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최고의 무대 (2)
나에겐 많은 꿈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작가, 아름다운 연주를 펼치는 피아니스트, 그리고 큰 무대에서 멋지게 노래하는 가수.
그러나 이런 꿈을 꾸기엔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꿈을 잃어버린 채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버렸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만 급급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큰 행운이 찾아왔다.
지금껏 불운했던 삶에서 처음으로 느껴본 행운은 내게 한껏 여유로워진 삶을 선사했고,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꿈꿔왔던 것을 새로 시작하고 이루기에는 내가 너무 나이가 많았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예술계는 재능이 가장 중요했기에. 30대의 나이로 도전하기엔 너무나도 무리였다.
그래서 나는 간접적으로나마 내 꿈을 이루려 하였다.
라이브 카페를 차려, 무대를 설치했고. 낮에는 피아노를, 밤에는 노래를 불렀다. 비록, 온 세상이 주목하는 피아니스트나 가수가 되진 못했지만. 나름 나를 좋아해 주는 팬도 생겼으며, 소소하게 개인 방송을 하기도 하면서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게 내 한계였지.’
더 큰 무대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욕망은 여전했으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나는 지금의 수준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뭔가가 부족한 만족감이었다.
그래서.
지금, 무대를 오르는 이 순간이.
저벅저벅.
나는 무척이나 설레었다.
‘느껴져.’
내 등 뒤로 느껴지는 수많은 시선이 느껴진다. 아마 뒤를 돌아보게 되면,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릴지도 모른다.
‘…일단, 지금은 아일라의 상태부터 확인해야 해.’
나는 정면만을 바라보며, 휘청거리며 서 있는 아일라에게로 향했다.
“괜찮아?”
아일라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요.”
그때, 여성 스태프가 다급하게 다가와 아일라의 마이크와 인이어를 제거해 주었고. 그제야 아일라가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너무 졸려.”
“졸리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모르겠어. 아까 리허설 때부터 졸음이 너무 쏟아졌는데, 지금까지 억지로 참았거든. 그런데 이제 한계야.”
아일라의 나른한 눈은 당장이라도 잠들 듯,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건 꼭 수면제를 먹은 사람 같은 반응인데.’
당연한 얘기겠지만, 아일라는 공연 전에 수면제를 먹지 않았다.
‘먹은 거라고는, 쿠키밖에 없… 설마?’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방금 인이어를 제거해준 스태프에게 대기실의 쿠키를 보관해달라고 부탁했다.
“일단, 들어가서 쉬고 있어.”
“…속상해. 내가 무대를 끝내지 못하다니.”
“…….”
“그래도 자기가 있어서 다행이야. 부디, 우리 콘서트의 마지막을 잘 장식해줘.”
부탁하는 아일라의 목소리엔 강한 신뢰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막상 이렇게 큰 무대에 올라오고 나니, 아까의 설레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그 자리엔 커다란 두려움만이 남아버렸다.
‘이 무대는 중요해.’
스페이스 Y의 홍보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아일라가 오랫동안 준비한 공연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나는 마지막 곡을 연습한 것도 아니잖아.’
아일라의 부탁으로 몇 번 같이 불러보았던 게 전부였으니, 이 실력으로 전세계가 주목하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내가 여기에서 나서버리게 된다면, 전세계 사람들에게 우리의 관계가 들킬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아일라에게 안 좋은 영향이….’
이런저런 생각에 내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을 때.
짝.
아일라가 정신을 차리라는 듯, 내 눈앞에다 손뼉을 쳤다.
“자기,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단순하게 지금 노래를 부르고 싶은지 아닌지만 얘기해봐.”
그런 아일라의 물음에 나는 방금 무대에 오를 때를 떠올렸다.
‘설렜었지.’
잠시나마 저 수많은 관객의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었다. 그리고 나는.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었다.
“…응. 그런 것 같아.”
“그럼, 불러야지. 뒷일은 나중에 생각해.”
나른한 표정으로 배시시 웃는 아일라의 모습에서, 나는 지난날 그녀를 처음 만났던 제주도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래, 해보자.’
일단 저지르고 봐도 좋다. 실패하면 어떠한가. 그 실패 속에서 나는 또 다른 길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나는 실패하지 않아.’
나는 운이 너무나 좋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치 로또에 처음 당첨되었을 때처럼 자신감이 마구 샘솟기 시작했다.
덥석.
나는 아일라가 건네준 마이크를 붙잡으며 말했다.
“들어가서 쉬고 있어.”
“응, 공연 잘하고 와.”
그렇게 아일라가 무대를 빠져나간 후. 나는 크게 심호흡하며 뒤돌았다. 그러자.
웅성웅성-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듯 보이는 관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사람은 누구지?
-어디서 많이 봤는데?
-어? 저 사람 혹시, 미스터 윤 아니야?
-에이, 그 사람이 여기서 왜 나와. 그런데 많이 닮긴 했다.
-그런데 이거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 거야? 아일라는 사라지고 웬 남자가 무대에 올라와선….
-갑자기 게스트라니? 당황스러운데?
-이것도 그냥 연출 아냐?
너무 멀어서 관객들이 실제로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이런 종류의 대화이지 않을까 싶었다.
꿀꺽.
그렇게 막상 관객들의 모습드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압박감이 장난 아니었다.
‘…라이브 카페의 무대에 처음 섰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야.’
생전 처음 느껴보는 압박감에 나는 마이크를 쥐는 것조차 쉽지 않게 느껴졌다.
‘아일라는 매번 이런 압박감을 느끼며 노래를 부르는구나.’
그것도 행복하게 즐기면서 말이다.
‘…나도 아일라처럼.’
부담감은 없었다.
운 좋은 나는 실패하지 않을 테니까.
불끈.
그렇게 나는 마이크를 쥐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아, 반갑습니다. 저는 윤현민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에겐 미스터 윤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실 것 같네요.”
그런 나의 인사말에 객석의 웅성거림이 더욱 심해져 갔다.
“이런 갑작스러운 이벤트가 발생하여, 여러분들이 많이 당황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무대 중간에 난입한다는 것은 원래 있었던 계획이었으나. 아일라 씨의 컨디션 난조로 인해 계획에 살짝 수정이 생겨, 부득이 제가 마지막 순서로 올라오게 되었네요.”
실제로 이러한 계획은 없었지만, 이렇게라도 설명하지 않으면 추후 아일라가 무대를 이탈한 것에 대해 추문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최대한 원래 있었던 계획이었던 것처럼 말했다.
‘그래야 비난을 받더라도 그 시선이 내게로 향할 테니까.’
이 콘서트의 스폰서는 바로 나이므로, 나중에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스폰서의 갑질로 스타더스트의 동의 없이, 억지로 무대에 오른 거 아니야?’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내가 조금 욕을 먹게 되겠지. 아일라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게 될 것이다.
‘물론, 아일라와 나의 관계가 밝혀지게 된다면 별 소용없는 짓이지만.’
그래도 보험은 많을수록 좋았다. 토끼가 여러 개의 굴을 파는 것처럼 말이다.
“이 자리에 계신 대다수분들은 모르시겠지만, 사실 저는 한국에서 라이브 카페를 운영하고 있으며 종종 공연을 해왔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가 스타더스트 밴드의 실력에 준할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잠시 뜸을 들이며 객석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마 나쁘진 않을 겁니다. 만약, 정말로 들어주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면. 그땐, 티켓값을 전부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웅성웅성-!
환불해주겠다는 말에, 관객들의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이 정도면 정말로 아일라가 욕을 먹는 일은 없을 거야.’
이제 준비는 끝났다.
“그럼, 노래 시작하겠습니다.”
***
콘서트장에는 스타더스트 밴드의 오랜 팬들이 많았는데, 골드만리치의 루카스 솔로몬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기자가 콘서트장 티켓을 두 장 구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부탁하여 함께 온 것이었다.
“루카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나도 모릅니다.”
기자의 질문에 루카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놀란 이는, 다름 아닌 루카스였다.
‘미스터 윤이 왜 저기에?’
나름 친분이 깊었던 그가 스타더스트 밴드의 무대에 오르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이래도 되는 건가?’
물론, 루카스는 사업적으로 윤현민을 신뢰했다. 하지만 그것과 콘서트는 다른 문제였다.
‘…이러다 무대를 망치는 것 아니야?’
루카스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불안한 마음만 가득했다.
‘미스터 윤이 한국에서 라이브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런 자그마한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과 이런 대형 콘서트장에서 노래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으므로, 루카스는 불신 가득한 눈으로 윤현민을 바라보았다.
‘만약, 스타더스트의 무대를 망친다면….’
아무리 미스터 윤이라고 해도, 자신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노래 시작하겠습니다.
둥 탁 두두둥 탁!
그때, 드럼의 비트와 함께 마지막 곡이 시작되었다.
[잃어버린 꿈과 함께 멀어진 기억] [나는 이따금 시간의 미로 속에 갇혔던 날들을 떠올려] [하지만 이제 내게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며] [빛나는 별들과 함께 내 꿈을 부를래]윤현민의 노래를 들은 루카스의 두 눈이 커졌다.
‘제법이잖아?’
나쁘지 않았다. 일반인 수준은 이미 벗어나 있었고, 웬만큼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스타더스트 밴드의 무대에 서기엔 많이 모자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루카스뿐만이 아니었다. 관객들 대다수가 루카스보다도 더 삐딱한 시선으로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시 꿈꾸게 된 나의 노래가] [얼마나 높이 날아갈 수 있는지] [너와 나 함께 춤추며] [함께 느껴보자, 그리고 간직하자] [이 순간을 영원토록]하지만 노래가 계속될수록, 관객들은 점점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무대 위의 윤현민에겐 그 어떤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무대를 제집처럼 뛰어놀며 즐기고 있었다.
게다가 그런 그의 행복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관객들도 덩달아 흥이 나기 시작했다.
[세상을 우리의 노래로 물들여보자!] [저 빛나는 별을 가슴에 품으면서 말야!]고음 파트도 무리 없이 소화하는 윤현민의 모습에, 몇몇 관객들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높은 고음을 지른 것은 아니지만.’
루카스는 그럼에도 듣기가 좋았다. 진심으로 무대를 즐기고 있는 윤현민의 모습이 부족한 노래 실력을 메워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잠깐, 이 장면 많이 봤었는데?’
윤현민의 무대를 유심히 보던 루카스는, 예전 한국에서 겨우 구한 스타더스트 밴드의 라이브카페 공연 동영상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럼 설마, 그때 스타더스트와 함께 노래했던 정체불명의 한국인이 미스터 윤?’
루카스는 새롭게 알아낸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파앗-!
그때, 윤현민의 주변에 설치된 3D 전광판에 화려한 연출이 펼쳐졌고. 무대 위에 펼쳐진 끝없는 은하수의 모습에 관객들의 몰입감이 더욱 올라갔다. 덕분에 여전히 삐딱하게 무대를 바라보고 있던 관객들까지 하나둘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관객들의 모습을 본 윤현민은, 벅찬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내 노래를 사람들이 좋아하고 있어.’
신기한 일이었다.
노래를 이어 나갈수록, 그가 무대를 즐길수록. 관객들의 표정이 하나둘 바뀌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느껴져. 이렇게나 멀리 있는데도.’
그것은 라이브 카페의 무대에선 절대 느껴보지 못한 황홀감이었다.
‘더… 더 노래하고 싶어!’
윤현민은 더없이 활짝 웃으며 목청 높여 노래를 불렀다.
[나는 다시 꿈을 꿔] [잃어버린 나의 꿈을] [그리고 나아갈 거야] [저 멀리, 더 높게!]이 흥분, 이 고양감.
무대 위에서 윤현민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부디 이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쉽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
노래는 마지막 소절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기억하자 별들의 빛남을] [바로 지금, 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음을]그렇게 노래가 끝난 후. 콘서트장에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고.
“헉… 헉….”
윤현민의 헐떡이는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리고 몇 초 후.
와아아아-!
객석에서 뜨거운 함성이 이어졌다.
“…루카스.”
“…예?”
“아무래도 제가 방금 특종을 잡은 것 같습니다.”
루카스는 입을 벌린 채, 무대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기자에게 말했다.
“제 생각에도 그런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한 루카스는 주먹을 높이 들어 올리며 외쳤다.
“앵-콜-!”
콘서트 장에 조용히 퍼지기 시작한 그의 목소리. 이윽고 그것은 점점 거대한 함성이 되어갔다.
앵콜! 앵콜! 앵콜!
즐거운 표정으로 앵콜을 외치는 관객들의 모습에, 윤현민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이거지.’
이게 바로 내가 꿈꿔왔던 최고의 무대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한 곡 더 불러보겠습니다!”
둥 탁탁 두가둥 탁!
그렇게 다시 시작된 공연에 윤현민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노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