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진실 혹은 거짓
내가 마릭, 아니. 폴 에이프릴에게 연락하여 약속을 잡으려 했을 때. 놈이 보인 반응은 상당히 의외였었다.
-지, 진짜 미스터 윤이 저를 만나러 오신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혹시 언제 시간이 괜찮으신지….”
-와아! 이거 꿈이 아니죠? 세상에! 미스터 윤이 직접 전화를 주시다니! 그런데 왜 저를 만나러 오시는 건가요?
“왜냐니….”
나는 그가 일부러 시치미는 떼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마주한 마릭의 반응을 보았을 때, 도저히 그가 연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정말 저를 알고 계신 건가요?”
“그게….”
“예? 대답해주세요, 미스터 윤!”
내 두 손을 꼭 쥐며,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놈의 모습은. 어딘가 절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정말 기억상실에 걸렸다고?’
조금 전, 폴 에이프릴은 나에게 자신이 기억상실이라고 밝혔었다.
당연히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이전의 통화와 현재의 모습을 보니. 조금 헷갈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니야. 마릭이 어떤 놈인데.’
나는 그동안 보아온 놈의 행보를 떠올리며, 눈앞의 폴 에이프릴이 연기를 하는 것이라 확신했다.
‘마릭은 현재 정체를 숨겨야 해. 그러니 내 앞에서 저렇게 연기할 수밖에 없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놈에게 말했다.
“아뇨, 목소리가 비슷하셔서 제가 아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착각한 모양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
폴 에이프릴 씨가 무척이나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겨우 제 정체를 알고 계신 분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폴 에이프릴 씨,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그에게 기억상실에 걸리게 된 이유가 기억나는지를 물었다.
“어렴풋하게는 기억이 나는 것 같습니다.”
“혹시,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물론이죠.”
폴 에이프릴 씨는 기억을 더듬으려는 듯, 눈을 감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저는 어떤 남자와 함께 달리고 있었어요.”
“혹시,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나요?”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정확히 누구에게 쫓기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래서요?”
“남자와 저는 몸을 숨기기 위해 어느 산속으로 들어갔어요. 사방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고, 우리는 절벽 근처의 커다란 나무 뒤에서 숨소리를 죽였죠.”
그것은 아마도 마릭이 탈옥하여 쫓겼던 기억인 듯 보였다.
‘하지만 이상한데? 뉴스에서 마릭은 분명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고 했었어.’
그렇다면 지금 이 이야기는 마릭이 꾸며낸 거짓인 걸까?
‘일단 더 들어보자.’
나는 폴 에이프릴 씨의 이야기를 더욱 집중하여 듣기 시작했다.
“저는 옆에 앉은 남자에게 뭐라 뭐라 속삭였어요.”
“뭐라고 하셨는데요?”
“그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세바스탄? 위조? 여권? 계좌? 뭐,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그다음은요?”
“아무튼 한참 뒤에 호루라기 소리가 멀어졌고. 우리는 몸을 살며시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때, 같이 있던 남자가 저를 절벽으로 밀었습니다.”
“…절벽에서 떨어지셨다고요?”
그러니까 지금 폴 에이프릴 씨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 기억을 잃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높은 절벽이었는데요?”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아파트 7층 정도 높이였던 것 같습니다.”
“…용케 살아남으셨네요.”
“운이 좋았어요. 절벽 아래의 나뭇가지에 몸이 걸렸고, 마침 근처에서 캠핑 중이었던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거든요.”
“…….”
폴 에이프릴 씨는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데 절벽에 부딪히며 얼굴이 심하게 망가져서, 본의 아니게 성형수술을 받게 되었죠. 덕분에 목숨도 건지고, 보기 흉한 흉터도 남지 않게 되었지만. 제가 원래 누구였는지 찾을 방법이 사라지게 되었네요.”
“…그래서 아까 제가 당신을 아는 척 했을 때, 반가워하셨군요.”
“맞습니다. 생각해보니 얼굴이 바뀌었는데, 저를 보자마자 알아보는 것이 말이 안 되었네요. 너무 반가운 나머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모양입니다. 하하.”
“…….”
폴 에이프릴 씨의 이야기는 내가 긴가민가할 정도로 그럴듯해 보였다.
‘그래,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야.’
하지만 너무 드라마틱한 이야기라 오히려 인위적으로 느껴졌다.
‘…모르겠어.’
나는 눈앞의 남자가 정말로 기억을 잃은 것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만약 마릭이 거짓말을 하려 했다면, 이런 영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로 꾸며냈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증거도 없었다.
“…폴 에이프릴 씨.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미스터 윤. 말씀하시죠.”
“에이프릴 씨는 지금 세 가지 사업을 시작하셨잖습니까? 패션, 의료, 인공지능이 포함된 자동차 사업까지. 모두 서로 연관이 없는 사업들인데, 왜 굳이 동시에 시작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정말 폴 에이프릴 씨가 아까의 이야기를 거짓으로 꾸며내었다면. 이 물음에서 분명 허점을 드러내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무리 거짓말을 잘하더라도, 여러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타당한 이유를 찾긴 어려울 테니까.’
그런 내 질문에 폴 에이프릴 씨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그게 말이죠. 왠지 제가 기억을 잃기 전에 그 사업들에 집착이 강했던 것 같아서요. 혹시라도 기억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죠.”
“…….”
“게다가 저는 사실 이 사업들이 이렇게 잘 될 줄도 몰랐거든요.”
에이프릴 씨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손대는 모든 것에서 대성공하는 기이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이어서 설명하였다.
“운이 좋았던 거죠.”
“운이라….”
이렇게 큰 행운을 지닌 사람은, 나를 제외하면 마릭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허술하게 이야기를 지어낸다고?’
나는 폴 에이프릴 씨가 나를 속이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기억상실에 걸려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너무나 헷갈렸다.
“잠깐만요. 생각해보니, 이렇게 거대한 사업을 시작하려면 큰 자본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 자본을 어디에서 끌어오신 거죠?”
자금의 출처가 불분명하다면, 분명 떳떳하지 못한 돈이라는 뜻이며. 그것은 놈의 사업 자금이 마릭 본인의 비자금을 활용했을 확률이 높았다.
‘즉, 놈이 기억을 잃었다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게 어느 정도 증명이 될 수 있어.’
그러나 이어지는 에이프릴 씨의 설명은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아… 그게 잠시만요.”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책상에서 액자 하나를 들고 와 내게 보여주었다.
“이건…”
그것은 폴 에이프릴 씨가 파워볼 당첨금을 수령 하는 사진이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직후에 제가 길에서 10달러를 주웠거든요. 그 돈으로 파워볼을 했는데, 세상에. 그 주에 바로 당첨이 되었지 뭡니까.”
“…….”
“아아. 정말 황홀한 경험이었습니다. 게다가 이게 참 극적이었던 게, 제가 복권 한 장을 실수로 가게에 두고 왔었는데 말이죠. 한참 뒤에 가게 사장님이 저를 쫓아오셔서 두고 왔던 복권을 전해 주신 겁니다. 그리고 바로 그 복권이 당첨 복권이었던 거구요!”
“…정말 운이 좋으셨네요.”
“네. 그때의 인연으로 복권방 사장님과 종종 식사하곤 합니다. 어찌나 좋은 분이신지, 미스터 윤도 사장님의 과거를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말해주고 싶어 죽겠다는 에이프릴 씨의 표정에 나는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어떤 분이신데요?”
“그분이 라스베이거스에서 복권방을 운영하셨는데, 하루는 어떤 손님이 복권을 구입하곤 다시 돌아와 그걸 자기에게 던지고 갔더랍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에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그래서요?”
“그런데 글쎄 그 복권이 당첨 복권이었다지 뭐예요!”
“…….”
라스베이거스, 파워볼.
확실했다. 이건 내가 몇 년 전, 라스베이거스에서 구매한 파워볼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럼 그 사장님이 그 복권의 당첨금을 수령하신 건가요?”
“당연하죠. 그대로 뒀다간 수령 기간이 지나, 종이 쪼가리가 되었을 테니까요.”
그 말에 나는 아깝다는 생각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때 파워볼을 포기했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큰 행운이 되었네.’
하지만 이어지는 에이프릴 씨의 이야기에 나는 황당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사장님은 그 당첨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그대로 두셨답니다.”
“예에? 어째서요?”
“사장님은 그 당첨금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언젠가 복권의 원래 주인을 찾게 되면 돌려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참 양심적인 분이시죠.”
“…그게 정말입니까?”
“네. 그래서 사정상 가게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을 때, 무척 걱정하시면서 원래 가게가 있었던 장소에 작은 푯말을 남겨두고 오셨다고 해요.”
“무슨 푯말이요?”
“글쎄요. 당첨자만 알아볼 수 있는 푯말이라고 하던데요? 그 푯말을 보면, 옮긴 가게 위치를 알 수 있을 거라고요.”
“…….”
뜻밖의 이야기에 나는 속으로 무척이나 놀랐다.
‘설마,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아무래도 조만간 그 복권방 사장님을 만나 뵈어야 할 듯싶었다.
‘…잠시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샜네.’
나는 다시 그에게 질문했다.
“에이프릴 씨, 기억을 잃으셨다고 하셨는데. 폴 에이프릴이라는 이름은 기억을 하고 계셨던 겁니까?”
“아닙니다. 그저 제 머릿속에 강렬하게 박힌 이름이어서, 임시로 그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그게 제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 강하게 기억나는 이름이니. 아마도 제 이름이 맞을 것 같기도 하고요.”
“…….”
폴 에이프릴 씨는 내 모든 질문에 그럴싸한 답변을 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결론을 낼 수 없었다.
‘정말 기억을 잃은 거라고?’
나는 에이프릴 씨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왜요?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기억상실에 걸린 사람을 처음 만나, 신기해서요.”
“하하. 그럴 수 있죠. 그런데 미스터 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무슨 부탁이요?”
“잠시만요.”
에이프릴 씨는 책상 서랍에서 뭔가의 서류를 꺼내어 내게 보여주었다.
“이건…”
“에이즈의 치료제에 대한 저희 쪽 연구 자료입니다. 제가 듣기로 불치병 치료제 개발은 미스터 윤과 크리스토퍼 그린우드 씨가 독보적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두 분도 에이즈 치료제 개발만큼은 애를 먹고 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사실이었다.
다른 불치병 치료제에 관한 연구는 순조로웠으나, 유독 에이즈만큼은 난항을 겪고 있었으니까.
“이 자료는 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부디 참고하셔서 하루빨리 치료제를 개발해 주시죠.”
“그게 부탁인가요?”
내 물음에 에이프릴 씨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왜 이런 자료를 대가 없이 제게 넘기시는 거죠? 제가 입 싹 닦고 자료만 가져가면 어쩌시려고요.”
“상관없습니다. 제 목적은 돈이 아니니까요.”
“그럼요?”
“저는 돈을 벌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것뿐입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대답에 나는 무척이나 놀라고 말았다.
“…진심이십니까?”
“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는 예전부터 세상을 발전시키는 데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늘 잠들 때마다 머릿속에 이런 사업들이 떠올랐거든요. 그리고 파워볼에 당첨된 이후, 금전적으로 모자라지는 않으니, 해볼 만하다 느끼기도 했고요.”
“…….”
에이프릴 씨의 대답은 내 삶의 방식을 닮아 있었다.
‘진심일까? 아님 거짓말일까.’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진심이든 아니든, 그를 믿어보고 싶어졌다.
“…알겠습니다. 이 자료를 저희 연구원들에게 보여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만약 이 자료가 진짜일 경우, 저희와 함께 일하시죠.”
“예? 지금 제게 협력을 제안하시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보단 둘이서 일하는 게, 세상을 더욱 빠르게 바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나의 말에 에이프릴 씨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거절할 이유가 없지요.”
***
한국에 도착하여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생각했다.
‘정말 폴 에이프릴 씨가 기억을 잃은 것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릭 알파이즈는 분명하게 나쁜 놈이었다.
‘불법적인 일을 한다던가, 마약을 판매한다던가, 일부러 사람의 약점을 만들어 협박하기도 했지.’
하지만 기억을 잃은 그는,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운이 좋은 폴 에이프릴 씨와 협력하게 된다면, 앞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많은 도움이 될 거야.’
비록, 과거의 그는 자신의 가진 행운으로 수많은 죄를 지었지만. 앞으로 그 행운을 좋은 일에 쓰게 된다면. 세상은 더욱 빠르게 좋아질 것이었다.
‘어쩌면 그게 마릭의 속죄가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만에 하나라도 그가 거짓말을 하는 걸지도 모르니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방심하지 말자.’
나는 폴 에이프릴 씨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피곤했던 나는 그렇게 그대로 잠에 빠질 뻔했다.
‘아, 맞다.’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난 나는 즉시 몸을 일으켜,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100번째 버킷리스트 계획을 짜야 해.’
나는 두 눈을 부릅뜨며, 인터넷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