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56
툭툭. 라온의 맨들맨들한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라온의 근처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동자승 조각상을 볼 수 있었다.
저거 분명 세계수의 힘을 담아서 귀한 보물이 되었다고 했는데.
그런데 어째 동자승 볼따구가 조금 깨져서 찌그러진 것 같을까.
케일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지만 모른 척했다.
대신 조금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잠깐 꿈 좀 꿨다.”
“꿈?”
고개를 갸웃거리는 라온 대신 천마를 바라봤다.
“자리를 피해줘야겠군.”
케일의 시선에 담긴 의미를 알아챘는지 천마는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해일, 자네가 무사하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도 되겠나?”
“어.”
“그럼 이만.”
천마는 평소의 무뚝뚝한 분위기로 돌아와 미련 없이 방을 빠져나갔다.
그제야 케일은 그의 주변에 별달리 사람이 몇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정수도, 이수혁도, 비크로스도, 최한도 없다.
툰카랑 더스트 신관도.
“도련님, 다들 각자의 일을 하느라 자리를 비웠습니다. 도련님 간호는 제가 하면 되니까요.”
론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케일이 움찔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론은 부드럽게 물어왔다.
“꿈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지요?”
케일은 망설일 이유가 없기에 바로 답했다.
처음부터 이야기했다.
“죽음의 신이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씨익.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케일은 시선을 내렸다. 라온이 비단 이불보를 찢어버릴 듯 움켜쥐고 있었다.
“죽음의 신… 가만 안 둔다…….”
그 상당히 흉폭한 기세에 케일은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걔 잘못은 아니고.”
시익.
숨소리가 조금 평화로워졌다.
“아무튼, 갑자기 정신을 잃은 건 균형의 신이 찾아와서 그랬어.”
케일은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간단한 상황은 모두에게 전달했다.
‘라크나 라온 이야기는 빼야지.’
그 둘이 아피토유에서 돌파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이를 라온 앞에서 할 이유가 없었다.
이미 어느 정도 자신에게 주어진 무게감을 아는 라온이 더 짐을 지어선 안 되었다.
그리고 라크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 봐야지.’
호족들과 같이 지낸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인간아, 인간아!”
“왜?”
라온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심하게.
“그러면 균형의 신은 인간 너 부려 먹으려고 하고, 희망의 신은 인간 너 도와주려고 하는 거냐?”
“음. 드러난 상황만 보면 대충 그렇지?”
“알았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죽음의 신이랑, 중원이랑, 균형의 신이랑, 사냥꾼들이랑-”
케일은 왠지 들어서는 안 되는 걸 들은 것 같다.
저 살벌한 용이 지금 무슨 목록을 작성하고 있는 것일까. 괜히 등골이 서늘해져 왔다.
드륵.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드륵. 드르륵.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던 케일은 움찔했다.
‘와, 식겁했네.’
동자승 조각.
그것이 갑자기 꿈틀거리고 있었다. 기묘한 형태로.
돌로 된 조각상은 몇 번 기이한 모습으로 삐거덕거리더니 이내 홀쭉해진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공포영화처럼.
드르륵.
이상한 소리와 함께.
저도 모르게 케일이 침을 꿀꺽 삼켰을 때, 동자승의 입이 열렸다.
“아이구, 삭신이야.”
누가 들어도 중원이의 목소리였다.
케일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갔다.
“헤헤.”
중원이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동자승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고, 석상 모습 그대로 제 볼을 긁적였다.
투둑투둑.
볼이, 아니, 돌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중원이는 멍하니 떨어져 나가는 돌조각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라온을 바라봤다.
침대 위에 있던 라온은 뚱한 얼굴로 툭 내뱉었다.
“왜?”
순간 케일은 본인이 말하는 줄 알았다.
어조나 어투가 똑같았다.
동자승은 라온의 눈을 슬그머니 피하며 두 손을 비볐다.
“헤헤. 케일 님, 깨어나셨으니 그간 못했던 대화를 이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에 케일은 툭 내뱉었다.
“뭐 가져왔냐?”
로운으로 돌아갈 시간이니만큼, 정산의 시간이었다.
스스슥 스스슥. 돌손이 더욱더 빠르게 비벼졌다.
“그, 정말로, 그, 제가 말입니다.”
파닥파닥. 라온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론의 등에 찰싹 달라붙더니 어깨 너머로 중원이를 가만히 쳐다봤다.
중원이는 차마 그쪽을 보지 못한 채, 다급하게 두 팔을 벌렸다.
“저를 가지세요!”
“싫다.”
케일은 단박에 내뱉었다.
“아니, 저 말고 이 몸이요! 세계수 힘이 들어간 조각상!”
케일이 가만히 응시하자, 중원이는 더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이 안에 든 세계수의 힘이 상당하더군요! 아피토유가 오래된 세계인 만큼, 그 세계수의 일부라도 그 힘이 상당합니다. 물론 혈교에서 진법을 가동하느라 힘의 상당수가 소실된 것 같지만.”
중원이는 불룩한 배 부분을 통통 두드렸다.
“이 정도 양이면, 새로운 세계수를 틔우기 위한 씨앗은 될 겁니다.”
케일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이를 알아챈 것인지 중원이는 씨익 웃어 보였다.
“아피토유에도 새로운 세계수가 필요할 테니까요. 이 조각상을 그곳에 심으면, 될 겁니다.”
그건 꽤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케일 일행이 아피토유 용들이 했듯이 그런 진법을 만들 일도 없거니와, 귀한 것은 알지만 마땅한 사용처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중원이가 건넨 조언은 꽤 도움이 되었다.
이는 균형의 신을 만나고 난 직후라 더 그랬다.
‘무너진 균형, 어긋남의 무게를 감당할 존재가 나타난다면, 우리에겐 큰 이득이야.’
희망의 신이 그랬다.
어긋남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들 중 세계수가 이지를 잃어 더 이상 본분을 수행하기 힘들다고.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세계수가 나타난다면-
‘야수의 왕이라는 푸른 늑대와 함께 상당한 어긋남을 감당할 수 있을 확률이 높아.’
그리되면 케일과 그의 일행들에게 올 부담도 거의 없어질 터.
“꽤 유용하네.”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원이의 표정이 밝아진 때.
“라온이 큰일을 했네.”
중원의 표정이 다시 흐려지고, 라온의 표정이 반대로 밝아졌다.
“인간아, 나 잘했나?”
“어. 역시 용은 위대하다.”
“맞다! 용은 위대하다!”
케일은 라온이 신나서 날개를 파닥이는 것에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중원이를 바라봤고, 그 시선에 중원이는 입을 열었다.
“그렇죠. 이건 라온 님이 하신 거죠.”
호오.
생각보다 중원이의 모습이 비장하다.
“케일 님.”
침대 아래. 동자승 조각상은 자세를 곧게 하더니, 케일을 올려다봤다.
그러고는.
철푸덕.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저는 진짜로 거지입니다아아아—-!”
처절하게 외쳤다.
“야.”
케일의 얼굴이 구겨지며, 중원이를 부른 그때.
“그래서 몸으로 때우겠습니다아아아—-!”
응?
뭔 헛소리인가 싶어 케일의 표정이 더 일그러지려는 찰나.
“여기.”
중원이가 어디서 찾은 것인지, 벌떡 일어나 침대 위의 케일에게 종이를 하나 스윽 내밀었다.
케일은 종이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고용 계약서?”
“네, 그렇습니다!”
중원이가 차렷 자세로 힘차게 말했다.
“현재 아피토유는 어떠한 세계 혹은 신과도 연동이 안 되는 곳으로. 그곳에 파견 나간 모든 방랑자들의 연락도 끊겼습니다! 케일 님이 아시는 최정건이라는 분도 연락이 끊겼지요! 그렇기에 케일 님이 그 세계를 가시면 여러 가지 난항을 접하실 겁니다!”
“그런데?”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다만 이 고용 계약서를 작성하면, 저와 케일 님이 소지하신 신물이 연동되어 그 세계에 제가 어느 정도 관여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무심한 케일을 향해 중원이가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그래 봤자, 돌덩이였지만.
그런 모양새를 눈치챘는지, 갑자기 중원이 목소리에 과하게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줴가! 어느 정도 업보를 감당할 수 있습니돠아! 물론 제가 아직 아기 세계라 많은 업보를 감당할 순 없지뫈! 그래도 계약서에 명시하였듯,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겠습니돠! 제 기준으로 최선을 하지 않으면 저는 격을 잃으니, 당연히 최선을 다할 것입니돠!”
차렷 자세로 계속 힘차게 외쳤다.
“또환! 원하시면 중원의 힘을 일부 그쪽으로 전달할 수도 있습니돠아! 더불어 그쪽 세계가 격을 멸살 당한 것이 아니라면, 제가 한번 그쪽 세계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습니돠아! 그리되면 어긋남의 무게를 감당할 존재가 다수 확보되어 케일 님과 일행분들의 안전을 한층 더 도모할 수 있습니돠아!”
힐끗.
케일과 눈이 마주친 중원이는 다시 외쳤다.
“그리고 균형의 신이 허가한 계약서입니돠아! 그 신은 관여 못 합니돠아!”
힐끗.
다시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중원이는 다급하게 말했다.
“물론 제가 가진 영약들은 몇 가지 내놓을 예정입니돠아!”
그러다가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샤올렌 누님에 비하면 별것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가진 것 중에는 최고입니다아.”
정적이 내려앉았다.
중원이의 돌조각상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팔락팔락.
케일이 계약서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이 고요 속에 울려 퍼졌다.
중원이의 맨들맨들한 뒤통수에도 땀이 맺힌 그때.
“중원아.”
“네, 네?”
고개를 드니, 케일이 부드럽게 웃고 있다. 저도 모르게 중원이는 흠칫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리 가까이 와봐.”
케일이 손짓했다.
중원이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케일의 곁으로 주춤주춤 다가갔다.
케일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중원이의 뒤통수를 만졌다.
돌의 촉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케일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구나.”
부드러운 음성에 중원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네, 네! 정말로,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 그래. 그러니 몇 가지만 고치면 되겠다.”
“…네?”
멍하니 되묻는 중원이에게 케일은 무엇이 문제냐는 듯 화사한 미소를 머금고서 말했다.
“여기, ‘최선을 다한다.’는 항목을 ‘전력을 다한다.’는 걸로 바꾸자. 그리고 중원에서 아피토유로 끌어올 수 있는 힘, 이것도 조금 더 상세하게 명시해 두는 게 좋지 않을까? 나중에 어정쩡하게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난감할 수도 있잖아? 응?”
“그, 그-”
“걱정 마. 네가 가능한 선에서 할 거니까. 우리, 조금만 더 계약서를 수정하자. 괜찮지?”
산뜻한 미소를 지은 케일을 멀뚱히 보던 중원이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그, 같이 의논해서 수정을 하면!”
“그럼 그럼. 서로 진지한 논의를 통해서 서로가 원하는 바를 달성하면 좋지.”
중원이는 맞는 말에 홀린 듯 다시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렇게 몇 번의 대화 끝에 새로이 작성된 계약서를 케일은 중원이에게 들려 보냈다.
“이것도 가져가서 균형의 신한테 확인받고 와. 나중에 안 된다고 나타나면 곤란하니까.”
“…네.”
중원이는 뭔가 이게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계약서와 함께 일단 다시 사라졌다.
라온과 론, 케일만이 다시 남게 되었을 때, 론이 케일에게 차를 내밀며 온화하게 말했다.
“성실한 일꾼이 생겼군요.”
가만히 있던 라온이 이상하다는 듯 툭 내뱉었다.
“그런데 인간아, 왜 중원이는 고용 계약서에 고용 기간을 명시해 두지 않았나? 다른 건 다 적어두고, 그것만 빼먹었다! 보니까, 계속 일할 생각은 아닌 것 같던데!”
연신 라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케일은 아무 말 없이 론이 내민 차를 마셨다.
시면서도 단맛이 그의 입안에 감돌았다. 그에 멈칫하던 그에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데려왔다.”
천마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멈칫했다.
“…표정이 왜 그렇지?”
케일이 흐뭇한 얼굴로 천마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툭 내뱉었다.
“천마야, 열심히 해서 더 강해지자.”
“…뭐?”
“정사마 다 열심히 강해져야지.”
계약서를 수정하며 중원에서 끌어올 수 있는 힘에는 사람도 명시해 두었다. 물론 그 사람이 동의할 시에, 계약은 이행되지만.
케일은 아피토유, 그곳에 본인이 끌어올 수 있는 힘은 무엇이든 필요하다면 닥치는 대로 쓸 생각이었다.
‘용만이 적이 아닐 거야.’
용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그 적에는 인간이 있을 수도 있는 법.
모두를 케일 일행이 감당할 수는 없으니까.
“공자님.”
그때, 천마 뒤에 있던 위 상선이 케일에게 다가왔다.
“곧 가시는 겁니까?”
천마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묘한 기색을 감지한 듯.
“그래야지요. 왜 그러십니까?”
케일의 물음에 위 상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태양께서 이곳으로 오고 계십니다.”
태양.
이는 중원의 중심, 황제를 의미했다.
북경에서 움직이지 않는 자가 케일을 만나기 위해 친히 그 걸음을 옮겼다.
“오늘 밤에 도착하실 예정이니, 만나고 가실 수 있겠습니까?”
음.
케일은 번거로운 일은 딱 질색이었다.
그때, 위 상선이 말을 이었다.
“감사의 의미로, 선물도 준비하셨다고 합니다.”
“아, 당연히 만나고 가야지.”
통 크기로는 중원이보다 더 통이 큰 황제다.
당연히 만나고 가야지.
암, 그렇고말고.
***
“초대 황제께서는 이 땅에서 최초의 신선이 되셨지.”
황제는 케일에게 검은 옷을 하나 내밀었다.
“신선이 된 선조께서 남기신 물건이다.”
이제 케일의 손에는 샤올렌에서 최초로 신이 된 자의 망토, 그리고 중원에서 최초로 신선이 되었다는 자의 옷이 들어왔다.
해남섬에 몇 척의 배가 당도했다.
늦은 밤, 해안가에 은밀히 닿은 배에서 내린 이는 어둠 속에서 정체를 숨긴 채 움직였다.
그러나 그 사람의 존재를 알 사람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숨죽인 채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도착했다고?”
“네, 련주님.”
정사마. 무림을 가르는 3개의 세력. 그중에서도 사파의 중심 사도련의 우두머리 사마평은 평소보다 덜 밝은 밖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는 오늘 수하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해가 진 후 나가지 말라고 명을 내려둔 상태였다.
왜냐면 그분께서 남의 눈에 띄지 않길 원한다고 하셨으니, 당연히 사마평으로서는 그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제 수하들을 단속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는 정파와 마교 역시 마찬가지일 터.
‘아, 마교는 조금 다르려나.’
시답잖은 생각을 이어가던 사마평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황제가 직접 올 줄은 몰랐는데.”
“…….”
사마평은 제 말에 움찔하는 측근을 보며 작게 웃음을 흘렸다. ‘황제’,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겁을 집어먹는 측근의 모습에서 새삼 황제의 지위를 체감했다.
더불어 사마평은 황제를 언급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주위에 감시하는 사람도 없는데, 뭘 그리 겁먹어?”
“아.”
그제야 수하의 몸이 풀어졌다.
“내가 그런 것도 모르고 말을 할까?”
“아, 그렇죠.”
수하가 저도 모르게 수긍을 표했다. 누구보다도 주변 눈치를 잘 살피는 사마평이 황제를 편하게 언급했다면 당연히 안전한 상황이니 그러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피식.
사마평은 바로 긍정하는 측근의 모습에 피식 웃고는 창밖을 둘러보았다.
달이 구름에 가려지고, 평소보다 불빛이 없는 풍경.
‘정파도, 마교 쪽도 조용하군.’
하지만 오늘 밤 잠들지 못하는 이들이 많으리라.
자신처럼, 촉각을 곤두세운 채 조금이라도 이 적막 속에서 정보를 얻고자 할 터.
아니지.
어쩌면 자신이 그러했듯, 황제가 이 해남섬에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섬 밖으로 수하를 보내 각 단체에 정보를 전하느라 정신없을지도 몰랐다.
‘그 잔혹한 황제를 움직이게 만들다니.’
백성들에게는 한없이 마음이 약하다고 알려졌으나, 무림인들에게는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잔혹하다는 평을 듣는 황제였다.
그런 그가 직접 황궁 밖으로 행차했으니, 무림을 떠나 중원 전역 권력자들에게 정보가 전달되었을 것이다.
황제는 은밀히 온다고 말하면서도 제 거동을 숨기지 않았으니까.
알 사람은 알아도 상관없다는 투였다.
그렇기에 오히려 숨죽이는 무림인들이었다.
“그나저나 련주님, 김 공자님은 도대체 어떤 분일까요?”
감시의 눈이 없다고 생각해서일까. 측근이 편하게 말을 건네왔다.
일순 사마평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모습에 측근이 멈칫했을 때, 사마평이 무심한 어조로 읊조렸다.
“태양이, 중원의 중심이 직접 만나러 올 만한 사람이지.”
태양, 중원의 중심.
황제를 칭하는 무수한 단어들.
그 단어의 집합체가 만나기 위해 친히 서둘러 오게 만드는 존재.
김해일.
그를 무슨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없다.’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신?
아니다. 그는 분명 인간이다.
그렇다면 그를 인간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가 보여준 것은 인간을 넘어섰는데?
‘또한 그의 성향은 어떠한가?’
그는 선하다.
하지만 마냥 선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악한가?
이 물음에 사마평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그래.’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대해(大海)와 같다.’
대해(大害)를 막아서는 대해(大海).
김해일.
그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대해(大海)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