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92
라쉴은 이를 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사실 포기가 나쁜 건 아니지.’
이길 수도 없는 상대하고 굳이 왜 싸우겠나?
라쉴은 사서 고생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왜 고룡 에르하벤의 구박을 받고 있나, 그 노인네는 불굴이라는 특성으로도 이길 수 없으니까 그냥 따르는 거다.
그것도 일종의 포기였다.
라쉴은 포기도 도망도 나쁘게 보지 않았다. 살다 보면 그래야만 하는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 후진 용새끼에게는 하나의 낙인을 남기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잔인한 짓이지만.’
특성을 제대로 못 쓰게 만들고 싶었다.
‘뭐, 적이잖아?’
아피토유 세계의 용들이 하는 짓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라쉴은 잘됐다 싶은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느새 무심하게 변한 얼굴로, 저를 보지 못하는 켄달에게 사뭇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지금 마나가 나에게 돌아왔어.”
라쉴도 이제는 마나가 자신의 곁에 돌아온 것을 알았다.
“이제 네 편은 없네?”
그는 속삭였다.
“왜냐면 넌 패배자니까.”
패배.
그 단어에 켄달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길 수 없는 상대와는 애초에 싸우지 않는 비겁한 놈이니까.”
쿵. 쿵.
켄달은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이유 모를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라쉴의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미 너도 알고 있잖아? 네가 진걸.”
내가 알고 있다고?
켄달은 그렇지 않다고, 아니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이긴다고.
그는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마나와 바람의 폭풍 속을 지나쳐,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진동한 땅을 한 발자국씩 내디디며 다가오는 용.
그 용은 피를 뒤집어쓴 모습을 하고서도 그 눈빛이 올곧았다.
질 것이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의 눈동자에는 승리가 담겨 있지 않았다.
오로지 켄달.
그를 목표로 한 채 전진할 뿐이었다.
켄달은 그에게 멱살이 잡힌 순간,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켄달은 그것이 무엇인지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공포다.
그건, 켄달이 지금껏 마주해본 적이 없는 감정이었다.
라쉴의 속삭임이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
“지금껏 네가 한 건 승리가 아니라, 그냥 놀이였어. 놀이. 네가 이길 수 있는 판에서만 해온 놀이. 그런 건 경기가 아니야.”
켄달은 투쟁의 신 드래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난 너와 싸울 생각이 없어. 왜냐면 넌 투쟁이 뭔지도 모르니까.’
왜 그 말이 지금 생각나는 것일까.
“승리라. 너는 정말 승리자일까?”
라쉴은 마지막 말을 건넸다.
“너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지?”
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라쉴은 자신의 물음에 대한 답을 켄달에게서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지만, 입가에 한가득 미소를 지었다.
켄달의 눈동자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로써 이놈은 앞으로 특성을 사용할 때마다 의문을 가지겠군.’
승리.
켄달은 앞으로 그 특성에 망설임과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
멍하니 있는 켄달을 향해 라쉴은 망설임 없이 마지막 행동을 했다.
툭.
켄달은 기절했다.
라쉴은 기절한 켄달의 몸에서 내려와 제 몸을 내려다봤다. 그때, 아치가 곁으로 다가왔다.
“잔인하네. 넋이 완전히 나간 것 같던데?”
아치가 툭 내뱉은 말에 라쉴이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그럼 적에게 너그럽게 구냐?”
아치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 꼴이 왠지 짜증 나 고개를 돌린 라쉴은 기절한 켄달을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저 드래곤.
그래도 나이가 어느 정도 있어 보이는데. 어째서 승리만 해보고 살았지?
그럴 수가 있나?
아니면 누군가, 그렇게 만든 건가?
하지만 라쉴은 이내 관심을 껐다.
켄달의 마음에 비수를 꽂은 라쉴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이겨낸다면 더 단단해질 것이고, 여기서 무너지면 무너지는 거지.”
라쉴을 비롯해, 그의 일행들까지 모두 장난감처럼 여기고 죽이려고 한 놈에게 더 이상의 관심은 시간 낭비였다.
아치가 눈을 끔벅이며 라쉴에게 물었다.
“뭐를 이겨내는데?”
“야, 고래! 너 아예 나한테 말 까기로 했냐?”
“크흠.”
모른 척 고개 돌리는 아치를 보며 혀를 찬 라쉴은 걸음을 옮겼다.
아치가 뒤에서 외쳤다.
“아니, 이 드래곤 안 챙겨?”
“네가 챙겨!”
라쉴은 아치에게 기절한 켄달을 떠넘기고 산 아래로 향했다.
그의 몸에서 여전히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부상을 입은 몸도 그대로였지만 라쉴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멈칫했다.
파아앗-!
텔레포트 마법이 펼쳐졌다.
환한 빛과 함께 누군가 이곳으로 텔레포트 해온다는 것을 알리고 있을 때.
저벅저벅.
“너, 도망 안 갔네?”
클로페 세카가 온화한 미소를 띤 채 정상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환한 빛이 사그라들며 누군가의 모습이 드러난 순간.
라쉴은 어깨를 으쓱이며 우쭐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아, 안 와도 되는데. 내가 해결했는데.”
그의 눈동자에 케일과 라온이 담겼다.
곧 라쉴의 눈이 커졌다.
“라, 라쉴아!”
그리고 당황했다.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나! 왜 이렇게 쥐어터졌나? 너는 패면 팼지, 맞고 다닐 용은 아닌데!”
라온이 울먹거리는 얼굴로 라쉴에게 맹렬하게 다가왔다.
“라쉴아! 다치면 안 된다! 아프면 안 된다!”
걱정이 되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라온의 얼굴을 본 라쉴은 당황했다.
그는 7살 어린 용의 말을 어떻게 받아쳐야 하는지, 처음 겪어봐서 하나도 몰랐다.
라쉴은 어버버하다가 케일을 향해 일단 말했다.
“아. 나 용 안 죽였다. 기절시켰다. 잘했지?”
하아.
당연히 칭찬을 할 줄 알았던 케일이 한숨을 내쉬었다.
“엉?”
그는 케일이 왜 저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라온이 냅다 외쳤다.
“라쉴아, 사과파이, 아니, 이건 우리 인간 거고! 너는 호두파이 먹어라!”
어정쩡하게 서 있는 라쉴의 입으로 호두파이가 들어갔다.
호두파이를 우물거리며 라쉴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곧장 입 밖으로 내뱉었다.
“윽. 피 맛밖에 안 나네.”
하도 피를 토해냈더니, 입안에 온통 피가 가득해 호두파이를 먹어도 호두 맛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툭.
라온의 앞발에 들려 있던 호두파이가 땅으로 떨어졌다.
“!”
그 모습에 라쉴의 동공이 흔들렸다.
‘왜, 왜 저래?’
라온이 왜 저러나 싶었다. 동시에 라쉴은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공포도 아니고 불안감도 아니고.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찝찝하고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아까 그 용 새끼 죽이지 않고 기절만 시켜서 그런가?’
그게 뒤늦게 찝찝하게 느껴지는 건가?
라쉴은 제 마음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다가 이내 라온의 외침을 들었다.
“라쉴아! 죽지 마라! 네가 싸가지가 없어도, 착한 거 다 안다!”
라쉴의 표정이 뚱해졌다.
“뭐라는 거야, 이 꼬맹이가! 내가 왜 죽어! 나 안 죽어! 그리고 내가 왜 착해? 나 안 착해!”
기절한 켄달을 질질 끌고 오던 아치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싸가지 없다는 말보다, 착하다는 말에 짜증 내는 건가? 진짜 희한한 용이네.”
물론 아치의 중얼거림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라쉴이 버럭 내지른 소리를 모두 들은 라온은 멈칫했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라쉴의 모습을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안 죽으면 됐다!”
그러고는 눈 위에 떨어졌던 호두파이를 주워 라쉴의 손에 쥐여주었다.
“많이 먹어라! 그래야 빨리 낫는다!”
라쉴은 이 꼬맹이가 왜 이러나 싶으면서도 일단 호두파이를 먹었다.
“…맛있네.”
“히히.”
라온이 해맑게 웃어 보였다. 그에 라쉴은 또 짜증이 솟구쳐서 저도 모르게 외쳤다.
“웃지 마, 꼬맹이! 그리고 나 안 착해!”
“히히.”
라온은 라쉴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라쉴은 그 모습이 빤히 보였지만 말이 통하지 않겠단 생각에 고개를 돌렸다.
그래, 7살짜리한테 무슨 말을 하겠나.
“야. 나 안 착하다.”
대신 케일에게 진지하게 경고하듯이 말해두는 라쉴이었다.
그런 그에게 케일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말해줬다.
“네, 네. 하지만 가볍게 적의 용을 이렇게 잡으실 만큼 대단하시죠. 역시 라쉴 님이 계셔서 안심입니다.”
“크흠. 큼!”
라쉴은 괜히 헛기침을 했다.
“흥.”
그러더니 콧방귀를 뀌고는 툭 내뱉었다.
“나 먼저 집에 간다.”
그리 말하고는 휘청였다.
“크윽!”
라쉴은 순간적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몸을 인지하며 얼굴을 구겼다.
‘제길!’
큰 상처를 입은 오른 다리가 순간 마비가 와서 제대로 땅을 디디지 못했다.
사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직까지 호두파이의 맛을 느끼지 못했다. 그 정도로 그의 몸은 지쳤으며 부상의 정도가 꽤 심했다.
‘빌어먹을! 그래서 빨리 돌아가려고 했는데!’
자신의 이 꼴을 저 어린 용과 케일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쪽팔리니까!’
창피했다.
라쉴은 다시 다리에 힘을 주어 어떻게든 옆으로 넘어지는 모습만큼은 보이지 않으려고 다짐했다.
툭.
하지만 그의 몸은 제 옆으로 다가온 누군가의 손길에 부딪히며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클로페 세카가 온화한 미소를 띤 채 라쉴을 바라보았다.
라쉴의 얼굴은 대번에 떨떠름하게 변했다.
왠지 모르게 이 눈앞의 미친놈은 껄끄러웠다.
‘제대로 미친놈이라서 그런가.’
라쉴은 대충 클로페의 손길을 쳐내면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에이. 밑에 돌멩이가 왜 있냐고!”
하얗고 평평한 눈밭에 발자국을 남긴 라쉴의 말에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난, 간다.”
우우웅.
옅은 드래곤 피어와 함께 텔레포트 마법진이 라쉴의 곁에 펼쳐졌다.
“잠시만요.”
케일의 목소리에 라쉴은 움찔했다. 그는 아까부터 케일에게 등 돌린 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볼썽사나운 제 모습을 보인 게 창피했으니까.
“아치. 같이 가.”
“뭐, 그러죠.”
라쉴은 텔레포트 마법진에 올라서는 범고래 수인 아치를 보며 얼굴을 팍 일그러뜨렸다. 왜 네가 여기에 올라타냐는 눈빛으로 쳐다본 아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케일에게 말했다.
“이 용은 쉐리트 님께 맡길까요?”
“어. 돌아가면 바로 깨워서 얘기 나눌 거라고 쉐리트 님께 전달 부탁하지.”
“네.”
태연하게 답한 아치는 라쉴을 쳐다봤다.
“안 가?”
라쉴의 얼굴이 더 구겨졌다.
하지만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싸가지 없는 고래놈과 대화를 나눌 힘도 없다.
싸움이 끝나자 점점 더 많은 피로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쓰읍.’
그는 입안이 썼다.
‘이거, 꽤 어려운데?’
느낌상 그가 오늘 뚜드려 팬 용은 적군의 용들 중 약한 쪽에 속할 것 같았다.
그럼 앞으로 만날 용들은 이보다 더 강하다는 건데.
‘쉽지 않겠어.’
오늘 적 용과의 싸움은 ‘승리’와 ‘불굴’. 두 가지 특성 중 어느 쪽이 더 단단하냐의 문제였다.
더불어 저 용이 미숙하기도 했고.
하지만 제대로 성장한 용에 더하여 상성이 상관없는 특성을 지녔고, 더불어 그 ‘성수’라는 걸 섭취한 상태의 적이라면.
‘하.’
라쉴은 마음이 갑갑해져 왔다.
생각보다 아피토유,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이기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쉴은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텔레포트 마법진은 빠르게 발동시켰다.
돌아가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파아앗-
마법진이 발동하는 순간, 라쉴은 움찔했다.
등 뒤로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멋지십니다. 그래도 몸은 챙기세요.”
평소의 무심한 목소리에 라쉴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옆에 잔뜩 어색해하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좀 멋진 듯?”
고개를 돌리니 아치가 라쉴의 시선을 피했다.
라쉴은 한 번 더 피식 웃더니 툭 내뱉었다.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바로 불굴의 용이 자신이 아니던가.
라쉴은 단언했다.
“앞으로도 난 계속 멋질 거다.”
아치의 얼굴이 구겨졌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텔레포트 마법은 발동했다.
파앗!
아치와 라쉴, 그리고 켄달까지 모두 사라졌다.
케일은 텅 빈 자리를 보다가 클로페에게 말했다.
“수인족들은?”
“아래에 있습니다.”
“위티라 씨는 봤나?”
“글쎄요. 제가 여기 올 때까지만 해도 못 봤습니다.”
케일은 클로페와 대화를 주고받다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클로페를 바라봤다.
그가 차분한 얼굴로 케일을 보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니야.”
이상한데?
케일은 자신이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명백하게 깨달았다.
‘클로페 세카가 왜 내 칭찬을 안 하지?’
시도 때도 없이 칭찬 혹은 찬양을 하던 놈이 조용하다.
더불어 어떻게든 함께하고 싶어 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놈이 지금은 차분했다.
‘뭐지?’
왠지 모를 상당한 찝찝함이 밀려왔다.
‘이놈 이러다 사고 칠 거 같은데?’
케일이 그리 생각한 순간이었다.
“후후.”
클로페가 나직이 웃어 보였다.
-인간아, 클로페가 이상하게 웃는다!
라온이 차마 클로페 면전에서 말할 순 없어서, 오랜만에 마법을 사용해 케일의 머릿속으로 제 뜻을 전했다.
그리고 케일은-
‘아, 다행이다.’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그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그때, 클로페가 조곤조곤 속삭이듯이 말했다.
“제가 드디어 길을 찾았습니다.”
“어?”
“후후.”
케일이 뭔 소리를 하냐는 듯 바라보았음에도 클로페는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리며 걸음을 옮겼다.
한마디를 남기고서.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잘 보이는 법이지요. 하지만 환한 빛에 숨어든 빛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법.”
클로페는 케일의 그림자가 최한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숨어든 빛이-
‘나야.’
자신 말고는 그 자리에 어울리는 자는 없으니까.
클로페는 수인족들이 숨어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인간아, 클로페가 뭐라고 하는 거냐?”
“몰라.”
케일과 라온은 그냥 이해를 포기하고 클로페의 뒤를 따랐다. 다만 케일은 평소대로 돌아온 클로페의 모습에 안도했다.
그리고 수인족, 라크에게로 향하며 생각했다.
‘라쉴이 그 상태가 될 정도면, 조금 더 경계심을 높여야겠어.’
하르 왕국 측에서 전해준 10신 드래곤에 대한 자료에서 켄달은 말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를 한 명 상대하는 데에 라쉴이 이 정도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면, 다른 용들을 상대하는 것은 더 힘겨운 과정일 터.
‘뭔가 방도를 떠올려야 돼.’
하지만 케일의 표정은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드래곤 로드가 없는 틈을 이용한다.’
보라 피 가문. 그 수장인 드래곤 로드가 없는 틈을 타, 적들에게 치명타를 주면 된다.
케일은 생각을 정리하며 이내 수인족이 숨어있는 곳에 도달했다.
“공자님!”
“라쉴 님을 도우러 온 겁니까?”
라크와 가샨이 그를 반겼다.
그리고 위티라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굳이 제가 끼어들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여기 있었어요.”
클로페가 산 정상으로 떠난 후, 위티라가 이들을 발견하고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
하지만 케일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는 수인족이 숨어있던 작은 동굴 안쪽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시선을 돌렸다.
“설마……?”
그 시선을 받은 이는 늑대족 사냥꾼 코우칸이었다.
코우칸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대번에 허리를 숙이며 사죄의 외침을 내뱉었다.
케일이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사이, 라크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라쉴 님은요?”
“이겼어.”
코우칸이 움찔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 켄달을-”
그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할 때 케일이 태연하게 말했다.
“켄달을 잡았고, 성으로 보냈습니다. 감옥에 갇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