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패션쇼의 결과 (1)
패션쇼가 시작되기 하루 전.
“뒷일은 맡기지.”
“…….”
자리에서 일어선 마릭은 검은 양복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집무실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마릭님, 진짜 한국으로 가시는 겁니까?”
문고리를 잡는 순간 들려온 검은 양복의 물음에 마릭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
평소 마릭의 지시라면 토 달지 않고 무조건 따르던 검은 양복이기에, 마릭은 조금 놀란 마음으로 대답했다.
“그래. 한국으로 갈 생각이다.”
“하지만 그건…! 아니, 알겠습니다.”
슬쩍 본 검은 양복의 얼굴엔 우려가 한가득 담겨있었다.
“하아….”
마릭은 문고리에서 손을 뗐다. 몇 년간 자신을 잘 보좌해온 검은 양복의 이런 반응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루이스, 말해 봐. 뭐가 그리 걱정이지?”
“…….”
“괜찮다. 우리가 함께한 햇수가 얼마인데, 그 정도 질문도 하지 못 하게 할까.”
계속되는 마릭의 괜찮다는 말에, 망설이던 검은 양복의 입이 열렸다.
“…저는 마릭 님이 이대로 떠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지?”
“이제까지 마릭 님이 주도하신 다른 사업들과 달리, 패션 사업은 저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패션쇼 도중에 뜻밖의 변수가 발생하게 된다면, 그것을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저희 중엔 아무도 없습니다. 마릭 님께서 만약 이번 사업을 중히 여기신다면, 이곳에서 저희를 이끌어 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
평소 말수가 적은 검은 양복, 아니. 루이스는 오랜만에 긴 문장을 내뱉어서인지, 약간의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마릭이, 활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루이스,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다. 왜냐하면 이번 패션쇼에선 너희가 가장 잘하는 일만 하면 되니까.”
“혹시 드론 조종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마릭 알파이즈의 주된 사업은 불법 무기 거래였다.
그가 판매하는 불법 무기 중엔 정찰을 위한 드론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마릭의 부하들은 판매하는 모든 무기를 다룰 줄 알았으므로. 드론 또한 수준급으로 조종할 수 있었다.
“그래. 설마 연습을 게을리한 것은 아니겠지?”
“당연히 밤을 새워가며 연습했었습니다.”
“그럼 대체 뭐가 걱정이지?”
“그게….”
루이스는 차마 정찰용 드론을 아무리 잘 다뤄도, 공연을 위한 실력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할 수 없었다.
“흠….”
마릭은 그런 루이스를 보며, 다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실수해도 상관없고, 변수가 생겨도 괜찮으니까.”
“…예?”
“어차피 이번 패션쇼의 퍼포먼스는, 그저 녀석에게 인사를 하려고 만든 수준이라서 말야.”
마릭은 윤현민의 브랜드와 정면에서 맞붙어 이기고, 그의 사업 영역을 빼앗을 생각이었지만. 이번 패션쇼로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뭐, 이번 기회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면 좋긴 하겠다만.’
그것은 말 그대로 덤이었지, 주된 목표가 아니었다.
‘물론, 그 덤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꽤 높을 것 같긴 해.’
패션쇼의 퍼포먼스가 충격적이든 아니든. 어차피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스트의 패션쇼를 주목하지 않을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러기 위해 최고의 모델들과 디자이너를 섭외했던 거니까.’
운이 좋게도, 그들 모두 예전부터 마릭에게 약점을 잡혔던 이들이었기에. 마릭은 패션계에서 명성이 높은 녀석들을 손쉽게 모을 수 있었다.
‘그자들의 이름값이면, 패션쇼에서 평균만 해도 알아서 언론이 모여들겠지.’
언론이 주목하면, 자동으로 홍보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게다가 패션쇼에서 선보이는 옷들은 전설적인 디자이너 로버트 알레그만이 만든 것이니, 패션쇼의 결과에 상관없이 흥행은 보장된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니 내가 자리를 비워도 된다는 말이다. 이제 알겠지?”
“예, 마릭 님. 역시 마릭 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군요.”
“그렇지.”
“역시, 대단하십니다!”
“…….”
마릭은 연신 감탄하는 루이스의 어깨를 다시 한번 가볍게 두드리곤, 곧장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마릭 님!”
그러자 밖에서 대기 중이었던 또 다른 검은 양복이 마릭에게 다가와 물었다.
“지금 떠나시는 겁니까?”
“그래.”
“그렇군요. 여긴 저희가 예정대로 잘 처리하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잘 다녀오십시오.”
“…….”
마릭은 자신의 지시에 의문을 표하지 않는 검은 양복을 유심히 보며 물었다.
“나랑 일한 지 얼마나 되었지?”
“3년 정도 되었습니다.”
“3년이라….”
기억이 났다.
눈앞의 검은 양복은 3년 전, 루이스가 후임으로 삼겠다고 데려온 청년이었다.
“이름이 뭐였지?”
“아! 제 이름은 세바스찬 입니다.”
“세바스찬….”
그의 이름을 되뇌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마릭은. 이내 그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속삭였다.
“이번 일이 끝나면, 루이스를 처리하도록.”
“…!”
세바스찬은 굉장히 놀라는 기색이었지만, 마릭의 지시에 그 어떤 반문도 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마음에 들어.’
그가 하는 일에 의문을 표하며, 같잖은 충고나 하는 부하는 이제 쓸모가 없었지만. 생각하지 않고 마릭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장기 말은 당분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리라.
‘자, 그럼 이제 한국으로 떠나볼까.’
마릭은 윤현민의 패션쇼를 구경하며, 녀석에 대한 것을 몸소 체험해볼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인사도 하고.’
그렇게 마릭은 한국으로 출발했다.
***
다시 현재.
“이런 곳에서 다시 뵙네요. 반갑습니다, 에이프릴 씨.”
아무것도 모르는 윤현민이 악수를 건네왔다.
“하하, 저도 반갑습니다. 미스터 윤.”
마릭은 진심으로 윤현민이 반가웠다.
그는 무료하던 마릭의 일상을 재미있게 만들어줄, 유일한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마릭은 윤현민과 잡담을 나누며, 유심히 그를 관찰했다.
‘아직 운이 좋아진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가, 여전히 밝아 보이는 군.’
보고서에 따르면, 윤현민이 운이 좋아지기 시작한 시기는 아마도 6년 전 즈음일 것이다.
‘대략 10년 차가 넘어가면 일상이 따분해질 텐데 말이지.’
무엇을 해도 성공하고, 뭘 해도 안전하다면. 그 삶은 굉장히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그 어떤 성취감도 느낄 수 없으니까.’
마릭은 10살 무렵부터 운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 그의 근처에서 일어난 무장 테러의 습격 때문에 죽다 살아난 뒤로, 그는 매우 강한 운을 지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좋았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 한가운데를 걸어도 다치지 않았고, 목숨을 위협하는 적을 만나도 어떻게든 운 좋게 빠져나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나를 보며 경악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기도 했었지.’
하지만 10년 차가 되자, 그 모든 것은 점점 의미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지루했지.’
그냥 뭘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것이 운 좋게 이뤄진다. 어떠한 노력도 필요 없으며, 긴장감이 들지 않으므로. 삶은 점점 무료하고 따분해져 갔다.
‘그러던 중, 나와 같은 인간을 만나게 된 거야.’
윤현민.
마릭과 같은 강한 운의 소유자이자, 지루하던 그의 삶에 즐거움을 만들어준 자.
그와 함께 있으면 마릭은 어느 정도 평범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의 강운과 자신의 강운이 만나 서로 상쇄가 되니,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예측 불가의 삶이라.’
그것은 마릭에게 있어서 그 어떤 마약보다 중독적이고 간절히 바라는 것이었다.
‘과연 이번 패션쇼의 결과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군.’
한국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마릭은 자신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두 눈으로 보게 된 패션쇼는, 그조차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연출을 보여주었다.
‘윤현민과 싸우려면 나만의 인공지능을 개발할 필요가 있겠어.’
오늘 패션쇼의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AI 기술이었다. 특히 막대한 연산력을 바탕으로 모든 관객을 화면 속에 구현한 것은 정말 대단했다.
‘하지만 나는 윤현민처럼 전세계에서 연산력을 끌어오는 것이 불가능해.’
다른 사업가들의 사업과 연계하여 연산력을 가져오는 것은, 혼자 활동하는 것에 익숙한 마릭에게는 굉장히 힘든 일인데다. 만약 가능하다 하더라도 연산력 사업을 먼저 시작한 윤현민을 따라잡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역시, 재밌어.’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마릭에게는 무척이나 신선하게 느껴졌다.
‘어쨌거나, 윤현민의 AI를 따라잡기 위해선, 나 또한 녀석에게 버금가는 연산력을 모아야 해.’
하지만 그것은 마릭의 방식이 아니었다.
‘…아니면 녀석의 연산력을 완전히 박살 내던가.’
윤현민이 걸어간 곳을 헐레벌떡 뒤따라가는 것보단, 아예 없애버리는 편이 더 마음에 들었다.
‘돌아가면, 인공지능 개발과 윤현민이 가진 연산력을 제거할 방법을 생각해봐야겠어.’
그렇게 마음먹은 마릭이 윤현민에게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저는 일정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 많이 바쁘신가요? 같이 식사라도 하면 좋을 텐데….”
“하하, 다음에 또 만날 기회가 있겠죠.”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악수를 하며, 작별 인사를 하였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마릭이 자리를 떠나려던 그때, 그는 문득 윤현민은 이번 패션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미스터 윤은 이번 패션쇼의 결과로, 미스트와 루미스 중 누가 더 흥행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음….”
그런 마릭의 질문에 윤현민이 잠시 고민한 뒤 대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루미스가 더 흥행할 것 같은데요.”
“어째서요?”
“왜냐면 미스트에서는 우리만큼의 독창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진 못했을 테니까요.”
그건 인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였다.
‘패션쇼의 성공이 꼭 흥행을 보장하지는 않지.’
루미스 패션쇼는 굉장한 몰입도를 선사해주었지만, 그것은 패션쇼를 직관한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경험이었다.
‘다수의 일반인에겐 남의 일일 뿐이지.’
아무리 영상을 잘 찍었더라도, 현장의 그 몰입감을 전달해주긴 힘들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전설적인 디자이너와 모델을 쓴 미스트의 패션쇼에 더 관심을 가질 것이 분명했다.
“에이프릴 씨는 미스트가 더 흥행할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네요.”
“…네.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음… 에이프릴 씨는 직접 관람한 루미스보다 보지도 않은 미스트에 더 확신을 두시는군요?”
그런 윤현민의 물음에 마릭은 여유롭게 대답했다.
“아까 패션쇼가 시작되기 전에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미스트 패션쇼를 먼저 봤었습니다.”
“아하.”
윤현민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마릭또한 마주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그럼 이제 진짜로 가보겠습니다.”
“살펴 가세요.”
그렇게 마릭이 자리를 떠난 후, 윤현민은 등 뒤에 서 있던 자비르에게 말했다.
“폴 에이프릴 씨를 좀 조사해주세요.”
“저 사람이 의심스러우신 겁니까?”
“…네.”
패션쇼를 개최하기 전, 윤현민은 어쩌면 마릭 알파이즈가 자신의 패션쇼를 보러올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마릭은 나의 사업 영역을 빼앗으려고 하니까 미리 두 눈으로 내 실력을 확인하려 할지도 몰라.’
그렇게 경계하고 있던 와중에, 뜬금없이 폴 에이프릴 씨를 이곳에서 만났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물론 우연일 수도 있었다.
그가 사진작가 지망생이라는 것은, 예전 오스트리아 여행때 이미 들었었고. 사진을 찍기 위해 루미스 패션쇼에 왔다는 것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었다.
‘하지만.’
폴 에이프릴은 윤현민과 비슷할 정도의 강운을 지닌 사람이었다.
‘과연 세상에 나 같은 강운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윤현민과 같은 강운을 가지고 있다면, 음지든 양지든 이름이 알려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폴 에이프릴 씨는 아니었지.’
강운을 가지고 있는데, 아직도 사진작가로서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
‘그건 말이 안 돼.’
강운을 지니고 있으며, 이미 수 차례 엄청난 행운을 경험했던 윤현민은 확신했다.
‘폴 에이프릴 씨가 마릭 알파이즈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윤현민이 올리버에게 급히 말했다.
“혹시 미행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다음 내기 계약까지 남은 기간을 단축해주시면 해드리죠.”
“얼마나요?”
“한 달 정도?”
“좋습니다.”
윤현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올리버가 곧바로 마릭 알파이즈를 쫓기 시작했다.
‘자, 그럼 이제….’
윤현민은 여러 가지 결과를 기다리기 위해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
한 달 후.
나는 패션쇼 결과에 대한 흥미로운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