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71
-라온의 특성은 시간과 관련된 줄 알았는데, 무언가 다른 것 같구나.
현재.
그 특성이 시간과 연관되어 있다고 예상했는데, 단순히 그 단어의 뜻대로 사용되는 특성 같지 않았다.
케일은 부탁한다는 의미로 에르하벤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들었다.
-걱정 마라.
안심이 된 케일은 라온에게 말했다.
“에르하벤 님이나 쉐리트 님이 허락하면 마법 써도 돼. 하지만 지금은 하지 마.”
“알았다!”
라온이 씩씩하게 말했다.
“나 허락받는다! 그리고 다시는 코피 안 흘린다! 나는 인간 너처럼 비실비실하지 않다!”
뭔가 기분이 떨떠름해진 케일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네가 나처럼 비실비실하진 않지.”
“맞다! 나는 튼튼하다! 7살 용 중에 가장 튼튼할 거다!”
부정할 수 없는 통통한 팔다리가 케일의 눈에 들어왔다.
“어. 그래. 네 말이 맞다.”
대충 인정해 준 케일은 코피가 금방 멎는 것을 확인하였고 때마침 노크 소리를 들었다.
똑똑똑.
“도련님.”
론이었다.
“깨어났나?”
“네.”
케일을 보고 대공의 후손이라니, 영지라니, 상상도 하기 싫은 소리를 내뱉은 노인이 깨어났다.
“자리를 마련할까요?”
“어.”
케일은 그들과 대화를 나눠보아야 했다.
아피토유.
이 세계에 대해 알기 위해.
***
“여기가 하르 왕국의 북부에 있는 땅이라는 겁니까?”
케일의 물음에 노인은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아닙니다. 저는 귀족도 아니지 않습니까.”
“으음.”
노인은 케일의 그 말을 못 들은 척했다.
하지만 그는 케일이 대공가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은 이해했다. 이 세상에 대해 전혀 모르는 그의 모습을 보았으니까.
케일은 노인과 뒤에 있는 3명을 슬쩍 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하르 왕국은 본디 제국이었는데 마지막 황제가 죽은 후로 왕국으로 격하된 곳이란 말이죠?”
“네.”
“그 당시 황제를 지키다가 망한 대공가가 다스리던 땅이 이곳이고, 촌장 어르신은 제가 그 대공가의 후손인 줄 알았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케일은 문득 상의 안주머니에 있을 붉은 왕관을 떠올렸다.
특성 ‘미래’를 지닌 막시리언이 남긴 세 가지 보물 중 하나였던 왕관.
이제는 케일의 왕관, 이무기의 역린과 합쳐져 붉은 왕관이 되어버렸다.
그 마지막 제국이 하르 왕국이구나.
케일은 하나씩 감이 잡혔다.
“대공가가 망한 지는 이백 년이 넘었고요?”
“네.”
담담하게 답하던 촌장이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다시 케일을 바라봤다.
“정말로, 대공가의 후손이 아니십니까?”
“네. 아닙니다.”
단호한 케일의 대답에 촌장은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이었다. 이쯤 되자 케일은 의아했다.
“그런데 왜 저를 대공가의 후손이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검은 성 때문인가?
갑자기 마을 뒷산에 나타난 검은 성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그렇다기엔 노인의 행동이 과했다.
“…그것은-”
그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얼음 속 단 하나의 불꽃.”
응?
케일이 그 비장함에 멈칫했을 때.
“피와 같은 붉은 머리칼이 대공가의 상징이었습니다.”
케일은 저도 모르게 손으로 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이 세계에 올 때는 외양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시기가 시기인지라, 대공가의 후손이 나타날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밤에 붉은 머리의 남자가 마을로 들어오는 걸 꿈으로 꾸어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시기라니요?”
케일의 물음에 노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 이 사람은 대공가의 후손이 아니구나.’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갑자기 나타난 이 사람.
‘너무 모른다.’
이 땅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
그래서 기이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의 태도로 보아 적은 아니겠다 싶었다.
촌장은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신성 제국에서 에르게 산맥에 토벌대를 보낸다고 하였습니다.”
“에르게 산맥은 이 뒤의 산맥을 가리키는 겁니까? 그리고 신성 제국이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촌장은 작은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네. 뒤의 산맥이 에르게 산맥이죠. 그리고 신성 제국은 유일 제국으로 이 땅의 중심에 위치하지요.”
“…무엇을 모십니까?”
왠지 모를 불안감이 케일을 엄습했다.
“당연히 살아있는 신, 드래곤을 모시지요.”
이야.
촌장의 대답을 듣는 순간, 케일은 튀어나오려던 탄식을 삼켰다.
아피토유.
여기는 드래곤이 신이구나.
케일은 조금 더 물어보았다.
“이곳으로 왜 토벌을 옵니까?”
우선 이 문제부터 답을 알아야 했다.
드래곤.
케일이 이 세상에서 싸워야 할 적을 신으로 모시는 자들이 이곳에 온다는 건, 가장 파악해야 할 문제였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는군요. 음, 일단 말이 토벌이지 연례행사와 같은 것인데.”
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르게 산맥에 수인들이 숨어 삽니다. 신성 제국은 그 더러운 피를 지우기 위한 명목으로 이곳을 찾아오지요.”
수인……?
갑자기 나온 단어에 케일의 표정이 굳어졌을 때.
“그리고 이 스노우 가문의 주인, 대공께서는 대대로 수인들, 그중에서도 특히 최고의 전사인 늑대 수인들과 함께 이 땅을 지켜오셨지요.”
촌장의 얼굴에는 잊혀진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푸른 늑대 전사들 중심에 선 붉은 머리칼. 그래서 얼음 속에서 피어난 단 하나의 불꽃이 스노우 대공가를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습니다.”
아.
케일은 한 사람을 떠올렸다.
푸른 늑대족. 라크.
늑대왕의 진전을 이을 것이라 여겨지는 늑대가 생각났다.
희망의 신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케일에게 말했다.
‘푸른 늑대를 찾거라.’
‘고대보다 더 이전. 인간이 역사를 만들기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무수한 생명체들. 그중에서도 흉포함과 자비로움을 모두 갖춘 존재가 있었다.’
‘맹수의 지배자이자, 야수들의 왕. 격을 잃고 잊혀져 가는 푸른 늑대를 찾아라.’
그 푸른 늑대가 앞으로 아피토유 세계에서 벌어질 수많은 변수와 급변할 흐름을 견딜 수 있는 존재라고.
그 존재가 있다면, 케일이나 그의 동료들이 받을 어긋남의 무게를 대신 감당할 것이라고.
그에 대해 말하며 신은 덧붙였다.
‘너의 푸른 늑대와 검은 용을 데려가거라. 두 아이가 각자의 길을 정할 때, 비로소 흐름은 바뀔 것이다.’
즉, 이 아피토유에서의 ‘푸른 늑대’가 무엇인지 먼저 찾고.
그 후에 라크와 라온이 각자의 길을 정하는 순간 이 세계를 변화시킬 변수가 발생하며 비로소 흐름이 바뀐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그 흐름에서 라크와 라온이 휘둘리게 놔둘 생각이 없지.’
두 아이에게 짐을 짊어주게 할 바에는 자신이 감당할 생각이다.
어른으로서, 제 영역 안의 두 아이가 무거운 짐을 감당하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하.”
케일은 탄식과도 같은 웃음을 흘렸다.
그는 제 앞의 노인을 보며 입을 열었다.
“스노우 대공가는 대대로 늑대 수인과 함께해 왔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왜, 수인이 더러운 피인 겁니까?”
거대한 제국의 대공가가 늑대족 전사와 함께했다.
‘그 말은 그때까지는 수인이 더러운 피가 아니었단 소리지.’
수인이 더러운 피가 된 것은-
‘대공가가 멸문한 뒤 200년 동안이다.’
케일은 대략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알 것 같았지만, 자세한 답을 듣기 위해 노인을 빤히 응시했다.
그 시선에 노인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대략 200년 전, 세상은 격변기를 맞았습니다.”
어떻게 이것마저 모를 수가 있냐는 듯 케일을 바라봤지만, 그 시선을 케일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간략하게 설명 드리자면. 대략 10년이 넘는 시기 동안 이 세상의 기본적인 많은 것들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인의 시선이 응접실 창으로 향했다.
조금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눈보라가 친다.
“첫 번째로 날씨가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제국을 포함해 대륙 전체에 이상 기후 증상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그 지역의 날씨가 바뀌었다.
“이곳도 이렇게까지 눈보라가 심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격변기 이후로 가장 긴 겨울을 보내는 땅이 되었지요.”
원래는 산맥을 앞에 두고 있어 척박하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살만한 풍토와 날씨를 지닌 지역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가장 살기 힘든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두 번째로 마나와 오러를 갑자기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케일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원하던 주제가 흘러나왔다.
‘원래 그런 게 아니라 갑자기 그렇게 되었다는 거지?’
이거다.
“실로 끔찍한 시대였다고 합니다. 오러는 몰라도 마법 같은 경우에는 실생활에도 상당히 많이 사용되고 있는 터라, 혼란이 엄청났다고 했습니다.”
노인의 미묘한 어투에 케일은 곧장 입을 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까?”
“네.”
순순히 답을 했지만, 노인의 어조는 더 미묘해졌다.
“마나와 오러가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으니까요. 기쁜 일이죠.”
“…다시요?”
기쁜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노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그는 좋게 말하고 싶지 않은 낌새였다.
“네. 다시요. 격변기가 끝난 후 마나와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났으니 천만 다행이지요.”
“그 말을 하시는 어르신의 표정은 딱히 기쁜 표정은 아니군요.”
노인은 멈칫했다.
“후우.”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덧붙였다.
“기존에 마법사가 천 명이었다면 지금은 1명 정도로 그 수가 확 줄었습니다. 오러 역시도 마찬가지고요. 때문에 이백여 년 전보다 지금이 더 마법도 검술도 후퇴했다고 볼 수 있죠.”
노인은 더 하고픈 말이 많았지만 참는 기색이었다.
케일은 마나와 오러를 쓸 수 있는 사람이 확 줄면서 변화한 사회의 모습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지만, 참았다.
왜냐면 노인은 아직 답하지 않았으니까.
더러운 피. 수인에 대해 들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수인들이 난폭해졌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이 이제야 돌아왔다.
“첫 광폭화를 무사히 마친 수인들이 광기에 휩싸여 갑자기 주변에 피해를 끼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마치 인간과 짐승 그 사이의 어떤 괴물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문득 케일은 첫 광폭화 때의 라크를 떠올렸다.
이성보다는 본능에 휘말린 상태.
“마나도 오러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때였기에 사람들은 수인을 보고 공포에 질렸습니다. 그때, 나타난 존재가 바로 신성 도시였습니다.”
신성 제국이 아니라, 신성 도시.
케일은 무심한 얼굴로 물었다.
“신성 도시에서 그 수인들을 상대했습니까?”
뭔가 뻔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 되면, 심각한 주제였다. 뻔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네. 신성 도시에서 드래곤의 도움을 받아 수인들을 몰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수인들이 상당히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망자의 수를 헤아리기가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럼에도 수인들은 꽤 살아남았고 대륙 곳곳으로 흩어져 숨어 살고 있습니다. 이곳, 에르게 산맥에도 수인들이 숨어 삽니다.”
케일은 지금 이 순간, 그가 사는 세계 무명 1에 살아가는 한 종족을 떠올렸다.
다크엘프.
그리고 네크로맨서.
마지막으로 그들을 토벌하고 세상에서 지우려고 했던 태양신 교단이 생각났다.
그와 같은 일이 이 아피토유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물론 케일 세계에서는 그 일이 과거였지만, 여기에서는 아직도 진행 중인 현실이었다.
케일은 입을 열었다.
“신성 도시는 그 격변기를 겪으며 성장하였고 제국의 위치까지 올라갔겠군요?”
“그렇-”
“그리고 신성 제국에서는 수인들이 더러운 피를 지녔으니 이들을 죽여야 안전할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했겠죠.”
“네, 맞습-”
“그리고 당시 변화된 날씨, 힘의 체계. 더불어 위협까지 느끼는 사람들은 무언가 하나 탓할 존재가 필요했겠군요.”
“…….”
“그리고 그 대상이 수인이 되었고요.”
말을 마친 케일이 노인을 바라봤다.
촌장은 한숨처럼 말을 내뱉었다.
“…맞습니다.”
케일이 이런 말들을 노인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이 노인을 포함해 이곳에 있는 자들이 대공이라는 존재에 대해 가지는 호감 때문이었다.
그 미묘한 분위기는 숨겨지지 않았고, 대공에 호감을 지니는 이들이 대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수인을 적대할 리는 없다.
오히려 수인을 잡으려고 오는 신성 제국에 은은한 적의를 보이지 않았던가.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일단 정리하자면.’
케일은 들은 정보를 하나씩 가다듬었다.
1. 격변기를 기점으로 대륙 전체의 날씨가 변화했다.
2. 마나와 오러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는데, 지금은 아주 극소수만이 사용할 수 있다.
3. 수인이 난폭해졌으며 더러운 피라고 명명되어 숨죽여 사는 존재가 되었다.
-케일.
응접실 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한 존재가 케일에게 말을 걸어왔다.
당연히 그 존재는 에르하벤이었다.
“감이 잡히지?”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격변기. 그때 보라 피 사냥꾼들이 무슨 짓을 한 게 틀림없어.’
세계수와 이 세계 자체가 현재 용의 지배하에 있다.
그 시작 시기가 격변기쯤이리라.
‘보라 피 용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이 세상의 기운에 억제를 걸었을 거야.’
그 여파로 날씨가 변화했을 수도 있었다.
혹은 세계수와 세계의 문제 때문일 수도 있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인은-’
케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마나도 오러도 없는 세계에서. 더불어 세계수를 지배하며 엘프까지 그 밑에 둔 드래곤이 가장 신경 쓸 존재는 단 하나뿐이지.’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난 존재.
‘수인.’
수인족. 그들은 마나와 오러가 없어도 강하다.
특히 케일의 세계에서는 고래족의 경우 드래곤에는 모자라지만 그에 비견할 만한 강자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수인족의 개체 수는 드래곤을 가볍게 압도한다.
‘신성 제국이 드래곤을 신으로 모신다고 했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신을 위협할 수인을 없애야겠지.’
케일은 생각을 정리하며 촌장에게 물었다.
“난폭해진 수인을 본 적이 있습니까?”
“목격담은 꽤 있습니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난폭해집니까?”
“네. 광기에 휩싸여 본능에 따라 모든 것을 다 부수려 한다고 합니다.”
케일은 응접실 창을 바라봤다.
한쪽은 마을이 보였다면 반대편 창은 다른 곳이 보였다.
눈 덮인 험준한 에르게 산맥.
저곳에 수인이 숨어 산다면-
“그 목격담 다 믿을 순 없겠네요.”
피식. 케일이 웃음을 흘렸다.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멈칫했다.
그런 그들에게 케일은 평이하게 말했다.
“저 살기 힘든 산맥에, 이 겨울에 숨어 살면 먹고사는 게 상당히 힘들 텐데. 모든 것을 다 부술 광기에 휩싸여 본능만 남은 존재들이 마을에 안 내려오고 꽁꽁 숨어 있다고요?”
그게 말이 되나?
괴물과 같은 존재라면,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산맥 아래로 내려와 마을을 뒤집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케일의 눈에 비친 마을 사람들은 수인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도 없었다.
“난폭해진 수인도 있겠지만 아닌 수인도 많겠군요.”
단정 짓듯 케일이 말했다.
“이분처럼요.”
마을 사람 4명 중 촌장 다음으로 나이가 많아 보이는 중년인.
그를 케일이 가리켰다.
이미 성에 들이면서 중년인의 정체는 들켰다.
덜컹!
의자가 뒤로 밀리며 중년인이 벌떡 일어났다.
평범한 마을 사냥꾼 복장을 하고 있던 남자가 케일을 노려본 그 순간.
“!”
그는 멈칫했다.
끼익.
의지가 뒤로 밀리는 소리와 함께 로브로 몸을 가리고 있던 한 사람이 후드를 벗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설픈 늑대네요.”
“!”
중년인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리고 케일은 미소 지었다.
99명의 자리.
최강의 전력을 꾸리는데, 이들이 빠질 순 없었다.
고래족 차기 왕.
위티라가 미소를 지은 채 중년인을 바라봤다.
“어찌하여 인간화했으면서도 늑대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것이지요?”
그녀의 옆에 있던 이가 호탕한 웃음을 흘렸다.
“허허. 그러게나 말입니다. 여기 수인족들은 조금 우리와는 다른 건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격변기 때 무슨 일을 겪었나 봅니다.”
또 한 명이 후드를 벗었다.
호랑이족의 수장.
주술사 가샨이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상당한 불쾌감이 담겼다.
“더러운 피라니. 하하-”
수인이라는 것에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위티라와 가샨에게는 거슬리다 못해 분노를 일으키는 이야기들이었다.
촌장도, 중년인도 아무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다른 두 명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자, 자.”
케일은 중년인에게 손짓했다.
“앉으세요. 뭘 그리 긴장하고 그러세요.”
그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맺혔다.
“어르신.”
촌장에게 물을 것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그중에서도 당장 중요한 3가지.
첫 번째.
“드래곤이 어째서 신이 된 겁니까?”
드래곤은 신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절대신을 만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사냥꾼이면서.
드래곤을 신으로 모시게 만든다?
이건 모순이었다.
보라 피 가문. 이놈들의 생각이 케일은 궁금했다.
“그리고 토벌대는 언제 옵니까?”
두 번째로, 신성 제국에서 이곳으로 보낸 토벌대에 대해서 파악해 둘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처음으로 마주할 적일지도 몰랐으니까.
마지막.
“혹시 최정건이라는 사람 아십니까?”
사라진 방랑자.
소식이 끊긴 최정건이 마지막으로 연락을 한 곳이 이곳이었다.
그의 행방도 찾아야 했다.
이 세 가지에 대해 간단한 대답이라도 듣고 나면, 케일은 움직일 것이다.
케일이 질문을 던졌음에도 이에 대해 답해야 할 촌장은 정신이 없었다.
그는 넋이 나간 얼굴로 위티라와 가샨을 번갈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