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19
19화 루미에 패션쇼 (1)
경영진들이 결정한 지원 금액은 원래 50억 원이었다.
그런데 이 금액이 150억 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약간의 나비효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예산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지만, 나쁘지 않더군요.”
윤현민이 발표한 아이디어는 경영진들이 회식 자리에서 술안주 삼아도 될 만큼 꽤 괜찮은 인상을 남겼다.
“그 친구의 아이디어가 그렇게 좋았다고?”
그 자리에 있던 거암 물산의 사장, 강진수의 귀에 들어갈 만큼.
“예. 적어도 대리급에서 생각해낼 만한 아이디어는 아니었습니다.”
“3D 광고판을 활용한 야외 런웨이라. 재밌긴 하네.”
그동안 3D 전광판을 활용한 패션쇼의 사례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패션쇼들은 모두 실내에서만 진행되었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최초로 야외 3D 패션쇼를 시도하게 되는 셈인가? 그 친구 말대로 방송국들이 군침을 흘리면서 달려들겠어.”
“아이디어도 아이디어지만, 젊은 친구가 배포가 대단했습니다. 임원진들이 노려보는데, 떨지도 않고 조리 있게 잘 말하기도 했고. 질문에도 막힘없이 대답하더군요.”
“그래?”
윤현민이라는 인물에게 더욱 흥미가 생긴 강진수 사장은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확실하게 지원하면 좋겠는데. 타 부서 잉여 예산까지 긁어모아도 60억이 한계라고?”
“그것도 다른 사업 부문의 최소 운영비만 남기고 계산한 것이라, 실제로는 50억 원이 한계입니다.”
강진수 사장은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쯧! 하긴, 어쩔 수 없나. 그렇다고 검증도 안 된 임시 부서에 다른 사업을 포기하고 올인할 수도 없으니.”
국내 이슈를 넘어, 어쩌면 국외에서도 주목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에. 예산이 부족하여 그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니.
‘아쉽네, 아쉬워.’
강진수 사장은 그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다음 날, 미리 약속되어 있었던 두 회장님과의 점심 식사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었던 것은.
“…그런 일이 있었다고?”
“예. 그 친구의 아이디어가 제대로 추진된다면, GA패션의 런칭은 매우 성공적일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강진수의 말이 끝나자, 강진목 회장은 매우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네도 들었지? 이렇게 우리 거암의 미래가 밝다네. 하하!”
“…왜 맨날 밥 먹는 자리에 자식들을 데려오나 했더니, 자랑질하려고 그랬던 거구만. 쯧쯧.”
“뭐, 그런 것도 없지는 않네만.”
“뭐야?!”
부들거리는 오뚝이의 함중훈 회장과 그 모습에 크게 웃는 거암 그룹의 강진목 회장.
‘아무리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온 막역한 사이라고 하지만, 볼 때마다 영 적응이 안 되는군.’
호랑이처럼 무서운 회장님이, 함중훈 회장님만 오시면 저렇게 무장해제가 되어버리시니.
평소와는 매우 다른 모습에 어떻게 대화에 끼어들어야 할지 난감한 강진수 사장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밥만 먹을 수도 없고 말야.’
그렇게 속으로 끙끙 앓고 있던 찰나, 다행히 강진목 회장이 먼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진수야, 그 친구가 임예진 디자이너도 섭외해 왔다고 했었지?”
“예, 뿐만 아니라 최창제 MD와 400만 너튜버 웨이런도 그 친구가 섭외해왔다고 합니다.”
“그래? 대단한 친구로군. 그래서 그 친구 이름이 뭐라고?”
“윤현민 대리입니다.”
“…뭐?”
강진수의 대답에 반응한 것은 강 회장이 아닌 함 회장이었다.
“윤현민 대리…”
함중훈 회장은 강진수 사장에게 물었다.
“혹시, 그 친구 영업팀에서 근무하지 않았나?”
“아, 맞습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영업팀에서 근무했다고 들었습니다.”
“오오! 그 친구가 맞구만!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제대로지. 암!”
“지금 그게 대체 다 무슨 말인가?”
함 회장은 얼마 전에 있었던 미팅 때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이윽고 함 회장의 이야기가 끝나자, 강 회장과 강진수 사장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그래. 어린 친구가 참 침착하게 대응을 잘하더군. 배포가 아주 남달랐지.”
그때를 회상하며 기분이 좋아진 함중훈 회장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강가야. 내가 봤을 때, 그 친구는 기회가 된다면 큰일을 해낼 거라는 느낌이 든다. 그릇이 보통 놈들하곤 남달라.”
“…그 정도라고?”
강진목 회장은 속으로 매우 놀랐다. 어릴 적부터 봐왔기에, 함중훈 회장의 사람 보는 눈이 매우 정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전부터 함가 녀석은 기이할 정도로 뛰어난 인재를 잘 찾아냈었지.’
그것은 노력이나 경험의 영역이 아니었다. 함중훈 회장은 타고난 감으로 사람의 재능을 꿰뚫어 보곤 했었다.
“내가 조언을 하나 하자면, 그 윤현민이라는 친구에게 한 번 투자해봐. 아마 후회하지는 않을 게야.”
그런 함 회장의 조언이었기에, 강 회장은 신중하게 고민했다.
“진수야. 그 친구가 요구한 예산이 얼마라고 했었지?”
“100억입니다, 회장님.”
“그런데 거암물산에 자금이 부족하다고?”
“…예, 현재로서는 50억 원이 한계입니다.”
“…그래?”
강 회장은 비서실장을 불러 물었다.
“이 실장, 내가 전에 찝찝하다고 했었던 사업 있었지? 그거 투자금이 얼마라고?”
“강원도 테마파크 건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약 100억 원입니다.”
“그래? 그럼 그거 당장 취소하고, 100억 전부 패션 사업부에 투자해.”
그런 강 회장의 말에 그 자리의 모두가 놀라고 말았고, 오직 함 회장만이 껄껄 웃으며 흡족해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예상보다도 훨씬 더 큰 금액에 강진수 사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왕 투자하려고 마음먹었으면, 제대로 해야지. 패션 사업부에 부족한 인력도 채워 넣고, 언론에도 미리 좀 언질 줘서 홍보도 확실히 해봐.”
친우의 감을 믿고 큰돈을 투자한 강 회장의 두 눈이 빛났다.
“어디, 그 친구가 얼마나 잘 해내나 두고 보자고.”
***
예상보다 더 큰 150억 원이라는 지원금이 생겨나자, 우리 팀은 환호성을 질렀다.
“좋았어!”
“이 정도면, 패션쇼 연출에 더 힘써봐도 되겠는데요?”
경사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김 대리! 임예진 디자이너가 요청한 원단은 알아봤어?”
“그거 지원팀에서 알아봐 준다고 합니다!”
소수로 운영되던 우리를 도와줄 팀까지 생겨났다. 덕분에 다소 느렸던 업무 진행 속도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이 속도라면 내년 봄까지는 런칭이 가능하겠는데?’
원래라면 디자인 시안이 나올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야 했지만, 다행히도 임예진 씨가 평소에도 디자인 구상을 해온 덕분에 시간을 더욱 줄일 수 있었다.
아, 여담으로 내 아이디어를 들은 임예진 씨와 최창제 씨, 그리고 웨이런은 모두 엄지를 치켜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면 계약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 같네요.
-실패하는 게 오히려 힘들겠는데요? 제가 방송국을 잘 구워삶아서 틈틈이 잘 홍보해 보겠습니다.
-이건 내 전공이라 더욱 좋네요.
임예진 씨는 안심하며 작업에 몰두했고, 한 달 만에 최초의 디자인 시안을 완성하였다.
최창제 씨는 자신의 확고한 입지를 활용하여 케이블에서만큼은 확실한 홍보를 해주었다.
그리고 모델 출신이었던 웨이런 씨는 자신의 인맥을 활용하여, 패션쇼에 참여할 모델들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다.
홍보과 에이스였던 한유경 씨도 홍보에 전력을 다했다.
그녀는 차 과장님과 함께 SNS와 TV 광고, 거기에 지하철 옥외광고까지 올리며, 최선을 다해 우리 GA패션, 아니. 브랜드, 루미에를 알렸다.
-루미에? 저게 뭐지?
-거암 그룹에서 새롭게 런칭하는 패션 브랜드 이름이라고?
-미친? 임예진 디자이너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다고?
-그래서 언제 런칭하는데?
그동안 패션에는 손을 대지 않았던 거암 그룹이 브랜드를 런칭 한다고 하자, 대중들은 호기심을 보였고. 임예진 이름 석 자에 환호했다.
의외였던 것은 뺀질거릴 줄만 알았던 김태진이 굉장히 적극적이었다는 점이었다.
‘내가 낸 아이디어가 아니 꼬아서 비협조적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처음 팀원들에게 내 아이디어를 발표했을 때, 오직 녀석만이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저렇게 열의에 불타서 움직인다라.’
녀석의 속은 뻔했다.
예산을 150억 원이나 지원해 주었다는 것은, 회사가 이전보다도 더 이 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뜻이니. 김태진 녀석이 출세를 위해, 자존심을 접고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했다.
‘아무려면 어때. 녀석 덕분에 생산 업체도 빨리 확보할 수 있었고, 가장 중요한 코엑스 3D 광고판과 부지 임대 계약을 서둘러 처리할 수 있었는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영업팀 최고의 인재였던 녀석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한편, 부장님 또한 매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 부장님, 어디 가세요?”
“…사장님께 보고드리러 갑니다.”
부장님은 우리 부서에 갑자기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사장님께 하루에 두 번씩 불려가 진행 상황을 보고하는 처지가 되었다.
덕분에 사장님의 눈도장은 확실히 찍을 수 있었지만, 보고할 때마다 이상할 정도로 집요하게 묻는 사장님 때문에 매일 수척해지고 계시다.
이 정도가 우리 팀의 근황이라 할 수 있겠다.
자, 그렇다면 정작 아이디어를 제시한 나는 뭘 하고 있었을까.
‘돌겠네.’
나는 팔자에도 없는 무대 기획을 하느라 매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연출, 무대 효과, 이벤트 등을 나보고 만들라니.’
사실 지원팀에 이어 전문 기획팀도 생겼었지만, 어쩐 일인지 상부에서 내게 직접 무대를 기획에 참석하라는 지시사항이 내려왔다.
아이디어를 낸 당사자이니 반드시 직접 총괄을 맡으라는 것이었다.
그 말인즉슨, 이번 런칭쇼를 망치면 내가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상관은 없다만. 그래도 이해는 안 되네. 고작 아이디어 하나 냈다고, 고작 대리인 내게 무슨 기대를 거는 건지.’
다른 직원들이었으면 부담감에 억눌려 매일 뜬눈으로 밤을 새웠어야 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부담감은 새끼손톱만큼도 느끼고 있지 않았다. 그것보단 해도 해도 끝이 안 보이는 업무에 질려 하는 중이었다.
‘다행히 패션쇼에 앞서 공연할 가수의 섭외나, 이벤트를 진행할 사회자, 그리고 기타 자재나 장비 등은 지원팀에서 맡아줬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넘쳐나는 업무에 과로로 쓰러질 뻔했다.
‘뭐, 그래도. 재미는 있네.’
150억. 무려 150억이었다.
내 통장에 들어있는 잔액의 9배가 넘는 금액.
그런 큰돈을 움직여서 대형 런칭쇼를 기획하고 제작한다는 이 상황이 내게는 무척이나 인상 깊게 다가왔다.
‘내 돈이 아니니 마음껏 써도 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없으니까. 일을 즐기게 되네.’
재밌었다.
무척이나.
다만, 재밌는 것과 골머리 썩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임예진 씨가 이번의 옷의 컨셉은 봄이라고 했었지. 근데, 봄을 무대 위에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건데…!’
임예진 씨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녀는 지금 핸드폰도 꺼둔 채,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뭐야? 너, 아직도 그러고 있냐?”
“아, 차 과장님.”
적응 안 되는 온화한 얼굴의 차 과장님이 내게 믹스 커피를 내밀었다.
“자, 이거 먹고 좀 쉬면서 해. 그러다 몸 상한다.”
“…예.”
불가능에 가까웠던 세 사람을 섭외하고. 예산 지원까지 왕창 얻어낸 이후부터, 차 과장님은 내게 과한 친절과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우리 팀 에이스 윤 대리야. 혹시 출출하진 않아? 뭐 좀 사다 줄까?”
‘진짜 적응 안 되네.’
나는 속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지금은 하던 일이 바빠서요.”
“그래? 하긴, 일도 흐름이 중요하니까. 근데 뭘 그렇게 고민하는 거야?”
“무대 기획이요. 봄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몰라서요. 3D 전광판의 영상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뭔가 아쉬운 느낌이라….”
“봄?”
차 과장님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 모습에 무언가 조언을 받을 수 있을까 기대했다.
이윽고 과장님이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별것도 없는 게 어렵긴 어렵네. 꽃 피어나고, 따듯한 바람 좀 살랑 불어주면 그게 봄인데 말야. 이걸 어떻게 무대에서 표현을….”
과장님의 중얼거림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꽃… 그리고 바람… 따듯한 봄 바람…!’
“바로 그거에요!”
“응?”
우리의 런칭 쇼는 밤에 진행된다. 아마도 시기는 내년 3월 말쯤.
‘봄이지만, 아직은 쌀쌀할 때야.’
관객들은 추위에 떨며 패션쇼를 관람하게 될 텐데, 그렇다면 온전히 봄을 느낄 수 있을까?
‘괴리감만 느끼게 될 거야. 그러니, 그 자리에 따듯한 봄을 불러와야 해.’
그러기 위해선 어떤 특정한 기계가 필요했고, 그것을 대여하기 위해선 많은 돈이 들겠지만. 상관없었다.
지원받은 예산은 아직도 넉넉했으니까.
“감사합니다, 차 과장님!”
“어… 그래, 열심히 해봐.”
차 과장님이 떠나고, 나는 다시 기획서를 작성해 나갔다. 그렇게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무대 기획서를 바라보며 나는 만족했다.
‘기대되는데?’
넉 달 뒤의 패션쇼가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 마침내 전 국민이 주목하는 루미에 패션쇼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