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함부르크, 뜻밖의 만남
“오오!”
자비르 씨는 퍼스트클래스의 넓은 공간에 감탄사를 내뱉으며 연신 두리번거렸다.
‘나도 저랬었지.’
처음 제주도 여행을 가며 앉아 보았던 비즈니스석과 LA행 비행기의 퍼스트클래스에 탑승했을 때의 내 모습이, 지금 자비르 씨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자비르 씨, 퍼스트클래스는 처음이시죠?”
“네. 전에 필리핀행 비행기에선 비즈니스석에 탔었으니까요.”
자비르 씨는 퍼스트클래스의 안락하고 편안한 의자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말했다.
“비즈니스 석도 굉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차원이 다르네요.”
“그만큼 가격이 비싸니까요.”
“가격이 얼마인데요?”
나는 순진하게 물어오는 자비르 씨를 보며, 생각했다.
‘아마 들으면 엄청나게 놀라실 것 같은데’
왕복 비행기표가 약 1,000만 원. 둘이 합치면 무려 2,000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자비르 씨는 2,100만 원 때문에 대학을 그만두게 되었지.’
그런 자비르 씨에게 몇 시간의 비행기표 값으로 2,000만 원을 지불 했다고 말하는 것은 어려웠다.
‘자비르 씨가 자괴감에 빠질지도 모르니까.’
그렇기에 나는 그의 질문에 대충 얼버무리며, 서둘러 화제를 전환하였다.
“그냥 적당히 썼습니다. 그런데 자비르 씨,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자비르 씨의 가족분들은 계속 브룬디에서 지내고 계신 겁니까?”
화제 전환을 위해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을 한 것이었지만. 막상 말하고 나니, 잘 물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른 건 다 물어봤어도, 정작 가족분들 이야기를 묻지 않았어.’
독일 여행 준비에, 곽창민 씨와 김현수 학생의 소식도 접하다 보니. 자비르 씨를 신경 써주질 못했던 것 같다.
“네, 맞습니다.”
“혹시 구 수도인 부줌부라나 현재 수도인 기테나에서 지내시는 건가요?”
“아뇨, 제 가족은 현재 루몽게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루몽게….”
루몽게는 브룬디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들 중 하나였다.
“…치안이 좋지 않은 동네에서 지내시는 부모님이 걱정되진 않으십니까?”
“…걱정이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제 나라에선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
내 잘못이었다.
‘왜 진작 생각을 못했지?’
자비르 씨에게 가장 가족 같은 김규태 신부님은 챙겼지만, 정작 진짜 가족들은 챙기지 않았다니.
‘이건, 당장 해결해야겠다.’
곽창민 씨나 김현수 학생의 일은, 여행이 끝난 뒤 해결해도 될 문제였지만. 자비르 씨의 가족분들의 일은 아니었다.
‘그분들은 지금도 그 위험한 도시에서 위험하게 지내고 계실 테니까.’
그래도 혹시 다른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니, 나는 자비르 씨에게 조금 더 가족분들에 대한 것을 물어보았다.
“가족분들과 한국에서 지내고 싶진 않으신가요?”
“당연히 그러고 싶습니다. 하지만 돈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저희 가족들이 영어, 한국어 등의 외국어를 전혀 하지 못합니다.”
“아….”
확실히, 의사소통이 어려우면 낯선 한국에서 살기가 힘들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위험한 도시에서 사는 것보단 훨씬 나을 텐데.’
나는 자비르 씨에게 부모님들이 외국어 배우기를 거부하시는지 물었다.
“아뇨, 저희 부모님도 외국어를 배워보고 싶다고 말씀하시긴 했습니다.”
“그런데 왜…”
“생계 때문에 일이 바쁘기도 했고, 무엇보다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자비르 씨는 운이 좋게도 김규태 신부님을 만나, 그분에게 여러 가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의 부모님들은 아니었다.
“김규태 신부님을 따라 제가 한국으로 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인 봉사단의 발길도 끊기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부모님께서 가르침을 청할 한국인이 없었던 거군요.”
“네. 맞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선생님이야 한국에서 가르쳐 줄 분을 모시면 되는 일이고, 자비르 씨도 부모님을 한국에 모셔 오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아무런 문제는 없겠어.’
나는 자비르 씨와 계속 대화하면서, 구상민 씨에게 사람을 시켜 자비르 씨의 가족분들을 한국으로 모셔 와 달라는 문자를 남겼다.
‘이로써 자비르 씨의 케어는 완벽해.’
누군가 이런 나의 행동을 보았다면, 오지랖을 떤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정도의 도움은 충분히 줄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웠다.
‘돈이 조금 들겠지만, 그래봤자 현재 내 수입의 아주 일부분일 뿐이야.’
내가 세상 모든 불행한 사람들을 구원하겠다면 모를까, 그저 내 손이 닿는 주변인만 돌보는 것 정도는 마음껏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을 때, 승무원이 다가와 우리에게 물어왔다.
“기내식 준비해 드릴까요?”
그러고 보니, 배가 조금 출출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자비르 씨도 드실 거죠?”
“네, 사장님.”
나는 승무원에게 메인메뉴와 와인, 그리고 필요한 이것저것을 주문하였다.
“굉장히 익숙하시네요.”
“…그런가요?”
나는 나를 보며 감탄하는 자비르 씨의 모습을 보며, 예전 일을 떠올렸다.
‘처음 퍼스트클래스에 탑승했을 때, 나를 보았던 루카스 씨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이제 알겠어.’
내게는 이제 별것 아닌 퍼스트클래스의 풍경을 향해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자비르 씨. 나는 그런 그에게 이것저것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잠시 후, 기내식 요리를 맛본 자비르 씨가 감탄했다.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이 생선요리, 정말 맛있네요. 멋모르고 스테이크를 시켰으면 후회했을 뻔했습니다.”
“하하, 입맛에 맞으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자비르 씨. 잠시 창문 블라인드를 올려보시겠습니까?”
“창문이요?”
“어서요.”
자비르 씨가 고개를 갸웃하며 블라인드를 걷어 올렸다. 그리고.
“오오…!”
저물어가는 노을이 하늘 위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살면서 흔히 볼 수 없는 구름 위의 일몰.
언제나 흰색이었던 구름의 생기 붉음과 분홍. 그리고 경이로운 보라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떤가요?”
“너무 아름답습니다….”
자비르 씨는 천천히 저무는 노을이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그 황홀한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제게 이런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
또다시 내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자비르 씨에게, 나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와인 잔을 내밀었다.
“치어스.”
잔과 잔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맑은소리는, 내게 언젠가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어 주었다.
그때의 루카스 씨가 앉았던 자리에는, 이제 내가 앉아 있었고. 과거의 내가 앉았던 자리엔 자비르 씨가 있었다.
‘많은 것이 변하였네.’
그러한 변화를 느끼며, 나는 와인을 한 모금 삼키었다.
단맛이 나지 않는 와인을 시켰건만, 그 맛이 무척이나 달게 느껴졌다.
***
독일의 브레멘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곧장 택시에 불러 세웠다.
“Bitte bringen Sie mich zum Hafen von Bremen.”
택시 기사님에게 유창한 독일어로 목적지를 말하는 자비르 씨를 보며, 나는 그를 데려오길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전에 독일에 왔을 때는, 독일어를 잘하는 최지훈 감독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지.’
이번에는 자비르 씨의 도움으로 편히 독일을 여행할 차례였다.
그렇게 잠시 후, 항구에 도착한 나는, 창고에 보관 중이었던 내 람보르기니를 마주할 수 있었다.
‘장장 40일 만인가?’
나는 하선비와 보관비를 일시불로 결제한 뒤, 자비르 씨의 도움을 받아 곧장 근처의 정비소로 향하여 간단한 점검과 정비를 받았다.
“Es gibt kein Problem.”
“아무런 문제가 없답니다.”
40일간 운행하지 않았음에도, 내 람보르기니의 상태는 최상이었다.
‘좋은데?’
그렇게 내가 만족하며 람보르기니에 탑승하려고 했을 때, 정비소 직원이 내게 뭔가를 말해주었다.
“Beabsichtigen Sie, mit dem Autozug zu fahren?”
“아우토반으로 갈 거냐고 묻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Vorsicht mit den Blinkern.”
“방향지시등을 조심하라고 하는데요?”
“방향지시등이요?”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정비소 직원이 조금 더 설명을 해주었다.
‘아우토반에선 자동차들이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변경하는 경우가 많다고?’
정비소 직원은 척 봐도 아우토반을 처음으로 달리러 가는 것 같은 우리가 걱정되어, 현지 사람들이 아니면 알기 힘든 정보를 알려주었던 것이었다.
‘몰랐다면 크게 놀랄뻔했어.’
속도 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에서, 깜빡이도 없이 끼어들기를 당하게 된다면. 나는 굉장히 놀랐을 것이다.
“Vielen Dank.(감사합니다.)”
나는 정비소 직원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곧장 람보르기니에 올랐다.
부앙-!
40일 만에 들어보는 엔진음에,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이제 9번 버킷리스트를 완성하러 가볼까.’
나는 아우토반을 향해 액셀을 힘껏 밟았다.
.
.
.
부아아앙-!
주변의 풍경이 너무나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이 정도의 속도감은, 예전에 제주도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체험 해봤을 때의 스릴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부앙- 부아아앙-!
최대 속력 320Km/h.
마침내 한계까지 해방된 람보르기니의 핸들이 떨려온다.
‘와…!’
안전을 위해 정해진 규칙과 규범을 벗어던지자,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느껴져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대단한데…!’
아우토반을 질주하며, 나는 세 가지 사항에 감탄했다.
첫째는 도로 노면의 상태였다. 잘 정비된 노면은 한국보다 더 깔끔해 보였다.
둘째는 커브 구간이었다. 한국과 달리 아우토반의 커브 구간은 핸들을 거의 꺾지 않아도 되었다. 왜냐하면 아우토반의 커브 구간은 완만한 곡선의 형태였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속도를 거의 줄이지 않아도 커브 구간을 통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나는 이 점이 가장 놀라웠다.
‘양보를 해준다고?’
나는 지금 평균 시속 250Km/h로 달리고 있었다. 이곳의 차량들은 대부분 150Km/h로 달렸으니, 나는 손쉽게 앞선 차량의 뒤를 따라잡았다.
그러자 내 앞의 자동차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우측 차선으로 잠시 빠지며 내게 길을 양보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한국이었다면 가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깜빡이를 켜지 않는다고 해서 운전 매너가 나쁜 줄 알았는데, 역시 자동차 대국은 대국인 건가…’
그리고 막상 아우토반을 경험해보니. 카센터 직원의 말과는 다르게, 대부분 방향지시등을 잘 켜고 운전하였다.
‘물론, 간혹가다 안 켜는 차도 더러 있긴 했지만.’
아마 카센터 직원은 그 가끔 있는 비매너 운전자를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내게 경고를 해줬던 모양이었다.
부아아앙-!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액셀을 끝까지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고, 그럴 때마다 나는 마치 내가 순간이동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을 운전했을까. 문득 나는 옆자리가 너무 조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비르 씨, 아우토반을 처음으로 경험해본 소감이 어떠세요?”
“아, 정말 굉장한 것 같습니다.”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슬쩍 옆자리를 보았다.
‘…와.’
자비르 씨의 얼굴은 평온 그 자체였다.
“…무섭진 않으세요?”
“뭐가요?”
시속 300KM로 달리든, 200KM로 달리든. 그는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타고나길 강심장으로 태어난 건가? 아니면 이 정도 속도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평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자비르 씨는, 오히려 퍼스트클래스에 탑승했을 때가 더 좋아 보였다.
“…….”
“…….”
그렇게 나는 무언가 아쉬움을 느끼며, 목적지인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
자비르 씨가 람보르기니에서 내리자마자 내게 물었다.
“제가 먼저 가서 호텔을 잡아둘까요?”
나는 어느 도시에 묵을지 정하지 않았기에, 호텔을 예약하진 않았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그럼, 제가 적당한 호텔을 찾아보고 있겠습니다. 천천히 구경하고 계십시오.”
그렇게 자비르 씨가 사라진 후, 나는 천천히 함부르크의 도시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확실히 소시지와 맥주가 많네.’
함부르크는 소시지와 맥주로 유명한 도시였기에, 나는 이따 저녁에 자비르 씨와 맥주 한잔을 마시고 싶어졌다.
‘도시도 예쁘고 세련되었어.’
함부르크는 독일 제2의 도시이며, 유럽 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항구를 보유하고 있었다.
‘북의 베네치아라고 불리우고 있다지?’
그런 함부르크의 아름다운 광경을 눈에 담으며, 나는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와아아아!
‘…응?’
그러던 중, 나는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와 함성에 고개를 돌렸다.
‘콘서트?’
저 멀리 드넓은 광장에서 무언가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뭐지?’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었다.
그리고 낯익은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일라?’
그것은 스타더스트 밴드의 게릴라 콘서트였다.
‘이런 우연이?’
나는 아일라에게 독일로 여행을 온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므로, 이것은 정말 우연한 만남이었다.
그렇게 내가 신기해하고 있을 때, 더욱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음?’
무대 위에서 마음껏 노래를 부르던 아일라가 수많은 인파 속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에이, 설마.’
그저 이 근처를 본 것 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녀가 날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착각이 아니었다.
‘…어?!’
정확히 나를 바라보며, 아일라가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