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17
17화 무조건 진행 시켜!
윤현민이 없는 사무실은 상당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김 대리, 생산 업체는 알아봤어?”
“네, 과장님. 디자인 시안만 나오면 바로 의견 조율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대리는 마케팅 부서에 연락해 봤어? 그놈들은 도와준다고 해놓고, 왜 소식이 없어!”
“방금 연락해 보긴 했습니다.”
“뭐래? 디자이너들은 구했데?”
차수혁 과장은 기대감을 안고 물었지만, 한 대리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아뇨. 그게 웬만한 이름있는 디자이너들은 이미 다른 회사와 계약되어있어,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디자이너들 전부가 다 계약된 것은 아닐 것 아냐.”
“물론, 쉬고 있는 디자이너들도 있지만. 그들이 몸값을 터무니없이 높게 부르는 바람에….”
몸값이라는 말에 차수혁 과장이 혀를 찼다.
“쯧쯧! 아니, 패션 사업을 하고 싶다고 팍팍 밀어줄 것처럼 굴더니. 예산을 이렇게 쥐꼬리만큼 줘서 뭔 일을 하라는 건지!”
차수혁 과장의 불평에 한마디를 하려던 신동윤 부장은 이내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집어삼켰다.
‘팀원들 사기 떨어지지 않게 불평불만은 자제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신동윤 부장 또한 차수혁 과장의 말에 동감하고 있었다.
‘대학교 과제 하는 것도 아니고. 예산이 적으니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
당장 첫 회의에서 신생 브랜드를 알리는 방법으로 제시된 아이디어들만 봐도 그렇다.
‘TV 광고는 그렇다 쳐도, 너튜브라니.’
아무리 요즘 디지털 마케팅이 대세라지만, 대기업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엔 너무 평범한 아이디어였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솔직한 심정으로 신동윤 부장은 조금 더 참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원했었다.
‘스케일도 키우고, 전 국민의 주목도 살 수 있을 만한 것.’
하지만, 임시로 운영되는 프로젝트 팀에게 그 정도 예산이 떨어질 리 없었다.
‘…임예진 디자이너를 섭외했다면 또 모를까.’
그녀는 재작년에 데뷔하자마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패션 디자이너 계의 초신성이었다.
‘임예진 디자이너의 옷은 신비롭기로 유명했어.’
그녀가 만든 신비로운 무늬에 고객들은 점점 빠져들었고, 이내 열광하게 되었다.
‘다른 디자이너들은 그런 그녀의 무늬를 따라 하고 싶었지만, 겨우 흉내만 낼 수 있었다고 했지.’
그 불규칙하고 독특한 패턴의 무늬는, 다른 디자이너들은 따라 할 수 없는 그녀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때문에 임예진 디자이너의 옷들은 그 유니크함에 늘 품절 되기 일쑤였고. 그렇게 그녀는 단번에 네임드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임예진 디자이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취를 감추었다.
‘흥행이 보장된 수표인 임예진 디자이너를 섭외할 수 있었다면, 회사에서 예산을 더욱 많이 주었을 텐데.’
황금알을 낳아 줄 그녀가 GA패션에 합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면, 회사에선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일 터. 아마 다른 부서로 갈 예산까지 당겨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됐어. 어차피 불가능한 일을 가정해서 뭐 하겠어.’
지금 임예진 디자이너를 찾는 회사는 그들만이 아니었다. 각종 이름 좀 들어봤다는 회사에서부터. 사넬, 에르마스, 루이바통, 다올, 프리다 등의 명품 브랜드까지.
전부 눈에 불을 켜고 임예진 디자이너를 찾았지만, 모두가 그녀를 찾는 데 실패했다.
‘어쩔 수 없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그렇게 신동윤 부장이 다시 업무에 집중하려던 때, 차수혁 과장의 노성이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아니, 할 일이 산더미인데! 윤 대리 이놈은 맨날 어딜 싸돌아다니는 거야!”
그 말에 신동윤 부장도 인상을 찌푸렸다.
‘당돌한 놈. 대단한 사람을 섭외해 오겠다고 큰소리치길래, 외근을 허락해 주긴 했다만.’
그것도 정도껏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매일 눈치도 보지 않고, 외근을 나갈 수 있는지.
‘…어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을 섭외해 오는지 두고 보자.’
이때, 신동윤 부장은 외근을 나간 윤현민이 금덩이를 물고 돌아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
사무실에서 과장님의 윤현민에 대한 분노가 터져 나왔던 그 시각.
나는 블레이저를 선물해 주었던 여자. 아니, 임예진 디자이너를 만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이 임예진 디자이너였군요.”
“네, 맞아요. 제가 임예진이에요. 그나저나 놀랐어요. 설마, 윤현민 씨가 저를 찾는 패션 사업부 직원이었다니.”
“정확히는 임시 사업부이지만요.”
“임시요?”
나는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새로 출범할 브랜드의 홍보를 위해 사람들을 섭외하고 계셨던 거군요.”
“…네, 맞습니다. 그중에서 웨이런 씨는 어제 섭외를 완료했습니다.”
웨이런 씨를 섭외했다는 말에 임예진 씨가 놀라워했다.
“아! 웨이런 씨요? 저도 그분 구독자인데. 그런데 웨이런 씨는 협찬은 안 받는 것으로 유명하신데, 어떻게 섭외를 하셨나요?”
“정확히는 조건부로 승낙하셨습니다.”
“조건이요?”
나는 가만히 임예진 씨를 바라보았다.
“설마… 저요?”
“네. 웨이런 씨도 임예진 디자이너의 팬이더군요. 어제 제가 웨이런 씨와 함께 런웨이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제가 입은 블레이저가 임예진 디자이너의 것임을 그가 알아봤기 때문이었습니다.”
웨이런은 말했었다. 어제의 이벤트에서 보라색 팔찌들 사이로 임예진 디자이너의 블레이저를 알아봤었다고.
‘그 먼 거리에서 말이지.’
그 정도로 웨이런은 임예진 디자이너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래서 꼭 임예진 디자이너를 섭외해야 합니다.”
“…….”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본 나는 얼른 말을 이었다.
“조건은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
“…아뇨,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이건 제 개인적인 문제라.”
“어떤 문제가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임예진 디자이너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사정을 이야기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옷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유치원 때는 신문지로 종이옷을, 초등학교 때는 디자인 스케치를, 중학교 때부터 옷감으로 직접 진짜 옷을 만들어 입기도 했죠.”
그녀는 과거를 회상하듯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각오하며 이쪽 업계에 뛰어들었어요. 선배들이, 처음부터 잘 될 수는 없다. 수많은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며 종종 충고를 해주셨으니까요. 그런데….”
그녀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데뷔하자마자 너무 잘 된 거예요. 제가 디자인한 옷은 불티나게 팔려 가고, 연일 품절이 되었죠.”
“처음부터 인기가 많다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요?”
“맞아요, 좋은 일이죠.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기뻤어요.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시즌이었어요. 새로운 디자인의 옷을 만들어야 하는데, 엄청난 부담감이 느껴졌어요.”
실패 없이, 그녀는 처음부터 너무나 큰 성공을 이루었다. 때문에 그녀는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똑같은 성공을 거둬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된 것이었다.
“이번에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한 번 명성이 떨어지게 되면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내 실수로 브랜드 가치를 망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니, 더는 패션 디자인이 즐겁지 않았어요.”
“…그래서 자취를 감추셨군요.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임예진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면 안 좋은데….’
아무리 GA패션의 성공적인 런칭을 위해, 임예진 디자이너가 꼭 필요하다지만. 쉬고 싶어서 떠난 사람을 다시 불러올 수는 없었다.
‘솔직히 임예진 씨가 은혜를 갚고 싶어 하니, 기대하긴 했지만. 이런 사정을 듣고도 무리하게 부탁할 수는 없지.’
나는 결심했다. 아쉽지만, 임예진 디자이너는 포기하기로. 그러나 이어지는 임예진 디자이너의 말에 나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볼게요.”
“정말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시다고 하셨잖아요?”
“네, 지금도 다시 디자인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무서워 죽겠어요. 하지만 우리 엄마를 구해준 윤현민 씨의 부탁이니 꼭 들어드리고 싶어요.”
덜덜….
말과는 다르게, 임예진 씨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여전히 이 모양 이 꼴이라니 저 자신이 한심하네요.”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그냥은 좀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니 저를 섭외하시려면 한 가지 조건을 꼭 들어주셔야겠어요.”
회사에서 찾을 수 없어 포기했던 디자이너를 섭외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녀 자신이 저렇게 노력하려 한다면.
그 조건이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었다.
“조건이 뭐죠?”
“성공을 보장해 주세요.”
“보장이요?”
“네. 만약에 제가 디자인한 옷이 실패한다면, 저는 앞으로 다시는 재기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GA패션이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는 근거를 보여주세요. 그게 제 조건이에요.”
무척이나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조건이었다.
현재 우리 팀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홍보는 TV광고와 너튜브, 그리고 임예진 디자이너가 합류했다는 가정하에 콜라보 소식을 알리는 것뿐이다.
‘하지만 불안해하는 임예진 씨를 안심시키기에는 이것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겠지.’
일반적인 홍보로는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스케일을 더욱 키워, 전 국민이 GA패션을 주목하도록 만들어야만 임예진 씨도 안심하고 우리에게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내 머릿속으로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방법이라면 임예진 씨도 만족하고, 더불어 웨이런도 극한으로 활용할 수 있겠어.’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이걸 실행하려면, 예산이 엄청 많이 필요하겠는데?’
지금 부서에 주어진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웨이런과 임예진 디자이너를 섭외하기 직전이야. 경영진들과 잘만 이야기하면, 예산을 늘릴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조금 답답했다. 아주 멋진 일을 할 수 있는데, 예산이 부족해서 망설여야 한다니 말이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 ‘예산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싶다.’는 작은 욕망하나가 생겨났다.
“제가 무리한 조건을 걸었을까요?”
생각에 잠긴 내게 임예진 씨가 걱정스레 물어왔다.
“아닙니다, 잠시 생각할 게 좀 있어서요.”
“무슨 생각을 하셨는데요?”
나는 그녀에게 예산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그래서 예산을 더 늘리려면, 경영진을 설득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 설득의 근거를 하나 더 마련하면 좋겠는데….”
“설득의 근거요?”
“네. 지금 웨이런 씨와 임예진 씨를 섭외하기 직전이지만, 두 분만으로는 제가 생각한 프로젝트에 필요한 예산을 받아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
그러니까 바로 그게 문제였다.
‘김태진이나 한유경 씨가 괜찮은 사람을 섭외했길 바라는 수밖에 없나.’
그렇게 다시금 고민에 빠진 나는, 무심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최창제MD까지 섭외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 혼잣말입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뇨, 방금 최창제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임예진 씨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제 남자친구예요.”
“…네? 누가요?”
“최창제가 바로 제 남자친구라고요.”
깜짝 놀란 나는 그녀에게 최창제 씨를 만나게 해줄 수 있냐고 물었고, 이어서 긍정적인 대답을 얻어낼 수 있었다.
“사실 남자친구가 휴직한 이유가 바로 힘들어하는 저 때문이에요. 힘들어하는 제 곁에 있어 주겠다고….”
“…아, 예.”
“아무튼 사정을 말하면, 남자친구도 흔쾌히 이번 일을 맡아줄 거예요.”
그녀는 곧바로 최창제 씨에게 연락해 나와 연결해 주었고,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괜찮은 제안이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나흘 뒤에 만나서 나누시죠.
그렇게 나흘 후.
나는 웨이런, 임예진, 최창제를 만나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여 최종적으로 도장만 찍으면 되는 상태까지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나는 부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말씀드렸다.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러게요. 그런데 실제로 제 눈앞에 세 사람이 있네요.”
-…이런 미친….
“아, 그리고 홍보를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예산이 아주아주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일단 들어와서 마저 이야기합시다.
그렇게 나는 회사로 복귀해, 정식으로 보고할 수 있었고.
“너 혹시 미친놈이냐…”
“이게 가능해요?”
“…….”
경악 어린 팀원들의 시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아까 전화로 얘기했던 새로운 아이디어가 뭐죠?”
부장님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내게 물어왔다.
“아, 그건 말이죠….”
내 아이디어를 들은 팀원들 대부분이 감탄했고. 부장님은 결의에 찬 목소리로 선언했다.
“…이건 무조건 진행 시켜야겠네요. 그러니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예산을 당겨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