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85
“네. 없습니다.”
장관의 온화한 미소를 믿기로, 아니, 그냥 생각을 그만하기로 결정한 케일이었다.
왜냐면 시간이 없었으니까.
“마법은 내가 펼치마.”
에르하벤은 앞으로 나서는 라온을 슬쩍 뒤로 물렸다.
검은 성 지하에 자리한 연무장.
꽤 큰 크기를 지닌 연무장에는 베일리와 함께 수도로 갈 사람들 외에도 몇 명의 하르 왕국 측 사람들이 더 있었다. 마을 촌장도 함께였다.
에르하벤은 그들의 앞에서 라온이 마법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좀 힘들더라도 참게.”
베일리는 두 손을 꽉 맞잡았다.
그녀는 이미 설명을 들었다. 마법을 펼치기 위해서는 드래곤 피어를 발산해서 공간을 장악해야 한다고.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왕을 만나면 자세히 듣기로 했기에, 베일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우웅—-
공기가 진동했다.
서서히 주변 공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베일리는 저 드래곤이 우리를 배려해 아주 천천히 그리고 얕게 드래곤 피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숨이 막혀왔다.
‘흡.’
확실히 다르다.
제1기사단 용 혼혈들이 사용하는 포스와는 그 농도와 깊이가 달랐다.
거대한 자연 풍광을 눈앞에서 목도했을 때, 인간이 느끼는 압박감과 경외감. 그에 반응해 절로 감탄하게 되는 것처럼. 이 기운은 단순히 공포와 두려움만을 담고 있지 않았다.
인간의 것이 아닌 이 세상의 무언가.
극비로 감춰진 이 세계의 비밀 중 하나를 마주한 것 같은 기분.
어쩌면 세상의 법칙을 하나 들춰본 것만 같은, 인지할 수 없는 두려움을 자극했다.
‘이게 드래곤 피어인가?’
아주 옅게 사용한 드래곤 피어에서도 이 정도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진짜 제대로 된 드래곤 피어는 어떨까?
문득 베일리는 케일의 등을 바라봤다.
아까 용 혼혈들을 무너뜨렸던 그의 기운.
그 기운을 다른 인간들은 제대로 겪어보지 못했다. 인간인 그가 어째서 그런 기운을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힘도 이러할까?
베일리는 의문과 동시에 기대감이, 그리고 걱정이 스며들었다.
‘…케일 경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으니까.
‘이 또한 전하를 만나면 알게 되겠지.’
섣부른 판단을 할 필요는 없다.
우우—우우—
연무장의 중심에 백금빛의 마법진이 새겨졌다.
‘아.’
드래곤 피어가 사라지고 찬란한 백금빛만이 베일리의 시야를 채웠다.
아름다웠다.
“가지.”
고룡이 먼저 마법진에 올라섰다.
그 뒤를 따라 케일과 라온이 함께했고, 베일리도 얼른 보좌관과 샘에게 손짓하며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맨 뒤에서 걸음을 옮기려던 샘은 선배 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잘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그도 결연한 얼굴로 마주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샘. 네가 본 것을 국왕 전하께 그대로 말씀드리도록.’
이번 일행에 가장 경륜이 짧고 젊은 샘이 함께하게 된 것은, 그가 케일 일행에 대해 본 것이 가장 많기 때문이었다.
샘은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긴장인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널뛰는 심장을 다스리며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우웅-
다시금 드래곤 피어가 살짝 피어올랐고.
파아앗-!
그 뒤를 이어 케일 일행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음.”
하르 왕국 기사는 그 모습을 보며 침음을 삼켰다.
‘엄청나구나.’
텔레포트 마법을 실제로 처음 본 그였기에, 놀라웠지만 겨우 이를 티 내지 않았다.
그런 그의 곁으로 이 성의 집사가 다가왔다.
“숙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네.”
그는 집사에게 공손한 태도로 남은 이들을 데리고 지하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이를 지켜보던 드래곤 라쉴은 입을 열었다.
“우린 이제 뭘 하면 되지?”
그의 물음에 드래곤 밀라는 입을 열었다.
“따라오렴.”
밀라의 뒤를 따라 움직인 이들이 당도한 곳은 검은 성 중간층쯤에 위치한 회의실이었다.
달칵.
문이 열렸다.
그곳엔 케일의 뜻을 전달받은 세 명의 여인이 중앙 탁자 위의 지도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전 드래곤 로드 쉐리트는 들어선 밀라에게 물었다.
“갔어?”
“네, 갔습니다.”
그 사이로 라쉴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툭 내뱉었다.
“야, 인간 마법사. 우리가 뭘 하면 되는데?”
그의 시선을 받은 이는 로잘린이었다.
최한 역시도 로잘린을 바라봤다. 반면에 로잘린은 어정쩡한 자세로 뒤따라온 촌장에게 손짓했다.
“촌장님 여기로 와 보세요.”
“야, 우리가 할 일이 뭐냐니까?”
라쉴의 물음에 로잘린은 가볍게 답했다.
“지금은 없어요.”
그러고는 촌장에게 지도를 가리켰다.
“음.”
촌장은 침음을 삼켰다.
에르게 산맥 일부와 마을, 그리고 마을 밖의 너른 들판까지.
모든 곳이 그려진 지도였다.
‘이걸 어디서 구했지?’
장관 베일리가 전해주었나?
의문을 표하기도 전, 로잘린이 산뜻하게 말했다.
“지금부터 이 일대를 요새화할 생각이랍니다.”
케일은 로잘린에게 부탁했다.
‘로잘린 씨. 우리는 병력 숫자가 밀립니다. 그러니 아시죠?’
‘걱정 마세요.’
말하지 않아도 답을 안다.
“나와 나를 따라온 마법사 10명이 나를 도와서 이 지도 곳곳에 대규모 마법진을 설치할 생각이에요.”
백여 명 안에는 로잘린의 수하들도 있었다.
마탑 건설 중 빼내온 인재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케일, 로잘린과 함께 과거 불굴 연합과의 전쟁 때부터 손발을 맞춰온 우수한 전투 마법사이기도 했다.
촌장의 눈이 커졌다.
“마, 마법을 사용하실 수 있으십니까?”
“아뇨.”
로잘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탄식을 흘리는 촌장에게 로잘린은 웃어 보였다. 최한은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고 답하면서도 또렷한 로잘린의 눈빛이 보였다.
‘최한. 너는 오러를 쓸 수 있다고? 어떻게 한 건지 물어봐도 될까?’
‘…영역. 아우라를 만들면 돼.’
‘케일 공자와 같은 건가?’
‘그래.’
‘그걸 넌 어떻게 만들었어? 말해줄 수 있어?’
친우인 로잘린에게 말해주지 못할 것은 없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내 길에 대한 확신이 선 순간 저절로 그 기운이 흘러나왔어.’
‘아.’
짧게 감탄하는 로잘린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최한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가 지금껏 보아온 사람들 중에 로잘린 그녀만큼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는 데 주저함이 없고, 확신을 가진 사람은 없었으니까.
어쩌면 이 기운을 최한보다 그녀가 먼저 만들어내야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로잘린은 이내 그 표정에서 수심을 걷어내고 빛을 품었다.
‘최한, 그러면 말이야.’
‘어.’
‘드래곤 피어를 나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는 거네? 아니지. 드래곤 피어와는 다른 나만의 것을 만들 수 있단 소리네?’
그때 최한은 역시 로잘린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흥미진진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아니, 그건 단순한 흥미가 아니라 열망이었다.
‘…어쩌면 마법을 한 걸음 더 진보시킬 수 있겠어.’
그때 그의 귓가로 촌장에게 사근사근하게 말을 건네는 로잘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촌장님, 지금은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어도, 마법적 지식과 마법을 위한 준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답니다. 그게 아주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일단 마법진을 곳곳에 설치해 두면, 그것을 가동하기만 하면 된다.
가동을 위한 상황은 드래곤, 케일, 최한이 있기에 충분히 가능할 터.
“그리고 우리의 대규모 마법진은, 글쎄요. 장담하건대-”
로잘린은 곁에 드래곤들이 있지만 숨김없이 말했다.
“드래곤들도 놀랄 거예요.”
마탑을 건설하는 동안, 로잘린은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이 마법진들 설치하시죠.’
‘그래도 될까요? 이건 전쟁용인데.’
‘로잘린 씨. 우린 어쩌면 대륙 전체와 전쟁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케일은 로잘린에게 말했었다.
‘이 대륙 대부분이 격변기를 기점으로 힘의 구성이 새롭게 재편되었을 겁니다.’
용 혼혈 기사단이 생각보다 약하다고 해서 케일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베일리와의 대화 후 그의 표정은 더 심각해졌다.
‘특히 하르 왕국조차도 국왕보다는 제국을 위하는 반대파의 영향력이 강하다고 했습니다. 아마 다른 왕국들은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겁니다.’
신성 제국의 권력과 힘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더불어 용 혼혈 기사단이 생각보다 너무 약합니다.’
‘케일 공자는, 그들이 겉치레라고 생각하나요?’
‘네.’
마법과 오러가 소수 중에서도 소수만을 위한 힘으로 바뀐 후, 아피토유는 약해졌다고 볼 수도 있었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혈마가 마음에 걸립니다.’
하지만 케일은 이를 믿지 않았다.
‘혈마는 아피토유, 보라 피 드래곤들을 상대하려고 수십만 명을 죽이고 여러 가지 만행을 저질러왔습니다.’
케일이 백 명의 강자들을 데리고 온 기준은 중원, 혈교에 있었다.
혈교보다 더 강한 상대.
혈마가 두려움을 품었던 보라 피 가문에 대한 경계심이었다.
케일은 로잘린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 더 걱정하는 바가 있었다.
‘그리고 균형의 신이 내가 이 백여 명을 데리고 가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어.’
그 말은, 그 정도는 준비해야 균형이 맞단 소리였다.
‘특히 균형의 신은 우리 쪽이 더 큰 힘을 가지면 균형에 어긋난다고 여길 거야.’
그 말은 이 백여 명의 힘보다 아피토유의 힘이 더 강하다는 뜻이었다.
케일은 이 생각은 굳이 로잘린에게 말하지 않고, 다만 그녀에게 넌지시 언급해 두었다.
‘준비를 할수록, 목숨을 아낄 수 있겠죠.’
로잘린은 케일의 준비가 만들어낸 불굴 연합과의 전투를 기억하고 있었다.
때문에 회의실 안에 자리한 이들에게 말했다.
“추가 토벌대에 대비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이니 따라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준비를 하며, 로잘린은 바라는 바가 하나 더 있었다.
‘…정체기야.’
그녀는 자신의 마법이 진즉에 정체기에 돌입했음을 깨닫고 있었다.
어쩌면 마법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이 세계가 그녀에게 성장의 기회를 줄지도 몰랐다.
위험 뒤에는 늘 기회가 따라왔으니까.
‘그리고 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아 왔고.’
자만심 가득한 말일지 몰라도, 로잘린은 정말 놓치지 않았다. 왜냐면 어떻게든 아등바등 버텨왔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생각이다.
가만히 있던 드래곤 밀라가 입을 열었다.
“토벌대는 로잘린이 중심이 되어 대비한다면, 이단심문관은-”
그녀의 시선이 한쪽으로 움직였다.
여전히 지도를 보고 있던 한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입이 열렸다.
“제가 맡아야죠.”
다크엘프 타샤.
그녀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펜드릭과 함께, 이단심문관은 우리가 맡을 작정입니다.”
엘프로 추정되는 이단심문관.
그들을 상대하는 일은 다크엘프 타샤와 엘프 힐러인 펜드릭이 다른 엘프, 다크엘프들을 이끌고 맡을 작정이었다.
그때, 라쉴이 입을 열었다.
“드래곤도 한 명 올지도 모른다며? 그건 내가 맡지.”
그가 덧붙였다.
“그리고 드래곤 피어가 있어야 너희도 힘을 쓸 거 아냐? 내가 드래곤 피어를 피울 테니, 그 영역 안에서 너희 힘을 써.”
밀라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은근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적극적이네?”
“흥.”
콧방귀를 뀌며 밀라의 말에 답하지 않는 라쉴이었다.
그러다가 뭔가 꺼림칙했는지 덧붙였다.
“내가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지닌 드래곤 새끼들을 패고 싶어서 이러는 거지! 절대로 케일 헤니투스를 돕고 싶어서가 아냐!”
후후.
밀라와 쉐리트가 나직한 웃음을 흘렸고, 그에 라쉴은 얼굴을 찡그린 채 한마디를 더 내뱉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톡톡. 누군가 그의 팔을 두드렸다. 시선을 돌리니 백발의 인간이 보였다.
“뭐야?”
삐딱한 어조에도 백발 녹안의 남자, 클로페 세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도 함께해도 되겠습니까?”
“엉?”
클로페는 타샤에게 물었다.
“이단심문관 쪽에 저도 끼고 싶습니다만.”
“음. 뭐, 우리는 상관없습니다.”
타샤가 답했고.
뒤이어 클로페의 시선을 받은 라쉴은 멈칫하다가 답했다.
“뭐, 상관없지?”
그리고 생각했다.
‘저 새끼 눈빛이 이상한데.’
저 자식이야말로 정신머리가 맛이 간 거 같은데?
하지만 굳이 뒷말을 하지 않았다.
정신 나간 놈들 상대할 때는 더 정신 나간 놈이 좋으니까.
특히 저렇게 수줍은 듯 조용히 서 있는, 그러면서도 눈빛은 희번득한 저런 놈이 제일 제격이었으니까.
그렇게 모두 각자의 역할을 찾아갈 때, 전 로드 쉐리트가 슬그머니 뒤로 빠지며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후우.”
“무슨 일이 있습니까?”
밀라가 때마침 다가와 건넨 말에 쉐리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들이 걱정되시죠?”
하지만 밀라의 이어진 말에 쉐리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니야.”
“아니긴요. 라온이 수도로 간 게 신경 쓰이실 테고. 그리고 또-”
밀라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말한 ‘아이들’은 라온만을 가리키지 않았다.
또 한 명의 아이 혹은 원수라고 할 수 있는 자.
용 혼혈.
본 드래곤이 된 그를 차마 부를 수 없던 밀라는 말끝을 흐리다가 두리뭉실하게 물었다.
“…누구와 있죠?”
로드 쉐리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녀의 시선이 검은 성 후원 쪽으로 향했다.
“아마, 비크로스, 위티라, 수이 칸과 함께 있을 거야.”
그리고 덧붙였다.
“…제1기사단 단장과 용 혼혈들을 심문하고 있겠지.”
아피토유의 용 혼혈.
그들을 상대하는 일을 맡은 용 혼혈이었다.
“스스로가 맡겠다고 자원했다고 하더군.”
그리고 이는 용 혼혈이 원한 일이었다.
밀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쉐리트의 침묵을 함께 공유했다.
하지만 두 용의 곁은 꽤 소란스러웠다.
신성 제국과 보라 피 드래곤.
그들을 상대하는 일이 하나씩 준비되어 가고 있었다.
***
파아앗—!
케일은 환한 빛에 감았던 눈을 떴다.
“?”
그곳엔 대니스 왕, 멍한 얼굴의 소년이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툭 내뱉었다.
“당신은-”
응?
케일이 뭐라 반응하기도 전.
대니스 왕이 말했다.
“당신은, 사라진 막내 공자?”
그 순간 케일의 입이 열렸다.
“네?”
소년 왕이 뒤이어 반응했다.
“응?”
두 사람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봤다.
막내 공자?
그 단어가 케일의 머릿속에 들어왔을 때, 외무대신 베일리가 앞으로 나섰다.
“전하.”
“…장관이 어째서?”
소년 왕 대니스가 베일리를 보고 놀랐을 때.
똑똑똑.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약간의 소란스러움을 알아챈 듯한 모습이었다.
어린 왕과 늙은 신하의 눈이 마주쳤고, 베일리는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대니스의 입이 열렸다.
“아닐세. 아무 일도 없네.”
평온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다만, 재상을 회의실로 불러오게.”
문밖의 기사가 잠시 침묵했다.
“…충.”
곧 나직한 대답이 들려왔고, 이를 들은 대니스가 이어 말했다.
“궁 안의 사람들을 물리게. 최소한만 남겨.”
“알겠습니다.”
지금 문밖에서 왕을 경호하는 이를 비롯해, 궁 안을 지키는 기사들은 모두 대니스의 사람이었다.
선대 왕이 그를 위해 남겨준 최소한의 방패였다.
“장관.”
그는 베일리를 보며 말했다.
“다음 경비 교대 시간까지 6시간이 남았네.”
그 후 경비조는 제국파와 국왕파가 뒤섞여 있었다.
“그 정도 시간이면 대화를 나누기에 충분하겠지?”
호오.
케일은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침착한 대니스를 보며 눈동자에 이채를 머금었다.
그리고 대니스도 케일을 바라봤다. 그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케일과 라온, 에르하벤에게까지 닿은 그는 입을 열었다.
“드래곤 님까지 장관이 모시고 올 줄은 몰랐는데.”
이야.
케일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
에르하벤의 정체는 몰라도 라온의 정체는 곧장 알아챘을 것인데,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
물론 케일은 대니스가 긴장하고 있음은 알아챌 수 있었다.
그의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을 봤으니까.
하지만 라크보다 어려 보이는 소년이 이 정도 대처를 한다는 것만 해도 그 그릇이 보였다.
대니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베일리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북부에서 일이 일어났나 보군.”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조금 전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을 물렸습니다.”
대니스는 문으로 향했다.
“따라오게. 여기는 대화를 나누기에 부적절하니.”
끼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