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아일라 (3)
독일의 치안은 세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좋았지만. 어두운 밤거리, 특히 인적이 드문 곳은 웬만하면 돌아다니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위험한 강도를 마주칠 수도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칼을 든 강도를 마주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강도보다 위험한 사람이 대체 누가 있느냐고.
힌트를 주자면, 그들은 강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위험한 중독자들이었다.
알콜과 마약.
이슥한 밤의 거리엔 그들과 마주칠 확률이 꽤 높았다.
강도는 그래도 제정신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었으니 대화가 가능하다. 운이 좋다면 금품만 갈취당하고, 무사히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독자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예측이 되지 않고, 감정도 급격히 변하기에. 심한 경우엔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모른다.
그러니 웬만하면 밤의 으슥한 거리는 다니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어쩔 수 없이 밤의 어두운 거리에 나가야만 한다면. 반드시 두 명 이상 동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래야 중독자들을 마주치더라도, 서로를 도와 도망칠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
그런데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퍼억-!
바로 이렇게 덩치가 크고 싸움을 잘하는 비서를 고용하는 것이다.
“으… 으…!”
정신을 잃어, 축 늘어진 마약쟁이를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친 자비르가 중얼거렸다.
“후우… 이 정도면 됐나?”
밤눈이 밝은 그는 어두운 밤바다의 주변을 살펴보며, 윤현민 사장님의 주위에 위협이 될 만한 요소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이제 괜찮은 것 같네.’
아까 문자로 경호를 부탁한다는 지시사항을 받았을 땐, 사장님이 괜한 걱정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킬에 도착하여, 이슥한 밤이 찾아오니. 어둠 속에서 하나둘 쓰레기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이 쓰레기 중 한 명은 사장님 옆의 아름다운 여성분을 보며 입맛을 다시며 희롱하기까지 했다.
‘내가 오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어.’
조금 전, 입맛을 다셨던 쓰레기가 갑자기 품속에서 식칼을 꺼내 공격해왔을 땐. 뒷골목 싸움에 익숙한 자비르도 식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쓰레기가 감히 누구를 건드리려고!’
비록 알게 된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윤현민은 자비르에게 귀인이며 은인이었다.
‘사장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공사판을 돌아다니고 있었겠지.’
게다가 윤현민은 자비르의 은인을 도와주기까지 했으며, 그 자신에게도 이제껏 받아보지 못한 대우를 해주었다.
퍽-!
그런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 사장님을 건드리려 하다니. 화가 치밀어 오른 자비르는 기절한 마약쟁이를 한번 더 걷어찼다.
‘마음 같아선 당장 이 쓰레기들을, 미수죄로 신고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일이 복잡해지겠지.’
강도든 뭐든 미수죄가 성립되려면, 목격자의 증언이 필요할 터. 하지만 유일한 목격자인 자비르는 사장님의 경호를 맡아야 했기 때문에, 증언을 위해 경찰서에 동행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자비르는 쓰레기들의 품을 뒤져, 멀쩡한 핸드폰을 찾아 꺼내 들었다.
“여기 마약범들이 기절해 있는데요. 위치는….”
그는 유창한 독일어로 기절한 놈들의 위치를 알려주곤, 이동하기 시작한 윤현민을 따라 그대로 현장을 벗어났다.
‘그나저나 사장님도 대단하시지. 어떻게 저런 미녀를….’
자비르는 윤현민이 스타더스트의 멤버들과 만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그의 옆에 있는 미녀가 그 리더인 아일라일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자비르는 매우 놀라워하며, 윤현민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제가 잘 보호해드리겠습니다, 사장님.’
그렇게 자비르가 사라진 바닷가에는, 잠시 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그런데.
“어? 이 녀석, 설마…!”
쓰러진 마약쟁이 중 한 명의 얼굴을 확인한 경찰관이 크게 놀라며, 즉시 수갑을 채우며 동료 경찰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누, 누가 차에 가서 수배지 좀 가져와 줘!”
“왜? 무슨 일인데?”
“빨리! 확인 좀 해보게!”
“확인? 무슨 확인?”
“여기 쓰러져 있는 이 자식, 아무래도 수배 중인 카를 먼츠인 것 같아!”
“뭐?!”
그 말에 가까이에 있던 동료 한 명이 다가와 범인의 얼굴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 자식. 카를 먼츠야.”
“뭐? 진짜라고? 아니, 이 자식이 대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야?”
카를 먼츠는 몇 달 간격으로 부녀자를 세 명이나 죽인 연쇄살인범이었다.
그동안 경찰들은 카를 먼츠를 잡기 위해 지난 몇 달간 고생했으나, 신출귀몰한 이 살인범을 놓치기 일쑤였다.
‘그런 살인범을 패서 기절시켜놓다니….’
‘대체 누구지?’
경찰들의 머릿속에 그러한 의문이 들고 있었을 때, 카를 먼츠의 주변을 살피던 안경을 쓴 경찰이 뭔가를 발견했다.
“이 자식, 오늘도 살인을 저지르려 했던 모양입니다.”
“뭐?”
안경을 쓴 경찰이 들어 올린 것은, 두 뼘 정도 되어 보이는 길이의 식칼과 기괴하게 생긴 가면이었다. 그것을 본 경찰관들은 확신했다.
‘카를 먼츠가 분명하다.’
목격자의 진술에 의하면 카를 먼츠는 살인을 할 때, 저 새하얀 가면을 뒤집어썼다고 했었다.
‘우리 프로파일러가, 카를 먼츠는 영화 할로윈에 나오는 살인귀의 모습을 따라 하는 것 같다고 했었지.’
그렇다는 것은 그 익명의 신고자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정말 이곳에서 또 다른 살인 사건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이건 가만히 있을 수 없겠어.’
기절한 카를 먼츠를 연행하던 경찰들은 생각했다. 더 큰 피해를 막아 준 이 의인을 찾아 꼭 포상해야겠다고.
한 편, 그 시각.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윤현민과 아일라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함께 거리를 걷고 있었다.
***
마주 잡은 두 손이 어색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조금 전에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겹쳐졌던 입술이 떠오른 나는, 방금 있었던 일이 너무나 꿈만 같았다.
‘내가 아일라와….’
역시 말이 안 되었다. 아무리 내가 나름 유명해졌다지만, 스타더스트의 리더인 그녀의 명성에 비할 바는 안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아일라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다. 나 또한 그런 아일라가 좋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마주 잡고 있었다.
태어난 곳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우리가 이렇게 만나 서로 좋아하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때, 만약 내가 로또에 당첨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나는 아일라와의 이런 인연이 발생하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신기해.’
그러므로 나는 지금 손끝에서 전해오는 그녀의 온기가 너무 신기했다.
“무슨 생각해?”
아일라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배시시 웃는다. 그 모습에 나도 덩달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행운아라는 생각을 했지.”
“왜? 나랑 연인이 되어서?”
“응.”
“헤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일라는 나의 행운이 이어준 인연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특별한 인연을 소중히 하고 싶었다.
‘언제까지나.’
우리는 계속해서 밤거리를 걸으며 이곳저곳을 구경하였다. 마음 같아선 특별한 곳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싶었으나, 그러기엔 밤이 너무 늦었다.
하지만 그냥 이렇게 아일라와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나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현민, 저것 좀 봐봐.”
그러던 중, 아일라가 가리킨 곳은 수많은 동전이 떨어져 있는 어떤 분수대였다.
“저거 그거 아니야?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분수?”
아일라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이제 너무 식상하지.”
“그럼 저 분수는 달라?”
“응. 분수대 옆에 기다란 막대기 보이지?”
아일라가 가리킨 곳에는 그녀의 말대로 기다란 막대기가 있었는데, 막대기의 끝에는 자그마한 집게가 달려 있었다.
“저 기다란 막대 집게로 동전을 건져 올리는 거야.”
“동전을? 왜?”
“저 수많은 동전 중에는 특별한 동전이 극소수 섞여 있어. 그리고 그 동전을 주운 사람에겐 큰 행운이 깃든다고 해.”
“…그래?”
행운이라니.
지금도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중이다.
‘심지어 우리 집에도 행운이 깃든 물건이 두 개나 보관되어 있는데.’
하나는 예전에 원장님께 받았던 옴 펜던트. 그리고 다른 하나는 케빈의 할아버지가 주셨던 행운의 반지였다.
그러니 나는 굳이 저 동전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새 막대 집게를 든 아일라가 동전을 건져 올리곤 실망하는 모습에. 나는 곧장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너도 해보려고?”
“응. 아일라, 잘 보고 있어.”
아일라의 말에 따르면, 이 분수대의 동전을 건져 올릴 기회는 오직 한 번뿐이라고 하였다.
그 이상 도전하게 되면 설사 행운의 동전을 건져 올리더라도, 곧바로 행운이 사라진다나.
‘하지만 한 번이면 충분하지.’
나는 별 고민 없이 집게를 물속에 집어넣었다 건져 올렸다. 그리고 집게의 끝에 딸려 나온 그것은.
“오오!!!”
빛나는 은빛의 동전이었다.
아일라는 호들갑을 떨며, 그 은빛의 동전을 집어 들었다.
“현민!”
“그게 행운의 동전이야?”
“맞아, 그런데….”
“그래? 하하! 운이 좋았네!”
“아니, 그렇긴 한데…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잘못되었다는 소리에 나는 무심코 아일라의 손에 들려있는 동전을 보았다.
“…어?”
“그치? 이상하지?”
이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일라의 손에는 똑같은 행운의 동전이 무려 두 개나 들려있었으니까.
“이거… 진짜 행운의 동전이 맞아.”
“그래?”
“그렇다는 얘기는….”
마침내 상황을 파악한 아일라가 뛸 듯이 기뻐했다.
“와아! 하나도 건지기 힘든 동전을 무려 두 개나 건지다니!”
“하하. 운이 좋았네.”
“역시, 현민은 대단해!”
아일라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자, 여기.”
나는 아일라에게서 받은 행운의 동전 중 하나를 내밀었다.
“하나씩 나눠 가지자.”
“정말? 고마워, 현민.”
내게는 별로 필요 없는 동전이었지만, 아일라가 저렇게 즐거워하니 건져 올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우웅-
그때, 아일라의 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매니저님이네.”
그런데 아일라는 물끄러미 핸드폰을 바라볼 뿐, 계속해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매니저님이라며? 받아야 하지 않아?”
“음… 잠깐만.”
아일라는 잠시 뭔가를 고민하더니, 이내 결론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받았다.
“매니저님, 저 오늘 숙소에 안 들어갈 거예요. 네네. 당연히 내일 일정엔 지장 없도록 해야죠. 알겠어요. 그럼 이만 끊을게요.”
그런 아일라의 말에 가장 놀란 것은 아마도 나일 것이다.
‘숙소에 돌아가지 않는다고?’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머릿속에 온갖 상황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현민.”
통화를 종료한 아일라가 내게 다가온다.
“그거 알아?”
상기된 표정으로, 아일라가 내게 물었다.
“우리 와인 많이 마셨잖아.”
“…그랬지?”
“그럼 운전할 수 없겠지?”
“아….”
내가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아일라와 함께 하는 시간이 설레어서, 돌아가기 위해선 와인을 마시면 안 된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독일의 아우토반엔 가로등이 거의 없어.”
“…그래서?”
“설사, 와인을 마시지 않았더라도. 밤에 아우토반을 통해 함부르크로 돌아가기엔 매우 위험했을 거란 소리지.”
아일라가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는 옅은 홍조가 피어올라 있었다.
“그럼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
환한 달빛이 우리를 비추었을 때.
나는 대답 대신 아일라의 손을 이끌고 어디론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