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아일라 (2)
아일라와 함께하는 드라이빙은 자비르 씨를 태웠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왜 이러지?’
이상하게도 나는 아일라에게 평소처럼 말을 걸기 힘들었고, 왜인지 조금 더 긴장되었다.
“현민, 배고프지? 킬에 도착하면, 곧장 내가 말한 가게로 가자. 거기 음식이 아주 기가 막히거든.”
“…….”
“현민?”
“…어? 아, 미안 아일라. 뭐라고 말했어? 잠시 다른 생각 하느라 못 들었어.”
“…도착하면 바로 밥 먹으러 가자고.”
“그래.”
“…….”
“…….”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와 달리, 아일라와 대화가 매우 힘든 느낌이었다.
덕분에 킬에 도착하기까지 남은 15분간, 다소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어색한 분위기는 킬에 도착하자마자 완전히 사라졌다.
“…와.”
처음으로 본 킬의 풍경은 함부르크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두 도시 모두 바다에 인접해 있었지만. 함부르크와 달리, 아기자기한 소도시의 느낌이 강했다.
‘마치 부산과 마산 정도의 차이랄까.’
하지만 킬은 킬만의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함부르크, 베를린은 들어봤어도 킬은 처음 들어봤어.’
나는 도시 킬에 대한 정보가 궁금해져, 검색을 해보려던 찰나. 문득, 이걸로 인공지능 에보를 테스트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비야, 독일의 도시 킬에 대해 검색해서 알려줘.”
나비는 내 폰의 고양이 인공지능 에보의 이름이었다.
[킬은 독일의 큰 도시 30위 안에 드는 곳으로 발트해 유틀란트 반도의 킬 만에 있습니다.] [여름에는 킬 위크라는 세일링 축제가 열립니다만, 아쉽게도 현재는 그 시기가 지나버렸군요.] [추가 정보나 근처의 관광지 또는 맛집을 추천해 드릴까요?]“아니, 괜찮아.”
스마트 폰의 엉성한 AI 비서와는 비교도 안 될 정확도에 나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런 내 모습에 아일라가 흥미로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이거 요즘 난리 났던 인공지능 폰 아니야?”
“어, 맞아.”
나는 아일라의 감탄하는 반응을 은근 기대했다.
아일라는 아까 내 소식을 알음알음 들었다고 했었으니, 아마 내가 이 폰을 개발하는 데 관여한 사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오, 현민. 너도 이 폰으로 바꿨구나? 우리 조반니도 이 폰이 출시하자마자 달려가서 사 왔더라고.”
“…응?”
그런데 아일라의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인공지능 폰을 만드는 데 많은 기여를 한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건가?’
“아일라, 혹시 이 안의 인공지능을 개발한 회사가 어디인지 알아?”
“아니? 그것까진 모르겠는데?”
내 생각대로 아일라는 인공지능을 개발한 회사의 대표가 나인 것을 모르는 듯 보였고, 이에 나는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잠깐, 내가 왜 섭섭해하는 거지? 모를 수도 있는 거잖아.’
나는 내가 왜 이런 감정이 들었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어쨌거나 굳이 먼저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
뭔가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입으로 내 업적을 설명한다는 것이 민망하기도 했으니까.
‘먼저 물어본다면 모를까.’
내가 그렇게 마음먹었을 때, 아일라가 말했다.
“자, 그럼 바로 식당으로 가볼까?”
“좋아. 그런데 잠시만.”
나는 핸드폰을 꺼내어 자비르 씨에게 현재 내 위치와, 만약을 대비한 어떤 부탁도 함께 적어 문자를 보내놓았다.
“다 했어?”
“응.”
“좋아, 그럼 이쪽으로 가자. 여기가 지름길이야.”
나는 아일라의 손에 이끌려, 어느 식당으로 이동했다.
“오오.”
식당의 전경은 독특했다.
‘배?’
바닷가에 인접한 식당 건물은 아파트 4층 정도 크기의 커다란 배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는데, 그 입구가 배의 아랫부분에 있었다.
“Herzlich willkommen!(환영합니다!)”
우리를 발견한 종업원들이 독일어로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오며, 자리로 안내를 해주었다.
“혹시 현민은 특정 해산물에 알레르기가 있어?”
“아니, 없어.”
“그래? 그럼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은?”
“뭐든 좋아. 지금은 배가 등가죽에 붙을 지경이거든.”
“그래? 그럼 내가 알아서 주문할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곧장 아일라가 종업원을 불렀다.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거 주세요.”
아일라는 익숙한 듯이 영어로 음식들을 주문하였다. 그러자 종업원도 영어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식사에 앞서 와인 먼저 드릴까요?”
“네, 좋아요.”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종업원이 우리의 와인잔에 해산물 요리에 잘 어울리는 화이트 와인을 따라주었다.
치얼스.
우리는 와인을 마시며, 해가 저물고 있는 창밖 바닷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비행기에서 자비르 씨와 보았던, 노을에 물든 구름과 같아 보였다.
“소감이 어때?”
“뭐가?”
“나처럼 예쁜 미녀와 단둘이 바닷 풍경을 바라보는 소감 말야.”
뜬금없는 아일라의 말에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소감이 어떻냐고?’
말해 뭐하겠는가.
“그리피스 천문대의 노을을 보았을 때처럼 좋은 것 같아.”
나는 아까 아일라가 무대 위에서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어머, 아까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당연하지.”
“…그럼, 그 안에 담긴 뜻도 알겠어?”
“뜻?”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아일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둔하긴.”
“…”
내가 그게 무슨 말인지 물으려 했을 때, 종업원이 요리를 가져다주었다.
“…오.”
첫 번째 요리는 넙치를 팬에 구운 요리였는데, 함께 구워진 베이컨과 감자. 그리고 양파와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나영준 씨에게도 알려주면, 괜찮은 메뉴를 개발할 수 있겠는데?’
나는 아일라에게 요리의 이름을 물었다.
“핑켄베르더숄레(Finkenwerder Scholle)야. 함부르크의 대표적인 음식이지.”
“함부르크? 우리 거기에서 출발했잖아?”
“어.”
“…혹시, 주문한 다른 음식도 함부르크의 음식인건 아니겠지?”
“맞아. 다른 음식들도 다 함부르크 음식들이야.”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함부르크의 음식이면, 함부르크에서 먹는 게 더 좋은 것 아니야?”
함부르크의 음식이라면, 원조인 함부르크에서 먹는 것이 더 맛이 있을 터. 굳이 이 먼 킬까지 올 이유가 있었을까?
“그렇긴 한데, 이 가게는 달라. 요리사가 함부르크 출신인데다, 웬만한 함부르크 음식점보다 잘해.”
“그래?”
하긴. 아일라가 그것도 모르고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 내가 다시 식사에 열중하려던 때,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긴 하지만.”
“다른 이유?”
“…아니야.”
왜인지 아일라는 바삐 나이프를 움직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왜 저러지?’
그러던 중, 종업원이 두 번째 요리를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훔머주페라는 요리로, 랍스터와 크림으로 끓여낸 수프였다.
‘이것도 맛있네.’
흔히 독일하면 맥주와 소시지를 떠올리지만, 스튜와 수프를 자주 즐겨 먹기로도 유명했다.
‘이것도 나중에 나영준 씨에게 말해줘야겠다.’
이윽고 마지막 볶음 요리인 판피쉬까지 나왔을 때, 나와 아일라는 본격적으로 식사를 하며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짠.
치얼스.
식사 중, 잔과 잔이 부딪치는 맑은소리가 빈번하게 이어졌다. 잔이 빠르게 비어갈수록 나는 빠르게 알딸딸해져 갔다.
‘기분이 좋네.’
맛있는 음식과 멋진 풍경. 그리고 낯선 땅의 낯선 곳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녀와 함께하는 식사라니.
그 누가 이런 경험을 해보았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아일라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좋네.”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보던 아일라가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가?”
“공연을 마치고, 이렇게 훌쩍 떠나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으니. 너무 좋은 것 같아.”
살랑.
창문을 통해 기분 좋은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아일라의 머리카락이 약간 흩날렸다.
그런 아일라의 몽환적인 분위기에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다 먹었으면, 잠시 걷지 않을래?”
“…그래.”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빠져나온 우리는, 이제 완전히 해가 저문 바닷가를 산책하기 시작했다.
“…….”
“…….”
밤의 바닷가는 생각보다 조명이 밝지 않아, 꽤 어두웠다.
“현민, 그거 알아?”
“뭐가?”
“독일은 치안이 좋기로 소문난 나라이지만. 그럼에도 늦은 밤에 돌아다니는 것은 꽤 위험한 행동이야.”
“…그렇겠지.”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처럼 밤에 마음 놓고 돌아다니지 못한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왜일까. 너랑 같이 걷고 있으니, 무척이나 안심돼.”
“…….”
“고마워, 덕분에 독일 밤바다를 걸어보네.”
이어서 아일라는 독일에 올 때마다 늘 이곳의 밤바다를 걷고 싶었다고 말해주었다.
“혼자 돌아다니기 위험하면, 다른 멤버들과 함께 나오면 되지 않아?”
“그 녀석들은 자기들이 관심이 있거나 음악과 관련된 것이 아니면, 무척 게으르거든. 그리고 애석하게도 밤바다 산책은, 녀석들의 관심을 끌 수 없는 주제야.”
“…그래도 부탁하면, 한 번쯤은 같이 산책해줄 것 같은데?”
“…뭐 그럴지도. 하지만 녀석들과 밤바다를 걷고 싶지는 않았어.”
“왜?”
“돌아가신 아빠와 약속했거든. 밤바다에는 아무나 데려오지 않기로.”
“…”
와인을 많이 마셔서였는지, 두서가 없어 보이는 아일라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버지가 밤바다와 어떤 연관이 있으셨나 보네?”
“응. 하지만 그거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이따 할래.”
“… 그래.”
“그것보다 네 이야기나 좀 해봐. 뉴스나 기사로 얼핏 알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본인의 입으로 듣는 것이 제일이잖아.”
“안될 것 없지.”
나는 아일라에게 그동안 내가 손을 대왔던 사업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멋있는데?”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아일라가 감탄했다.
“현민, 너는 네 이득만 취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세상을 위해 사업을 하고 있었구나.”
그런 아일라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딱히 그런 거창한 이유로 사업에 손을 댄 것은 아니야.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우연히 그렇게 맞아떨어진 것뿐이지. 그러니까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지, 네 말처럼 대단하고 멋진 사람은 아니야.”
물론, 늘 이왕이면 세상에 도움이 될 만한 사업을 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러기 위해 조금이나마 노력하기도 했다.
다만, 나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사업을 진행하며 이득을 취할 때, 겸사겸사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뿐.
‘나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성인군자가 아니야.’
그러므로 아일라의 칭찬은 내게 민망함만 안겨 줄 뿐이었다.
“아니.”
하지만 아일라는 그런 내 말을 부정했다.
“비록,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결과적으로 너의 행동 덕에 세상은 더 좋게 변화되고 있어.”
단호한 표정의 아일라가 내게 점점 다가왔다.
“MO 플랜트로 환경을 좋게 바꾸었고, 지금은 불치병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한 손을 보태고 있지. 어쩌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연산력으로 더 굉장한 일을 하게 될지도 몰라.”
가까이 다가온 아일라가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였다.
“인공지능 폰은 또 어떻고. 나는 조반니의 폰을 보며, 빠르게 발전한 기술력에 늘 감탄하곤 했어. 그런데 그런 인공지능 폰까지 네 손길이 닿아있었다니.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
“너는 그저 운 좋은 남자가 아니야. 대단한 일을 해낸 아주 멋진 남자이지.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도 네가 이런 이로운 사업을 해나갔으면 해.”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아일라의 모습에 나는 눈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신비로운 푸른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답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진심이었다.
그동안 나를 칭찬해준 사람들은, 모두 사업적으로 성공한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하지만 아일라는 달랐다. 그녀는 사업의 성공이 아닌, 나라는 인간이 이룬 것에 대해 칭찬을 해주었다.
‘아일라는 언제나 내게 답을 주고 목표를 세워 줘.’
제주도에서도, 무대 위에서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사실을 떠올리자, 나는 아일라가 다가올수록 점점 맥박이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쏴아아-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아일라의 옅은 숨소리도 들려온다.
푸른 눈동자.
그녀가 나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자동차에서 어색해졌을 때처럼, 분위기가 이상했다.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밤바다를 좋아하던 우리 아빠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 내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밤바다의 앞으로 데려오라고 말씀하셨었어.”
아일라의 간접적인 고백에 나는 잠시 사고가 멈추었지만, 이내 내 머릿속에는 아일라와의 지난 추억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나 또한….’
아우토반을 달리며, 계속해서 마음 한켠이 아쉬웠던 이유를. 그리고 그녀와 함께하고부터 그 아쉬움이 채워졌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일라….”
쏴아아-
조용히 들려오는 파도 소리.
입술은 생각보다도 더 따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