로고와 함께 떠오르고, 이내 화면이 나타났다.
따라라라랑~
경쾌하고 발랄한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케일의 시선이 화면의 글자를 읽었다.
…뭐?
케일이 발견한 것은 알고 보니 일종의 게임기였다.
띠링!
그때, 신물에서 알람음이 들려왔다.
죽음의 신이 메시지를 보냈다.
물론 케일은 그 메시지를 볼 틈이 없었다.
게임 화면이 떠올랐다.
랭킹을 보던 케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1위 태랑가져간놈뒤진다…….”
“인간아,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냐?”
라온의 목소리는 흘려들었다.
케일은 대신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렸다.
“안로만!”
제3지구의 로운이라는 국가에서 3선 대통령을 하고 있는 안로만.
로운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그 수도는 서울인.
케일이 살던 곳도, 김록수가 살던 곳도 아닌 또 다른 지구.
그리고 안로만이 가졌던 무기의 이름이 ‘태랑’이었다.
부러지지 않는 창, 태랑.
그리고 그 물건의 현재 주인은 ‘알베르 크로스만’ 왕세자였다.
AI가 탑재된 태랑은 안로만, 최정건, 안젤리나 세 소유자를 거쳐 알베르에게 왔다.
안로만.
이놈이 왜 이 게임 랭킹 1위지?
그놈은 사냥꾼이 아닌데?
오히려 로운 왕국처럼 피해만 입은 놈인데?
“이 게임 뭐야?”
케일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투명 피 가문.
그곳에 대한 정보에 희한하게 접근하게 된 케일이었다.
맨 위에 자리한 게임 타이틀.
그 아래 랭킹 목록이 존재했다.
총 5명의 랭커가 있었다.
케일은 다시 그 랭킹 목록을 들여다봤다.
1위 태랑가져간놈뒤진다
4위 파랑이
아무리 봐도 1위는 제3지구의 안로만이고.
4위는 이 태블릿의 주인인 혈마다.
“인간아, 이거 뭐냐?”
귀여운 케이스로 감싸인 태블릿에 뜬 화면을 본 라온이 상당히 흥미로워했다.
케일은 그 모습에 나름 공감했다.
‘퀄리티가 좋아 보여.’
타이틀이 뜬 화면에는 소녀인지 소년인지 알 수 없는 어린아이의 등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아이의 눈 앞에 펼쳐진 드넓은 초원과 그 초원의 끝에 자리한 하늘에 보이는 여러 개의 행성들.
그 행성들이 아이가 가야 할 길이라는 듯, 각기 다른 빛깔을 뿜어내며 흥미를 자극했다.
‘…5개네.’
그리고 그 행성이 총 5개다.
마치 현재 존재하는 사냥꾼 가문 5곳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일단 게임을 해봐야겠는데.’
게임보다는 장르 소설 혹은 만화 쪽이었던 케일이었기에, 딱히 게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지만. 어떻게 하는지쯤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