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길을 걷다 비서를 주웠다 (2)
“아까 공부하고 있던 저희를 계속 보고 계셨었던 분 맞으시죠?”
“아… 네, 맞습니다.”
나는 민망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한참을 저희 쪽을 바라보며 계속 서 계시길래, 저도 신경이 쓰여 당신을 힐끔힐끔 바라보았었습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어요. 당신이 지갑을 떨어뜨렸다는 것을요.”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일정에 차질이 생길 뻔했네요.”
나는 지갑을 주워준 남자에게 감사를 표하며, 그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혹시, 성함이?”
남자의 이름은 자비르 무헬라 씨로, 한국에서 돈을 벌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였다.
“저는 브룬디에서 왔습니다.”
브룬디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아프리카 동부에 있었다.
“시간이 있으시다면 제가 커피라도 대접해드리고 싶습니다만….”
“아쉽게도, 그건 어렵겠습니다.”
자비르 씨는 본인의 안전모를 보란 듯이 두드리며 말했다.
“이제 점심시간이 끝나가서, 바로 복귀해야 해서요.”
“아….”
커피 한잔을 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던 나는 매우 아쉬웠다.
“그럼 이거라도 가져가세요.”
나는 지갑을 열어, 안에 들어있는 현금을 꺼내려 했다.
“아뇨, 별것도 아닌 일인데 사례라니요. 괜찮습니다.”
“그래도….”
나는 다시 한번 권했으나, 자비르 씨는 이 돈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며 극구 사양하였다.
‘지갑 안에는 현금이 100만 원이나 들어있었어.’
분명, 자비르 씨는 지갑을 주웠을 때. 안에 들어있는 현금 뭉치를 발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현금에 손을 대지 않았어.’
솔직히 나는 지갑을 떨어뜨린 지도 몰랐었다. 아마도 그가 주워주지 않았다면.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야.’
그는 정직하고 올곧은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자비르 씨에게 뭐라도 보답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완강했다. 잃어버린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줬을 뿐이니, 사례금은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거절하는데도 계속 권유를 하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다시 지갑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럼, 살펴 가세요.”
그렇게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공사장으로 복귀하는 자비르 씨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전화번호라도 물어볼 걸 그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저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도, 그 정도는 아니지.’
단지, 호기심 때문에 오늘 처음 본 남자의 연락처를 묻는다는 것은 오버였다.
‘…그래도 흔한 광경은 아니었어.’
대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외국인 노동자라니. 어떤 사연이 있을지, 절로 궁금증이 일었다.
‘어쩔 수 없지. 일하러 가야 하는 사람을 억지로 붙들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나는 다시 백화점을 향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충 1분 정도 흘렀을까.
툭- 투둑-
‘응? 갑자기 웬 물방울이?’
내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뭐야?”
분명 오늘 일기예보에는 비 소식이 없었다.
‘서둘러야겠네.’
예비로 들고 다니는 우산조차 람보르기니 트렁크 안에 있었다.
다행히 백화점이 거의 코앞이라, 나는 그다지 젖지 않은 채 주차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덜컥-
람보르기니에 올라탄 나는, 곧장 시동을 켰다.
‘차가 막히기 전에 서두르자.’
비가 오면, 서울의 도로는 매우 혼잡해지기 마련이다.
물론, 람보르기니가 나타나면 어느 정도 쾌적하게 운전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도 병목현상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부릉-
나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러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잠시 후.
“…어? 저 사람은?”
나는 비를 맞으며 인도를 터벅터벅 걷고 있는 자비르 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왜 공사장에 안 가시고 저기에… 아!’
나는 비가 오면 공사가 중단된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곧바로 그가 있는 인도 가까이에 차를 대며 큰 소리로 그를 불러세웠다.
“자비르 씨!”
고개를 돌린 그가, 람보르기니 안에 있는 나를 발견하곤.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당신이 왜 여기에…”
“설명은 나중에 하고, 일단 타세요.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고 있으니까요.”
나의 제안에 그는 자신의 초라한 행색에 약간 망설이는 듯 보였다.
“하지만 제가 지금 좀 엉망이라….”
“그런 건 괜찮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 계속 정차했다간, 다른 운전자들에게 민폐니까 얼른 타세요.”
민폐라는 말에 자비르 씨는 서둘러 람보르기니에 탑승하였다.
“그럼 출발합니다.”
부앙-
마침내 그를 태운 나는, 일단 그 장소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
“오오…!”
자비르 씨는 차량 내부가 신기한 듯 이리저리 둘러보며 감탄했다.
‘옆자리가 이렇게나 꽉 차는 자리였던가?’
자리가 좁았던 거구의 자비르 씨는 지금, 구부정한 자세로 불편하게 앉아있었다.
“어디에 내려드리면 될까요?”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까지만 대려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갑자기 내리는 비로, 지금 지하철은 혼잡할 겁니다. 아예 사시는 곳….”
별생각 없이 그가 사는 곳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말하려던 나는, 그 친절 자체가 자비르 씨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곧바로 말을 바꾸었다.
“…사시는 곳으로 단번에 갈 수 있는 지하철역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혹시 댁 근처의 지하철이 몇 호선인가요?”
“…4호선입니다.”
4호선이라면 가장 가까운 지하철은 사당역이었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네.’
마침 잘 되었다.
가는 동안 그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고요?”
눈을 동그랗게 뜬 자비르 씨는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이렇게 좋은 차를 얻어탔는데, 그 정도는 답변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이겠죠.”
나는 외국인의 입에서 인지상정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무척이나 신기했다.
“그럼….”
나는 그에게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아까 자비르 씨가 가르치던 이들은 대학교 후배들인가요?”
“네, 맞습니다.”
“오, 역시 그렇군요. 그럼 혹시, 어느 대학을 나오셨습니까?”
“아, 저는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사고를 쳐서 퇴학당했거든요.”
“예?”
나는 조금 놀랐다.
‘퇴학당할 정도의 큰 사고를 칠 사람으론 안 보이는데…’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자비르 씨가 설명을 이어 나갔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집안에서 저는 태어났습니다. 얼마나 가난했었냐면, 제가 걷고 말하기 시작하자. 부모님이 제게 간단한 일을 시켰을 정도로 가난했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고철을 주워 모으기 시작하고. 쓰레기를 치우며 얼마의 푼돈을 버는 것. 어린 시절의 자비르 씨의 세상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저는 학교라는 게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부룬디는 초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었으나, 실제 취학률은 56%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제 나이에 맞게 가는 경우도 매우 드물었다.
“저는 우연히 주운 학교의 교과서를 집으로 가져와 읽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글자를 아예 읽지 못했죠. 주위 사람들에게 글자를 가르쳐달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분들도 문맹이셨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글자를…”
“다행히 그때,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이 계셨거든요. 그분에게 부탁하여 겨우 글자를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자비르 씨는 그날부터 책을 읽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되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신세계였죠. 나의 세상은 그저 고철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었는데. 책 속의 세상은 무궁무진했으니까요.”
“…하지만 종일 일하시느라 책을 별로 읽지는 못했겠네요.”
그런 내 말에 자비르 씨가 고개를 저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책을 보았습니다. 정확히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잠든 새벽에요.”
“…….”
“비록, 배우는 속도는 느리고 굉장히 피곤했으나. 제 머릿속에 나날이 지식이 채워지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럼 공부하셨던 책은 매번 누가 버린 것을 주워서 읽으신 건가요?”
“아뇨. 이런 저를 좋게 봐주셨던 신부님께서 구해다 주셨습니다.”
자비르 씨는 그 신부님 덕분에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어느 단체와 연결될 수 있었고, 그 단체에서 장학금을 지원받아 한국에서 검정고시를 치를 수 있었고, 이후 대학교까지 진학하게 되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죠.”
자비르 씨가 대학교 2학년에 진학했을 때, 그의 집안에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아버지께서 크게 다치시게 된 겁니다. 다행히 일상생활엔 지장이 없었지만, 무리한 일은 불가능해졌죠.”
“…설마?”
“네, 그때부터 저는 돈을 벌어야 했고. 버는 족족 가족들에게 송금해야만 했습니다.”
자비르 씨는 학교에 다니며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였다. 하지만 그런 무리한 생활을 계속하니, 학업에 지장이 생기고 말았다.
“그러던 중에, 저는 학교에서 개최하는 어느 퀴즈대회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비르 씨가 다녔던 대학교에서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여러 상식에 대한 퀴즈대회였다.
“거기 1등 상금이 100만 원으로, 당시 저에겐 매우 많은 돈이었습니다. 그 돈이면 당분간 우리 가족의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는 자신이 있었고, 퀴즈에 참여하여 만점을 받는 기염을 토해내었다.
“그런데 하필 제가 참가했던 회차에서 공동 1등이 무려 4명이나 나왔다더군요.”
자비르 씨는 그 퀴즈대회는 마치 시험을 보듯이 문제지를 받아 풀어나가는 방식이었으며, 100점을 방지하려고 일부러 맞히기 매우 힘든 문제를 여럿 섞어 두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런 퀴즈대회에 만점자가 무려 4명이나 나온 겁니다.”
“학교 측에선 당연히 의심했겠군요?”
“네, 그리고 실제로 저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이 교수님의 PC를 해킹하여 답지를 빼내었었다고 하더군요.”
나는 무척이나 놀랐다. 그게 사실이라면 충분히 퇴학 사유가 되기 때문이었다.
“설마, 자비르 씨가 퇴학당하신 이유가 누명을 썼기 때문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저는 누명을 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수를 했죠.”
“…예?”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무슨 자수요?”
“…해킹한 그 친구들은 꽤 잘사는 집안의 자제들이었습니다.”
자비르 씨는 그 친구들의 부모님이 찾아와 자신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각자 700만 원을 줄 테니, 주동자가 되어달라고 하더군요.”
도합 2,100만 원. 그 돈이면 자비르 씨는 집안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 친구들의 부모님이 그러더군요. 학교 징계위원회에 잘 이야기해서, 주동자만 퇴학당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정학 처분을 내리는 걸로 결론을 냈다고 말이죠.”
“…….”
“저는 많이 갈등하였고, 결국 2,100만 원을 받는 것을 택하였고. 이렇게 학교를 나와 공사장에서 일하게 된 겁니다.”
“…그럼 아까 가르치던 후배들은요?”
“대학을 다닐 때, 친하게 지내던 후배들입니다. 막히는 문제가 생기면 종종 저를 찾아와 묻곤 하죠.”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대학교 후배들이 찾아와 물을 정도면, 굉장히 공부를 잘했다는 건데.’
그런 인재가 겨우 2,100만 원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게 되었다니.
“혹시, 자비르 씨는 학과가 어디셨습니까?”
“주전공은 경영학과였습니다.”
역시.
아까 자비르 씨가 후배들과 대화했을 때, 종종 튀어나오던 전문 용어는 경영과 관련된 것이었다.
‘…독학으로 공부하여 한국에 유학까지 온 인재인데다, 100만 원이 들어있는 지갑을 망설임 없이 돌려주러 뛰어온 정직한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이라면, 내 비서직으로 적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그렇게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사당역에 도착했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나와 작별 인사를 나눈 자비르 씨가 사당역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전화를 꺼내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오랜만입니다, 강진수 사장님.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강진수 사장과의 통화는 예전, 우리 가게에 걸려있던 그림 사건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사회적 지위가 달라졌지. 그러니 강진수 사장은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거야.’
언젠가 먼 미래에 비즈니스를 하며, 내게 도움을 요청할 일이 생길 수도 있을 테니. 이왕이면 그는 나와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 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부탁을 뭔가요?
“…어떤 사람에 대해 조사해주셨으면 합니다.”
자비르 씨의 사정이 안타깝긴 했지만, 그래도 아무나 비서로 채용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그의 능력을 한 번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런 조사는 강진수 사장이 잘 알아봐 줄 수 있을 거야.’
뒷조사는 나쁜 일이지만, 이 경우에는 자비르 씨를 좋은 조건으로 채용하기 위함이었으니. 아마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죠.
그렇게 강진수 사장에게 조사를 맡긴 다음 날.
“예? 자비르 씨가 무려 6개 국어를 할 줄 안다고요?”
그는 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