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폴 하프만의 제안
“같이 가면 좋은데….”
잠이 덜 깬 얼굴로, 나를 현관까지 배웅해 주러 온 아일라가 못내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도 아일라가 함께 가면 좋긴 하지만, 오늘 일정은 비즈니스에 가까워서. 네가 많이 지루할 수도 있어.”
“피.”
아일라가 불만 어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 그렇지.”
그런 그녀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신 최대한 빨리 끝내고 올게.”
“…알았어.”
“밥 잘 챙겨 먹구. 나가기 귀찮으면 룸서비스 시켜 먹어. 여기 호텔 룸서비스가 평이 괜찮다더라.”
“그래.”
대답하는 아일라의 말투가 어딘가 퉁명스러웠다. 아마도 여전히 섭섭하다는 거겠지.
그런데 이걸 어쩌나.
‘그런 모습도 너무 귀여운걸.’
나는 계속 튀어나온 아일라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다녀올게.”
기습 입맞춤을 당한 아일라가 햇살에 얼음이 녹듯, 배시시 무너진다.
“헤헤. 잘 다녀와!”
평소의 말투로 돌아온 아일라의 인사를 받으며, 나는 호텔 로비로 향했다.
“사장님, 간밤에 평안하셨습니까?”
어째 날이 갈수록 한국어 표현이 늘어가는 자비르 씨에게 나도 인사를 건네었다.
“예, 자비르 씨도 잘 주무셨나요.”
“늘 배려해주셔서 팔자에도 없는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팔자라던가 호사 같은 표현은 대체 어디에서 배우는 거예요? 말만 들으면 토종 한국인이라고 착각하겠어요.”
“하하, 요즘 넷플리스에 올라오는 한국 드라마가 참 재밌더라고요.”
아, 그런 거였군.
자비르 씨의 말투로 미루어 볼 때, 아무래도 근현대 배경의 드라마를 본 모양이었다.
“여기서 노바 예술대학교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자동차로 약 40분 거리입니다.”
“지금이 정각 11시니… 약속 시간까지 여유롭게 갈 수 있겠네요.”
“네, 맞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자비르 씨에게 나는 어젯밤 구매한 선물 꾸러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오늘 아침에 렌트한 차 트렁크에 실어두었습니다.”
“벌써요?”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서요. 미리미리 준비해 놓았습니다.”
역시, 자비르 씨가 있으니 너무나 든든했다.
“감사합니다, 자비르 씨. 그럼 바로 출발할까요?”
“예. 저를 따라오십시오.”
나는 자비르 씨를 따라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음… 저 차는?’
정확한 모델명은 모르겠으나, 차량에 부착된 엠블럼을 보니 독일의 국민차라 불리우는 폭스바겐이 분명했다.
“어제 사장님께서 앞으로는 호텔이든 비행기 좌석이든 가장 비싼 것만 찾는 것을 지양하시겠다고 말씀하신 터라, 적당한 가격대의 모델로 골랐습니다.”
“잘하셨습니다.”
폭스바겐이라면 엄청난 고가의 차량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저렴한 차량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의 높아진 사회적 지위를 고려할 때, 이 정도라면 아일라가 말한 적당한 지출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출발하죠.”
“넵.”
그렇게 우리는 곧장 노바 예술 대학으로 향했다.
.
.
.
끼익-
정확히 40분 뒤, 노바 예술 대학에 도착한 나는, 폭스바겐의 승차감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기본만 하는 국민차라고 하길래, 기대하지 않았건만. 의외로 좋았어.’
가만히 앉아 있어도 구름 위에 있는 듯한 편안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피로감이 몰려오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폭스바겐이 왜 국민차라 불리는지 알겠네.’
모나지도 특출나지도 않은, 가장 적당한 자동차. 그런 표준형의 자동차를 경험하고 나니, 나는 또다시 내 안의 사업 병이 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자동차 사업을 시작한다고 하면, 미친 짓이려나.’
나는 이에 대해 노바 예술 대학의 드넓은 공터를 걸으며 고민했고, 곧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지금은 아니야.’
당분간 나는 새로운 사업 대신 주변을 돌아보며, 버킷리스트를 완성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러니까 자동차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자.’
다른 사업과 다르게, 자동차는 그냥 하고 싶다고 무작정 뛰어들 수 있는 사업이 아니었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고, 많은 자본이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자본이야 충분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시기상조야. 갑자기 좋은 기회가 생기면 또 모를까.’
그렇게 마음먹은 나였지만, 눈앞에 내가 만든 상상의 자동차가 계속 아른거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뭔가에 꽂히면, 그걸 꼭 이뤄야만 하는 성격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근처에서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딴 따라라 따안 따-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그곳엔 학생 몇몇이 잔디밭 위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소리 좋고.’
높디높은 가을 하늘의 따사로운 햇볕 아래. 바이올린을 켜며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나는 무척이나 멋있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대학교가 참 좋아 보여.’
예술 대학이라 그런지, 학교의 건물 디자인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이런 곳에서 공부한다면, 없던 예술적 감각도 살아날 것만 같았다.
“사장님, 저길 좀 보십시오.”
자비르 씨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그곳에는 몇몇 학생들이 얼굴에 물감을 묻혀가며 열심히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따 라라라- 따라라~
그뿐만이 아니었다.
피아노, 오보에, 그림, 조각 등. 고개를 돌릴 때마다, 학생들이 저마다의 전공을 뽐내며, 자신들의 꿈을 펼치고 있었다.
‘교육 환경이 참 좋아 보여.’
드넓은 잔디밭 공터에서 열심히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나는 문득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김현수 학생과 근형이도 이런 학교에 다닐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김현수 학생은 피아노가 꿈이었지만, 현실과 타협하여 적성에도 맞지 않는 공과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또한 현재 고3인 근형이는 한창 미대 입시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두 사람이 이 학교를 다닐 수 있다면, 커리어를 쌓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텐데.’
노바 대학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예술대학이었다. 그러니 예술가를 꿈꾸는 두 사람이 이곳데 다닌다면,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으리라.
‘그저 내 바람일 뿐이지만.’
세계에서 알아주는 대학인 만큼, 노바 예술 대학의 경쟁률은 어마어마했다. 두 사람은 분명 재능이 뛰어난 인재들이지만, 이곳의 문턱을 넘기엔 아직 많이 부족했다.
‘그나저나 폴 하프만 씨가 어떤 제안을 하려나.’
그는 내게 어떤 그림을 복원할 연산력을 빌리는 대신, 내가 설립하는 장학재단에 도움을 주겠다 제안했었다.
‘교환학생이라던가, 특별 전형으로 장학재단의 학생들을 입학시켜주겠다고 말해주면 참 좋을 텐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나는 노바 예술 대학 이사장실로 향했다.
***
“반갑습니다, 미스터 윤.”
폴 하프만과 만난 나는 그와 간단한 인사를 한 후에 곧장 점심을 먹게 되었다.
“딱딱한 비즈니스는 식사가 끝난 후에 하실까요?”
그런 폴 하프만의 제안 덕에 나는 그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차라도 마시면서 얘기를 나눠볼까요?”
“아, 제가 티 타임에 어울릴만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오오! 그렇습니까?”
내가 내민 디저트 선물에 폴 하프만이 기뻐하며 손수 차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건강에 좋은 다즐링 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찻잔이 굉장히 특이하네요.”
폴 하프만이 준비한 찻잔에는 처음 보는 문자가 가득 적혀 있었다.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적힌 찻잔입니다. 이 잔으로 차를 마시게 되면,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행운이라고요?”
“네. 거기 적힌 문장은 인도 행운의 여신인 락슈미가 가호를 내린다는 뜻입니다. 인도 여행에서 구매한 것인데, 제가 무척이나 아끼는 찻잔이지요.”
“오호.”
차만 마셔도 행운이 깃든다니.
나는 그런 것은 미신이라고 생각하였으나, 폴 하프만 씨는 정말로 이 찻잔 덕에 그동안 일이 잘 풀렸다고 덧붙여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 귀한 찻잔을 제게 내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그만큼 윤현민 씨가 제게 중요한 손님이니까요.”
“하하, 그런가요? 그럼 본격적으로 비즈니스 얘기를 시작해 보죠.”
고개를 끄덕인 폴 하프만 씨가 내게 대뜸 연산력을 빌리는 조건으로 바라는 것이 있는지를 물어왔다.
“바라는 거요? 흠….”
대가는 폴 하프만 씨가 먼저 제안할 것으로 생각했던 나는 살짝 당황했다.
‘대가로 뭘 달라고 하지?’
잠시 고민한 나는, 아까 노바 예술 대학의 공터를 걸으면서 생각했던 것을 저도 모르게 말했다.
“우리 장학재단 학생들에게 특별 전형 입학의 기회나, 교환학생을 신청할 기회를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막상 말하고 나니, 나는 아차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것은 굉장히 무리한 부탁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폴 하프만 씨의 대답은 매우 의외였다.
“네에?”
나는 방금 폴 하프만 씨가 한 말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뭐라고 하셨는지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미스터 윤이 설립하는 장학재단의 학생들을 특별 체험 학생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겠다고 말했습니다만.”
이 사람이 대체 뭐라는 걸까.
‘그냥 농담처럼 가볍게 이야기해본 것뿐인데.’
그것은 못 먹는 감 가볍게 찔러 보듯이 툭 내뱉은 제안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된다고?’
특별 체험 학생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교환학생이나 특별 전형 입학을 제안한 만큼 그에 준하는 제도일 게 분명했다.
폴 하프만 씨는 교환학생이나 특별 전형 입학까진 무리지만, 체험 학습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고 덧붙여 말하였다.
“그러니 넥스인텔리의 연산력을 꼭 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특별 체험 학생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 건가요?”
단순히 하루 이틀 정도 대학을 구경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라면 별로 메리트가 없다.
“당연히 그러시겠죠. 제가 말하는 체험이란 약 6개월에서 1년 정도. 우리 대학의 수업을 자유롭게 청강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오오!”
그게 어디인가.
단 1년 만이라도 양질의 수업을 받을 수 있다면, 두 사람의 실력도 훨씬 좋아질 것이 분명했다.
“아, 혹시 학점은 인정이 안 되겠죠?”
“음… 원하신다면 학점 인정이 되는 방향으로 추진해보겠습니다. 물론, 확답은 못 드리지만요.”
내가 세우려는 장학재단에 있어선 최고의 조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제도가 원래부터 있던 건가요? 특별 체험 학생이라니. 저는 처음 들어보았거든요.”
폴 하프만 씨는 내 물음에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지금부터 만들면 되지요.”
“…….”
아무리 이사장이라도 그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 분명했다.
‘대학교 내부의 절차와 정책이 있을 것이고, 교수진과 총장, 그리고 교육위원회와의 협의도 필요할 거야.’
또한 특별 체험인 만큼 우리 장학생들이 특별 대우를 받게 되는 셈인데, 이에 다른 학생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지도 모른다.
“생각지도 못한 여러 문제가 발생할 겁니다. 그럼에도, 정말 특별 체험 학생 제도를 신설하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즉답이었다.
이쯤 되니, 나는 폴 하프만 씨의 사정이 몹시 궁금해졌다.
‘대체 그 그림이 뭐길래.’
전에 자비르 씨에게 듣기로는 폴 하프만 씨가 복원하려는 그림은 어느 무명 화가의 것이라고 했었다.
‘역사 가치도, 예술적 가치도 낮은 그림을 복원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다니.’
무언가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진부한 사연이 있긴 하지요.”
폴 하프만 씨는 사별한 아내가 이 그림을 가장 좋아한 그림이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헤르만 라비올리의 ‘잊혀진 멜로디’는 비록 잘 알려진 그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아내는 이 그림을 사랑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커다란 천으로 덮여 있는 이사장실 벽면으로 향했다.
펄럭.
“이런….”
벽면의 천을 걷어내자, 곳곳이 불에 잔뜩 그을린 그림 한 점이 나타났다.
“뛰어난 복원 전문가들을 수소문해 보았으나, 그들 모두가 불에 탄 그림은 복원할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지요.”
“…….”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림 표면에 그을린 흔적을 벗겨내기 위해선, 벤젠이나 알콜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그림이 손상되거든요.”
“그렇다는 건 인공지능을 쓰든 안 쓰든, 애초에 이 그림은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아무리 인공지능이라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할 수는 없었다.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미스터 윤의 연산력으로 하려는 것은 복원이 아닌 복제를 할 생각입니다.”
“복제라면… 레플리카를 만드실 생각이시라는 거죠?”
폴 하프만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레플리카라고해도 원작의 느낌을 완전히 살리는 것은 불가능할 텐데요?”
“그렇겠죠. 하지만 지금의 훼손된 상태보단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인공지능을 사용한다면, 최대한 원작에 가깝게 그릴 수 있을 겁니다.”
“…….”
폴 하프만 씨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묻어나 있었다.
‘사연을 듣고 나니, 괜히 또 돕고 싶어지네.’
나는 무언가 좋은 방법이 없을지 고민해보았다. 그리고 그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잠깐. 우리 회사 인공지능 에보에게 학습을 시키면 되지 않을까?’
에보는 학습하며 발전하는 인공지능이다. 그런 에보에게 저 그림의 원작자인 헤르만 라비올리의 모든 그림을 학습시킨다면.
‘그림을 거의 완벽하게 복제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이러한 내 생각을 폴 하프만 씨에게 말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군요….”
“그럼 내친김에 제가 회사에 인공지능 에보를 그림 복원 전문 프로그램으로 개조하라 지시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조금 더 효율이 살아날 겁니다.”
“오오! 그렇다면 저도 저희 쪽 인공지능 복원 프로그램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에보보단 못하겠지만, 개조하실 때 참고 하실 수는 있을 겁니다.”
“좋네요. 대신 특별 체험 학습은 확실히 추진해주셔야 하며, 제가 직접 도움을 드리는 만큼. 추가적인 보상도 부탁드립니다.”
“그거야 당연하지요.”
그렇게 나와 폴 하프만 씨는 서로의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하였다.
***
계약을 마친 윤현민이 떠난 후. 혼자 남겨진 폴 하프만은 축음기에 음반을 올려 음악 감상을 시작하였다.
따라라라-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폴 하프만은, 리듬에 맞춰 빙글빙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우아하면서도 절도 있는 몸동작.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귀족의 무도회장을 보는 듯한 춤사위였다.
따라라 딴.
그렇게 한 곡의 춤이 끝나자, 폴 하프만은 다시 축음기로 다가가 음반을 제거했다. 그리고.
빠각.
음반을 반으로 쪼개버린 폴 하프만은 자리에 주저앉아, 반으로 갈라진 음반의 단면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후우….”
종이보다 얇은 비닐에 든 그것은, 정체 모를 하얀 가루였다.
‘이 얇은 LP판에 이걸 집어넣을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해.’
그는 이런 기술을 개발한 마릭을 떠올리며 속으로 찬사를 보내었다.
‘덕분에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이것을 즐길 수 있었어.’
폴 하프만은 고개를 돌려 서재에 꽂힌 몇 개 남지 않은 LP판을 보았다.
‘이제 몇 개 남지 않았군.’
저것을 더 받기 위해선, 그가 시키는 것을 완수해야만 하였다.
‘…미스터 윤.’
마릭은 폴 하프만에게 윤현민의 기술을 훔쳐보라고 지시했었다.
-내가 그를 간접적으로 방해했을 때, 그의 행운이 어떻게 작용 될지가 궁금하거든.
영문 모를 소리를 하며 계획을 변경한 마릭이었지만, 어쨌거나 그가 내린 지시는 이게 전부였다.
‘인공지능 에보의 기술만 가져올 수 있다면, 평생 이것을 무료로 주겠다고 했었지?’
열망에 불타오르는 눈으로, 폴 하프만은 그 하얀 가루를 손에 모아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하아….”
순식간에 몰아치는 황홀경을 맛본 폴 하프만이, 달뜬 숨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때.
쨍그랑!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에, 폴 하프만이 뒤를 돌아보았다.
‘저게… 왜… 분명 떨어지지 않게 테이블 한가운데에 두었었는데?’
몽롱한 시야 속에서도 알 수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깨져버린 그것은, 폴 하프만이 아끼는 행운의 찻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