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아일라 (1)
게릴라 콘서트의 특성상, 인파가 많이 몰려들더라도 그 규모가 정규 콘서트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하물며 콘서트가 열린 장소가 넓긴 해도 일반 광장이었으니, 수용할 수 있는 인파가 한정되어있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타더스트 밴드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모여든 인파가 어림잡아 수백 명은 넘어 보였다.
‘어쩌면 이미 천 단위가 넘었을지도 모르겠네.’
그 수많은 사람 중에서, 그것도 멀리 떨어진 무대 위에서 나를 우연히라도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열린 콘서트임에도 우리를 보러 와 주셔서,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얼마만큼 좋냐고요? 그리피스 천문대의 예쁜 노을을 보았을 때만큼요!”
말도 안 된다.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아일라는 이 수많은 사람 속에서 나를 발견한 것이 확실했다.
왜냐하면, 그리피스 천문대의 노을. 그것은 내가 LA에서 아일라와 함께한 둘만의 추억이었으니까.
‘이게 말이 되나.’
이 또한 나의 강한 운이 작용한 것일까?
‘그럴 리가 없지.’
아일라가 나를 발견하는 것이 행운과 무슨 관계란 말인가. 이것이 내게 어떤 이득을 안겨 준다고.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는 이 낯선 땅에서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 기뻤다.
그래. 아일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별이 쏟아지던 제주도의 그날만큼.
“그럼 이어서 다음 곡 시작할게요!”
그렇게 다음 무대가 막 시작되었을 때,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는 자비르 씨 였다.
-사장님, 말씀하신 대로 호텔 객실 두 개 잡아놓았습니다.
하나는 내가 쓸 객실이며, 다른 하나는 자비르 씨가 쓸 객실이었다.
-호텔은 바다가 잘 보이는 룩셈 호텔입니다.
“감사합니다, 자비르 씨.”
-그런데 지금 어디십니까? 주위가 소란스럽네요?
“여기는….”
나는 자비르 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그는 무척이나 놀라워했다.
-스타더스트 밴드면, 사장님과 인연이 깊은 밴드 아닙니까? 어떻게 이런 우연이…!
“저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잠시만요, 사장님. 5분 후에 다시 걸어도 되겠습니까?
“… 그러세요.”
그렇게 정확히 5분 후, 예고대로 자비르 씨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제가 잠시 알아봤는데요, 지금 보고 계신 콘서트는 불치병과 난치병 환자들을 돕기 위해 기획된 게릴라 콘서트라고 합니다.
“그래요?”
그 말에 내가 고개를 들어 콘서트 무대 주변을 살펴보니, 자비르 씨의 말대로 불치병 환자를 돕자는 팻말과 모금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왜 하필 독일이지? 그냥 미국에서 해도 되었을 텐데?’
모금을 목적으로 하는 콘서트는 구경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유리했다. 그렇다면 독일보다 압도적으로 인구가 많은 미국에서 개최하는 편이 더 나았을 터.
‘가깝기도 하고.’
나는 스타더스트 밴드가 왜 굳이 이 먼 독일까지 와서 이런 행사를 하는지 의문이었다.
-아, 모금 콘서트는 독일에서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내 의문을 들은 자비르 씨가 대답했다.
“그러면요?”
-총 5개국에서 개최가 된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지금 사장님이 계신 곳에서 처음으로 콘서트가 열린 것을 보니. 스타더스트 밴드가 가장 먼저 독일을 방문한 듯하네요.
그것도 하필 내가 독일에 방문한 날에 콘서트가 처음으로 개최되다니. 정말 기막힌 우연이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아일라가 또 전세계 투어를 시작한 셈인가?’
지금은 스타더스트 밴드의 전세계 투어가 종료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또다시 여러 나라에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니.
‘물론, 정식 투어보단 그 규모가 많이 작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컨디션이 걱정되었다.
-그런데, 사장님. 질문이 있습니다.
내가 잠시 말이 없자, 자비르 씨가 말을 걸어왔다.
“말씀하세요.”
-이후 일정을 그대로 진행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면 친구분들과 회포를 푸실 생각이십니까?
“음….”
이번 여행의 목적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따로 특별한 일정을 계획하진 않았다.
‘이후 일정이라고 해봤자, 맛있는 음식과 쇼핑. 그리고 관광뿐이지만. 이걸 오늘 하루안에 다 하려면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어.’
나는 이번 여행을 1박 2일 정도로 생각해두고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콘서트를 보며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아일라와 나머지 세 사람을 이곳에서 만난 것이 너무나 반가웠던 나머지, 나는 그 모든 일정을 미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을 만나서 잠시 이야기할 시간이 있는지부터 물어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필요하실 때 언제든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호텔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통화가 종료된 후, 나는 다시 스타더스트의 무대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역시 잘해.’
오랜만에 보는 아일라는 이전보다도 더 무대를 즐기며,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관객들 또한 절로 어깨를 들썩이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런 무대를 그냥 눈으로만 볼 수는 없지.’
나는 핸드폰 카메라로 스타더스트 밴드의 무대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
.
.
막상 무대가 끝났을 때, 나는 커다란 밴에 올라타는 스타더스트 밴드의 모습을 보며, 아차 싶었다.
‘그러고 보니 말을 걸 방법이 없잖아?’
스타더스트 밴드는 유명 밴드였으므로, 사전 약속도 없이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지?’
그때,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그쪽이 미스터 윤입니까?”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저는 스타더스트 밴드의 매니저입니다.”
“아….”
“아일라가 당신을 모셔 와 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역시 아일라는 세심했다.
“그럼 따라오시죠.”
매니저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스타더스트 밴드가 타고 있는 밴안이었다.
드르륵-
내가 문을 열자 일제히 나를 향해 쏟아지는 네 쌍 중 세 쌍의 눈빛이 일제히 놀라움으로 변하였다.
“현민! 이게 얼마 만이야!”
“독일엔 대체 어떻게 오게 된 거야?”
“하하, 다들 오랜만이네.”
나는 호들갑을 떠는 세 사람에게 각각 인사를 한 뒤, 마지막으로 아일라와 인사를 나누었다.
“소식은 들었어. 꽤 잘나가고 있던데?”
“운이 좋았지.”
“그나저나 깜짝 놀랐어.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은 게릴라 콘서트였는데. 설마 네가 와있었을 줄은 몰랐거든.”
“나도 놀랐어. 그 많은 사람 중에 나를 발견하다니 말이야. 설마, 내가 착각한 것은 아니지?”
“맞아. 그 많은 사람 중에 하필 네가 딱 눈에 띄었는지. 나도 신기했어. 그런데 독일에는 어쩐일이야?”
“아, 그게….”
나는 그들에게 내 버킷리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오오? 어릴 때 작성했던 100가지의 버킷리스트를 이뤄나가고 있다고? 그리고 그중 하나를 이루려면 독일에 와야 했던 거고?”
“응. 이제 겨우 10개… 아니, 11개를 이뤘을 뿐이지만 말야.”
“와우… 그래도 대단한데?”
아일라는 유독 버킷리스트라는 말에 관심을 보였다.
“그 리스트, 지금 보여줄 수 있어?”
“아니, 리스트는 한국에 놔두고 왔지. 어차피 독일에서 할 수 있는 항목은 딱 하나밖에 없기도 하고.”
“정말? 독일에서 뭘 이뤘는데?”
“아우토반에서 질주하기.”
9번째 버킷리스트, 아우토반에서 질주하기. 그것은 아까 함부르크에 오면서 이뤘었다.
‘…그래, 일단 하긴 했으니까. 버킷리스트를 이뤘다고 볼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되뇌었으나, 나는 아까부터 원인 모를 커다란 아쉬움과 찝찝함이 느껴졌다.
‘다른 버킷리스트들은 이루고 나면 만족감이 들었는데, 유독 이번에는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없었어.’
아까 아우토반을 달리며, 나는 분명 즐거웠다. 그런데도 막상 최고속도로 목적지에 도착하니, 묘한 아쉬움만이 남았다.
‘대체 왜?’
내가 아쉬웠던 이유가 너무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아니며, 아우토반을 더 달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도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답답하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해결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조금 찝찝하지만, 그냥 이번 버킷리스트를 이룬 셈이라 여기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아일라는 내게 단호히 외쳤다.
“절대 안 돼!”
“…왜? 뭐가 안 된다는 건데?”
“이건, 너의 목표잖아. 이렇게 엉성하게 끝내버리면, 나중에 나머지 버킷리스트를 이루더라도,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게 될 거야. 그리고 그런 상태로는 남들에게 100가지 버킷리스트를 이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겠지!”
아일라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당장 원인을 찾을 방법이 없었다.
“안 되겠어. 나가자.”
“어딜?”
“어디긴 어디야, 아우토반이지. 마침 여기서 약 2시간 거리에 킬(Kiel)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거기에 내 단골 해산물 맛집이 있어.”
“…그래서?”
“이렇게 머리만 쓰고 고민해봤자, 답이 나올 것 같지도 않으니. 일단 거기까지 달려보잔 이야기야. 몸을 움직이다 보면, 뭐라도 떠오르지 않겠어?”
“아니, 그건 맞는 말이지만….”
“그런 이유로, 가이즈! 나 현민이랑 킬에 다녀올게!”
드르륵-!
아일라는 스타더스트의 세 사람에게 통보하고는, 서둘러 자동차에서 내렸다.
‘아니, 원인을 찾기 위해 움직여보는 것은 좋은 방법이긴 한데… 왜 네가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오려는 거야?’
그러한 의문이 들었지만, 이미 앞서 나가버린 아일라에게 물을 순 없었다.
***
부아앙-
어쩌다 보니 나는 오늘 두 번째로 아우토반을 질주하고 있었다.
‘역시 대단해.’
다시 느껴지는 속도감과 스릴감에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이 충만해지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아까 자비르 씨와 달렸을 때처럼. 원인 모를 허전함과 아쉬움은 그대로였다.
“…현민.”
“왜?”
“나, 네가 만족하지 못하는 원인을 찾은 것 같은데?”
“정말? 그게 뭔데?”
나는 속도를 줄이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일라는 약간 질책하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현민, 너는 지금 전혀 속도감을 즐기지 않고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이미 최대 속도로 달리고 있었는데.”
“쯧쯧.”
혀를 찬 아일라가, 품속에서 언제 챙긴지 모를 두 쌍의 선글라스를 꺼내 들었다.
“자, 가만히 있어봐.”
“아, 아일라…!”
아일라가 갑자기 내게 다가왔다. 그녀의 기다란 금발이 살랑이며, 아찔한 향기가 풍겨왔다.
“됐다!”
그렇게 운전 중인 내게 선글라스 씌워준 아일라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갑자기 웬 선글라스야?”
“필요하니까.”
그렇게 대답한 아일라는 자신도 선글라스를 착용한 뒤, 갑자기 자동차의 어떤 버튼을 눌러버렸다.
“아니, 그건…!”
나는 서둘러 속도를 줄였다. 아일라가 누른 그 버튼은 다름 아닌, 자동차 루프를 집어넣어 오픈카로 만들어주는 버튼이었으니까.
후우우웅-!
아까는 몰랐던 거센 바람이 느껴지자, 나는 이전보다 더 속도가 올라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야호!”
이에 옆자리의 아일라는, 무척이나 즐겁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아, 아일라…!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다른 운전자들에게 민폐….”
“됐어! 자동차도 없는 구간에서 잠깐 그런 것뿐인데 뭘. 그냥 아무 말 말고 이 순간을 즐겨 봐. 따라 해 봐, 야호!”
외국인인 주제에 한국식으로 환호성을 지르는 아일라는, 함께 환호성을 지르자고 나를 재촉하였다.
“야, 야호!”
“더 크게!”
“야호!”
그녀의 말대로 소리를 지르며 액셀을 밟으니, 내 안의 무언가가 해방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바람이 느껴지며, 배가 된 속도감. 그리고 규율을 벗어던져 버리며 느껴지는 해방감.
그 두 가지 요소에 의해, 방금까지 느껴졌던 원인 모를 아쉬움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어때? 이제야 스트레스가 좀 풀리지?”
나는 슬쩍 눈을 돌려, 배시시 웃는 아일라의 얼굴을 보았다.
휘날리는 금발의 머리. 그리고 초승달처럼 크게 휜 신비로운 푸른색 눈동자.
‘신기해.’
나는 그런 아일라가 무척이나 신기했다.
‘제주도에서도, LA에서도, 그리고 지금도.’
아일라는 언제나 내게 답을 제시해 주었고, 삶을 즐기는 법을 알려주었다.
“야호!”
이젠 두 손까지 들어 올리며 즐기는 아일라의 환한 얼굴을 보며, 내가 왜 아쉬움과 허전함을 느꼈는지 알 것 같았다.
두근.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