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9
98화.
케일은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하지만 알베르는 그에 대해 타박하지 않았다.
그냥 다크엘프를 만나는 것도 아니고 다크엘프의 마을에 가야 했으니까.
-그 마을에서 받아올 물건이 있네. 나와 나를 돕는 다크엘프들이 지금 하는 일이 있어서 말이야. 현재 움직이는 게 힘들어.
알베르는 죽은 마나를 이용해 강해지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를 돕는 다크엘프들은 현재 변장을 한 채로 음지에서 활동 중이었다.
-그리고 인간이 한 명은 가야 돼.
자격이 있는 기술자가 만든 물건이지만 우습게도 그 물건은 일회용으로 다른 다크엘프 피가 섞인 이의 손을 타면 바로 작동되어, 어둠 속성 외의 다른 종족 혹은 동물만이 운반 가능했다.
케일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다시 흔들의자에 몸을 기댔다.
“무슨 물건인데요?”
아주 삐딱하다 못해 국왕이 봤으면 오만방자하다고 할 만한 자세였다. 하지만 알베르는 얼굴을 구길 뿐 욕도 하지 못했다.
-하, 내 옆엔 왜 이런 자식만.
“뭐라고요?”
-왜 이런 멋진 자식만 있나 생각했다네.
알베르 왕세자는 제 말이 웃긴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어째 점점 갈수록 케일에겐 다크엘프들과 함께할 때의 자신이 튀어나왔다.
‘약점이 잡혔는데.’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믿을 맏한 이가 케일 헤니투스뿐이었다. 케일은 적어도 두 달이 다 되어가는 기간 동안 비밀을 지켰다.
“그런데 지금 굳이 운신이 힘드시면 다음에 수하를 시켜서 받아오면 되는 일 아닙니까?”
케일은 그리 말하면서도 알베르를 돕는 다크엘프 무리가 있음을 기억해 두었다.
-그러고 싶지.
알베르의 입에서 얕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지금 그는 영상 통신도 왕궁 소속 마법사가 아닌 다크엘프 마법사를 통해 비밀리에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제국에 갈 일이 생겼어.
제국? 로운 왕국의 왕세자가?
케일와 알베르의 시선이 부딪쳤다.
-황태자와 태양신 쌍둥이가 주관하는 축제 개막식에 초대를 받았어.
축제?
‘영웅의 탄생’ 5권까지 등장하지 않았던 사건이었다.
케일이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케일은 알베르의 상황을 단박에 이해했다.
태양신의 쌍둥이.
이란성 쌍둥이로 그들은 각자 태양신의 헌신이라 불리는 성녀와 성자였다.
판타지 세상에서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 성녀와 그 성자였다.
“음.”
케일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거 아는가?
성녀와 성자.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것 같고, 한없이 착할 것만 같은, 희생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그들은 이 ‘영웅의 탄생’에서는 조금 특이했다.
그들은 선하고 악함의 기준이 자신이 대표하는 신의 기준에 의거했다.
-아무래도 태양신 교단은 다크엘프와 상극이니까. 내가 쿼터라도 들킬 확률이 높을 것 같아, 그러면, 음.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겠군요.”
-그렇지.
서대륙에서 지탄하는, 혐오하는 종족인 다크엘프. 그 종족의 피를 이어받은 왕세자. 그는 왕세자 위에서 폐위당할 것이다.
더 나아가 그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한 말이 이해되었다.
-그 쌍둥이들은 나를 죽이려고 들겠지.
케일은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태양신. 태양은 빛의 상징으로서, 어둠의 속성을 싫어했다. 자신이 없는 어둠에서 활개를 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양신은 싫어하는 존재들을 태워 버리는 것을, 죽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 태양신의 특성을 이어받은 쌍둥이는 왕세자 알베르의 정체를 아는 순간, 앞뒤 안 가리고 죽이려고 들 것이다.
그들에겐 그것이 정의였다.
‘감이 안 좋은데.’
다크엘프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뒤통수가 서늘하던 것과 차원이 다른, 온몸에 서늘함이 휘감겼다. 케일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잘 다녀오세요.”
알베르는 여유로이 웃음을 터뜨렸다.
-안 그래도 자네 빼고 다녀올 생각이야.
“그런데 왜 황태자는 갑자기 그런 축제를 열고 오라고 하는 겁니까? 분명 다른 왕국에도 연락을 했을 것 아닙니까?”
-미쳤는가 보지.
알베르가 툭 내뱉는 말에 케일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제 제 앞에서 너무 막말을 하시는 것 아닙니까?”
왕세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나도 이상하게 생각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로 현 황제와 황태자는 종교를 밀어내려고 했는데 말이야.
그렇다.
케일이 감이 안 좋았던 이유는 황태자가 종교를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컨트롤 타워가 되길 원하는 황태자는 연금술을 앞세워 힘을 키웠다. 그런 그가 컨트롤이 되지 않는 종교를 좋아할 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태양신 교단도 현 황제와 황태자가 자신들을 밀어내려 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황태자가 갑자기 태양신이 제국의 주 종교가 된 지 150년 된 날을 축하한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아뇨.”
-더 웃긴 게 뭔 줄 알아?
“뭡니까?”
-연금술 종탑이 생긴 지 500년이 되었다고, 그 해를 축하하는 행사도 함께 한다는군.
허. 케일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태양신 교단은 연금술 행사를 같이해도 된다고 합니까?”
-된다고 하니 대륙 각국에 연락을 했겠지?
케일과 알베르의 시선이 부딪쳤다.
“수상합니다.”
-수상하지.
왕세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왠지 그 행사 때 뭔가 터질 것 같지 않아?
터질 것 같았다.
아니면 알 수 없는 꿍꿍이가 있을 것 같았다.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케일은 발뺌했다.
판타지 세상에서 주로 등장하는 테마 중 종교가 있었다. 케일은 종교에 관심이 없었고, 별생각도 없었다.
‘다만 엮이고 싶지 않고, 귀찮은 건 싫지.’
이리저리 휘둘리는 상황만 생기지 않으면 되었다.
케일의 시선이 영상 통신구 범위 밖으로 향했다.
라온이 왜 쳐다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종교든 뭐든, 휘두르려고 하면.
‘아니, 휘둘리는 상황이 불가능하겠네.’
라온과 최한, 로잘린만 데리고 다니면 휘둘릴 일은 없을 것이다. 정 안 되면 바다 위에서 했듯 다 때려 부수면 되니까. 전보다 담이 조금 더 커진 케일이었다.
-모르긴.
하지만 그런 모른 척이 왕세자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어쨌든 부탁하네. 내가 상응하는 보상은 꼭 내리도록 하지.
케일은 알베르의 진지한 부탁에 곧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알베르 성정상 제국에 2, 3왕자를 보낼 수 없는 상황이라 자신이 가기로 한 것일 터. 케일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왕국민들 마음속 별이신 저하.”
알베르는 그 말에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저러는 걸로 봐서 케일은 거절하려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어진 말에 알베르의 한쪽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어딥니까?”
케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왕세자 옆에 있는 이들 중 음지에서 왕세자를 돕는 수하 외에 그나마 딴짓을 안 할 것이라 생각되는 인간이 자신뿐이었다.
별수 있나.
죽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왕세자 알베르는 작게 웃음을 흘리더니 입을 열었다.
-서부. 대륙의 서부로 가줘야겠어.
그 순간 케일의 머릿속에 떠오른 장소가 있었다.
5대 불가사의 중 하나.
“죽음의 땅에 다크엘프들이 삽니까?”
-자넨, 꽤 영리해.
죽음의 땅.
그곳은 ‘죽음의 협곡’과 이름이 비슷했지만 자연적으로 생긴 다른 불가사의 장소와 조금 달랐다.
죽음의 땅은 역사의 결과였다.
과거 최후의 네크로맨서가 수많은 시체를 이끌고, 최후의 결전을 벌였던 장소. 그곳은 사막이었다.
낮에는 피를 닮은 새빨간 모래로, 밤에는 밤을 닮은 새까만 모래로.
매일 새로운 모래산을 쌓는 곳.
-그곳에 가면 다크엘프 마을이 있어. 도시지. 그 도시의 수장에게서 물건을 받아오면 돼.
“음, 저하.”
사막인 죽음의 땅은 몹시 덥다고 들었다. 다 말라비틀어진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여름이다.
-왜 그러나?
사뭇 다정한 목소리가 알베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가식도 연기도 아닌, 조금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런 그에게 케일은 조심스레 물었다.
“안 가면 안 될까요?”
잠깐 정적이 내려앉았다.
케일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죠. 간다고 했으니.”
-음. 길잡이를 한 명 붙여주겠네. 아무래도 사막이라, 길을 아는 자와 함께 가야 돼.
길잡이. 다크엘프 마을로 가는 길을 아는 이라면 뻔했다.
-내 어머니의 자매분이 계신다. 이모님이지. 현재 다크엘프 중에서 이모님만이 여유가 되어 함께 이동하는 게 가능해.
알베르는 덧붙였다.
-한 분이지만, 현재 내 밑의 다크엘프들을 통솔하는 분이야. 그 실력은 믿어도 되네.
케일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진중한지 알베르는 미안한 마음이 솟아올랐다.
“저하.”
-그래, 케일 공자.
“경비는 저하께 청구하면 되죠? 마법 얼음 좀 많이 사도 될까요? 더운 건 딱 질색인데. 그리고 보상은 또 제가 정해서 합니다? 이번에는 돈으로 할게요.”
여러 물음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알베르는 가만히 케일을 바라보다가 답했다.
-그래. 다 네 맘대로 해라.
케일은 씩 웃으며 답했다.
“아시겠지만. 전 임무 달성율이 120%이고 보상은 그 이상으로 바랍니다.”
-알아. 그러니 내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지.
“네. 걱정 마십시오.”
-그래. 믿지.
케일과 알베르는 몇 가지 더 이야기를 나눈 후, 영상 통신을 종료했다. 영상 통신구에 빛이 사라졌고 그제야 라온과 홍이 케일에게 다가왔다.
“인간, 우리 또 여행 가나?”
“사막은 엄청 더운 곳인데! 쓰러지면 안 되는데!”
홍의 말에 라온이 심각한 표정으로 케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라온에게 영상 통신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영상 통신 다시 연결해.”
“다시?”
“그래. 다른 곳으로.”
“어디?”
검은 용 라온은 제 물음에 미소를 띠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태양신 교단에 강한 교단이 하나 있었다.
상극, 이런 것을 떠나 명백하게 강한 교단이었다.
달? 어둠?
아니다.
영원한 어둠.
인간이 태양을 볼 수 없게 만드는 존재.
죽음.
죽음은 태양보다 강했다.
“스텐 영지에 영상 통신 좀 넣어.”
이 사실은 왕세자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죽음의 신 교단에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믿을 수 없었고, 들킬 상황을 만들면 안 되니까.
하지만 교단도 이제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세상사람 대부분이 모르는, 죽음의 신이 여전히 아끼는 신관을 케일은 알고 있었다. 현재 죽음의 신 교단에는 성자도 성녀도 없었다. 왜 그럴까?
-케일 공자?
“오랜만입니다. 케이지.”
미친 신관 케이지.
“요즘 널널합니까?”
케이지는 케일의 물음에 잠시 그를 응시했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왠지 오늘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라고요. 꿈 내용도 기억이 안 나는데 어찌나 찝찝하던지. 이제 테일러는 제가 없어도 곧 후계자가 될 거예요.
안다. 케일도 소식을 들었다.
스텐 후작가의 장남 테일러. 버려졌던 그는 정식 후계자로 곧 공표될 예정이었다.
-그래서 전 널널합니다.
미친 신관. 그녀는 살짝 미소를 띠며 케일에게 물었다.
-제가 뭘 하면 되죠?
역시 말이 통했다. 케일은 당연하다는 듯 바로 답했다.
“죽음의 땅에 가야 합니다.”
-준비하죠.
죽음의 땅. 그 장소에 간다고 해도 케이지는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친우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우던 그녀다웠다. 죽음의 신이 파문되었음에도 왜 그녀에게 여전히 힘을 나눠주는지 짐작이 갔다. 죽음 이상의 것을, 그녀는 추구했다.
-은혜는 갚아야 하니까요.
케일은 그 말에 미소로 답했다.
“곧 보죠. 케이지.”
미소와 함께 영상 통신은 끝이 났다. 케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간, 그래! 움직여야 건강해진다!”
“…뭔 소리야.”
케일은 별 시답잖은 소리를 하는 라온을 지나쳐 문을 열었다. 복도에서 후식용 과일을 든 채로 다가오는 부집사 한스가 보였다.
“한스.”
“네.”
“늑대들 빼고 다 모이라고 해.”
“론 씨와 주방장도요?”
케일은 죽음의 땅에 다크엘프 마을이 있는지 몰랐다. 네크로맨서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그 땅.
왠지 모를 촉이 왔다. 물론 50%밖에 되지 않는 촉이었다.
하지만 준비는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래. 떠날 것이니, 다 오라고 해.”
이틀 뒤, 한 달 만에 마차를 탄 케일은 헤니투스 영지 밖으로 향했다. 두 대의 마차 바퀴는 수도 쪽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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