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95
“자격은 얼어 죽을. 그딴 게 어딨다고.”
그러다 유독 저를 빤히 바라보는 기사단장 제뉴와 시선이 부딪쳤다.
제뉴는 얼른 시선을 피했다.
‘뭐지?’
그는 이상한 감정을 다시 느꼈다.
케일 헤니투스. 저자의 모습에 격렬한 마음의 일렁임을 자각했다.
케일은 혼자서 고개를 저어대는 제뉴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성수가 무엇이지?”
그는 켄달을 다시 보며 물었다.
그 순간이었다.
끼이익- 쾅!
문이 세게 열렸다.
그리고 통통한 검은 용이 위풍당당하게 등장했다.
냐아아옹.
냐아옹.
그 뒤에 온과 홍.
그리고.
스스스-
홍의 등 위에 올라탄 아기 백사까지 데리고서.
“인간아!”
그리고 케일에게 외쳤다.
“금 용 할배가 도도리 엄마한테 연락했다! 곧 2차 토벌대가 여기에 도착한다고 한다!”
2차 토벌대.
켄달의 뒤를 이어 오는 신성 제국 병력으로, 제1기사단과 이단심문관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단심문관이 엘프로 추정된댔지?’
케일은 마을 밖, 적들을 맞이하기 위해 이미 이동해있는 이들을 떠올렸다.
로잘린과 마법사들.
그리고 타샤를 중심으로 한 다크엘프와 엘프들.
“나도 가야겠네.”
지배하는 아우라를 펼치면, 아군들이 더 수월하게 싸울 터. 이는 클로페로 확인한 부분이었다.
케일은 조금 전 하얀 오러를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클로페를 바라봤다가 눈이 마주쳤다.
‘!’
케일이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클로페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도 가야겠네요.”
“…뭐, 그렇지?”
원래 클로페와 최한을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검은 성이야, 수이 칸과 최정수 등등 지킬 이가 많았으니까.
싱긋.
클로페가 순수한 기쁨을 표현하는 듯한 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케일은 이상하게 불안했다.
“하아, 하아.”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가쁜 숨을 몰아쉬던 켄달은 조금 안정이 되자 머릿속이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흥. 쉽지 않을 거다!’
그는 저들이 드래곤을 빼고 움직인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속으로 비웃음을 삼켰다.
지금 오는 이들이 조잡한 용 혼혈들이 포함된 토벌대 수준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단 심문관들은 다르다고!’
이단심문관, 엘프. 그 녀석들은 변절한 만큼 아주 강했다.
그리고 그 녀석들은 어떻게든 켄달에게 닿으려고 할 터.
광기 어린 숭배와 믿음. 그것만으로도 이단심문관은 이놈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것이다.
그 광기는 때때로 켄달마저 외면하게 만들 정도로 집착에 가까웠으며, 목숨을 내놓은 듯 보였으니까.
‘쉽지 않을 거다!’
켄달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차마 케일을 보지 못했다.
그는 아직까지 자신의 몸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그런 켄달을 케일, 그리고 제뉴가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그는 알아챌 수 없었다.
겁에 질린 자의 시야는 좁은 법이었으니까.
***
고룡 에르하벤은 기가 차다는 듯 감탄 어린 웃음을 흘렸다.
“하. 수도 지하에 이런 거대한 동굴이 있을 줄은 몰랐군.”
하르 왕국 수도 북부.
에르하벤은 외무대신 베일리와 함께 왕궁을 벗어나 수도 북쪽 성벽 아래 은밀히 감춰져 있던 작은 입구를 발견했다.
이를 통해 지하로 내려간 그의 앞에 왕궁의 몇 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동굴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동굴의 가장 어둠이 내려앉은 곳.
“누구십니까?”
선명한 녹색이 어둠 속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에르하벤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
“어마어마하군.”
성룡이 되면 30m에 달하는 거대한 몸을 지니게 되는 드래곤이었고, 에르하벤도 본체화하면 그 덩치가 그만큼 상당했다.
그럼에도 지금 그는 탄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끝이 안 보이네.”
어둠 속에서도 보였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구렁이가 똬리를 튼 채, 가만히 에르하벤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
정말로 고룡은 기가 찼다.
그는 살면서 이렇게까지 거대한 뱀 수인은, 아니, 드래곤까지 포함해서 이렇게 큰 수인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감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에르하벤이라고 한다.”
그는 눈앞의 백사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잠시 말을 멈췄던 에르하벤은 한마디를 던져보았다.
“보라 피 가문을 멸하기 위해 이 세계에 왔다.”
스스-
순간 지하의 공기가 달라졌다.
어딘가 답답하고 눅진하던 공기가 일순 날카롭게 변했다. 외무대신 베일리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러트렸다.
백사와 에르하벤.
두 존재 사이에서 그녀는 나서지 않고 가만히 모른 척 있는 것이 답임을 알아챘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이전과 같이 평온했다.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닙니까?”
“그래.”
백사의 물음에 에르하벤이 답했고, 백사는 다시 물었다.
“사냥꾼들을 잡으러 온 겁니까?”
“그래. 뭐-”
에르하벤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짜증 나는 용 새끼들 좀 패려고 온 거기도 하지.”
피식.
어둠 속에서 백사의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이내 평온하게 물음을 던졌다.
“이곳이 아닌 세계에서 온 용이시여. 막시리언을 아십니까?”
그리고 에르하벤은 답했다.
“반지, 왕관, 검. 모두 들고 왔다.”
막시리언.
중원에 갔을 때 사천성주의 서재 비밀 공간에서 발견한 용의 흔적.
그 용이 막시리언이었고, 그녀가 남겨둔 물건들이 반지, 왕관, 검이었다.
스스스-
백사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들고 왔습니까?”
백사가 다시 또 다른 물음을 던졌고, 에르하벤은 답했다.
“자격이 있는 자들이 그 물건을 가졌다.”
에르하벤의 동공에 어둠 속에서 머리를 내민 하얀 뱀이 담겼다.
뱀의 머리가 에르하벤의 키보다 더 컸다.
그 정도로 거대한 몸집의 뱀이 에르하벤 쪽으로 다가오며 고개를 숙였다.
“당신이 반지의 주인입니까?”
“내가 일단 가지고 있기는 하지.”
물론 에르하벤의 것이 아니었다.
라온에게 주지 않고 일단 보관 중이었다.
“그럼 당신이 희망입니까?”
백사는 지금 말하고 있었다.
반지의 주인이 희망이라고.
그리고 그 존재가 당신이냐고.
그에 에르하벤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헛소리는 그만하도록.”
지켜보던 베일리의 눈이 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르하벤은 백사의 녹안을 빤히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너도 드래곤 피어를 가졌군.”
“!”
그 말에 베일리는 아주 놀라며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린 채 소리 없는 경악을 토해냈다.
에르하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지. 너는 뱀 수인이니, 드래곤 피어는 아니군.”
스윽.
에르하벤이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같잖은 기세 싸움은 하지 말자고.”
그제야 베일리는 동굴 전체에 가득하던 날카로운 기운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더불어 그것이 백사의 피어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백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헛소리라.”
“그래. 헛소리지.”
에르하벤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왜 우리가 ‘네 세계의 희망’이지? 우리는 그 ‘희망’을 위해 싸울 책임도 의무도 없다.”
안 그래도 에르하벤은 막시리언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했다.
특히 그 빌어먹을 용이 라온을 희망이니 뭐니 하며 아피토유를 구할 대상으로 가리켰다는 소리에 짜증이 치솟았다.
‘얼마나 나이를 허투루 처먹었으면!’
이제 6살, 아니, 새해가 되어서 7살이 된 어린 용한테 그런 막중한 임무를 맡긴단 말인가!
‘미래’를 볼 줄 아는 특성을 지녔다면, 거기다가 케일의 존재까지 알았다면, 분명 라온이 어린 것도 알았을 것인데!
‘못난 것들,’
나이가 부끄럽지 않나?
1,009살. 아니, 이제 1,010살이 된 고룡 에르하벤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케일도 없는 판에, 에르하벤의 태도는 점점 삐딱해져 갔다. 원래 성격이 조금씩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회춘해서 그런가?’
에르하벤은 부쩍 감정에 솔직해지고, 들쭉날쭉하는 자신의 모습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젊은 날의 언젠가처럼.
고룡은 일부러 이런 자신을 막지 않았다. 이 역시 순리라 생각했기에.
그리고 들쭉날쭉하던 감정도 금방 가라앉았다.
그가 살아온 세월이, 연륜이 그에게 이해심을 선사해 주었으니까.
‘물론 방법이 그것뿐이었을 수도 있고.’
어린 용에게 기대야 한다는, 그렇게라도 희망을 찾고자 한 이들의 절박한 마음은 이해한다.
더불어 최정건과 사냥꾼 등등 여러 이해관계에 얽힌 아피토유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보자마자 대뜸 ‘희망’을 언급하는 백사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은 에르하벤이었다. 그의 미간이 더 찌푸려졌다.
“막시리언을 언급한 것을 보니, 내 예상이 맞았던 것 같군.”
그는 백사에게 대뜸 말했다.
“고개 좀 치워봐라. 아니, 그 거대한 몸 좀 치워봐.”
그는 백사 너머 더 깊은 어둠 속을 응시했다.
“야.”
에르하벤은 툭 내뱉었다.
“너. 그래, 너.”
그는 케일에게 들었다.
아피토유. 이곳에 오면 찾아야 하는 용이 있다고.
아군으로 예상되는 존재라고.
그 용의 특성이 우리 쪽에 도움이 될 확률이 높다고.
그리고 에르하벤은 백사가 막시리언을 언급하는 순간 눈치챘다.
더불어 갑자기 백사가 은은하게 드래곤 피어와 유사한 힘을 주변에 흩뿌린 이유도.
“네가 그 ‘과거’를 보는 용이냐?”
백사가 숨기려고 했던 존재.
어둠 속. 검은색도, 그렇다고 남색도 아닌 오묘한 색깔의 머리칼을 지닌 중년인이 서 있었다.
저벅저벅.
그 사람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세상에.’
베일리는 정말로 누가 그곳에 있었단 사실에 놀랐다.
전혀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
그리고 한 번 더 놀랐다.
남루한 차림새의 중년인은 수염과 머리칼이 상당히 덥수룩했다.
‘눈이-’
그리고 한쪽 눈을 감고 있었다.
또 감지 않은 눈은 안대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
“…….”
에르하벤도 중년인도.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그 정적을 먼저 깬 이는 중년인이었다.
“과거를 보았다.”
에르하벤의 눈썹이 살짝 들렸다.
“잠깐.”
그는 손을 들어 중년인의 입을 막았다.
모두의 시선이 에르하벤에게로 향했다. 그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으니까.
오로지 중년인만이 고요했다.
그리고 마침내 에르하벤의 입이 열렸다.
“너 몇 살이냐?”
베일리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 순간 에르하벤이 덧붙였다.
“참고로 나 천 살 넘었다.”
“…….”
침묵하던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제가 과거를 보았습니다.”
“그렇지, 그렇지.”
에르하벤은 그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 얼른 더 말하라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베일리의 입이 벌어지며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지만, 백사도, 고룡도, 중년인도 신경 쓰지 않았다.
중년인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250여 년 전.”
아피토유에 격변이 찾아온 것은 200여 년 전이었다.
250년이면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의 이야기였다.
에르하벤의 눈동자에 이채가 담긴 순간.
“그때의 어느 순간을 보았습니다.”
조용한 동굴 공간 속에 중년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현재의 드래곤 로드를 찾아온 두 존재가 있었습니다.”
듣고 있던 외무대신 베일리는 모든 사건의 내막을, 그 한 조각을 알아내는 순간임을 깨달았다.
“그들이 드래곤이 세계를 장악하고 지배하는 법에 대해서 조언을 했습니다.”
중년인이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멈췄을 때, 에르하벤이 물었다.
“그 두 존재가 누구지?”
“한 명은 방랑자입니다.”
방랑자.
최한과 같은 단생자가 죽은 후 신이 되거나 혹은 신의 후보로 일하지 않을 때, 그들은 방랑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케일 일행은 방랑자 중 일부가 사냥꾼임을 알아챘다.
“그 방랑자는 오색 피 가문인가 보군.”
에르하벤의 덤덤한 말에 중년인이 처음으로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계시네요.”
“이쯤이야.”
별것 아니라는 듯 답한 에르하벤은 중년인에게 어서 말하라는 듯 채근했다.
“다른 한 명은 누구지?”
“…….”
그때였다.
‘!’
에르하벤의 눈이 커졌다.
“너-”
주륵.
중년인의 입을 타고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중년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품에서 꺼낸 수건으로 입가를 닦아내었다.
그리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전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지요. 하지만 이 눈은 현재는 보이지 않았지만, 지나간 것들은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특성을 발현하는 순간 생각했습니다. 보아선 안 될 것을 보기 때문에 눈을 빼앗아 가셨구나.”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듯 에르하벤의 미간이 찌푸려질 때, 중년인은 이어 말했다.
“그리고 말해선 안 될 것을 말하려고 할 때면, 가끔씩 이렇게 됩니다. 제 입에 담긴 진실이 무거울 때 특히 이렇지요.”
“…….”
에르하벤은 열었던 입을 다물었다.
어느 정도의 진실이기에, 저 용이 본 과거가 무엇이길래.
자그마치 용의 입에서 피가 흐르는 것일까.
‘으음.’
에르하벤은 왠지 예감이 좋지 못했다.
용도 감당하지 못할 진실.
그것은-
결국 에르하벤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신인가?”
중년인의 입가에 미소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전 모든 과거를 볼 수 없습니다. 허락된 단편만 보지요. 때문에 드래곤 로드가 이 세계를 지배하는 방법에 대해선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을 알려준 두 명만큼은 제대로 어떤 존재인지 인지할 수 있었지요.”
마치 본능처럼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반드시, 필히 알아야 하는 정보 혹은 진리인 것마냥.
“고룡이시여.”
중년인은 피를 흘리며 말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떴다.
베일리는 흠칫 몸을 떨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깊디깊은 어둠만이 존재했다.
에르하벤은 그 어둠을 마주했다.
어둠을 품은 용이 말했다.
“전쟁. 전쟁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중년인은 몸을 휘청였다.
백사가 꼬리를 움직여 중년인의 몸이 넘어지지 않게 붙잡았다.
에르하벤은 그 모습을 굳은 얼굴로 바라봤다.
전쟁.
분명 전쟁의 신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전쟁의 신이 오색 피 사냥꾼인 방랑자와 함께 드래곤 로드를 찾아와서 이 세계를 지배할 방법을 알려주었다고?’
전쟁의 신이 사냥꾼들 편인가?
에르하벤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려는 순간.
‘전쟁의 신은-’
우리와 연관이 있다.
우선 케일이 지닌 고대의 힘 ‘하늘을 잡아먹는 물’을 이전에 심판하는 물이라고 그 존재를 정해버린 이가 전쟁의 신이었다.
에르하벤의 표정은 한없이 차갑게 변했다.
전쟁의 신.
그 신을 모시는 자를 에르하벤은 가장 최근에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엔더블!’
‘암’과 하얀 별. 그들을 상대할 당시 하얀 별이 왕으로 있던 곳인 엔더블에서 전쟁의 신을 모시는 자를 만나 그 덕에 위험에서 몸을 숨길 수가 있었다.
“…코튼 부제사장.”
그녀의 이름을 떠올린 에르하벤은 연달아 다른 정보도 떠올렸다.
‘하얀 별의 궁전터. 그 지하 깊은 곳에서 이상한 장소를 발견했다. 아무래도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흔적이 남은 장소 같은데. 죽음의 신 교단을 통해서 차원을 넘어본 경험이 없었다면, 나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야.’
‘그리고 그 흔적에 신의 기운이 남아있어.’
그가 케일에게 했던 말이었다.
중원에 가지 않고, 로운에 남아있을 때 에르하벤은 엔더블에서 신의 기운이 남아있는 차원 이동 흔적을 본 적이 있었다.
이를 예사로 생각했었는데-
‘만약 코튼 부제사장이 아군이 아니라, 모든 일의 배후 중 한 명이었다면?’
그래서 하얀 별의 곁에서 전쟁의 신 신도라는 정체를 숨긴 채 부제사장으로 머물렀던 것이라면?
사냥꾼들이 하얀 별을 하나의 제물 혹은 수단으로서 대했던 것처럼.
전쟁의 신의 뜻을 따르는 그녀가 그 모든 과정을 몰래 지켜보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것이라면?
“하!”
에르하벤은 저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다.
“기가 막히는군.”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았다.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