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함정을 파다
‘빌어먹을.’
옷감을 자르던 로버트 알레그만이 인상을 찌푸리며 가위를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았다.
‘내가 여기에서 뭘 하는 거지?’
짜증이 났다.
스스로 원한 것이 아닌, 타인의 강요로 옷을 제작하고 있다니 말이다.
‘이건… 아니야.’
마음 같아선 전부 때려치우고 당장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못 해.’
마릭 알파이즈에게 약점이 잡혀있는 한, 로버트는 이곳에 남아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줘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젠장.’
가위를 집어 든 그가 다시 억지로 옷감을 자르기 시작했다.
싹둑싹둑.
그렇게 약 5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로버트는 샘플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라면 1시간도 안 걸렸을 것을….’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다 보니, 시간이 세 배는 오래 걸리게 된다.
‘그래도 다행히 퀄리티는 나쁘지 않군.’
그의 기준에서 절대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꽤 준수한 샘플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대체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지?’
하아.
로버트는 짧은 한숨과 함께, 샘플을 책상에 툭 던졌다.
‘이대로 떠나고 싶다.’
평생을 해왔던 일인 만큼, 로버트는 은퇴 후에도 옷 만드는 것을 즐겨 해왔다.
하지만 그 어떤 영감도 없이 남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만들어 나온 결과물은, 그의 눈에는 그저 공장에서 찍어내는 기성품과 다름이 없어 보였고.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에 비해서….’
로버트는 얼마 전에 영상으로 보았던 루미스의 패션쇼를 떠올렸다.
‘루미스의 옷들은 너무나 개성이 있었지.’
디자이너가 얼마나 옷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유로운 환경에서 일하는지. 그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이런 엿 같은 곳 말고, 그런 자유로운 곳에서 일하고 싶다.’
영상으로도 알 수 있었다. 루미스 패션의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하면,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게 분명하다는 것을 말이다.
‘약점만 아니었어도….’
그렇게 신세 한탄을 하던 그때, 로버트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로버트 알레그만 씨. 저는 윤현민이라고 합니다. 당신에게 제안할 게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받아서는 안 되는 전화였다.
마릭에게 들킨다면 큰 화를 불러올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로버트는 전화를 끊을 수 없었다.
“무슨 제안인데요?”
-알레그만 씨에게 꼭 필요한 제안입니다.
‘어쩌면…’
그의 머릿속에 어떤 기대감으로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
내 예상대로 로버트 알레그만 씨는 크리스토퍼처럼 마릭에게 약점을 잡혀있던 것이 맞았다.
‘그런데 그 약점이 설마 딸과 관련되어 있었을 줄이야.’
로버트 알레그만 씨에게는 금지옥엽 외동딸이 있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딸이 어느 날 지인의 홈파티에서 어떤 실수를 저질렀고. 그 실수가 담긴 동영상이 마릭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동영상을 없애지 않는 한, 로버트 알레그만 씨는 절대 마릭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지.’
생각보다 일이 복잡했기에, 나는 머리가 아파졌다.
‘그럼 일단 마릭의 핸드폰부터 손에 넣어야 한다는 건데… 대체 무슨 수로?’
나는 조금 고민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절대 불가능했다. 그의 자산이라 할 수 있는 핸드폰을 허술하게 보관할 리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야.’
해킹.
놈의 핸드폰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게다가 운 좋게도,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두 명의 해커가 있었다.
‘잭 씨와 인공지능 에보라면, 마릭의 핸드폰을 해킹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몰라.’
물론, 이것은 불법적인 일이었다. 아무리 마릭이 악한 인물이라고는 하나, 남의 핸드폰을 멋대로 해킹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수단을 가리기엔, 녀석에게 협박당하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
마릭에게 협박당했던 크리스토퍼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에게 약점을 잡힌다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협박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루라도 빨리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해킹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야.’
말은 쉽게 했지만, 해킹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놈의 폰을 훔친다는 계획보단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보면, 핸드폰을 해킹하려면 그 핸드폰에다 어떤 어플을 설치해야 하던데.’
나는 곧장 전문가인 잭 씨에게 전화하여 이에 관한 것을 물었다.
-아, 네. 맞습니다. 핸드폰을 해킹하는 대표적인 방법이죠.
“아하.”
그렇다면 마릭의 핸드폰을 해킹한다는 계획도 불가능하다.
‘어플을 설치하려면 마릭 알파이즈의 핸드폰을 훔쳐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하면 굳이 해킹할 필요가 없이 그냥 핸드폰 자체를 없애면 되니까.’
그러니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잭 씨가 해킹에 쓸모있는 정보를 말해주기 시작했다.
-의외로 다른 사람 핸드폰에 어플을 설치하기는 쉽습니다.
“어떻게요?”
-예를들면… 아, 요즘에 QR코드를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까?
“네, 많이 쓰긴 하죠.”
-바로 그걸 이용하는 겁니다.
“…”
잭 씨는 행사나 공연장을 갔을 때, QR코드를 찍어 뭔가를 인증하는 일을 예시로 들어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입장하기 위해선 QR코드를 통해 로그인을 해야 한다던가, 아니면 뭔가의 이벤트로 QR코드로 연결되는 어플을 다운하라고 할 수도 있겠죠.
“후자의 경우는 너무 대놓고 수작을 부리는 것 아닐까요? 눈치채기 쉬울 것 같은데.”
-후자는 그저 예시일 뿐입니다.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선 전자의 방법이 최고죠. 백그라운드로 몰래 설치하는 것이 가능하니까요.
“흐음….”
상당히 괜찮은 방법이었으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렇게 하려면 마릭을 직접 불러내야 해.’
다행히 내겐 그를 불러낼 방법이 하나 있었다.
‘마릭은 아직 내가 폴 에이프릴의 정체를 모른다고 생각할 거야.’
그러니 내가 폴 에이프릴 씨에게 연락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약속을 잡는 것도 매우 쉬운 일이었다.
‘저번 패션쇼에서 그는 계속 폴 에이프릴의 행세를 했었어. 왜일까?’
그것은 아마 폴 에이프릴이라는 인물을 계속 내세우며, 나를 염탐할 계획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을 위해선 나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겠지.’
그러니 내가 이런 제안을 해버리면, 절대 거절하기 쉽지 않다. 애초에 승낙할 수밖에 없는 약속과 제안을 할 생각이었기도 하고.
“그럼 잭 씨, 해킹을 위한 준비를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가능은 합니다만, 저는 이제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아서요.
“따지자면 불법이긴 한데…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을 구하다니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그에게 마릭 알파이즈에 관한 내용과 그에게 협박당해 억지로 협력 중인 로버트 알레그만 씨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마 마릭의 폰에는 로버트 씨 말고도 다른 사람들을 협박하는 자료들이 들어있을 겁니다. 그러니 그것을 모두 삭제하기 위해선 잭 씨의 해킹 능력이 필요해요.”
-…어쩔 수 없네요. 불법이라도, 이 경우엔 사람들을 돕는 일이니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잭 씨는 며칠의 시간을 달라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그럼 나도 준비를 해볼까.’
마릭을 불러내기 위해선, 몇 가지 준비 과정이 필요했다.
.
.
.
며칠 후.
준비를 마친 나는 마릭 알파이즈에게 전화를 걸었다.
“폴 에이프릴 씨, 의뢰를 하나 하고 싶은데요.”
-…무슨 의뢰요?
“제가 라이브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
-그렇습니다만….
“그 라이브 카페가 이번에 건물 전체로 확장하게 되어서요.”
예전에 나는 라이브 카페가 있는 건물을 통째로 구매했었다.
-그 건물이라면, 근데 제 기억으로는 그 건물엔 다른 가게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오,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예전에 미스터 윤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 건물에 관한 이야기도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요? 그것참 신기하네요. 그 내용에 대해선 인터뷰를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
“아니 했던가?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전화 너머에서 안도의 한숨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 가게들은 좋은 조건의 다른 장소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랬군요. 그래서 무슨 의뢰를 하고 싶으신 겁니까?
“건물 전체를 라이브 카페로 쓰게 되었으니, 다시 인테리어를 해야 하는데. 좋은 배경에서 찍은 제 사진을 각층에 걸어둘까 해서요. 그런데 마침 폴 에이프릴 씨가 사진작가 지망생이시니, 사진을 잘 찍으시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죠?
“그러니 한국으로 오셔서, 제 사진을 좀 찍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 비행기 티켓은 제가 미리 준비해두겠습니다.”
-…….
“물론, 페이도 넉넉하게 드릴 예정입니다.”
마릭 알파이즈는 내게 사진작가를 꿈꾼다고 했으므로, 절대 이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아니 거부할 이유가 없지. 내 옆에서 나를 더 자세히 관찰할 좋은 기회니까.’
그런데 그런 내 생각과 달리, 마릭은 조금 더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왜 제게 비행기 티켓까지 끊어주시면서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시는 겁니까? 한국에도 저보다 훨씬 더 뛰어난 사진작가가 있을 텐데요.
“아, 그건….”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다행히 금방 변명거리를 생각해낼 수 있었다.
“예전 오스트리아에서 폴 에이프릴 씨가 왕궁 내부 구경할 수 있도록 힘써주셨잖습니까. 그 답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답례요?
“네. 그리고 저는 폴 에이프릴 씨가 사진작가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거든요. 이번에 제 사진을 찍어주신다면, 아마 폴 에이프릴 씨의 커리어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겁니다.”
“…….”
급하게 생각해낸 변명치고는 상당히 그럴듯했다. 덕분에 마릭도 나에 대한 의심을 거두었는지, 내 제안을 곧장 수락했다.
-좋습니다. 언제쯤 한국으로 가면 되겠습니까?
“아무 때나요. 그런데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 같네요.”
-그럼 사흘 뒤에 뵙죠.
마릭과의 전화가 끊긴 뒤, 나는 곧장 잭 씨에게 연락했다.
“미끼를 물었습니다.”
-언제인가요?
“사흘 뒤에 온답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한국으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렇게 내가 짧은 통화를 끝내려던 찰나. 내 머릿속에 잊고 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잠깐만… 그냥 아예 이번 기회에….’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곧장 잭 씨와 공유했다.
-미스터 윤의 말대로 그 마릭 알파이즈라는 사람이 나쁜 놈이라면, 나쁘지 않은 생각입니다.
“그렇죠?”
-네.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내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던 자비르 씨와 올리버 씨에게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자 두 사람도 내 생각이 괜찮다는 뜻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럼 이번 계획과 함께 미스터 윤이 방금 떠올린 아이디어도 같이 추진하실 건가요?
“네. 성공확률은 희박하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좋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저도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해킹해보겠습니다.
잭 씨와 통화를 종료한 후, 나는 정말 오랜만에 ‘그 사람’에게 연락했다.
뚜루루- 달칵.
-여보세요.
전화 너머로도 느껴지는 초췌한 목소리에,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나의 말에 전화 너머의 남자가 화들짝 놀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협력이라면… 혹시 그가 나타났습니까?
“네. 심지어 사흘 후에 한국에 들어와 저를 만나러 올 겁니다.”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남자는 비장한 목소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누구에게 연락하신 겁니까?”
자비르 씨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어왔다.
“마릭 알파이즈를 잡고 싶어하며, 자비르 씨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요.”
“제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설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드웨이크 형사님에게 연락했습니다.”
독일의 드웨이크 형사는 오랫동안 마릭을 추격해 왔으며, 그 누구보다도 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예전에 마릭이 운영하는 것 같은 경쟁 기업이 나타나게 되면, 연락해 달라고 했었지.’
그동안 여러 사업과 패션쇼 준비를 하느라 바빠, 그 약속을 까맣게 잊어먹고 말았다.
‘이제라도 연락을 했으니 되었어.’
나의 계획은 이러했다.
‘일단 나는 가장 먼저 마릭과 함께, 미리 섭외해놓은 촬영장소로 갈 거야.’
그곳에 입장할 때 필요하다는 핑계로 마릭이 QR코드를 찍도록 유도할 것이다.
‘그렇게 잭 씨의 해킹이 시작되는 거지.’
잭 씨의 실력이라면 마릭의 핸드폰 속 피해자들의 약점들을 하나하나 찾아낼 수 있을 터.
‘원래는 그것들을 전부 삭제해달라고 하려 했지만, 드웨이크 형사님이 오신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나는 그 모든 증거 자료를 드웨이크 형사님에게 넘길 생각이었다.
‘그 증거만 있다면 형사님이 마릭 알파이즈를 체포할 수 있을 거야.’
그럼 나는 마릭에게 사업영역을 빼앗길 염려를 이제 더는 하지 않아도 된다.
‘사흘 후, 모든 것이 결정돼.’
그렇게 나는 생각했고, 사흘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