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오스트리아 (1)
지난번 LA 여행에서 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자, 준비하시고. 하나, 둘!”
다름 아닌 스쿠버다이빙이었다.
나는 강사의 지시에 따라 곧장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풍덩!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차가운 물이 몸에 닿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내, 몸이 수온에 점점 적응하자. 상상만 했던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우와.’
푸른 바다, 선명한 색의 해초. 그리고 그사이를 헤엄쳐나가는 형형색색의 물고기 무리가 무척이나 신비로웠다.
‘따뜻해.’
점점 따듯해지는 수온을 느끼며, 나는 앞으로 헤엄쳐나갔다.
‘생각보다 재밌는데?’
바닷속에서 나는 마치 예전에 제주도에서 패러 글라이딩을 체험해보았을 때 느꼈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무중력의 자유로움.
나는 오리발을 흔들 때마다, 그 황홀한 감각에 점점 빠져들었다.
‘오길 잘했네.’
9월 말. 가을이 다가오며 쌀쌀해져 가는 날씨에 스쿠버다이빙을 하자는 아일라의 제안에, 추운 것을 싫어하는 나는 조금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스쿠버다이빙을 경험해보니, 아일라의 제안을 받아들이길 잘한 것 같았다.
‘응?’
저 멀리, 아일라가 기다란 금발 머리를 흩날리며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 또한 손을 흔들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보글보글.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하기 전, 강사에게서 배운 간단한 수화를 통해. 우리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저쪽으로 가보지 않을래?]아일라가 가리킨 방향을 보니, 강사가 미리 지정해준 구역의 경계였다.
[오케이.] [그럼 내가 앞장설게, 잘 따라와.]처음인 나와는 달리, 아일라는 몇 번의 스쿠버다이빙 경험이 있었기에. 그녀는 매우 익숙한 동작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빠르다…!’
나를 배려하여 천천히 헤엄치는 것이 분명한데도, 나는 아일라를 따라잡기가 무척이나 버거웠다.
‘후욱… 후욱….’
숨이 가빠오고, 뇌에선 더 많은 산소를 내놓으라며 아우성이었지만. 나는 이런 것에도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앞서가는 연인을 쫓는다는 것은, 마치 둘만의 술래잡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오기와 끈기로 아일라를 쫓아가자 펼쳐진 광경은,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와…!’
아까의 감탄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것에 대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경이로운 장면을 목격하며 저절로 새어 나오는 그런 감탄이었다.
‘바닷속에 숲이 있어…!’
눈앞에는 마치, 열대 우림의 거대한 나무를 연상하게 만드는 갈조류(해조)가 군락을 이룬 숲이 있었다.
‘이걸 켈프 숲이라고 부른다 했었지?’
나는 해류에 일렁이는 에메랄드빛의 켈프 숲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아일라, 진짜 예쁘지 않…. 아일라?]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아일라가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순간 철렁한 나는, 재빨리 헤엄을 치며 아일라를 찾아 헤맸다.
‘아일라!’
물 속이라 소리를 지를 수도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눈으로 아일라의 행방을 쫓는 것뿐이었다.
‘어디로 간 거야?!’
그럴 리는 희박하지만, 혹시라도 내가 잠깐 한눈을 팔았을 때. 무언가 나쁜 일이 발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설마, 실수로 강사가 말한 지역을 벗어난 건 아니겠지?’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켈프 숲을 구경하다가 깜빡하고 경계를 벗어났을지도 모르는 일.
‘강사가 이 경계를 벗어나지 말라고 한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거야.’
아일라에게 사고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다급한 손으로 켈프 숲을 헤쳐나갔다.
[왁!]그때, 울창한 켈프의 사이에서 숨어있던 아일라가 갑자기 튀어나와, 나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어때? 놀랐어?!]배시시 눈웃음을 짓는 그녀에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다.
[놀랐잖아, 아일라.] [히히, 재밌다. 현민을 놀리는 게 제일 재밌어.] [뭐어? 안 되겠다. 혼나야겠어. 이리 와!] [꺄악!]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우리는 스쿠버다이빙 체험이 끝날 때까지 쫓고 쫓기는 연인들의 술래잡기를 하였다.
‘아, 행복해라.’
.
.
.
“재밌었어!”
샤워장을 나온 아일라가 개운하다는 듯이 기지개를 켰다.
“현민, 배고프지 않아? 우리 뭐 먹으러 가지 않을래?”
“그래, 좋아.”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먹고 싶은 거 있어?”
“음… 바비큐 립 어때?”
방금까지 물놀이를 하고 와서 그런지, 나 또한 포만감이 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던 터라. 나는 아일라의 의견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우리는 작고 허름하지만, 근처에 있던 바비큐 립 식당으로 향했다.
“주문하신 바비큐 립 나왔습니다.”
주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에 세팅 된 바비큐 립은, 미국답게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맛있어!”
부드러운 육질 속에서 팡팡 터지는 육즙의 향연에 우리는 정신 없이 식사했다.
“…어?”
그런데 그때, 지나가던 커플이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 그 TV에 나오는 윤현민이라는 사람 아니야?”
“에이, 설마. 그 사람이 왜 이런 가게에 오겠냐.”
“아니야, 맞는 거 같은데? 게다가 그 옆에는 그 스타더스트의 아일라 아니야?”
“무슨 소리야? 그 사람도 이런 가게엔 오지 않겠지. 게다가 그 둘이 왜 같이 저녁을 먹고 있겠어?”
“그런가? 하긴, 그렇겠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봐.”
그렇게 커플이 떠난 후, 아일라가 내게 말했다.
“이제 너도 마스크를 챙겨 다녀야겠는데?”
그녀의 말대로 해야 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아까 우리와 함께 스쿠버다이빙 체험을 하러 왔던 사람들이 나를 보고 긴가민가한 표정을 짓지 않았던가.
‘유명해지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네.’
연예인은 사생활이 없다고 들었었지만, 설마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면 아예 유명세를 즐기는 건 어때?”
“어떻게?”
“그냥 사람들이 알아보고 다가오든 말든, 대놓고 다니는 거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도 있잖아.”
그것은 안 될 말이었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왜? 귀찮은 일이 생길까 봐?”
물론, 그런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아일라가 나와 깊은 관계라는 것이 알려져선 안 돼. 자칫하다간 나 때문에 아일라의 경력이 망가질지도 몰라.’
아일라는 세계적인 밴드의 리더였다. 그런 그녀가 나와 연관이 되어버리면, 루머 퍼뜨리기 좋아하는 이들의 먹잇감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음악을 행복하게 즐길 수 없게 될지도 몰라.’
스타더스트에게도 안티팬은 존재했다. 그들은 어떻게든 스타더스트의 구설수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요즘 유명세를 타고 있는 나와 연관이 되는 순간 어떻게 되겠는가. 곧바로 안티들의 기세가 더욱 거세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는 것이 맞아.’
“무슨 생각을 하길래 표정이 그렇게 심각해?”
물론, 아일라 본인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아냐, 아무것도.”
“그나저나 우리 내일 오스트리아로 떠나는 게 맞아?”
“어, 맞아.”
“그래? 그럼, 현민은 내일 떠나기 전까지 미국에서 할 일은 다 했어?”
그 말에 나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하나하나 짚어보았다.
‘먼저 상필이의 회사는 순조롭게 설립되었어. 직원들도 무난하게 뽑았지.’
레드 호크.
상필이의 게임 회사는 설립이 되자마자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게 되었는데, 상필이가 인공지능 에보를 개발한 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하는 인공지능인 에보를 개발할 정도의 실력자인 상필이가, 얼마나 대단한 게임을 만들어 낼지. 대중들은 큰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
인공지능 개발과 게임 개발은 그 영역이 달랐으므로, 게임을 만들어 본 적 없는 상필이가 제대로 된 게임을 개발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는 게 그 이유였다.
다만, 상필이의 회사인 레드 호크를 설립하는데, 내가 큰 도움을 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의구심이 상당히 사라지게 되었다.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명의 덕을 보게 될 줄이야.’
덕분에 상필이는 현재 아무런 걸림돌 없이, 순조롭게 회사를 운영해 나가고 있었다.
‘…미국에서 꼭 해야 하는 일 두 번째는 곽수정 씨의 연구 결과 발표였지.’
데이비드 씨의 탈모 치료제 이슈에 묻혀서 그렇지, 그녀의 연구는 노벨 의학상을 노려봐도 좋을 정도로 무척이나 대단한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탈모 치료제 이슈를 덮고 곽수정 씨의 연구를 효과적으로 발표할 수 있을지 밤낮으로 고민했었는데.’
의외로 이 문제는 우연한 곳에서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설마, 탈모 치료제 때문에 연구소를 찾아왔던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몰랐었어.’
그 사람은 크리스라는 이름의 30대 남성이었는데. 그는 새로이 발견된 희귀 의학 정보 등을 공유하는 웹사이트의 운영자였다.
‘웹사이트 하루 방문자만 수만 명이라고 했었지.’
크리스는 자기 웹사이트에 올릴 탈모 치료제의 추가 정보를 요구하기 위해 나를 찾아왔었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된 곽수정 씨의 연구 자료에 흥미를 보이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사이트에 게재된 곽수정 씨의 연구는, 굉장히 유명해졌고. 덕분에 제네시스 라이프 랩의 주가도 한 번 더 상승하게 되었지.’
미국에서 반드시 해야만 했던 일 두 가지는 이렇게 완벽히 해내었다.
“응, 다 끝냈지.”
“잘 됐다! 그럼 마음 놓고 오스트리아로 놀러 갈 수 있겠네.”
“응. 그런데 말야, 아일라.”
“왜?”
“아니야.”
“응? 뭐야? 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런 얼굴을 하는 거야?”
“얼굴? 내 얼굴이 어때서?”
“마치 재미난 장난을 치기 직전인 6살짜리 꼬마애 같은 표정을 짓고 있잖아.”
비유가 너무 찰떡같았다.
실제로 나는 내일 깜짝 놀라는 아일라의 모습이 보고 싶었으니까.
‘아직 아일라는 내가 전용기가 있다는 사실을 몰라.’
그러니 과연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나는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혀, 현민?”
예상대로 아일라는 입을 반쯤 벌린 채, 넋이 나가 버렸다.
아일라가 이렇게나 놀라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나는 몰래 그녀의 사진을 찍어놓았다.
찰칵.
‘나중에 놀려줘야겠다.’
그렇게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전용기에 오르기 시작했다.
.
.
.
약 12시간 후.
“자기! 진짜 최고였어!”
전용기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맛본 아일라는, 무척이나 만족해했고. 늘 나를 이름으로 부르던 그녀는 드디어 처음으로 ‘자기’라는 호칭을 쓰기 시작했다.
“일단 숙소로 갈까?”
“그래, 좋아.”
관광하더라도 무거운 짐을 들고 움직이긴 힘들었으므로, 우리는 먼저 예약한 호텔로 향하려 했다.
“자기, 저기 좀 봐!”
아일라가 내 소매를 잡아당기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소원을 이뤄주는 분수래!”
그것은 입구가 무척이나 좁은 호리병을 들고 있는 어린 천사의 동상이 있는 분수였다.
“저 호리병에 동전을 넣으면 소원이 이뤄지나 봐. 우리 저거 해보자.”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아일라가 쪼르르 달려갔다. 나 또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간다.”
눈을 감고 소원을 빈 아일라가 호리병을 향해 동전을 튕겼다.
팅!
풍덩!
하지만 결과는 역시나 실패였다.
‘입구가 저렇게나 좁은데, 쉽게 성공할 수 있을 리가 없지.’
호리병의 입구는 동전 하나가 겨우 들어갈 듯한 크기였다.
“이런….”
아일라가 울상을 지었다.
“무슨 소원을 빌었는데, 그렇게 침울해졌어.”
“앞으로의 우리 행복을 빌었지….”
“응?”
“동전을 넣는 데 실패했으니, 우리는 앞으로 행복해질 수 없는 걸지도….”
그건 안 될 말이었다.
“아일라, 동전 하나 줘 볼래?”
나는 아일라에게서 동전 건네받은 뒤, 잠시 그녀처럼 눈을 감고 우리의 행복을 빌었다. 그리고 그대로 호리병을 향해 동전을 튕겼다.
팅!
높게 호선을 그린 동전은 호리병의 입구에 맞고 튕겨 나왔다.
“아…!”
아일라의 탄식이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런데.
팅… 팅… 팅…! 탁!
튕겨져 나간 동전이 다시 그대로 호리병의 입구로 떨어지며 아슬아슬하게 빙글 돌더니, 이내 그대로 구멍에 쏙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우와!”
그 광경에 아일라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봤지? 우리 앞으로 행복할 수 있는 거야.”
“응! 자기, 대단해!”
엄지를 치켜드는 아일라의 모습에, 나는 덩달아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
윤현민과 아일라가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남자가 분수로 다가왔다.
“…….”
검은색 자켓을 입은 아랍계의 남자는 윤현민이 사라진 방향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이내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들었다.
팅!
남자가 손가락으로 튕긴 동전이 유려한 호선을 그리며 그대로 호리병에 쏙 들어갔다. 윤현민이 넣은 것보다 더 깔끔한 궤도였다.
그런데 남자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여전히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
남자가 이번에는 품속에서 여러 개의 동전을 꺼내 들었고.
팅! 팅! 팅! 팅!
한 번에 여러 개의 동전을 호리병으로 튕겼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 동전들이 모두 호리병 안으로 완벽하게 들어갔다.
‘…윤현민.’
여전히 표정이 없는 남자는, 잠시 후 윤현민이 사라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