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14
14화 그게 말이 됩니까?
“윤현민 씨는 내가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할 사람으로 보이나 봅니다?”
“…그거야 모르는 일이죠.”
“그 말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부장님은 오히려 나를 압박해왔다. 아마 보통의 대리였다면, 잘못이 없어도 알아서 기었겠지만.
“무슨 책임이요? 전 그냥 순수하게 질문한 것뿐인데요. 혹시, 제가 마음에 안 드시는지. 만약 그렇다면 무엇 때문인지 알고 싶어서요. 그래야 제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고쳐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너무도 여상한 나의 태도에 부장님은 말문이 막히신 것 같았다.
이에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부터 내게 삐딱한 시선을 보내오던 과장님이 버럭 화를 내었다.
“야, 너 미쳤어? 부장님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제가 뭘 말입니까?”
“지금 네가 부장님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있잖아!”
“만약, 어디서 근거도 없는 소문을 듣고. 저에게 선입견을 품어 부당하게 대우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나쁜 사람이 맞긴 하죠?”
“뭐야?!”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아니면 말고요. 그때는 제가 사과드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익…! 이 새끼가! 당장 나가! 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자격이 없어!”
자격이 없다고?
“그걸 어떻게 판단하시는데요. 아직 제 업무능력은 보여드리지도 않았는데.”
“태도가 불량하잖아! 그런 태도가 팀워크를 해치는 거야!”
흥분한 과장님의 얼굴이 터질 듯이 시뻘게졌다.
“팀워크는 제가 아니라 부장님과 과장님이 해치시는 것 같은데요.”
“이건 또 뭔 개소리…!”
나는 검지로 내 명치를 가리키며 과장님의 말을 끊었다.
“저, 아십니까?”
“뭐?”
“물론, 과장님이야 저를 아시겠죠. 근데 저는 과장님을 모릅니다.”
나는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 부장님에게 시선을 돌렸다.
“부장님도 모르고요. 아무리 제가 늦었다고 해도, 저를 소개하고 과장님과 부장님에 대해 알아갈 시간은 주셨어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함께 일할 팀원인데?”
“…….”
“그리고 부하 직원이 많이 늦는다면, 전화라도 해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는 게 순서 아니었을까요. 제가 미친놈도 아니고 첫날부터 일부러 지각하진 않을 테니까요.”
“그거야 워낙 회의가 급하니까…!”
“회의도 그래요. 제가 제 잘못으로 회의에 늦었다고 치죠. 그렇다고 한들, 저를 완전히 배제하고 회의를 진행하는 게 맞나요? 그럼 제가 여기에 왜 있어야 하는 거죠? 저도 회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간략하게 정리해주셨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를 향해 빈정거릴 시간에 말이죠.”
“…….”
그래, 맞다.
이건 궤변이었다.
아무리 내 말이 모두 정당하다고 한들. 이곳은 엄연히 회사이며, 나는 일개 대리일 뿐이었으니.
이것은 궤변이자, 하극상으로도 비춰질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의 모두가 말문이 막힌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나의 뻔뻔한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속으로 뭘 믿고 저렇게 나대냐고 생각하겠지.’
아마 부장님과 과장님의 눈에는 내가 정신병원을 막 탈출한 미친놈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미친놈은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지.’
실상은 회사 생활이 간절하지 않은 로또 당첨자의 될 대로 되라 식 지껄임이었지만. 저분들이 그런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이래도 제가 근거 없이 부장님을 의심한 걸까요? 제 입장에선 충분히 이상하다고 느낄 만하지 않은가요?”
“…….”
다시 시작된 내 물음에 부장님의 얼굴이 더욱 차가워졌다. 아마, 속으로 저 미친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인지도 모르겠다.
‘분위기 한 번 최악이군. 이쯤에서 한발 물러나 줄까?’
어찌 되었거나 앞으로 같이 일할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이 이상 상사들의 화를 돋우면, 정말로 프로젝트에서 제외될지도 모른다.
‘그건 곤란하지. 그래도 한번은 큰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싶으니까.’
지금이야 본인도 찔리는 게 있으니,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더 자극했다간 부장님 마음속의 방출 버튼을 누르게 될지도 모른다.
“흠… 흠…! 그러니까 저에게도 기회를 주세요.”
“뭐?”
이젠 얼굴이 시뻘게지다 못해 활화산처럼 변해버린 과장님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지금 분위기를 이따위로 곱창 내놓고, 뭐? 기회를 달라고? 지금 장난해?!”
“아까 과장님께서 제 자격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셨죠? 제 생각에 가장 중요한 자격은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나는 부장님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증명하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제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신다면. 제가 스스로 팀에서 나가겠습니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마지막으로 나는 굳은 표정의 김태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근거 없는 헛소문에 휘둘리지 마십시오.”
“…….”
잠시 부장님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셨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부장님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결국.
“…후우. 마음대로 하세요.”
부장님의 항복선언이었다.
.
.
.
부장님은 약속대로 나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차수혁 과장이다.”
“…신동윤 부장입니다. 잘 부탁해요.”
간단한 자기소개 시간을 가진 후, 부장님은 내가 오기 전까지 나누었던 회의 내용을 정리해주셨다.
“…우리는 새로운 분야에 진출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받았습니다.”
“우리 GA패션이 성공적으로 런칭되기 위해선 대중의 인지도를 확보해야만 합니다.”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이미 인지도가 있는 유명 디자이너의 브랜드와 콜라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러니까 다른 유명인의 인기에 힘입어, 우리 브랜드를 알리자는 거네.’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말이다.
‘자기만의 브랜드가 있는 유명 디자이너가 뭐하러 우리와 함께하겠어.’
디자이너가 자선사업가가 아니고, 그들이 뭐하러 신생 패션 브랜드와 콜라보를 진행하겠는가.
예산이라도 많다면, 계약금을 많이 지불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무리 거암물산에서 패션에 관심이 많다고 해도, 시험 삼아 운영해보는 프로젝트 팀에 많은 돈을 투자하진 못한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우리가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는 건데, 문제는 웬만한 조건은 먼저 진출하여 뿌리를 내린 다른 브랜드에서도 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후발주자인 우리보다 더 유리하겠지.’
그러니 유명 디자이너와의 콜라보는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그 사실을 부장님도 과장님도 알고 있는 모양인지, 별로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때, 한유경 씨가 손을 들며 말했다.
“임예진 디자이너는 어떨까요? 지금 한창 핫한 디자이너인데다, 이름을 알린 지 얼마 안 된 분이니. 그렇게 조건이 까다롭진 않을 것 같습니다.”
‘임예진?’
나는 한유경 씨가 언급한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몰랐으나, 다들 그 사람의 이름을 아는 눈치였다.
한유경 씨의 의견에 대답을 한 건, 약간의 한숨은 내쉰 부장님이었다.
“사실, 이미 회사에서 임예진 디자이너와 접촉하려고 시도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실패하고 말았죠.”
“어째선가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알려져 있던 임예진 디자이너의 이메일과 전화번호, 개인 홈페이지까지 모두 삭제되었다더군요. 그래서 현재 그분의 연락처를 알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아… 그럼 어쩔 수 없겠네요.”
한유경 씨가 약간 시무룩해진 것을 보니, 그녀도 임예진이라는 디자이너를 만나고 싶었던 모양이다.
“홍보를 위한 다른 좋은 의견이 있을까요?”
“전통적인 방법도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TV를 보는 사람의 수가 줄었다고 해도, 여전히 방송의 힘은 막강합니다. 그러니 괜찮은 MD를 섭외하여 우리 의류 상품을 판매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SNS를 활용한 홍보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마친 김태진이 한유진을 힐끔거렸다. 아무래도 홍보과인 그녀를 의식하며 내뱉은 아이디어인 모양이다.
“클래식한 접근이네요. 좋습니다. 일단, GA패션의 의류 디자인 시안이 나오면. 그 방향도 고려해서 진행해보죠.”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부장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윤현민 씨는 의견이 없습니까?”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어디 얼마나 잘난 의견을 내는지 두고 보겠다는 부장님의 의지가 느껴졌다.
“너튜브를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요.”
“…너튜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넷 방송의 규모는 예전과 달리 매우 거대해졌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TV 앞에서 지루한 광고를 기다리기보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너튜브를 봅니다.”
“…그렇긴 하죠. 그래서요?”
“유명 너튜버의 방송에 출연하여 우리 GA패션을 홍보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편이 유명 디자이너와 접촉하는 것보다 쉬울 것 같습니다. 또, 너튜버에게 줄 광고비는 디자이너나 MD보다도 저렴할 테니. 홍보비도 아낄 수 있을 거고요.”
“…무난하네요.”
부장님의 말대로 요즘 세대라면 누구나 생각할 법한 무난한 의견이었다.
“그럼 다음으로, 의류 생산 업체와 우리 제품을 디자인해줄 전문 디자이너의 계약에 관해 이야기해 봅시다.”
이어지는 회의는 그동안 해왔던 업무의 연장선상이나 다름없었다. 값을 따지고, 생산 업체를 찾아 계약하는 것은 늘 하던 일이었으니까.
“그럼 이것으로 회의를 마치죠. 아까 말 한대로 한유경 대리는 적당한 너튜버를 찾아 접촉해 보세요. 그리고 김태진 대리는 생산 업체를 찾아 보고하시고, 또 괜찮은 MD도 찾아 섭외하시고요.”
마지막으로 부장님의 탐탁지 않은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윤현민 씨는….”
이어지는 부장님의 지시사항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
일주일 후.
모두가 제 할 일을 하러 떠난 빈 사무실에 홀로 남은 신동윤 부장은. 문득, 이전 회의실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윤현민.’
들었던 소문에 의하면, 능력 없고 꼼수만 부릴 줄 아는 뺀질이라 하였다.
‘나는 정당하지 못하게 꼼수 부리는 인간을 제일 혐오하지. 차 과장님도 능력 없는 인간을 제일 싫어하고.’
윤현민은 두 상사가 싫어하는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워낙 안 좋은 소문이 여기저기 퍼져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마주한 그는 어땠던가.
‘당돌해.’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해도, 그 어떤 부하 직원이 상사들의 앞에서 당당히 제 의견을 피력할까.
능력 없고 꼼수만 부리는 인간이 그런 배짱을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미친놈이 아니고선 말이다.
‘뚝심이 있는 건가, 아니면 그냥 또라이인가.’
그것을 알고 싶었던 그는 윤현민에게 특별한 지시사항을 내렸었다.
-한유경 대리가 접촉한 너튜버보다 더 유명한 너튜버를 찾거나, 김태진 대리가 찾은 MD보다 더 능력 좋은 MD를 섭외해 보세요.
물론, 윤현민은 반발했으나. 능력을 증명하겠다고 먼저 말한 것이 본인임을 상기시켜주자. 군말 없이 지시를 받아들였다.
‘그냥 말뿐인 놈이라면, 바로 팀에서 내쫓아내고. 정말 능력 있는 놈이라면 괜찮은 사람들을 찾아오겠지.’
그렇다고 홍보과에서 능력이 출중하다고 소문난 한유경 대리나, 영업 3팀의 보배로 알려진 김태진 대리보다 잘난 사람을 찾아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두 사람도 경쟁의식을 느낄 테니, 더 열심히 할 거야.’
안 그래도 뛰어난 인재인 두 사람이 더욱 열심히 한다면, 윤현민으로서는 별수 없을 것이다.
‘두 사람과 엇비슷한 급의 사람을 찾아오면 합격. 그렇지 못하면 방출이다.’
신동윤 부장은 윤현민이 과연 어떤 사람을 섭외해 올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문자는 어떻게 된 거지? 내가 분명 회사 컴퓨터로 예약 문자를 발송해 두었었는데.’
고개를 갸웃한 신동윤 부장은 컴퓨터에 남아있는 예약 문자 기록을 확인하려 했다.
우우웅-
그때, 신동윤 부장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윤현민? 방금 외근 간다고 나간 놈이 왜 전화를…’
전화를 받은 신동윤 부장은 잠자코 윤현민의 이야기를 들었고, 이내 두 눈을 크게 떴다.
“…길을 걷다가 400만 너튜버를 섭외했고, 갑자기 유명 디자이너가 윤현민 씨를 찾아왔으며, 그 디자이너의 남자친구가 능력 좋은 MD라고요?”
신동윤 부장이 황당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게 말이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