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기립박수와 환호성 그리고….
과거의 스티븐 에필버그는 심사위원으로서 각종 영화제에 종종 참가했었다.
그는 언제나 공정했고, 날카로웠으며, 무엇보다 감독으로서의 명성이 있었다.
스티븐 에필버그는 영화제에서 그의 뛰어난 안목으로, 하마터면 묻힐 뻔한 많은 명작을 발굴해 내었다.
그렇게 스티븐 에필버그 덕분에 빛을 보게 된 감독 중에는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로빈 스미스도 있었다.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보았던 모양이야. 그 애송이가 어느새 커서, 이렇게 내 안목을 욕하고 있으니 말이지.”
명백한 비꼬임에 로빈 감독이 황망하게 말했다.
“서, 선배님. 오해십니다…! 저는 그저….”
“아니면 설마, 이분의 영화를 보지도 않고 그렇게 심한 평가를 내린 것은 아니겠지?”
“…….”
그 설마가 맞았다. 로빈 감독은 중간에 사고가 생겨 불참하게 된 심사위원의 대타로 온 것이기에, 저 동양인의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쯧쯧. 이게 다 내 탓이야. 그때의 나는 실력만 볼 줄 알았지, 인성을 볼 줄 몰랐으니까.”
“선배님….”
아무리 안하무인에 다혈질인 인간이더라도,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 준 은인의 앞에서까지 제 성격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선배님, 못 볼 꼴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결국, 로빈 감독이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지 않나?”
“아….”
“참고로 동양에서는 미안함을 표현할 때, 고개를 숙인다고 하더군.”
그 말에 로빈 감독이 곧장 최지훈 감독을 향해 고개를 숙이었다.
“미안합니다. 제 성격이 워낙 지랄맞아서 그랬습니다. 한 번만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죠.”
“…….”
비록, 국어책을 읽는 듯한 형식적인 말투였지만. 그럼에도 그가 곧장 사과할 줄은 몰랐던 윤현민은, 조금 당황했다.
‘스티븐 감독님을 이용하면 상황이 손쉽게 해결될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이건 생각보다 더 효과가 뛰어나잖아?’
윤현민은 설마, 스티븐 감독이 로빈 감독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잘된 일이지.’
그런데 잘 해결되는 줄 알았던 상황에 약간의 문제가 생기었다.
“…….”
로빈 감독이 고개까지 숙였음에도 최지훈 감독은 도무지 사과를 받아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지? 여기선 내가 나설 수 없는데.’
로빈 감독의 사과를 받을지 말지는 전적으로 최지훈 감독이 결정할 문제였으므로, 내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아니요.”
마침내 최지훈 감독이 로빈 감독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사과는 받지 않겠습니다.”
‘…뭐?’
그 말에 로빈 감독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사과를 안 받아?’
그는 당장이라도 고개를 짓쳐 들고 저 건방진 동양인에게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하지만 스티븐 에필버그 감독의 앞에서 경거망동할 수는 없었기에, 그는 속으로 화를 삭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로빈 감독의 삐딱한 마음을 최지훈 감독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당신, 지금 진심이 아니잖아요.”
“…….”
“그런 형식적인 사과는 받고 싶지 않습니다.”
최지훈 감독은 로빈 감독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제가 커피 몇 방울을 튀긴 일은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 일 때문에 제 영화를 음식물 쓰레기라고 깎아내리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제 영화를 제대로 감상한 뒤, 진심을 담아 사과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로빈 감독은 슬쩍 스티븐 감독님의 눈치를 살피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누가 보아도 하기 싫다는 표정에 윤현민이 인상을 찌푸리려던 순간, 최지훈 감독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만약, 영화를 감상하고 나서도 여전히 음식물 쓰레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는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발언은 자신의 영화에 대한 최지훈 감독의 믿음이자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로빈 감독에겐 그저 멍청한 동양인의 객기일 뿐이었다.
‘바보 같긴. 그렇게 말하면, 만에 하나 영화가 재밌더라도 내가 굳이 사과할 것 같아?’
그러한 로빈 감독의 생각을 알아챘던 것일까. 스티븐 감독이 한 마디를 더 보태었다.
“로빈, 설마 귀가 먹은 것이 아니라면. 잘 알아들었으리라 믿겠어. 영화를 제대로 보고, 판단하여 평가해. 그러고 나서 정말 사과할 마음이 든다면, 최 감독님을 찾아가도록 하고.”
“…예, 선배님.”
다른 사람은 몰라도 스티븐 감독의 말만큼은 거스를 수가 없었던 로빈 감독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나와 최지훈 감독을 잠시 쏘아보았다.
‘흥! 그래봤자 뻔한 영화나 찍었겠지.’
어떻게 거장 스티븐 감독님의 마음에 들었는지는 몰라도, 요행이었을 것이 뻔하다고 로빈 감독은 생각했다.
‘아까 스티븐 감독님이 저 자식의 영화를 보기 위해 루비스피어 영화제에 방문했다고 했었지.’
그렇다는 얘기는 스티븐 감독님도 아직 저 애송이의 새 영화를 보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그래, 스티븐 감독님은 저 녀석이 찍은 영화 중에 어쩌다 제일 잘 만든 한 편을 보고 이런 반응을 보이시는 걸 거야.’
하지만 그것이 놈의 밑천 전부라는 것이 곧 드러날 것이라고 로빈 감독은 생각했다.
‘정확한 평가를 해달라고? 좋아. 아주 신랄하게 말해주지.’
지금 로빈 감독이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아까 팔뚝에 몇 방울 튄 커피 때문이 아니었다.
‘하필, 스티븐 감독님 앞에서 망신을 줘?’
그의 은인이자, 우상인 스티븐 에필버그에게 실망감을 안겨드렸다는 것에. 로빈 감독은 참을 수 없는 굴욕을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이 또 있었다.
‘저 동양인의 영화를 보기 위해, 일정까지 제쳐두고 이곳에 오셨다고?’
지금 영화 촬영으로 매우 바쁜 스티븐 감독님이, 저 애송이의 영화를 보기 위해 이 먼 독일까지 찾아왔다는 사실을 로빈 감독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로빈 감독은 다시 한번 최지훈 감독을 쏘아봐 준 뒤, 스티븐 감독에게 인사를 하였다.
“선배님, 저는 이만 심사 준비를 해야 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로빈 감독이 떠나고, 그때까지도 모여있던 구경꾼들이 하나둘 해산하기 시작했을 때. 스티븐 감독이 윤현민에게 다가왔다.
“오자마자 이게 무슨 난리인지. 덕분에 인사가 늦었네요.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미스터 윤.”
“저도요, 스티븐 감독님.”
윤현민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스티븐 감독은 고개를 살짝 틀어 최지훈 감독에게도 인사를 건네었다.
“정말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최지훈 감독님.”
그 말에 최지훈 감독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여, 영광입니다! 스티븐 감독님!”
아까 로빈 감독의 앞에서 당당하게 할 말을 다 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신입다운 모습에, 스티븐 감독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너무 그렇게 긴장하시지 마세요. 저도 미스터 최도 다 같은 감독이지 않습니까.”
“같은 감독이라뇨! 제가 어떻게 감히 스티븐 감독님과 비교를….”
그 말에 스티븐 감독이 단호하게 말하였다.
“물론, 내가 최 감독님보다 훨씬 더 명성이 높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확신하죠.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만 한다면, 당신은 머지않은 미래에 제 명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은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던 거장이 말하는 최고의 극찬이었다. 그리고 그 극찬을 들은 최지훈 감독은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자, 그럼 일단 이동해볼까요? 미스터 윤, 혹시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니요 아직 안 했습니다.”
“그럼 영화제 개최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식사 먼저 할까요?”
“좋습니다.”
우리는 근처의 괜찮은 식당으로 이동했다.
***
“갑자기 연락하셔서 놀랐습니다.”
“나도 충동적으로 독일행 비행기 표를 끊은 겁니다. 영화 촬영 일정도 미뤄둔 체 말이죠.”
나와 스티븐 감독, 그리고 최지훈 감독은 함께 늦은 점심을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당연하게도 영화와 관련된 것이 많았는데, 대부분이 스티븐 감독이 보았던 최지훈 감독의 영화 이야기였다.
“저는 그 부분의 연출이 조금 아쉽더군요.”
“그, 그럼 어떤 식으로 연출하는 편이 나았을까요?”
“음. 저였다면 그 장면에서….”
스티븐 감독은 최지훈 감독에게 그 무엇보다도 값진 여러 조언을 해 주었다. 이에 최지훈 감독 또한, 하나라도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스티븐 감독의 말을 열심히 수첩에 옮겨 담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몇 시죠?”
“오후 5시 15분입니다.”
“어이쿠, 대화가 너무 즐겁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군요. 늦지 않으려면 얼른 출발해야겠어요.”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루비스피어 영화제 개최장소로 향했다.
.
.
.
“오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TV에서 보았던 여느 영화제의 풍경과 비슷했다.
‘레드카펫, 거대한 스크린, 그리고 수많은 관람석.’
그리고 중앙의 기다란 테이블에는 심사위원으로 보이는 몇 명의 감독들이 앉아있었다.
그중에는 아까 우리와 트러블이 있었던, 로빈 스미스 감독도 있었다.
“우리 자리는 저쪽이군요.”
우리는 미리 안내받은 대로 참가자 좌석 중에서도 감독 전용의 좌석에 착석했다.
‘무대 위가 분주하네.’
스텝으로 보이는 이들이 무언가를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아마도 곧 있을 개막식을 준비하는 것이리라.
‘영화제 진행 순서가 어떻게 된다고 했었지?’
나는 아까 입구에서 가져온 안내표를 다시 읽어보았다.
[개막식 > 영화 상영 > 심사 및 평가 > 시상식 > 폐막식]본래 대규모 영화제는 하루 만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최소 일주일 이상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칸 영화제 같은 대규모 국제 영화제는 무려 열흘 이상 이뤄지기도 한다.
‘출품된 작품이 워낙 많으니 어쩔 수 없지.’
서류 심사와 예선을 모두 통과한 쟁쟁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 작품들을 모두 상영하려면, 당연히 하루 이틀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루비스피어 영화제는 달랐다.
‘상대적으로 상영시간이 짧은 독립영화 전문이니까.’
그런 특성 덕분에 루비스피어 영화제는 대규모 국제 영화제임에도 불구하고, 사흘이라는 시간 동안 개최가 되었다.
‘어디 보자… 우리 영화는….’
나는 영화 상영 순서표에서 우리 영화의 제목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우리 영화의 제목이 보이지 않았다.
“사장님, 우리 영화는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뭘 찾는지 눈치를 챈 최지훈 감독이, 손가락으로 순서표의 맨 아래를 가리켰다.
“우리 영화가 마지막 순서네요?”
“예, 운이 좋았죠.”
어느 분야든지 뭔가를 평가받는 자리라면, 마지막 순서가 무조건 유리했다.
‘가장 인상에 오래 남는 순서니까.’
그러므로 우리 영화가 마지막 순서인 것은 좋은 징조라 볼 수 있었다.
“아쉽군요. 저는 최 감독님의 영화를 빨리 보고 싶었는데 말이죠.”
물론, 우리 영화를 보기 위해 독일로 건너온 스티븐 감독은 불만이었지만 말이다.
-지금부터 루비스피어 영화제를 시작합니다!
사회자로 보이는 훤칠한 키의 남성과 예쁜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무대 위에서 큰 목소리로 개막식을 알렸다.
거의 형식만 갖춘 개막식은 빠르게 마무리되었고, 곧바로 가장 중요한 순서인 영화 상영이 시작되었다.
그러한 영화제의 모습에 나는 쓸데없는 시간을 줄여, 주어진 사흘 안에 모든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뜻이 느껴졌다.
그렇게 약 5시간 후. 오늘의 마지막 영화 상영이 끝남과 동시에, 관람석을 채우고 있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도 숙소로 돌아가죠.”
다음날.
나는 최지훈, 스티븐 감독님과 따로 움직였다.
루비스피어 영화제의 두 번째 날에는 오전부터 종일 영화가 상영되기에, 두 감독은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못 해.’
아침부터 자정까지 쉬지 않고 그 모든 영화를 관람한다는 것은, 내겐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오히려 두 감독님이 대단한 거지.’
나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두 감독에게 합류하였고.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날.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관람석에 착석하였다.
‘드디어 우리 영화가 상영되는구나.’
두근두근.
가슴이 설렜다.
마침내 이 많은 사람의 앞에서, 내가 각본을 짠 영화가 공개되는 것이었으니까.
-다음 순서는, ‘죽지 않는 가시고기’입니다.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드디어 영화가 상영되었다.
그렇게 약 30분 후.
브라보!
영화가 끝나자, 사방에서 환호성과 박수가 들려왔다.
특히, 모든 심사위원은 아예 기립 박수를 치고 있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뭐야? 왜 저래?’
홀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자는 다름 아닌 로빈 스미스 감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