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런던으로
“이, 이게 대체 얼마야…”
마이클 씨는 바닥에서 나온 금괴에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이에 나는 무심히 말했다.
“대략 6,000달러 정도 나오겠는데요?”
“…오 마이 갓.”
6,000달러면 대략 800~900만 원 정도 된다.
‘내 연금복권 당첨금이랑 비슷하네. 그러고 보니 매달 들어오는 당첨금을 신경 쓰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
아니, 지금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었다.
“일기장을 살펴보죠.”
“그, 그래.”
나는 그와 함께 지난여름의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
“얼마를 주겠다고요?”
잭슨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검은 양복의 남자가 그에게 금덩이 20개를 내밀며 대답했다.
“대략 14,000달러 정도 될 거다.”
꿀꺽.
잭슨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대, 대체 뭔 일을 시키시려고….”
마약 운반책, 밀수, 강도 등.
잭슨은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범죄를 생각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이제 범죄에 연루되고 싶지 않습니다.”
“…….”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잭슨은 눈앞의 금괴에서 눈을 돌리지 못했다.
“걱정하지 마. 네가 생각하는 그런 험악한 일은 아니니까. 뭐, 조금 아프긴 할 테지만.”
“아프다니요?”
잭슨이 놀라자, 검은 양복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일에 대해 잠시 설명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에게 접근하여 마약을 권하라는 겁니까?”
“그래.”
마약이라니.
잭슨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런 일은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정말?”
그러자 검은 양복은 잭슨의 눈앞에 금괴 20개를 더 내밀었다.
“이래도 ‘절대’ 할 수 없는 거야?”
“…꿀꺽!”
더욱 커진 잭슨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마약은 좀….”
“이런. 겁쟁이가 따로 없군. 당신이 뭘 걱정하는지 알겠는데. 내가 당신에게 기대하는 건 타겟에게 마약을 먹이는 것이 아니야. 오히려 그건 실패해도 돼. 아니,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지.”
“그, 그럼요?”
검은 양복은 잭슨에게 하얀 가루가 담긴 자그마한 비닐을 내밀었다.
“허억! 이건 마….”
“착각하지 마, 이건 그냥 코코넛 가루니까.”
검은 양복은 친절하게 입구를 열어 잭슨에게 코코넛 가루를 확인시켜 주었다.
“그런데 코코넛은 왜…”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은, 타겟을 만나기 전에 이걸 미리 주머니에 넣어놓는 거야.”
그는 시범을 보이듯, 제 호주머니에 코코넛 가루를 넣어 보였다.
“아마 타겟은 마약을 보면, 발작하고 달려들 거야. 아마도 당신을 죽도록 팰지도 모르지. 그럼 당신은 잠자코 그에게 맞도록 해. 그런 다음 미리 준비 해두었던 이 코코넛 가루를 타겟에게 보여줘. 타겟이 무고한 당신을 때렸다고 착각하게 만들란 말이야.”
“…그리고요?”
“그다음에 당신은 어디로든 떠나서 우리가 부를 때까지 숨죽이고 살아. 그럼 당신이 할 일은 끝이야. 나머진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아, 그리고 그 누구도 당신이 있는 곳을 알아선 안 돼.”
“…가족들한테도요?”
“당연하지.”
“얼마나 오래요?”
“아마, 2년 정도면 될 거야.”
“…….”
“아무튼 지금 설명한 것이 플랜B야. 잘 기억해 둬.”
잭슨은 이 정도 일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족들이 나를 걱정하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저 금괴를 받는 대가로 2년 정도 잠적하는 것은 할 만해. 게다가 지금 상황으로는 가족들에게 민폐만 끼칠 테니, 내가 잠시 사라지는 편이 오히려 좋을지도 몰라.’
무엇보다 눈앞에 저 많은 금괴를 보고 있자니,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 월세도 못 내는 형편인데… 사채도 갚아야 하고.’
눈앞의 금괴만 있다면 그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플랜 A가 성공하면 더 좋겠지만, 그 확률은 무척이나 희박하니 어쩔 수 없지. 일단 시도해봐. 성공하면 추가 보상을 줄 테니.”
잭슨은 아무리 보상을 많이 줘도, 마약과 관련된 플랜 A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그 타겟이라는 남자에게 맞기만 하면, 저 금괴를 다 주시는 건가요?”
검은 양복이 씩 웃었다.
“물론이지. 아, 이후에 한 번 더 너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거야. 그때, 타겟과 간단한 통화 한 통만 해주면 돼.”
“무슨 통화요?”
“그냥, 많이 아팠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돼.”
간단한 일이었다.
거의 사기나 다름없는 일이기에 양심에 걸리긴 했지만.
‘그래, 한 번만 눈 딱 감고 하면 돼.’
그렇게만 하면, 더는 빚쟁이에게 숨으려고 동생의 이름을 빌려 생활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예전에 했던 일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지 않는가.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결국, 잭슨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자 검은 양복이 그에게 금괴 10개를 내밀며 말했다.
“이건 선수금이야. 앞으로 잘해보자고. 나머지 금괴는 무사히 일을 끝내면 지급해 줄게.”
“알겠습니다.”
“참, 일이 마무리되고 이 마을을 떠날 때. 지금 사는 곳의 짐은 그대로 내버려 두고 가.”
“어째서요?”
“너는 표면적으로 실종된 상태여야 하니까. 그러려면 모든 짐이 남아있는 상태가 자연스럽겠지.”
“그럼 제 물건들이 다 없어질 텐데요.”
“생각보다 삶이 여유로운가 봐? 빚쟁이들을 피해 숨어 사는 주제에 물건 걱정을 하네. 왜? 소중한 거라도 있어?”
“…….”
“뭐, 그건 걱정하지 마. 우리 목적을 위해서라도, 네가 사는 집의 2년 치 월세를 모두 납부해 줄 테니까.”
“그게 정말입니까?”
놀란 잭슨이 반문하자, 검은 양복이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까짓 단칸방 월세가 얼마나 한다고. 대신, 계획에 차질없이 하도록 해.”
언뜻 들으면 잭슨을 위하는 것 같은 말투였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잭슨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티를 내지 않고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연락하자고.”
그렇게 검은 양복이 떠난 후, 잭슨은 금괴를 품에 고이 넣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게 웬 횡재야.’
잭슨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금괴를 만지작거렸다.
‘그냥 술이나 사려고 마켓에 가던 중이었는데.’
웬 수상쩍은 놈이 말을 걸었고, 빚쟁이인 줄 알고 도망치다 붙잡혔는데.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겠지?’
솔직히 하는 일에 비해 보수가 과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한번 맞는 것으로 무려 28,000달러를 받을 수 있는 일이라니.
‘아마 협박용 영상을 찍겠지?’
잭슨은 과거에 이런 일을 몇 번 해보았었다. 물론, 보수는 지금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지만. 그때도 나름 쏠쏠한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감옥에 다녀오게 되었지.’
그 이후로 그는 절대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 영롱하게 빛나는 금괴를 눈앞에 두니, 그 다짐은 둑이 무너지듯 허물어지고 말았다.
‘…이미 하기로 했잖아. 이제 더는 이 결정에 대해 생각하지 말자.’
잭슨은 뒤를 돌아보기보다, 앞을 바라보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 금괴를 어쩐다….’
그 검은 양복의 말에 따르면, 이 금괴는 총 7,000달러 정도 될 것이다.
‘빚을 갚기엔 터무니없이 모자란 돈이야.’
그가 돈을 빌린 사채업자들은 아주 악질인 놈들이었다.
‘일부를 갚아봤자, 어떤 핑계를 써서라도 내 빚을 늘리겠지.’
그러니 방법은 오직 하나. 기습적으로 찾아가, 단번에 모든 돈을 갚는 것뿐.
‘그전까지는 이 금괴를 내버려 둬야 해.’
다수의 금괴를 현금화하는 것은 너무 눈에 띄는 일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빚쟁이에게 들킬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현금화는 나머지 금괴를 모두 받았을 때, 그때 한 번에 처리하자.’
잭슨은 금괴를 숨길 곳을 고민했지만, 마땅한 장소가 떠오르지 않았다.
‘…없으면 만드는 수밖에.’
그는 카페트를 걷어내고, 모종삽과 공구를 가져와 나무 바닥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시간 후.
‘됐다.’
나름 손재주가 있던 그는, 제법 괜찮은 은닉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여기에 금괴를 보관하면 되겠지.’
잭슨이 만든 공간은 대략 금괴 20개가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
‘보수로 받기로 한 금괴는 총 40개지만, 어차피 곧바로 현금화를 할 거니까 이 정도 크기로도 상관없을 거야.’
만족한 잭슨은 내친김에 티가 나지 않는 손잡이까지 만들어 여닫기 편하게 만들었다.
‘그럼 이제….’
툭… 툭….
잭슨은 금괴를 은닉 공간에 넣은 뒤, 입구를 닫았다.
끼이익- 쿵.
그렇게 닫혀버린 은닉 공간이 다시 열리게 된 것은, 6주가 지난 뒤였다.
“후욱…후욱….”
쿠웅-
얼굴과 팔에 붕대를 감은 잭슨이,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은닉 공간을 열었다.
‘정말 금괴 30개를 모두 주다니!’
지금 그가 가져온 가방에는 검은 양복이 보수로 준 금괴 30개가 들어있었다.
‘내 빚을 갚으려면 금괴가 30개는 있어야 해. 게다가 당분간 사용할 생활비까지 생각한다면, 대략 32개는 필요하겠지.’
나머지 8개의 금괴는 비상용으로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읏차.”
잭슨은 은닉 공간에서 2개의 금괴를 꺼내 가방에 집어넣곤,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책상으로 향해 낡은 일기장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것도 은닉 공간에 넣어 두자.’
그 일기장에는 검은 양복과 있었던 모든 대화 내용이 적혀있었다. 만약을 대비하여 잭슨이 미리 기록해 두었던 것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경험상 난이도에 비해 높은 보수는, 반드시 탈이 생기게 된다.
만약 잭슨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동생인 마이클이 이 집을 찾아올 것이고. 이 일기장을 통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보험을 하나 더 들어 놓을까.’
잭슨은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의 구석에 뭔가를 적어 놓았다.
툭.
그렇게 보험용 일기장을 은닉 공간에 숨긴 잭슨이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나는 생각했다.
‘이 일기장만 있으면, 크리스토퍼가 함정에 빠졌던 거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
그렇게 되면, 더는 마릭이 크리스토퍼를 이용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하… 이 머저리가 뭔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마이클 씨가 일기장을 꽉 쥐며 분노하고 있었다.
‘마이클 씨가 순순히 이 일기장을 넘겨줄까?’
잭슨의 일기장은 가족인 마이클 씨에게 더 필요할 것이 분명했다.
‘숨어버린 잭슨 씨를 찾을 유일한 단서니까 당연하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는 일기장을 넘겨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당연히 안 되지.”
“…역시 그렇죠?”
“하지만 제 조건을 들어주면, 넘겨주 수 있을 것 같은데.”
“조건이라뇨?”
마이클 씨는 일기장의 맨 마지막 페이지의 끄트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형제는 어릴 때, 비밀 요원 놀이를 많이 했었어요. 근데 그게 꽤나 본격적이라서, 우리만의 암호를 만들기도 했죠. 그리고 여기를 보시면….”
그가 가리킨 곳엔,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자그마한 글씨가 적혀있었다.
“A-13-2? 이게 무슨 말이죠?”
“이게 바로 우리 형제만의 암호야.”
마이클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여러 권의 책 중에서 첫 번째 책을 꺼내, 13페이지의 2번째 단어를 가리켰다.
“런던?”
“이건 아마 현재 형이 있는 곳을 말하는 걸 거야.”
“그게 정말입니까?”
내가 놀란 목소리로 묻자, 마이클 씨가 책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와 함께 런던에 있을 우리 형을 찾아줘. 그럼 이 일기장을 줄게.”
“그건….”
내게도 아주 좋은 제안이었다.
‘우리도 잭슨 씨를 찾는 편이 더 좋으니까.’
일기장만 있어도 크리스토퍼가 속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지만, 증거로 쓰기엔 약했다.
‘하지만 마이클 씨를 찾는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직접 의뢰를 받았던 당사자이니, 증인이 되어줄 수 있을 터.
‘마릭을 견제하기가 더 쉬워질 거야.’
게다가 일기장만으로는 알기 힘든 정보를 그에게서 들어보는 것도 가능하리라.
“좋습니다. 함께 런던으로 가죠.”
***
윤현민의 런던행이 정해졌던 그 시각.
“으음….”
런던의 어느 호화로운 저택에서 한 남자가 링거를 꽂은 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몇시지?”
똑똑.
남자가 시간을 확인하려던 그때, 50대 후반의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늘은 좀 어떠십니까.”
“아, 제이든 회장님. 덕분에 편안히 지내고 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영국 최대의 화학 기업인 브라이튼 케미컬의 회장이었다.
“죄송합니다.”
남자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제이든 회장이, 그에게 사과했다.
“제가 운전을 똑바로 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아,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면 빨간불에 급히 신호를 건너던 제 잘못이 더 크죠. 오히려 이렇게 보살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군요. 그나저나 오늘도 여전합니까?”
제이든 회장의 물음에 남자는 살짝 침울해졌다.
“예… 여전히 기억이 돌아오지 않고 있네요.”
“큰일이군요. 주치의가 일시적인 기억상실이라고는 했지만, 벌써 몇 주째 이러고 있으니….”
“아! 그래도 한 가지는 기억이 났습니다.”
그런 남자의 말에 제이든 회장이 반색했다.
“오오! 어떤 기억인가요?”
“제 이름이 기억났습니다.”
“너무 잘 되었군요! 그래서 원래 이름이 뭔가요?”
“제 이름은….”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마이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