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보험이라 쓰고 함정 카드라 읽는다
“어제는 고마웠습니다, 레이 씨.”
“아닙니다. 저도 오랜만에 즐거운 공연을 하게 되어 무척 좋았습니다. 아, 그리고….”
레이 하프만 씨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명함 한 장을 꺼내어 내게 건네주었다.
[베이시스트 : 레이 하프만] [전화번호 : OOO-OOOO-OOOO]“오래전에 파두었던 명함입니다. 다음에도 거리공연을 하게 되면 꼭 불러주십시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가벼운 농담을 건네었다.
“그때도 페이가 300유로 인가요?”
“하하! 설마요. 애초에 제가 어제도 그 페이를 거절하려 했잖습니까.”
그 말대로 레이 씨는 어제의 뒤풀이가 끝난 후에 나를 따로 찾아와, 공연이 정말 좋았다며 양심상 100유로만 받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레이 씨의 사정을 알게 된 나는, 그냥 처음에 주기로 한 300유로를 주는 것으로 결론 냈다.
‘아일라가 과하거나 쓸데없는 지출은 지양하자고 했지만, 이 경우는 다르지.’
레이 씨 덕분에 어제의 공연이 상당히 만족스러웠으므로, 나는 300유로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게다가.
“정말 감사합니다. 미스터 윤은 소문대로 도량이 넓으시군요.”
이렇게 덤으로 실력 좋은 베이시스트와 인연을 쌓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언젠가 도움이 되겠지.’
그렇게 나는 전용기가 있는 공항의 격납고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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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기에 오르자, 이제는 익숙해진 얼굴의 승무원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미리 지시하신 대로 LA에 경유한 뒤, 서울로 향하면 되겠습니까?”
“예.”
원래는 곧바로 서울로 향할 계획이었으나, 아일라에게 급작스러운 일정이 생기는 바람에 LA에 먼저 들르기로 하였다.
“미안, 나 때문에 번거롭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나도 안 번거로운데?”
오히려 좋았다. 조금이라도 더 아일라와 함께할 수 있었으며, 다시 미국에 간 김에 에보의 개조건으로 직접 넥스인텔리에 들리면 되었으니까.
‘가서 폴 하프만 씨에게 줄 개조된 에보를 개발하라 지시해야지. 겸사겸사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확인하고.’
루나리스 패션이나 라이브 카페와는 달리, 내가 넥스인텔리에 방문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동안은 구상민 씨나 상필이가 도맡아서 관리해 주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두 사람은 각각 다른 회사를 운영하게 되었으므로, 한 번쯤은 대표인 내가 넥스인텔리에 얼굴을 비춰주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몇 시간 후.
“그럼 가 볼게!”
기내식으로 나왔던 골드 스테이크를 양손에 포장한 아일라가 행복한 얼굴로 내게 손을 흔들었다.
“조심히 들어가고! 이따 연락하자!”
나는 아일라가 탄 택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든 뒤, 곧장 넥스인텔리로 출발했다.
“안녕하십니까! 찰리 버튼이라고 합니다!”
그는 현재 넥스인텔리를 도맡아 운영하는 상필이의 후임자였다.
“반가워요, 윤현민이에요.”
내가 손을 내밀 자, 그가 감격스럽다는 듯이 부산을 떨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윤 대표님을 이렇게 직접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영광입니다!”
생각보다 심하게 호들갑을 떠는 가벼운 모습을 보니, 그가 정말 제대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인지 조금 불안해졌다.
“저분 잘하고 계신 거 맞죠?”
자비르 씨에게 조용히 속삭이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평소에만 저렇지, 실력도 좋고 인망도 괜찮습니다. 리더쉽도 있고요.”
“그래요?”
하긴.
구상민 씨와 상필이가 어련히 알아서 잘 뽑았을 것이다. 둘 다 책임감 하나는 최고인 사람들이니 말이다.
“그런데, 윤 대표님이 여기는 어쩐 일로 오신 건가요?”
“아, 뭐 하나 부탁할 일이 있어서요.”
나는 찰리에게 폴 하프만과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알겠습니다. 당장, 프로젝트에 착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찰리는 아까의 가벼웠던 이미지와는 달리, 업무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꽤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기간은 얼마나 걸릴 것 같나요?”
“대충 이틀이면 될 것 같습니다.”
“네에? 그렇게나 빨리요?”
찰리는 어차피 에보의 기본 틀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며, 수정 자체도 기존에 폴 하프만 씨가 사용하려 했던 그림 복원 프로그램을 참고할 수 있으니. 그 기간이 짧아질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음… 생각보다 개발 기간이 짧은데, 그냥 이틀 더 LA에 머무를까.’
개조가 끝난 에보가 폴 하프만 씨에게 잘 전달되는지, 이곳 회사에서 직접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아니야. 이제 그만 한국에 돌아가야지.’
내가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예술 장학재단 설립 계획이 자꾸만 미뤄지고 있었다. 겨우 이틀 차이긴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미루다 보면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굉장히 늦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돌아가자. 하지만 그전에….’
나는 찰리에게 또 다른 특별 주문을 지시하였다.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안전장치까지 확실하게 설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해주세요.”
“넵!”
업무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다시 원래의 텐션으로 돌아온 그가, 내게 경례 자세를 취했다.
“하하….”
그런 그에게 멋쩍은 웃음을 남기며, 나는 그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웅성웅성.
그러자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직원들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분이…”
“그… 미스터 윤…”
“내가… 실물을 보게 될 줄….”
그들의 목소리가 하도 작아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대충 찰리의 아까 보였던 반응과 비슷한 듯 보였다.
이러한 모습들에 나는 자비르 씨에게 속삭였다.
“이거, 너무 유명한 것도 피곤하네요.”
“하하, 익숙해지셔야 할 겁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종종 있을 테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개 사업가인 나를 유명 연예인이라도 만난 듯이, 저렇게 선망 어린 시선으로 보다니.
‘예전의 나도 윌 게이츠 씨를 처음 보았을 때 이런 눈빛이었을까.’
나를 보며 눈을 반짝이는 저 시선들이, 조금 부담은 되었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야, 네가 물어봐.”
“아, 아니 내가 왜….”
“그동안 대표님 얘기를 가장 많이 한 게 너니까?”
“으으….”
오른쪽에 모여있던 직원들 사이에서 들려온 대화에, 나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나와 눈이 마주친 한 여성 직원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뭔가 질문이 있으신 건가요?”
“예? 아, 아니요….”
“괜찮으니까 묻고 싶으신 게 있으시면 이리 오셔서 물어보셔도 됩니다.”
“네? 아니, 네?”
그 아담한 체구의 여성 직원은 잔뜩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이내 삐그덕 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저기… 대표님….”
“네, 말씀하세요.”
“호, 혹시… 대표님의 투자 비결을 알려주실 수….”
목소리가 갈수록 기어들어 가서 잘 들리지 않았다.
“잘 안 들리네요. 조금 더 크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아, 아니. 이게 아니라….”
안절부절못하며 어쩔 줄 모르던 직원은 이내 두 눈을 질끈 감고 내게 대뜸 손을 내밀었다.
“아, 악수 한 번만 해주시면! 여, 영광이겠습니다!”
“…….”
뭐, 그 정도야.
나는 그 여성 직원과 악수를 해주었다.
“꺄! 감사합니다!”
잔뜩 밝아진 표정으로 도망치듯 다른 직원들 곁으로 돌아간 여성 직원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겨우 이 정도로 기뻐해 주다니.’
왠지 진짜 연예인이 된 것 같은 느낌에 왠지모를 뿌듯함이 느껴지던 순간.
“미다스의 손과 악수했어! 이제 나도 대표님의 기운을 받았으니 앞으로 성공할거다아아!”
희미하게 들려오는 여성 직원의 환호성에, 나는 피식 웃으며 회사를 나섰다.
그리고 이틀 뒤.
나는 찰리에게 개조된 에보가 무사히 폴 하프만 씨에게 전달되었다는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
“빠르군.”
폴 하프만은 보안이 걸린 이메일로 도착한 인공지능 에보를 보며 감탄했다.
‘이게 그 세계 최대의 연산력을 자랑하는 인공지능이란 말이지?’
처음 마릭 님의 지시를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지만. 막상 이렇게 인공지능 에보의 실물을 마주하고 있으니, 매우 탐이 났다.
‘이것만 있으면, 떼부자가 될 수 있을 텐데.’
인공지능 에보의 코드를 낱낱이 파헤쳐, 암시장에 올린다면. 사겠다고 하는 이들이 줄을 서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겠지.’
애초에 그것은 폴 하프만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엄청난 프로그램을 보내는데, 윤현민이 아무런 조치를 해두지 않았을 리 없었으니 말이다. 분명 핵심 코드를 숨기기 위해 최고의 보안을 걸어두었을 터.
‘그런 보안을 깨뜨리고 코드를 분석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야.’
폴 하프만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따르는 마릭은 달랐다.
‘마릭 님이 개발한 이 프로그램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해.’
그는 상의 속주머니에서 마릭이 주었던 USB를 꺼내 들었다.
‘이것만 있으면 이 세상 모든 프로그램의 보안을 해제할 수 있다고 했었지? 게다가 분석과 복제까지도 한 번에 가능하다고….’
마릭은 폴 하프만에게 윤현민의 인공지능 에보를 훔치라는 지시를 내렸었다. 하지만 일개 대학교의 이사장일 뿐인 그가, 전공도 아닌 일을 저지르기엔 능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마릭은 폴 하프만에게 자신이 예전에 사용했던 프로그램 하나를 주고 간 것이었다.
-부디 나를 실망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군.
마릭이 남기고 간 한 마디를 떠올린 폴 하프만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나 간단한 일에 마릭 님은 왜 그런 말씀을 남기신 걸까.’
그저 USB를 꽂아 넣기만 하면, 프로그램이 알아서 작업을 시작한다. 실패도 실수도 할 수 없는 너무나 간단한 일.
‘이상해… 겨우 이 정도의 일을 하는데, 마릭 님이 내게 약속하신 보상이 너무 과한데?’
이전에 폴 하프만이 흡입했던 하얀 가루. ‘미라클’의 무제한 제공이라니.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걸까?’
그제야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한 폴 하프만은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실패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마릭 님의 프로그램이 실패할 리 없는데….’
마릭이 누구던가. 전 세계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미국 펜타곤의 보안을 뚫었던 그가 아니던가.
‘그런 마릭 님의 프로그램이 뚫지 못하는 보안이 있을 리가 없어.’
혹시 모종의 이유로 마릭이 그를 버리는 패로 쓴다면 모를까.
‘그것도 말이 안 되지.’
지금까지 마릭 님을 위해 쓸개까지 바칠 각오로 헌신해온 폴 하프만이었다.
‘지금까지 가져다 바친 돈이 얼마며, 앞으로 상납할 금액이 또 얼마인데.’
예술은 돈이 된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마릭 님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자신을 버리는 패로 사용할 리가 없었다.
‘그러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
폴 하프만은 단숨에 USB를 컴퓨터에 꽂았다.
띠- 띠리리릭-!
독특한 전자음이 흘러나오며, 마릭의 프로그램이 실행되었다.
‘오오!’
화면에는 알 수 없는 코드들이 줄지어 떠오르며, 수많은 창을 띄웠다. 진행바에 적힌 퍼센티지로 미루어 보아, 프로그램이 잘 작동하고 있는 듯 보였다.
[분석 12% 완료.] [분석 19% 완료.]‘역시 마릭 님이 만드신 프로그램답게,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바로 그 인공지능 에보를 이렇게나 빠르게 분석해내고 있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성능이었다.
‘이 정도면 굳이 내게 계속 지켜보고 있을 필요가 없겠는데?’
여유가 생긴 폴 하프만은 다즐링 홍차를 한 잔 타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칵.
찬장에서 컵을 꺼내던 그는 문득, 찬장 구석에 고이 모아둔 깨진 행운의 찻잔 파편이 눈에 들어왔다.
‘하필이면 제일 아끼는 찻잔을 그에게 내어주는 바람에….’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이상한 일이었다. 폴 하프만은 애초에 그 찻잔을 윤현민에게 내어줄 생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막상 그에게 차를 대접하려고 하니, 이 찻잔에 자꾸만 손이 갔었지. 마치 찻잔이 그에게 가고 싶어 한다는 느낌이었달까.’
그렇게 그는 가장 아끼는 찻잔을 그에게 내어주고 말았던 것이었다.
‘쯧! 아까워 죽겠군. 그동안 저 찻잔 덕분에 일이 참 잘 풀렸었는데 말이지.’
저 찻잔이 어떤 찻잔이던가.
‘마릭 님이 주신 소중한 찻잔이었는데….’
예전에 마릭 님을 돕기 위해 이탈리아로 향했을 때, 보상으로 마릭 님께서 진짜 행운을 가져다줄 거라며 선물해주신 찻잔이었다.
‘후… 찻잔을 생각하니 또 열 받는군. 얼른 홍차라도 마시면서 진정해야겠어.’
그렇게 익숙한 손놀림으로 홍차를 탄 폴 하프만이 다시 컴퓨터 앞으로 돌아왔을 때. 화면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떠올라 있었다.
[분석 실패.] [실패 사유 : 대상 프로그램의 손상 및 변경.]‘…어?’
생각지도 못한 검은색 알림창에, 폴 하프만은 황급히 화면에 머리를 가까이 대었다.
띠링!
그때, 경쾌한 음과 함께 모니터에 하얀색 알림창이 몇 개 더 떠올랐다.
[프로그램을 복제하려는 불법 행위를 감지하였습니다.] [보안을 위해 인공지능 에보의 핵심 코드를 삭제하였습니다.] [소스 코드가 삭제됨에 따라, 미리 준비된 비상 프로그램이 백그라운드에서 실행됩니다.] [상세한 경위 조사를 위해, 비상 프로그램으로 해당 PC의 모든 데이터를 분석하였습니다.] [그 결과, 다수의 불법 행위를 감지. 이에 본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해당 데이터를 모두 본사에 전송하였습니다.]“뭐?!”
폴 하프만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