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15
15화 행운의 자켓
내가 세 사람을 모두 섭외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기 위해선, 일단 일주일 전의 일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일주일 전.
부장님으로부터 황당한 지시를 받은 나는 고민에 잠겨 있었다.
‘한유경 씨보다 더 유명한 너튜버를 찾고, 김태진이 찾은 MD보다 더 능력 좋은 MD를 찾아오라니.’
그것은 결국, 최고로 유명한 너튜버와 가장 능력이 뛰어난 MD를 섭외하라는 말과 같았다.
두 사람이 어느 너튜버, MD를 섭외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지금도 내게 경쟁의식을 불태우고 있는 두 사람에게서 정보를 알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김태진은 그렇다고 치고. 한유경 씨가 저럴 줄은 몰랐는데…’
그녀는 내가 지나갈 때마다 황급히 ALT +TAP을 눌러 검색창을 숨길 정도로 나를 경계하는 중이었다.
‘…한유경 씨가 내게 경쟁의식을 느끼고 있다니, 신기하네.’
어쨌거나.
이런 이유로 나는 업무시간 내내 가장 유명하고 능력 좋은 너튜버와 MD를 검색하는 중이었다.
‘홈쇼핑 MD야 그냥 작년 판매량 1위인 사람을 찾으면 되겠고. 너튜버는 패션과 관련된 사람을 찾으면 되겠지?’
그렇게 새로운 팀에 합류한 첫날을 꼬박 다 써서 검색한 결과. 나는 두 명의 후보를 찾을 수 있었다.
‘너튜버 웨이런, 그리고 최창제 MD.’
웨이런.
무려 400만 구독자 수를 보유한, 패션 너튜버계의 초신성이었다.
‘컨셉이 정말 특이하네.’
나는 웨이런의 영상 중 하나를 클릭해 보았다.
영상 속의 웨이런은 긴 팔 후드를 입고 강남역 일대를 걷고 있었다. 꾸미지 않은 아주 평범한 옷차림.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에게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후드를 벗어 던진다.
그렇게 긴 팔 후드 속에 감춰져 있던 멋진 디자인의 옷이 드러나며, 신나는 음악과 함께 그의 런웨이가 시작되었다.
저벅저벅-
그의 걸음엔 거침이 없었고, 그 사람 많은 강남 일대를 막힘없이 거닐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길을 걷던 모두가 그를 주목하게 되었고. 결국, 웨이런의 런웨이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영상의 마지막.
웨이런은 자신이 벗어 던진 긴 팔 후드를 다시 입으며,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영상에 흡입력이 있다랄까? 실제 모델 출신이라 그런지 걸음걸이가 평범한 사람들하곤 다르다는 게 느껴져.’
단지 걸음을 걷는 영상이며, 비교적 최근에 올라온 영상이었는데도 조회수가 무려 533만이었다.
‘이 사람을 섭외할 수 있다면….’
나는 머릿속으로 GA패션의 옷을 입은 그가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런웨이를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홍보 효과가 제대로겠어.’
그리고 최창제 MD.
‘별명이 완판남이라고?’
광고하는 제품이나 착용한 제품이 모두 판매될 정도의 영향력 있는 남자를 말하며, 광고에 나오는 셀럽이나, 유명 가수, 연예인 등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단어가 MD에게 붙었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손을 대는 모든 제품을 품절시키기로 유명한 사람이라는 거지? 그래서 이쪽 업계에선 거의 전설처럼 불린다고?’
딱, 내가 찾던 인물이었다. 이 사람도 컨택만 가능하다면, GA패션을 홍보하는 데 굉장한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왜 다들 연락처가 없는 거야?’
웨이런도, 최창제 씨도. 번호는커녕 그 흔한 이메일조차 적혀있지 않았다.
그들의 연락처를 어떻게든 알고 싶었던 나는 긴 검색 끝에, 그들의 연락처가 사라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웨이런은 협찬이나 광고를 일절 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눈으로만 옷을 고르기 때문에 일부러 연락처를 남겨두지 않는다고?’
정확히는 광고를 받긴 받되, 자신이 직접 해당 브랜드에 전화하여 넌지시 요구하는 모양이었다.
‘광고비를 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이라는 거군.’
어쩐지 그런 웨이런의 모습이 최근 나의 회사 생활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업무를 하며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딱히 상관없다는 마인드로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최창제 MD.
‘이 사람은 뭐지?’
나는 그가 소속된 CZ사에 전화하여 물었다.
-아, 최창제 님은 현재….
직원은 작년까지 최고 매출을 찍던 그가, 올해 초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장기 휴직을 신청하고 자취를 감추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즉, 두 사람 모두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그러기엔 너무나 아쉬웠다.
두 사람을 모두 섭외할 수만 있다면, 나는 확실하게 부장님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방법이 없을까?’
미련이 남았던 나는, 계속해서 인터넷에 그들과 관련된 글들을 검색했다.
“…응?”
그러던 중, 어느 블로그 글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2023 K-VidCon, 웨이런 참가 확정.]‘K-VidCon?’
그것은 세계 너튜브 관련 제작자 및 팬들을 위한 대규모 이벤트인 VidCon의 국내 버전으로, 우리나라 유명 너튜버들이 모두 모이는 한국 온라인 비디오 컨퍼런스였다.
‘여길 찾아가면, 웨이런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물론, 찾아가는 것만으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아마도 그를 좋아하는 수많은 팬을 뚫어야 할 것이며, 만났다 하더라도 그 시끄러운 곳에서 그를 설득해야 한다는 매우 어려운 조건일 것이다.
하지만, 최창제 MD처럼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보단 나았다.
‘최창제 MD는 아쉽지만 포기하자.’
아무리 그를 섭외하고 싶더라도, 같은 직장인으로서 휴직한 사람을 찾아가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으니까.
‘K-VidCon의 개최일이 마침 내일이네.’
나는 일단, 웨이런을 만나 그를 설득하는 것을 프로젝트의 첫 번째 목표로 정했다.
‘좋아, 그럼.’
나는 곧장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6시.
퇴근할 시간임을 확인한 나는 곧장 짐을 챙겨 일어섰다.
“먼저 퇴근해 보겠습니다!”
눈을 부릅뜬 차수혁 과장님이 눈치를 주는 것 같았지만, 나는 말없이 다시 꾸벅 인사를 하며 뛰쳐나왔다.
‘죄송하지만, 지금 당장 가볼 곳이 있어서요.’
일성 병원.
그곳의 응급실에서 오늘 출근길에 도와 드린 아주머니에게서 내 코트와 지갑을 찾아와야 했다.
***
일성 병원에 도착한 나는, 주차를 마치고 곧장 응급실로 향했다.
‘아….’
그런데 내가 한 가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아주머니 성함을 모르는데….’
아주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던 것이었으니,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아직 응급실에 계실 것 같긴 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주머니의 성함을 알아야 의료진에게 부탁하든 뭘 하든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오전에 있던 분들은 다들 퇴근하신 것 같고…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그래도 이왕 이곳까지 왔으니,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지나가던 간호사를 붙잡아 사정을 설명하였다.
“…그래서 제 코트를 돌려받아야 하는데, 혹시 응급실을 좀 확인해 주실 수 있나요?”
예상대로 간호사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규정상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내가 포기하고 돌아가려던 순간이었다.
“저기….”
나와 간호사의 대화를 들은 한 젊은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혹시, 그 코트의 브랜드가 킹스맨인가요?”
“네! 맞습니다! 검은색 롱코트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흐윽…!”
나는 당황했다.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한 여자가 내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엄마를 살려주셔서.”
그녀는 내가 도와 드린 아주머니의 딸이었다.
.
.
.
우리는 병원 내에 있는 카페에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가 연락도 없이 저를 만나러 오셨던 거래요. 제가 오늘 생일이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흐윽…!”
“아….”
다시 흐느끼기 시작하는 상황에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다행히 여자는 곧 감정을 추스르며 말을 이었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이 은혜는 제가 꼭 갚을게요.”
“은혜라뇨. 그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자리에 있었다면, 누구나 했을 일인데요.”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으나,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간호사분께 들었어요.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응급실에 계속 남아있으셨다고요.”
그렇긴 했었다. 그대로 출근하기에는 아주머니가 걱정되었으니까.
“외면할 수도 있었고, 그냥 119만 불러 주셨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러지 않으셨잖아요.”
“…….”
“제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 엄마가 안전해질 때까지 지켜주셨던 것. 그게 저는 너무나 감사해요. 그러니….”
여자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제가 사례라도 해드리고 싶어요. 계좌번호라도 알려 주시면….”
“사례는 정말 괜찮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필요 없었다.
‘통장에 17억이나 있는데 무슨.’
“그래도….”
“정말 괜찮습니다. 그보다 제 코트를 돌려주셨으면 하는데요.”
“아, 그렇죠. 돌려드려야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여자는 서둘러 응급실로 향했다. 그렇게 잠시 후, 돌아온 여자의 손에는 코트가 아닌 특이한 디자인의 블레이저가 들려있었다.
“그건 제 코트가 아닌 것 같은데요?”
“죄송해요.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 코트가 바닥에 떨어져서 많이 더러워졌어요. 제가 나중에 세탁해서 돌려드릴게요. 대신, 이 블레이저를 드릴게요.”
나는 여자가 내민 블레이저를 얼떨결에 받아 들었다.
“원래 남자친구에게 줄 선물이었는데, 체형이 비슷하신 것 같아서. 마침 차에 있던 걸 급하게 들고 왔어요.”
“…….”
“일단 입어보시겠어요?”
다른 사람의 선물이라는 말을 들은 이상, 바로 돌려주는 것이 맞았지만. 나는 블레이저에서 느껴지는 촉감에 정신이 팔리고 말았다.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느낌의 벨벳 소재라 느낌이 좋으실 거예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주색 블레이저를 입어보았다.
‘딱 맞잖아?’
마치 맞춤 제작이라도 한 듯, 사이즈가 정확했다.
“생각했던 것만큼 잘 어울리시네요.”
솔직히 마음에 들었다. 소재도 소재이지만, 특히 소매 끝에 새겨진 불규칙 패턴의 무늬가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마음에 드시면 선물로 드릴게요.”
“…하지만 남자친구분 선물이라고 하셨잖아요.”
“괜찮아요. 남자친구에겐 다른 걸 주면 돼요.”
잠시 망설이던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입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패션에 문외한인 내가 마음에 들 정도로 괜찮은 블레이저였다.
“그리고 이거요.”
여자는 내 지갑과 함께,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연락처 좀 알려주시겠어요? 코트의 세탁이 끝나면 가져다드릴게요.”
여자와 번호를 교환한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생각했다.
‘내일 이 블레이저를 입고 가면 되겠어.’
400만 패션 너튜버를 만나러 가는 날이니, 특이한 디자인의 블레이저를 입고 가면 좋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이 블레이저를요?”
나는 입고간 블레이저 덕분에 웨이런을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