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2
2화 최고의 행운
“운이 좋으셨습니다.”
며칠 뒤, 깨어난 내게 했던 의사 선생님의 첫 마디였다.
“환자분은 과다출혈이셨어요. 게다가 희귀 혈액형이라 당장 구할 수 있는 혈액 팩도 없었죠.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병원에 환자분과 같은 희귀 혈액형의 소유자가 있었어요. 그것도 무려 스무 명이나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스무… 명이요??”
전 세계 1%.
우리나라 인구 중에선 0.3%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RH- 혈액형이다.
‘그런데 우연히 실려 온 병원에 무려 스무 명이나 있었다고?’
사실이라면,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운이 엄청나게 좋았던 거다.
“그 밖에도 뇌진탕 증세와 장 출혈이 있었지만, 처치가 잘 되어서 지금은 모두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곳저곳에 뼈가 부러진 상태이기에 4달 정도 요양하셔야 합니다.”
나는 내 몸의 자유를 억압한 전신 깁스를 착잡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4달이나 이런 상태로 지내야 한다고요?”
“계속 그 상태인 것은 아닙니다. 부위별로 뼈가 붙는 속도가 다르거든요. 아마 두세 달 정도면 팔은 자유롭게 움직이실 수 있으실 겁니다.”
“…….”
그래. 이만한 것도 천만다행인 거다.
아무리 아프고 불편하더라도, 죽는 것보단 나았으니까.
‘천운이었던 건가.’
자동차에 치여 심장이 정지되었는데도 살아날 수 있었고, 마침 희귀 혈액형 보유자가 병원에 20명이나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정말 천운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 쓸 운을 지금, 이 순간에 쓰려고 그동안 운이 나빴던 걸지도 몰라.’
그때, 설명을 마친 의사 선생님이 병실을 떠나려 했다.
“그럼 환자분, 쉬세요.”
“잠시만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이거… 병실이 어떻게 된 거죠?”
내가 있는 이곳 병실은 6인실도 4인실도 아니었다.
“여기 1인실인가요? 설마, 특실은 아니죠?”
그것도 그냥 1인실이 아니었다. 병실은 넓었고, 마치 호텔처럼 고급스러웠다. 드라마 속 회장님들이나 사용하던 그런 병실이었다.
“네, 1인실도 특실도 아닙니다.”
“휴… 다행….”
“VIP실입니다.”
“…네?”
나는 두 귀를 의심했다.
‘내가 왜 이런 곳에…’
1인실이나 특실도 감당이 안 되는데, VIP실 이라니.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이어지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에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병원비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비용은 이미 다른 분께서 지불하시기로 하셨으니까요.”
“네? 대체 누가요?”
내겐 가족도 친척도 없었기에, 나는 어리둥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사고를 내셨던 분이요. 그분이 환자분 병원비를 모두 부담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VIP실도 그분이 우리 병원장님과 지인이시라, 특별히 부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나를 차로 치었던 사람이라면.
‘가해자… 아니, 이 경우에는 피해자인가?’
법적으로 과실 비율이 어떻게 되든, 사고의 원인은 술에 취해 갑자기 도로로 뛰어든 나에게 있다.
‘아마 나 때문에 큰 손해를 입었을 거야.’
차량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피해에 금전적인 손해까지. 엄청난 민폐를 끼치고 말았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해주시다니.’
죄송스럽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 마침 환자분이 깨어나신 것을 그분에게 전해드렸습니다. 아마 오늘 중으로 방문하실 듯하네요.”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그날 오후에 한 중년의 남성이 나를 찾아왔다.
“죄송합니다.”
중후한 인상, 깔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고개를 숙여왔다. 당황한 나는 얼른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잘못은 저에게 있는데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군요.”
의례적인 인사 후, 나는 중년의 남성과 통성명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구상민이라고 합니다.”
“윤현민입니다.”
이후로 나는 계속해서 구상민 씨와 대화를 나누었다.
‘말투나 행동에서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구상민 씨는 언제나 주눅이 들어있던 나와는 전혀 달랐다. 그의 말에는 과하지 않은 위트와 유머가 있었고, 눈빛에는 힘이 느껴졌으며 당당하고 기품이 있었다.
‘부러워.’
나는 여유가 넘치는 구상민 씨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늘 그리던 삶의 모습이었다.
“윤현민 씨는 보기 드문 착한 청년인 것 같습니다.”
“네? 제가요?”
살면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어리둥절한 내게 구상민 씨가 이유를 말해주었다.
“윤현민 씨가 소리를 지르지 않았으니까요.”
나는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
“소리요?”
“네. 보통 이런 사고가 나면, 배상하라며 싸우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하지만 명백한 제 잘못인걸요.”
구상민 씨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이 그렇더라도, 그렇게 우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대로 잘못을 인정해버리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드니까요.”
그거야 그럴 것이다. 나도 아까 의사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병원비를 걱정하곤 했으니까.
“…그렇다면 구상민 씨도 보기 드문 멋진 어른인 것 같습니다.”
“제가 말입니까?”
“네. 제게 정신적 피해 보상금을 요구할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이렇게 도움을 주고 계시니까요.”
구상민 씨의 입꼬리가 더욱 올라간다.
“후후,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분이 좋군요.”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런 사실을 순수하게 내뱉을 수 있는 사람도 드물지요. 그렇기에 저는 윤현민 씨가 마음에 드네요.”
마음에 든다.
별것 아닌 말이었지만, 내가 꿈꾸는 삶을 사는 남자에게 듣는 인정이었기에. 나는 왠지 모를 벅찬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저는 일정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선물입니다.”
구상민 씨는 들고 온 상자 중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이건…”
“필요하실 것 같아서요.”
그것은 최신형 스마트폰이었다.
“사고 현장에 사용하시던 핸드폰이 망가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답답하실 듯하여 같아 오는 길에 하나 샀습니다. 유심칩과 살릴 수 있는 데이터는 모두 옮겨 두었으니, 그대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래도 이거 비싼 건데요….”
내가 사용하던 폰은 소위 말하는 공짜폰이었다. 그런 내가 200만 원짜리 최신형 스마트폰을 선물 받다니.
나는 거절하려 했으나, 구상민 씨가 자리에서 일어서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혹시 불편하신 것 있으시면, 핸드폰에 제 번호를 입력해 두었으니 그리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퇴원하실 때까지 종종 찾아오겠습니다.”
그가 떠난 후, 나는 손으로 볼을 꼬집었다.
“아야.”
꿈이 아니었다.
‘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나는 운이 더럽게 없다.
가위바위보를 해도 한 번을 못 이겼고, 길을 걸을 때면 새똥을 맞기 일쑤였다.
그런 내가 천운으로 살아날 수 있었고, 구상민 씨 같은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나 운이 좋아졌나?’
문득, 전에 만났던 무당의 말이 떠올랐다.
-죽다 살아나면 모를까.
‘내가 죽었다 살아났기에, 내 운이 좋아진 걸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이런 것은 미신일 뿐. 실제로 그럴 리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생전 처음으로 행운을 맛보았다. 그것도 무당의 말대로 죽다 살아나서.
‘정말 운이 좋아진 거라면….’
앞으로는 무슨 일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우우우웅-
그때, 구상민 씨가 선물해준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우리 팀 직속 상사인 오 팀장님이었다.
“여보세요.”
-윤 대리! 드디어 연락되네! 소식 들었어. 성심병원에 입원해 있다며? 괜찮은 거야?
“아….”
그러고 보니 깨어난 뒤에 정신이 없어서 회사에 연락하지 못하였다.
“네, 저 괜찮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몇 주는 더 입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뭐? 몇 주씩이나?
“16주요….”
전화 너머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죽다 살아난 상처가 며칠 만에 완쾌될 리 없지 않은가.
-쯧, 그러게 조심 좀 하지. 젊은 사람이 칠칠치 못하게.
“…죄송합니다.”
직속 상사의 혀 차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사과의 말이 튀어나왔지만, 동시에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올라왔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부주의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죽다 살아난 사람에게 꼭 이딴 식으로 말을 해야만 했던 걸까?
‘내가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것도 아니고.’
무척이나 섭섭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오 팀장님의 말에 나는 얼굴을 구겼다.
-그리고 병가 말인데, 일부는 윤 대리 연차로 채우자.
“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입원 시에는 병가로 처리되는 것 아니었나요?”
-그렇긴 하지. 그런데, 그 기간이 길어도 너무 길잖아. 윤 대리가 갑자기 빠지면서 다들 얼마나 힘들어졌는지 알아? 그리고 윗분들 눈치도 좀 봐야지. 그렇게 막 나가다가 윗분들 눈 밖에 나봐. 회사 다니기 힘들어질걸? 회사는 계속 다녀야 할 것 아니야?
“…….”
-이게 다 윤 대리를 위한 일이야. 그럼 그렇게 알고 이만 끊는다? 얼른 쾌차하고. 되도록 빨리 복귀하도록 해.
통화가 끝난 후.
나는 병실 주변을 돌아보았다.
‘병문안, 아무도 오지 않았어.’
텅 빈 병실.
그 흔한 꽃도, 과일도 없었다.
유일하게 받은 병문안 선물이라고는, 생전 처음 본 구상민 씨가 가져온 간식거리와 이 스마트폰뿐이었다.
‘내가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팀원 중 그 누구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다.
‘혹시 병문안을 왔는데 VIP 병실이라 들어오지 못했던 걸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간호사님이 알려주셨을 거야.’
내가 직장생활을 특출나게 잘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나게 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남들과 같은 평범한, 딱 중간 정도의 직장인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였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돌아오는 것은, 왜 다쳤냐는 핀잔과 연가를 소진하여 스스로 책임지라는 통보뿐.’
올해엔 연가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난생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나기 위해, 비행기표와 숙소까지 예약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이렇게 연가를 모두 소진하게 되면, 그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운이 좋아지긴 개뿔.’
내가 살아남은 것?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 지금의 이 상황도 그저 그런 것뿐이겠지.
‘…젠장.’
기분이 더러워졌다.
‘나는 여전히 불운한 인간인 걸까?’
아직은 알 수 없었다.
***
10주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병원에서의 생활이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
“이제 팔 깁스는 풀어도 될 것 같네요. 잘 아물었어요.”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두 팔이 자유로워지며, 산책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휠체어를 타야 하긴 하지만, 이게 어디야.’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쐬고 싶어진 나는, 곧장 휠체어를 이끌고 병원 밖을 나섰다.
쨍-
호기롭게 나온 것은 좋았지만, 햇볕은 뜨겁고 강렬했다.
병원을 한 바퀴도 돌지 않았는데, 벌써 지치는 느낌이었다.
‘더워….’
시원한 것이 먹고 싶어진 나는 근처의 매점에 들려 막대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왔다.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혀에 닿자, 짜릿함이 느껴졌다.
‘하… 시원하다.’
얼마나 더웠던지, 순식간에 아이스크림 하나가 사라졌다.
‘아쉽네.’
하나 더 먹고 싶어진 나는 다시 매점으로 향하려 했다. 그때, 다 먹은 아이스크림 나무 막대에 이상한 글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살면서 처음이야.’
무언가에 당첨이 된다는 것은 내게 무척이나 생소한 경험이었다.
나는 곧장 매점에서 당첨 막대와 아이스크림을 교환하였다.
‘…운이 좋네.’
나는 스스로 떠올린 생각에 약간 놀라고 말았다.
‘운이 좋아? 내가?’
그럴 리가 없다.
없지만.
없는데.
왜 이리 마음이 설렐까.
문득, 매점 가판대의 종이 뭉치들이 눈에 들어왔다.
‘로또?’
나는 늘 복권을 돈 낭비라 생각해왔다. 운이 나쁜 내가 꼴등이라도 당첨될 리 없었으니까.
하지만 예전에 무당이 해주었던 이야기가 또다시 떠올랐다.
-혹시 정말 죽다 살아난다면, 로또나 하나 사.
‘그래 죽다 살아났는데, 한 장쯤 사 보는 것도 괜찮겠지.’
아이스크림 하나 더! 에 당첨된 기념으로, 재미 삼아 하나 사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다.
“로또 한 장 주세요.”
나는 인생 처음으로 산 복권을 품속에 고이 넣어둔 채, 병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지금부터 1,089회차 로또 추첨을 시작합니다.
-당첨 번호는… [2 11 14 21 22 34] 입니다! 축하합니다!
“허어억…!”
불운했던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