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60
안로만에 관해 왕세자에게 듣자마자 케일은 라온만을 대동하고서 곧장 텔레포트 했다.
그 덕에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왕세자의 집무실이었다.
“그런데 인간아, 왕세자는 참 바빠 보인다! 왕세자 언제 오나?”
물론 알베르 없이 케일과 라온 둘뿐이다.
달칵.
때마침 문이 열렸다.
“헛!”
누군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고개를 든 케일은 바짝 얼은 표정으로 쭈뼛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이를 볼 수 있었다.
“…방패……!”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 사람은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놀라며 입을 꾹 다물었다.
“하아.”
그리고 한숨을 내쉬는 알베르도 보였다.
“이거 마저 정리해서 보고 올리게.”
“네, 네! 저하!”
알베르는 문을 닫고 홀로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새 보좌관입니까?”
“어. 이번에 좀 사람을 많이 뽑았어.”
케일의 맞은편 소파에 앉은 알베르는 빤히 그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케일은 입을 열었다.
“전 분명히 집무실에 방문한다고 말하고 왔습니다만?”
“그렇지.”
안로만에 대해 말해 온 알베르에게 케일은 가서 설명하겠다는 말과 함께 바로 이동하겠다고 했다.
그에 알베르는 잠시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울 테니, 알아서 오라고 했고.
때문에 케일은 알베르가 왜 이렇게 기분 찝찝해지게 쳐다보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에 대한 답이라도 하듯 알베르의 입이 열렸다.
“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게 사람들 사이에 퍼지겠지?”
“그렇겠죠? 딱히 숨기고 다니지는 않았으니까요.”
뭐가 문제냐는 듯 답하는 케일에게 알베르가 씨익 웃어 보였다.
“방패 공자가, 영웅이 왕궁으로 돌아왔다고 난리가 나겠어.”
케일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알베르는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너 많이 찾겠다.”
“?”
“광산 때문에.”
“!”
케일은 순간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광산.
행성 샤올렌에서 검은 피 사냥꾼 가문을 처리한 후 보상으로 받은 아주 양질의 광산들.
그 종류도 마정석과 보석들을 포함해 아주 다양했다.
이를 알베르는 케일과 논의 후 은밀하게 케일과 로운 모두에게 이득이 될 방향으로 분배 중이었다.
물론 이 과정을 알베르는 최대한 조용히 진행했지만, 정보는 분명 새어나가는 법.
“그간 나만 너무 바빴던 것 같아.”
알베르가 나직이 읊조리는 말에 케일은 그의 시선을 피했다.
“우리 동생, 신수가 훤해졌어.”
중원을 떠나 로운으로 돌아온 케일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사실 케일이 중원에서 물의 힘을 썼을 때를 빼면 그렇게 몸이 힘들 만한 일은 없었다. 오히려 몸에 좋은 영약들을 많이 먹었다.
그 덕에 그의 모습은 그 전보다 더 좋아졌다.
살도 조금 올랐다.
“…우리 저하께서는 참으로, 참으로-”
케일은 입을 열었다가 뭐라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라온이 쿠키를 먹으며 대신 말했다.
“왕세자야! 너는 참 피곤해 보인다! 어째 점점 갈수록 우리 인간 같아지나?”
왕세자가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케일은 외면했다.
“하아.”
한숨을 내쉰 알베르는 소파에 등을 기댔다.
“하긴 나보다야 네가 더 고생이지.”
이는 진심이었다.
로운 왕국과 관련된 일을 하는 자신과 세계를 넘나들며 한 행성을 구하는 일을 하는 케일.
그 무게만 놓고 보아도 케일이 더 고생이었다.
케일은 슬그머니 말을 건넸다.
“그래도 이번에 사람을 많이 뽑았으니까 괜찮지 않겠습니까?”
“딱히 마음에 드는 인재가 없어. 당장 실무에 쓰기에는 가르쳐야 할 게 너무 많아.”
아쉽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던 알베르는 흘러가듯이 툭 내뱉었다.
“바센 헤니투스 얼굴은 봤나?”
“네?”
순간 케일은 알 수 없는 위기감을 느꼈다.
‘설마?’
케일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저도 모르게 알베르를 그 눈빛으로 바라보았을 때, 이번엔 알베르가 시선을 피했다.
“자네 동생이 어린 나이부터 쌓아온 행정 실무 경험이 상당하다고 하더군. 헤니투스 백작가가 공작가로 성장하며 그에 따라 해야 할 일도 참으로 많은데, 제일 솔선수범해서 일하고 그 능력도 전문가들이 인정할 정도로 뛰어나다지?”
“그게 왜 궁금한데요?”
저도 모르게 불경한 어조가 튀어나온 케일이었다.
알베르가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냥 바센이면 자네의 동생이니, 내 동생이기도 하지 않겠나? 그러니 대화라도 한번 나눠보고 싶은 것이지.”
“…….”
“듣자 하니, 자네 막냇동생은 어린 나이임에도 대검술 경지가 상당하다지? 거기에 그치지 않고 군사학과 병법을 배우려고 노력 중이라고 하던데.”
케일은 점점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바센과 릴리.
그 두 사람은 케일에게 가족이고 더불어 그의 꿈인 백수를 위한 마지막 보루였다.
스스로의 꿈이 헤니투스 영지를 발전시키고 지키는 일이라고 말하는 훌륭한 아이들이 아니었던가!
“왕세자야, 인간 동공이 흔들린다! 왜 저러나?”
“글쎄요.”
알베르가 생글생글 웃어 보였다.
“왕세자야, 너 갑자기 얼굴이 좋아졌다! 우리 봐서 좋아서 그런가?”
“하하하! 그런 것 같습니다.”
저 가증스러운 왕세자 같으니라고.
감히, 내 동생들을 왕궁으로 끌어들이려고 해?
케일은 진지하게 생각했다.
“방심할 수가 없군요.”
“하하하!”
왕세자는 그저 산뜻하게 웃어 보였다.
케일은 조만간 릴리와 바센을 만나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두 사람의 꿈이 여전한지.
물론 두 사람이 꿈꾸는 미래가 헤니투스 영지를 넘어 로운 전체로 나아가고 있다면 케일은 이를 기꺼이 응원할 생각이다.
‘…그렇다고 내가 영주가 될 생각은 없지만.’
뭐든 방법이야 찾으면 나온다.
케일이 염려하는 바는, 릴리와 바센 모두 왕궁에서 일할 생각이 없는데 눈앞의 이 기름칠 잘된 혀의 표본과도 같은 왕세자의 현란한 혀 놀림에 홀랑 넘어가 왕궁으로 끌려가 밥 먹듯이 야근하는 삶을 살게 되는 거였다.
‘그건 막아야지!’
형으로서, 오빠로서! 그렇지 않겠나?
그런데 왜 이리 마음이 불안한 것일까.
“또 듣자 하니, 자네 막냇동생은 왕국 아카데미에 편입해서 이번 개학식에 참여한다지?”
역시. 불안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번에 연설이라도 한번 하러 가볼까 싶군. 하하하!”
케일은 결심했다.
저 인간이 만약 릴리의 개학식에 가서 릴리를 꼬드길 것 같으면.
‘내가 막는다.’
물론 그 전에 릴리와 대화를 나눠보고 릴리가 더 큰 세상을 꿈꾼다면-
‘이것 역시도 말해줘야지.’
로운 왕국에서 일하는 것을 바란다면 그걸 응원하겠으나, 단순히 더 큰 세상을 보고 싶다면 세상은 정말 넓고 할 수 있는 것이 다양할 테니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왕세자야, 우리 인간 표정이 아주 비장하다! 왜 저러나?”
“하하하하!”
케일은 한 용과 한 쿼터 다크엘프가 하는 대화는 깡그리 무시하며 마음속으로 깊이 다짐했다.
그때, 알베르의 질문이 훅 들어왔다.
“현피가 무엇이지?”
아, 맞다. 이게 있었지.
케일의 얼굴이 꼭 시든 배추 같아져 갔다.
알베르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내가 겪어본 안로만은 상당히 철두철미한 인물로 보였다. 파랑이가 혈마라고 했지? 혈마가 안로만에게 어떤 위기 상황을 겪게 했다는 것이지?”
케일은 알베르가 전했던 말을 떠올렸다.
‘안로만이 그러더군. 파랑이 그 자식, 현피 뜨기로 했는데 안 나온 놈이라고. 그 자식 때문에 자신의 흑역사가 들킬 뻔했다고. 자신에게 상당한 위기를 선사한 녀석이라고 하던데. 음. 현피가 무엇이고, 흑역사는 무엇이지?’
케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쨌든 설명은 해드리죠. 현피는 현실 PK를 줄인 단어로-”
그는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이를 모두 들은 알베르와 라온은 낯선 단어의 향연에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베르는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흐음. 꽤 복잡한 상황이었겠어. 안로만도 꽤 용기가 있군.”
“…네?”
“안로만이 저 일을 겪을 당시에도 대통령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말하는 투로 보아선 상당한 위치에 있었다는 뜻인데. 그런 사람이 게임이라는 존재의 안에 담긴 세상에 진실로 몰입하여 이를 현실에서까지 연결하려 했다는 것은, 흑역사라는 것을 만들 정도의 크나큰 결심을 했다는 것 아닌가?”
“…어-”
“자네 말에 따르면 흑역사라는 것은 평생을 따라다니며, 스스로의 머릿속 한편에 잠겨있다가 수시로 모습을 드러내 자신의 못난 부분이나 어리숙했던 부분을 떠올리게 만들어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한다지 않았나?”
“어…음… 그렇죠?”
“흐음. 안로만은 그 게임 속 세상에 진심이었나 보군.”
“…그렇겠죠?”
“그리고 3선 대통령이 진심을 쏟을 정도의 게임이라는 세상을 만들어 낸 투명 피 가문도 참으로 위험하겠어.”
“…그렇죠?”
일단 다 맞는 말 같아서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보며 알베르는 말을 이었다.
“지금 자네한테는 그 게임 속 세상에 들어갈 수 있는, 혈마가 어릴 적 사용했던 장치가 있고. 이걸 접속하려는데 잘 안된다는 소리지?”
“네.”
본래 케일은 혈마의 남겨진 팔을 이용해 접속하려고 했다.
이 게임은 지문을 통해 접속하는 것 같았으니까.
“총 2단계더라고요. 1차 지문, 2차 홍채.”
홍채 인증까지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케일은 거기서 인증이 가로막혀 더 이상 접속을 할 수가 없었다.
“음. 일단 안로만과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는 편이 좋겠군.”
“가능하겠습니까?”
“어.”
알베르가 가진 부러지지 않는 창.
태양신이 그가 순리라며 준 선물 안에는 태랑이라는 AI가 존재했다.
“태랑을 통해서 음성은 물론 시각을 통한 통신도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달라고 명령해 뒀어.”
그는 케일을 보곤 덧붙여 말했다.
“물론 그 방법은 시스템에 접속해서 코드를 입력하는 것인데, 안로만이 알려주더군. 그는 시스템이나 이런 기계 분야에 상당한 지식이 있는 것 같았어.”
“그렇군요.”
알베르는 태랑을 가져왔다. 케일은 티끌 하나 없이 하얀 창을 오랜만에 보았다.
그는 문득 왕세자가 거대한 괴물 사자용을 상대할 때 이 백창을 사용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총으로 변경된 이 무기를 사용하는 알베르의 모습도.
“잠시만.”
알베르는 혼자 태랑을 몇 번 조작했다. 태랑에게 뭐라 명령도 내리니 이내 창의 모습에 변화가 일어났다.
달칵. 달칵.
창의 중간에 실금이 갔다. 점점 더 커진 금은 직사각형 모양의 틈을 만들었다.
알베르는 창을 세웠다.
그러자 그 구멍에서 새어 나온 빛이 집무실 벽 한 면을 가득 채웠다.
케일은 이를 보며 빔프로젝터를 떠올렸다.
“오.”
케일이 감탄하는 사이, 화면이 나타났다.
지지직- 지지직–
마치 고장 난 텔레비전처럼 화질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화면은 조금씩 형상을 만들어갔다.
“저하도 안로만의 얼굴은 이번에 처음 보는 거죠?”
“그렇지.”
그간 태랑을 통해 목소리로만 대화를 나눴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소파에 앉아 안로만과의 접속을 기다렸다.
“아, 그런데 케일.”
“네.”
“저번에 안로만이 했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알베르는 그가 했던 많은 말들을 떠올렸다.
그중 하나.
‘재밌군. 그러니까, 현 주인인 알베르 크로스만. 당신은 왕세자이고 사자용으로부터 세계를 구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해결하면, 당신은 로운 왕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권력자가 되겠군. 좋아, 내가 알려주는 정보 잘 들어. 후회 안 할 테니까.’
‘…그런데 참 재밌군. 자네와 나는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단 말이지. 혹시 너도 불순한 혈통이냐?’
“스스로를 불순한 혈통이라고 하더군.”
불순한 혈통?
케일의 표정에 묘한 기색이 어렸다. 그는 알베르도 비슷한 표정인 것을 보며 입을 열었다.
“찝찝한데요?”
“나도 그래. 일단 염두에 두도록 하지.”
그때였다.
-좌표 확인 완료.
-제3지구 안로만과의 연결을 진행합니다.
태랑의 음성과 함께, 화면이 순간 검게 변했다.
그 단어가 떠오름과 동시에 화면이 일순간 밝아졌다.
그리고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케일은 대통령 집무실인 듯 고풍스러우면서도 상당히 현대적인 풍경이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어?”
투명화하고 있던 라온이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냈다.
“…어?”
그리고 케일은 화면에서 시선을 떼어 옆을 쳐다봤다.
정면 한 번, 옆 한 번.
그렇게 두세 번 반복하던 케일은 입을 떼지 않고 있는 안로만과 알베르 크로스만을 보며 저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
“누가 보면 형제인 줄 알겠네.”
두 사람은 상당히 닮아있었다.
그것도 안로만은 쿼터 다크엘프일 때의 알베르 크로스만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구릿빛 피부에 갈색 머리칼.
갈색 눈동자.
물론 알베르보다는 연한 구릿빛에 조금 더 밝은 갈색 머리칼이었지만, 상당히 비슷했다.
더불어 안로만은 안경을 꼈으며 나이도 조금 더 많아 보였다.
물론 그래 봤자 30대로 보였다.
‘분위기는 다르네.’
알베르 크로스만은 조금 더 사교적이고 외부 활동을 많이 할 것 같은 분위기를 지녔다면, 안로만은 냉정하고 사무적인, 차가운 분위기가 흐르는 사람이었다.
-인간아! 나 너무 신기하다!
라온의 목소리를 들으며 계속 번갈아 보던 케일은 문득 깨달았다.
‘…그러니까 저 사람이 게임 랭킹 1위란 말이지?’
공부 잘하는 알베르 버전처럼 생긴 사람이 말이지?
그것도 현피도 뜰 뻔한 3선 대통령이란 말이지?
케일의 얼굴에서 놀람이 사라졌다.
“이렇게 보니 새롭군.”
-그렇네. 자네가 알베르 크로스만이지?
“그렇다. 그쪽이 안로만?”
-그래.
묘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무심히 보던 케일은 안로만을 쳐다봤다.
안로만도 케일을 바라봤다.
-그쪽이 알베르 크로스만이 말하던 케일 헤니투스입니까?
케일에게는 말을 높였다.
“네.”
담백하게 긍정을 표한 케일은 곧장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조금 더 빠르게 안로만이 아쉽다는 듯 차갑게 말했다.
-파랑이가 아니군.
“네?”
-파랑이 그 자식이 본인 머리칼 색은 파란색이라고 했죠. 제가 15살 때, 벌써 십수 년 전의 이야기지만 파랑이 그 자식에 대한 정보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쉽군요.
15살.
중2 때.
케일의 표정이 아주 평온해졌다.
그는 갑자기 안로만이 참으로 편하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물었다.
“안로만 씨, 주식회사 투명이라는 기업에 대해서 아십니까?”
바로 본론을 던졌다.
알베르와 비슷하게 생겨서일까.
이런 쪽을 상대방이 선호할 것 같았다.
그리고 안로만은 그런 대화가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초월기업이죠.
“초월기업이요?”
-저희가 있는 세상. 제3지구라고 하셨죠? 이 지구에서 국가들을 초월하여 막대한 부와 권력을 지닌 기업이 주식회사 투명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 기업 오너 집안 출신이라-
응?
케일이 멈칫했다.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그가 고개를 돌려 알베르를 바라봤다.
알베르 역시도 케일을 바라봤다.
서로 응시하던 두 사람은 다시 안로만을 바라봤다.
케일이 입을 열었다.
“당신, 사냥꾼입니까?”
그리고 칼같이 대답이 들려왔다.
-그게 뭐죠?
너무나 순진무구한 얼굴로 의문을 드러내는 안로만이었다.
“…아니, 그 집안 출신이라길래-”
-아, 제 아버지가 원래 작은 게임 회사 사장님이었죠. 그리고 부사장이 작은아버지였는데, 작은아버지가 결혼하신 분이 주식회사 투명 집안 딸입니다.
안로만은 태연하게 말했다.
-작은아버지가 제 아버지 뒤통수를 치고 그 게임 회사를 들고서 작은어머니와 함께 주식회사 투명으로 가셨죠.
그러고는 싱긋 웃어 보였다.
-제가 이걸 설명 드리는 이유는, 오늘 저한테 연락하신 이유가 게임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게임에 대해서 제가 설명하다 보면 결국 나올 이야기라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케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개발하시던 게임이……?”
-나만의 소중한 절대신 키우기. 그 게임의 원형이자 핵심 세계는 제 아버지와 어머니가 핵심 개발자 및 기획자로 참여해 만들었죠.
안로만의 냉정한 얼굴에 살짝 미소가 어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서늘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세계 최초 가상현실 게임. 현실인지 가상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그 세계를 만드신 분이 제 아버지이고, 그 세계를 마음대로 조작하고 비틀어서 세상에 나온 게임이 절대신인지 뭔지 나부랭이 키우기 게임입니다.
가상현실 게임.
케일의 머릿속에 그 단어가 들어왔을 때, 안로만은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리고 그 세계의 1위가 저죠. 제 부모님이 꿈꾸던 모습의 세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모님의 피땀을 집어먹고 만든 세상이니, 적어도 그곳에서 1위는 제가 찍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케일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가상현실?”
의문을 드러낸 이는 알베르 크로스만이었다.
3선 대통령 안로만의 말에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던 케일의 시선이 알베르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알베르는 안로만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설명을 요구했다.
-쉽게 말해, 또 하나의 현실이지만 실존하지는 않아.
“실존하지 않는다?”
-그래. 접속 장치를 통해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면, 통각을 비롯한 모든 오감을 느낄 수 있고 그 안에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여러 가지 일을 만들 수 있지. 하지만 접속 장치 밖으로 나오는 순간-
안로만은 빈손을 들어 보였다.
-그 세계는 만질 수 없게 돼. 다만 그 세계를 만들어낸 마나와 기계장치만이 존재하지.
으음.
케일은 팔짱을 끼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마나라-’
안로만이 사는 제3지구.
그곳은 김록수가 살던 지구와 케일이 사는 이 무명 1이 합쳐진 중간 세계와 같았다.
‘마법이 있고 오러가 있지. 동시에 각종 냉병기도 존재하고.’
어딘가 많은 것이 뒤섞인 세계처럼 보였다.
케일은 묻고 답하는 알베르와 안로만을 지켜보다가 안로만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집중했다.
-마나는 자연계에서 존재하는 에너지 중 가장 많은 변형성을 지녔지. 우리 부모님께서는 그 변형성이면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냄은 물론 게임 유저들이 그 세계를 여러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어.
마공학의 일종이라고 보아야 할까.
-물론 그런 연구를 진행한 곳이 많았지.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만드신 알고리즘을 이길 수 없었어.
“그리고 게임을 만들어냈나?”
-그래. 마침내 구현해냈지.
듣고 있던 케일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정도의 프로젝트라면 상당히 기밀로 진행했을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기밀이었지요. 물론 부모님은 회사 수뇌부에게는 알렸죠.
“부사장인 작은아버지한테도요?”
-네. 그리고 사실을 알게 된 작은아버지는 투자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요.
“부모님께서는 거절하셨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