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13
13화 나 예전의 윤현민이 아니야
검은색과 파란색의 넥타이를 한, 두 명의 남자가 흡연장에서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소문 들었어? 영업 3팀의 윤현민 대리 말야.”
“아, 와인 사건? 듣긴 들었지. 근데 나는 그거 안 믿어. 그 윤 대리가 1,000만 원짜리 와인을 깨뜨린 상황을 수습했다니. 말이 안 되잖아.”
한껏 비웃는 파란 넥타이를 향해 검은 넥타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거 말고. 이번에 신설되는 팀 있잖아.”
“패션 사업팀?”
“그래, 그 특별 프로젝트팀. 거기에 윤현민 대리도 참여한다더라고.”
파란 넥타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그게 말이 돼? 영업 팀에서는 이미 한 명 차출되었잖아.”
“그래, 김태진 대리님이 자원하셨지.”
“그럼 영업 팀에서만 2명이 차출되는 거야?”
“정확히 말하자면, 영업 2팀과 영업 3팀에서 차출되는 거지.”
“그게 그거지. 같은 영업부잖아.”
검정 넥타이가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긴 하지. 아무튼 중요한 건, 지금 이게 우리가 봐도 조금 이상한 상황이잖아? 윤 대리와 앙숙이던 그 오 팀장님이 왜 윤 대리를 강력하게 추천하겠냐고. 그것도 다른 분들하고 싸우면서까지 말이야.”
검정 넥타이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낮아졌다.
“그게 사실은 윤 대리가 오 팀장님 약점을 잡아 협박했다는 것 같아.”
검정 넥타이의 말에 헛숨을 삼킨 파란 넥타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어쩐지. 오 팀장님이 윤 대리를 얼마나 싫어했는데. 왜 요즘 윤 대리 칭찬을 하고 다니나 했더니, 그게 다 이유가 있었군.”
“윤 대리 눈치를 보느라 그런 거지. 그게 아니면 그 중요한 미팅에 왜 갓 복귀한 윤 대리를 데려갔겠어.”
“아? 그럼, 설마 와인 사태를 해결했다는 것도?”
검정 넥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 대리가 일부러 소문을 낸 거겠지. 자기의 안 좋은 이미지를 억지로 변화시키려고.”
“와, 윤 대리.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겉만 잘 꾸미고 다닌다고 해서 사람 속이 바뀌지는 않을 것 아냐. 능력도 없어서 맨날 구석에 쭈그려있던 놈이, 넉 달 만에 갑자기 바뀌는 게 말이 돼?”
“그렇지, 그렇지. 말이 안 되지.”
“아무튼, 그 새끼랑은 앞으로도 상종을 하지 말자고. 엮였다간 우리도 무슨 약점이 잡힐지 몰라.”
파란 넥타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털어 넣었다.
“김태진 대리님만 불쌍하게 되셨네. 누구는 능력껏 기회를 잡았는데, 누구는 꼼수로 자리를 차지했으니까.”
“뭐, 금방 들통나겠지. 억지로 자리를 차지했어도, 능력도 없는 놈이 거기서 일이나 제대로 하겠어? 하하.”
“그렇네.”
두 남자가 흡연장을 떠난 후, 숨어서 몰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태진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나타났다.
‘그래, 말도 안 되지.’
그는 며칠 전에 오 팀장과 이야기 나눴을 때를 떠올렸다.
-진짜 대단했다니까?
-에이, 농담이시죠? 그 윤현민이 어떻게….
-아냐, 정말이래도. 배짱이 아주 대단했어. 함중훈 회장님도 칭찬하셨다니까.
-…그래요? 이상하네. 어떻게 그렇게 사람이 확 바뀌… 아! 한유경 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 당시에 한유경 대리는 우연히 지나가다 오 팀장과 김태진이 나누던 대화를 들었고. 작게 한 마디를 중얼거렸었다.
-역시….
‘역시’라니. 그건 마치 한유경 씨가 윤현민의 변화에 대해 진작 알고 있었다는 뉘앙스가 아닌가.
‘…설마, 둘이 사적으로 만나고 다니나?’
사람은 연애를 시작할 때, 겉모습이 확 바뀌기도 한다. 그러니, 최근 윤현민의 극적인 변화가 한유경과 관련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거슬려…. 한낱 들러리 주제에.’
김태진은 이유 모를 짜증에 담배 연기를 흠뻑 빨았다. 그것은 윤현민에 대한 질투였으나, 김태진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소문을 더 퍼뜨려야겠어.’
자신에게는 사내에 넓은 인맥이 있었으니,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러고 보니, 이번 프로젝트에 한유경 씨도 포함되었다고 했었지.’
김태진은 몇몇 상사들에게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있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 윤현민이 아무리 발전했다 하더라도, 겨우 4개월의 노력으론 자신에게 미치니 못할 것이었다.
‘회장님과의 미팅을 성공적으로 끝냈다고? 흥! 운이 좋아서였겠지. 그게 실력이었겠어? 악의적인 소문과 윤현민의 능력 부족을 보여 준다면, 한유경 씨도 놈에게 실망할 거야.’
김태진은 윤현민을 다시 들러리로 만들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번 프로젝트에 팀원으로 오시게 되는 부장님과 팀장님에게도 윤현민에 대한 의혹을 심어드리자.’
이것은 윤현민을 곤란하게 만들 때 종종 써먹었던 방법이었다.
‘윤현민이 오 팀장님에게 미움받게 된 이유였지.’
툭.
재떨이에 꽁초를 날린 김태진이 곧장 두 분을 찾아 건물 안으로 돌아갔다.
‘반지하 방에나 사는 카푸어 새끼. 능력도 부족하면서 벤츠나 끌고 말이야. 사람이 분수를 알아야지.’
김태진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시간이 없었다. 당장 내일이 바로 특별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날이었으니까.
***
아침이 밝았다.
‘드디어 오늘인가.’
오늘부터 당분간 나는 새로운 사무실로 출근한다.
‘패션이라….’
사실 나는 패션에 관한 것은, 잘 몰랐다. 회사에서야 항상 양복만 입고 다니고, 평소에도 만나는 사람이 없기에 패션에는 신경을 잘 안 썼다. (참고로 상필이는 얼마 전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며칠간 공부를 하긴 했는데.’
솔직히 봐도 잘 모르겠다. 옷이라는 것은 그냥 몸만 가리면 되는 것 아니던가.
‘뭐, 어떻게든 되겠지. 팀원으로 누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디자인을 맡을 테고. 나야 할 줄 아는 걸 하면 되겠지.’
생산 업체와의 계약이라던가, 옷감의 수급 같은 것들을 내가 도맡아 하면 될 것이다.
‘지금 몇 시지?’
시계를 확인하니 오전 7시였다.
‘오늘은 좀 여유롭게 출근해 볼까.’
아무래도 새 팀원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 혹시라도 늦어서 밉보일 수는 없었다.
부릉-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시동음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액셀을 밟았다.
부앙-
이른 아침의 도로는 꽤 한적했다. 아무래도 오전 7시부터 출근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개포동 일대를 지날 때였다.
‘…어?’
개포동역 근처의 건물 사이.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어두컴컴한 골목에 시선이 간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사람이잖아!’
어둑한 골목에, 한 아주머니가 쓰러져 있었다.
끼익-!
나는 즉시 길가에 차를 멈춰 세우고, 아주머니에게 달려갔다.
“아주머니! 괜찮으세요!”
큰소리로 아주머니를 부르며 몸을 흔들어 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안색이 창백해…!’
게다가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나는 얼른 코트를 벗어, 아주머니에게 덮어드리고, 곧장 119에 연락했다.
“여보세요! 여기 개포동역 근처인데, 사람이 쓰러져있어요!”
나는 전화를 받은 구급 대원에게 상황과 아주머니의 증상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구급 대원은 아무래도 뇌졸중 같다는 답변을 해왔다.
‘진짜 뇌졸중이면 한시가 급하잖아!’
뇌졸중의 골든 타임은 3시간이다. 그 시간이 지나버리면 큰 후유증이 남아버리고 만다.
‘시간이 없다.’
나는 구급차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직접 일성 병원으로 향하겠노라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곧바로 아주머니를 들어 올려 뒷좌석에 눕혔다.
부아앙-!
천만다행히도 일성 병원까지는 5분 정도의 거리였다.
병원에 도착한 나는 곧장 아주머니를 안아 들고 응급실로 달렸다.
“도와주세요!”
심각한 상황을 인지한 의료진이 달려왔고, 나는 곧장 증상들과 아까 구급 대원에게 들은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MRI와 CT를 찍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보호자 분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 저는….”
나는 가족이 아니라고 말하려 했으나, 의료진이 서두르는 바람에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 어차피 이대로 출근한다 해도 종일 찝찝할 거야.’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7시 45분.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그래, 조금만 기다려보자.’
결과는 생각보다도 훨씬 늦게 나왔다. 하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다행히 빠르게 응급실로 와주셔서, 큰일은 면했습니다. 혈전 용해제를 처방했으니, 곧 깨어나실 겁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따라오세요, 환자분이 계신 곳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뇨, 저는 그분의 가족이나 지인이 아닙니다. 길 가다 우연히 발견하고 모셔온 겁니다.”
“네에?”
간호사는 좋은 일을 하셨다며 나를 칭찬해주었다.
“그럼 저는 이제 가봐도 되는 거죠? 제가 출근 시간이 늦어서요.”
“네, 그러세요. 아! 혹시 전화번호를 남겨두시겠어요? 환자분이 깨어나시면, 아마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 하실 거예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요.”
꾸벅 고개를 숙인 나는 곧장 회사로 향했다.
***
‘이런.’
회사에 도착하고 나서야, 응급실에 지갑이 든 코트를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따 퇴근하고 다시 병원에 들러야겠네.’
두고 온 코트가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 출근이 먼저야.’
띵!
평소에 내리는 9층이 아닌, 15층에서 내린 나는. 새로운 사무실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오오?’
한쪽에 비치된 형형색색의 옷감들, 예쁘고 깔끔한 옷이 입혀진 마네킹 등.
칙칙하고 딱딱한 영업팀의 사무실보다 조금 더 자유분방한 모습이 강조되어 보였다.
‘패션 사업팀이라 일부러 이렇게 꾸민 건가? 창의력이 확 올라가는 느낌이긴 하네.’
단기간에 사무실 하나를 통째로, 그것도 이렇게나 신경 써서 차려줄 정도라는 것은. 회사가 얼마나 이 사업에 관심이 많은지에 대한 방증이었다.
“어? 윤현민 씨?”
그때, 등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한유경 씨가 여긴 어떻게?”
“저는 회의 자료를 챙겨오라는 지시를 받아서… 잠깐, 설마 윤현민 씨도 패션 사업부에 팀원으로 오신 거예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한유경 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도 다행인가? 안면 있는 사람과 같이 일하게 되었으니.’ 따위의 생각을 하던 내게, 한유경 씨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근데 왜 이제 오셨어요?”
“…네?”
나는 곧장 시계를 확인했다.
“저 지각 안 했는데요?”
“아니,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으니까 패션 사업팀은 30분 일찍 출근하라는 부장님의 문자 못 받으셨어요? 이미 다들 회의실에 모여 계세요.”
“…예? 그런 문자는 못 받았는데…”
내가 곧장 수신한 문자들을 확인하고 있을 때, 한유경 씨가 곧바로 내 손을 이끌었다.
“이럴 시간 없어요. 빨리 회의실로 가요.”
벌컥!
“…….”
한유경 씨를 따라 회의실로 들어선 나는 곧장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왔으면 앉으세요. 멀뚱하게 서 있지 말고.”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 새로운 팀원들을 마주했다.
그런데 내 착각이었을까.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묘하게 차가웠다.
“쯧, 첫날부터.”
고집스러운 인상에 혀를 차는 분은 아마 과장님인 듯 보였고, 차가운 인상의 회의를 주도하고 계셨던 분이 부장님으로 보였다.
그리고.
“대단하네, 우리 윤현민 씨. 뭘 믿고 그렇게 막 나가실까.”
내가 옆자리에 앉자마자 김태진이 들릴 듯 말 듯 하게 빈정대었다.
‘아하.’
나를 보자마자 김태진이 내 속을 살살 긁는 것을 보니, 어떻게 된 일인지 알수 있었다.
‘이 녀석이 상사분들을 이용하여 내 기를 죽이려 했나 본데.’
이건 예전부터 녀석에게 종종 당했던 수법이었다.
‘그때는 멋모르고 그냥 당했었지. 상사들 눈치를 보느라 오해도 못 풀고, 나중에 변명하려 해도 상사들 탓을 하게 되는 것 같아 망설여지니까.’
상사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을수록 조심하다가 결국 진실을 말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 고약한 수법이었다.
‘아무래도 우리 동기님이 나와 일하는 게 엄청 싫은 모양인데, 미안해서 어쩌냐. 나 예전의 윤현민이 아닌데.’
이제 나는 조금 더 막 나갈 수 있거든.
번쩍!
내가 손을 들어 올리자, 부장님이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윤현민 씨, 무슨 할 말 있나요?”
“회의에 앞서 오해를 풀고 싶습니다.”
“…오해라뇨? 그게 무슨 말이죠?”
나는 핸드폰 문자 보관함을 열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보시다시피 저는 오늘 30분 일찍 출근하라는 부장님의 문자를 받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제가 회의에 일부러 늦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부장님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여전히 불신이 묻어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더욱 확신하며 말했다.
“아니면 혹시 제가 마음에 안 드셔서, 일부러 문자를 안 보내주신 걸까요? 어딘가에서 저에 대한 어떤 안 좋은 소문이라도 들으셨나 보네요.”
“…뭐라고?”
차갑게 굳는 부장님의 얼굴.
회의실의 분위기도 따라서 얼어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평온할 뿐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아야지. 왜 눈치를 봐.’
미움?
이제 그런 것은 딱히 신경 쓰이지 않는다. 나는 오로지 내가 원하는 대로만 행동할 뿐이다.
‘회사 생활 재밌네.’
입을 살짝 벌리며 놀라고 있는 김태진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