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79
최한이 한 발을 내딛는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는 뒤로 물러선 제 발을 내려다보며 얼굴이 일그러졌다.
최한은 담담하게 말했다.
“겁먹었군.”
분노가, 나인을 감싸던 분노가.
하얗던 머릿속을 가득 잡아먹을 듯 피어오른 들불이-
바뀌어 갔다.
‘안 된다.’
나인은 이러면 안 된다는 본능에 입을 열었다.
“품위도 없는 그런 오러 따위에 내가 질 리가 없어!”
최한이 입을 열었다.
“무섭나 보군.”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생각하며 나인은 외쳤다.
“내 포스가 더 강하다고! 네 그 작은 포스 따위, 내 검만 닿으면 무너질 거야!”
피식.
최한은 웃음을 흘렸다.
“그 포스는 네 것이 아닌 것 같은데?”
“…뭐?”
최한은 그 물음에 굳이 대답해 주지 않았다.
나인의 오러?
훌륭하다.
과거 모고르 제국의 소드 마스터를 상대했을 때, 그의 오러처럼 우아했다.
하지만 그 소드 마스터보다 나인의 것이 못했다.
왜냐면 겉만 우아할 뿐, 그 우아함에 따르는 책임감도 사명도 담겨 있지 않았으니까.
그저 겉만 우아했다.
“무, 무슨 소리냐고! 포스는 내 거야, 내 거라고!”
나인이 발악했고, 최한은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나인이 포스라고 말하는 아우라.
그것은 최한에게 있어 자신이 걸어온 길이었다.
자신의 삶이 담긴, 의지가 담긴 힘이었다.
이는 스스로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만들어질 수 있는 힘이었다.
나인.
저자의 포스는 본인의 것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니까.’
그의 포스에 담긴 것은 그가 그토록 찬양하는 위대한 피, 드래곤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을 뿐.
남의 것을 찬양하는 아우라에 어찌 최한의 힘이 지겠는가.
수십만 명의 목숨을 담아 만들어낸 혈마의 기운도 결국에는 베어낸 최한이었다.
저벅. 저벅.
그는 그저 걸음만 옮겼다.
“아냐, 아냐!”
나인은 뒷걸음질 쳤다.
그는 제대로 싸울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최한은 그런 그를 보며 실소를 흘렸다.
“영리하네.”
이 용 혼혈은 대번에 본능적으로 알아챈 듯싶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최한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그걸 어떻게 잊고자 날뛰는 것 같았으나, 결국에는 두려움에 휩싸여 물러나는 것이 결말이었다.
“이, 이-”
지금도 봐라.
“죽일 거야! 네놈은 내가 반드시 죽인다!”
겁에 질린 얼굴로 저리 외쳐대는 꼴이란.
최한은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앞뒤 없이 오만하게 구는 이놈이-
“…넌, 져 본 적이 없구나.”
그리고 죽을 위기도 겪어보지 않았구나.
그렇기에 고작 이 정도에 두려움을 느끼고 살고 싶은 절박한 얼굴을 하며 위협하는 것이 고작이구나.
“용 혼혈이라길래 그 녀석 정도를 생각했는데.”
검은 성에 있을 용 혼혈.
본 드래곤이 되어버린 그 녀석.
“그놈과는 다르군.”
그놈이 악한 짓을 많이 했지만, 최소한 그놈은 패배를 무서워하지 않았고 죽음 앞에서 덜덜 떨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든 오만이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불태워버리고자 하였지.
그래서 용 혼혈과의 싸움에 걱정이 많았건만.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네.”
서걱.
최한의 검이 나인의 손을 꿰뚫었다.
“으아아아악—!”
용 혼혈 나인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내, 내 손, 내 손!”
그는 최한의 검에 꿰뚫린 제 오른손을 보며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툭.
오른손에 쥐어져 있던 검은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후였다.
최한은 차분한 얼굴로 검을 뽑았다.
촤악-
붉은 피가 새하얀 눈 위로 흩뿌려졌다.
“끄윽, 끅!”
나인은 신음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온몸을 덜덜 떨며 왼손으로 제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지혈을 하려다가 안 되겠는지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상처를 치료할 무언가를 찾는 태세였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았다.
퍼억!
최한이 발로 나인의 배를 찼다.
나인의 몸이 형편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크윽! 이 새끼가-”
순간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최한을 쳐다보았던 나인은 이내 그 눈을 내리깔았다.
“…….”
가만히 내려다보는 차분한 눈동자에는 나인에 대한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나인은 그 눈을 계속 쳐다볼 수가 없었다.
“끄윽…….”
그저 아픈 손을 움켜쥘 뿐이었다.
하지만 전과 달리, 그는 제 손의 상처를 치료하려는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그저 넘어진 그대로 몸을 웅크린 채 최한의 얼굴이 아닌 그의 발 언저리를 노려볼 뿐.
“다 했나요?”
최한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위티라 씨는요?”
그 물음에 위티라는 미소를 지었다.
“곧이요.”
그때였다.
콰아아앙—
굉음이 울려 퍼지며 위티라가 있던 자리에 쌓였던 눈이 위로 솟구쳤다.
하얀 눈이 순간 그녀가 있던 자리를 뒤덮었다.
타닥.
하지만 위티라는 이미 그 자리를 피해 뒤로 물러선 후였다.
그녀의 시선이 공격이 날아온 곳으로 향했다.
“허억. 허억.”
용 혼혈 마법사 웨이가 벅찬 숨을 몰아쉬며 위티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제길!’
저 여자의 정신이 잠시 다른 곳으로 향한 사이에 은밀히 날린 회심의 일격이었는데!
적은 너무나도 쉽게 그 공격을 피해버렸다.
온몸이 땀에 젖은 자신과 달리,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여인.
“크윽, 끅.”
귓가로 나인의 고통에 찬 신음이 들려왔다.
‘빌어먹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포스를 써도 저 여자는 부쉈다.
별별 마법을 다 써봤다.
이 역시도 그녀는 쉽게 피하거나 혹은 물 채찍으로 소멸시켰다.
그래서 결국 텔레포트 마법까지 써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틈을 줘야지!’
어떻게 이를 알았는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쉴 새 없이 공격을 가해왔다.
그전에는 계속 방어와 회피만 하더니, 도망치려니 가로막았다.
‘누가 봐도, 이건 갖고 놀고 있는 거잖아!’
하지만 웨이는 속마음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허억, 허억-”
힘을 아껴야 했으니까.
포스와 마나를 쉬지 않고 남발했더니, 빠르게 체력이 떨어져 갔다.
‘제길!’
기사단 단원 중 체력이 가장 부족한 웨이였던지라, 짜증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한 줄기 맺혔다.
“네 정체를 알겠어.”
저 여자의 정체를 깨달았다.
“오. 그래?”
위티라는 이제야 알아챈 것이 놀라웠다.
나름 영리해 보이는 자가 몇 번이나 수인에 대해 언급했음에도 생각조차 못 하고 있어 이상했건만.
“내가 누구지?”
웨이는 확신을 가진 채 말했다.
“넌-”
이 여자의 정체.
“엘프지?”
평범한 인간의 귀라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 물 채찍도 내가 파악하지 못한 최상급 물 정령의 힘이겠지.”
“…….”
여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웨이는 숨을 고르며 자세를 바로 했다.
“또, 드래곤님을 보필하느라 피어를 몇 번 겪어봐서 포스에 대처할 줄 알았던 거야.”
그의 시선이 힐끗 옆으로 향했다.
나인이 아닌 그 앞의 최한에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또 인간이 오러와 포스를 모두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드래곤님이 이 일에 끼어들었다는 증거지.”
분명 저 여자는 드래곤의 피를 언급하며 용 혼혈이나 드래곤이나 다 팰 수 있다는 것처럼 말했지만.
그것이 진실이겠는가?
“어떤 드래곤님의 유희인지 모르겠으나. 그 유희를 위해 제국의 기사단을 건드는 것은 로드님께서 좌시하지 않을 거다.”
웨이는 처음에 드래곤의 유희가 아닌 하르 왕국이 뒤에서 벌인 수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틀렸다.
‘왜냐면 우릴 이렇게 가볍게 이겼으니까.’
이건 말이 안 된다.
지금껏 이런 경우는 기사단이 창설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없었다.
비등한 실력을 지닌 인간들은 있었지만, 자신과 나인을 마치 장난감 상대하듯 짓밟은 이는 존재치 않았다.
‘그러니 답은 드래곤이다.’
드래곤이 무슨 장난을 하는 것이리라.
그러면 말이 된다.
그들은 깊은 뜻이 있지만, 가끔은 지독한 장난도 했으니까.
“…우릴 없애면, 로드께서 벌을 주실 거야.”
때문에 드래곤 로드. 그 존귀한 이름을 언급했다.
사실 드래곤 로드는 나인과 웨이의 죽음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로드는 드래곤에게는 관대하고 그 외의 존재에게는 엄격했으니까.
그렇지만 살기 위해서.
“큭, 끄윽.”
나인, 저놈처럼 아프기 싫어서.
웨이는 존귀한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리고 눈앞의 푸른 머리칼의 여자가 반응했다.
“하!”
위티라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 하하–”
탄식처럼 터졌던 웃음이 곧 크게 울려 퍼졌다.
“와.”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이건 전혀 상상도 못 했는데.”
엘프라고?
드래곤의 수하라고?
이 내가?
위티라는 이제야 깨달았다.
저 용 혼혈이 ‘수인’이라는 단어 자체를 위티라를 보며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를.
‘수인은 이렇게 강할 수 없는 게 당연한 세상이구나.’
그게 이 세계의 진리구나.
때문에 용 혼혈은 터무니없는 가정임에도 ‘엘프’를 언급하는 것이리라.
“하하-”
그냥 웃음이 계속 나왔다.
“뭐, 뭐지? 왜 웃지?”
웨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뭔가 좋지 않았다.
저 웃음 안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그의 동공이 흔들리며 위티라에게서 조금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래, 분명 계속 그녀를 바라봤다.
그런데-
“…….”
위티라가 웃음을 멈췄고.
그녀의 시선이 웨이에게로 향했고.
타닥.
가볍게 그녀가 발을 굴린 순간.
쾅!
땅이 울리고 동시에 웨이는 제 코앞까지 단번에 달려온 위티라를 볼 수 있었다.
“시, 실드!”
간신히 실드를 외쳤다.
이번에도 막겠지. 힘을 못 아끼겠지만.
그리 생각한 순간.
콰앙!
물 채찍이 아닌 그녀의 주먹이 실드와 부딪쳤고.
쩌저적-
너무나도 손쉽게 실드가 산산조각이 났다.
포스를 펼치는 것조차 잊어버린 찰나의 순간.
“커헉!”
그의 목은 위티라의 손에 사로잡혔다.
로브에 가려져 있던 팔이 눈에 들어왔다.
자잘한 상처로 가득한 팔이 보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여자는 뒤에 물러서서 물 채찍을 휘두르는 것보다, 이렇게 싸우는 게 본래 방식이구나.
하지만 그 깨달음의 대가는 혹독했다.
“커헉, 컥!”
숨이 막혀왔다.
당장이라도 제 목이 이 여자의 손에서 부러질 것 같았다.
웨이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이러다 죽을 것 같았다.
동시에 알아챘다.
이 여자, 엘프 아니다.
엘프는 이런 악력을 지니지 못했다.
그리고, 엘프는-
‘이런 눈을 하고 있지 않아!’
엘프를 몇 번 봤다. 드래곤의 수발을 드는 존재들. 그들의 눈은 이렇게 매섭지 않았다.
이 여자의 눈빛은 오히려 드래곤에 가까웠다.
마치 눈앞의 존재를 죽일 것 같은 맹수의-
‘아.’
웨이는 비로소 깨달았다.
동시에 믿기 어려웠다.
제 생각을 부정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럴 수는 없다고!
‘이, 이 여자가 설마, 설마-’
차마 생각으로도 제대로 떠올릴 수 없는 존재.
씨익.
여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제야 내가 누군지 알았니?”
웨이는 제 목을 쥔 손에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 그 이유가 그녀의 물음에 답을 하라는 것인지도 알았다.
하지만 말할 수가 없었다.
“그, 그럴 수는 없어-”
그래, 이럴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말할 수가 없다.
“왜? 왜 그럴 수 없지?”
위티라는 부드럽게 물었다. 하지만 웨이는 제 목에 닿아있는 그녀의 손이 제 목을 조르고 있지 않음에도 숨이 막혀왔다.
“어, 어떻게 더러운 피가-”
어떻게-
“수인 따위가-”
수인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웨이가 위티라를 엘프라고 생각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녀는 고고해 보였다.
드래곤을 수발드는 엘프라고 낮잡아 말해왔지만, 웨이는 엘프를 마주할 때면 용의 피를 이어받은 자신을 대함에도 당당하고 특유의 기품이 보이는 엘프들을 질투했다.
그런 고고함.
그리고 어떠한 쉬이 꺾을 수 없는 격이 그녀에게서 느껴졌다.
때문에 엘프를 언급한 웨이였다.
그런데 수인이 저렇다고?
그 난폭하고, 짐승도 인간도 아닌 모습을 하고 있는 그 더러운 놈들이 저렇다고?
“너 몇 살이니?”
수인이 웨이에게 물었다.
“이백 년은 살았니?”
당연히 웨이는 그만큼 살지 못했다.
그는 용 혼혈 3세대였으니까.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웨이였지만 그의 나이는 오십 대였다.
“못 살았나 보네.”
대답을 듣지 않아도 표정만으로 정답을 알았다는 듯, 수인은 그에게 이어 말했다.
“난 고래족이야.”
고래족은 그에게 말해주었다.
“내 이름은 위티라지.”
고래족 위티라는 그에게 진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수인은 원래 이래.”
수인은 그에게 웃어 보였다.
“너처럼, 용처럼 똑같이 뜨거운 피가 흐르지.”
고래족 수인 위티라는 그의 목을 손에서 놓았다.
웨이가 휘청인 순간.
“커헉!”
웨이는 제 얼굴을 후려치는 주먹을 맞고, 저 멀리 날아갔다.
쿠웅!
목책에 부딪히며 바닥으로 쓰러진 그의 앞에 위티라가 다가왔다.
위티라는 웨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피가 눈을 붉게 물들이는 것을 보며 담담하게 읊조렸다.
“봐. 똑같잖아?”
웨이는 덜덜 떨었다.
아픔보다 더 큰 충격이 그를 뒤덮었으니까.
수인의 저 모습.
그는 다가올 거대한 혼란을 마주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 혼란에 불안해할 틈이 없었다.
“!”
위티라가 무심한 손길로 그를 기절시켰다.
그녀는 웨이의 뒷덜미를 잡고 들어 올렸다. 피가 뚝뚝 여전히 흘러내린다.
그 피를 보던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눈이 내리는 잿빛 하늘이 보였다.
“하아…….”
짧게 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