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207
7화 – 내 아이 (2)
“원래부터 이 집에서 사셨던 겁니까?”
나의 질문에 스티븐 감독님이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내가 가끔 지내던 별장 중 하나입니다. 이웃으로 나와 친한 배우들이 많이 있는 곳이라 아주 좋아했던 장소였죠. 그런데 나이가 드니, 이곳저곳 이동하는 것이 여의치가 않더군요. 그래서 지난달부터 별장들을 하나둘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왜요? 잘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냥 가지고 계시면 되는 것 아닌가요?”
“하하, 저도 젊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었죠. 하지만 나이가 드니, 여러 채의 별장을 관리한다는 것이 여간 어지러운 일이 아니더군요. 청소 업체를 고용한다고 해도, 신경 쓰이기 마련이니까요.”
듣고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된 나는, 계약서에 사인을 마친 뒤 감독님께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감독님께서 별장을 정리하기로 하신 덕분에, 제게 좋은 신혼집이 생겼네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저도 이 집이 빨리 팔려서 기분이 아주 좋군요.”
우리는 서로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악수하였다.
“감독님, 이렇게 만난 김에 저녁 식사라도 함께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런 나의 제안에 스티븐 감독님이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쩌죠? 제가 오늘은 중요한 선약이 있네요.”
“아, 그럼 어쩔 수 없죠.”
“음… 제가 한동안 이 근처에서 호텔에서 머물 예정입니다. 그러니 그동안 미스터 윤이 이 집에 이사를 들어오게 되어, 다시 한번 저녁 식사에 초대해 주신다면. 선물 잔뜩 들고 기꺼이 초대에 응하겠습니다.”
원래는 조금 여유롭게 이사할 생각이었으나, 스티븐 감독님이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는데 일정을 조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만에 감독님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인데, 당연히 초대해 드려야죠.”
“하하, 그렇게 환대해주시니 감사하네요. 그럼, 함께 저녁 식사할 그 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스티븐 감독님이 떠난 뒤, 알렉스 씨가 내게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당연히 저도 초대해 주실 거죠?”
“…하하, 물론이죠.”
아무래도 이사를 하고 나면, 초대할 인원이 꽤 늘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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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돌아간 뒤, 나는 자비르 씨에게 적당한 청소 업체를 고용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자비르 씨, 딱 그것까지만 해주시고 며칠 쉬다 오세요. 어차피 며칠간 별달리 특별한 일도 없으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휴가라는 말에 기분이 좋은지, 자비르 씨는 의욕 만만하게 청소 업체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는….’
나는 텅 빈 집안을 둘러보며 아일라에게 말했다.
“근처에서 쇼핑 좀 해볼까?”
우리는 새로운 보금자리에 살림살이를 채우기 위해, 근처 쇼핑몰로 향했다.
“우와! 자기, 이것 좀 봐!”
아일라는 손가락만 한 아기 신발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너무 귀엽지 않아?!”
“응, 진짜 귀엽네.”
아기 신발도, 그걸 들고 꺄르르 웃는 아일라도 너무나 귀여웠다.
“이거 살까? 아니, 사자. 사야 해.”
“하하, 진정해. 아직 아이 성별도 모르잖아. 옷은 천천히 사고, 일단은 가구부터 구경하자.”
“하지만….”
아일라는 못내 아쉬운지, 신발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그럼 이건 어때?”
나는 근처에 있던 젖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기에게 필요한 용품이라면, 지금 사도 괜찮을 것 같은데?”
“오오! 좋아!”
잔뜩 신이 난 아일라가 방방 뛰며, 젖병과 아기 담요 등을 카트에 쓸어 담기 시작했다.
‘기분이 이상하네.’
가슴 속이 몽글몽글하면서도 따스했다.
이렇게 아일라와 아기용품을 고르고 있으니, 비로소 내가 가정을 이뤘다는 것이 실감 났다.
‘행복해.’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 그것도 내 아이를 가진 채 지금 내 눈앞에 있는데.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든 다 해주고 싶어.’
내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후, 아기용품을 모두 고른 아일라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면 됐겠지?”
“…충분할 것 같은데?”
아일라는 육아용품만으로 커다란 카트 하나를 모두 채워버렸다.
“하지만 고르다 보니 이것저것 다 필요할 것 같았단 말이야.”
“응응. 사실 나도 똑같이 생각했어.”
나 또한 아무리 사소한 물건이라도 내 아이에게 쓸 거라고 생각하니, 좋아 보이는 것은 다 담고 싶었으니까.
“그럼 이제 가구를 보러 갈….”
“저기….”
그때, 등 뒤에서 우리를 부르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아일라 아니세요?”
우리를 부른 사람은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남학생이었다.
‘어쩌지…’
현재 우리는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있어서, 발뺌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직, 아일라의 임신 소식은 발표가 되지 않았으니. 일단 숨기는 게 좋으려나.’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문제는 매니지와의 계약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공개 여부가 달라진다고 알고 있었다.
나는 아일라가 어떤 조건으로 매니지와 계약했는지를 몰랐기에,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아, 네! 맞아요, 제가 아일라예요.”
“와! 긴가민가했었는데, 진짜였네요! 저 스타더스트의 팬…!”
“쉿! 목소리를 좀 낮춰 줄래요? 제가 마스크랑 모자를 쓰고 있는 의미가 계속될 수 있도록요.”
그런 아일라의 말에 남학생은 두 손으로 제 입을 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싱긋 눈웃음을 지어 보인 아일라는 익숙한 듯이 남학생이 들고 있던 노트와 펜을 가져와 멋진 사인을 휘갈겨 주었다.
“자요. 사인 부탁하려고 말을 걸었던 것 맞죠?”
“ㄴ, 네! 감사합니다!”
“히히. 감사는 오히려 제가 하고 싶네요. 이렇게 가렸는데도 알아봐 주는 팬이 있다는 게 너무 기쁘거든요.”
그런 아일라의 말에 남학생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서 말인데, 간단한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네? 부탁이라면 어떤….”
“별것 아니에요. 그저 오늘 우리가 만난 사실을 며칠만 비밀로 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아일라가 힐끗 카트를 바라보자, 남학생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카트로 향했다.
“아… 넵!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아일라는 가방 속에서 간식으로 챙겨온 쿠키 하나를 남학생에게 건네주었다.
“그럼, 다음 콘서트 때 만나요.”
그렇게 쿠키 하나에 입을 틀어막고 있는 남학생을 뒤로한 채, 우리는 가구 코너로 향했다.
“다행이네.”
“응? 뭐가?”
“아일라의 매니지 말야. 이런 문제는 민감할 수 있는데, 별다른 계약 조항을 설정하지 않았잖아. 방금 같은 상황에선 꽤 곤란을 당할 뻔했는데, 스무스하게 넘겼다는 것은 아주 다행한 일인 거지.”
그런 내 말에 아일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매니지는 그런 문제에 대해 굉장히 민감한데?”
“응?”
“사실, 우리 연애 사실을 공개했을 때도. 꽤나 한 소리 들었었거든. 내 연애 대상이 자기였기에, 뒤탈은 없었지만.”
나는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자, 잠깐만. 그럼 임신 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매니지 허락 없이 알려지게 되면. 나 좀 곤란해질걸?”
“아니, 그럼 방금 남학생이 말 걸어 왔을 때. 잡아뗐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놀라 소리치자, 아일라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받았잖아.”
“…만약, 그 남학생이 약속을 어기면 어쩌려고?”
“음… 그럼….”
아일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조금 슬플 것 같네.”
“…그걸로 끝?”
“응. 그걸로 끝. 나머진 내 책임이지 뭐.”
얼핏 듣기엔 그저 대책 없어 보이는 답변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롭게 사는 아일라다워 보였다.
“히히, 너무 걱정하지는 마. 그 남학생 내 콘서트에 자주 와. 그것도 맨 앞줄 자리에서 목이 쉴 정도로 함께 노래를 불러줄 정도지.”
“정말?”
스타더스트의 콘서트에 오는 관객의 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백 명이다.
‘그 많은 사람 중의 한 명을 기억하고 있다고?’
선뜻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왠지 아일라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그럼, 멀리 있는 관객들은 무리지만, 가까이에서 응원해주는 관객분들은 웬만하면 다 기억하고 다녀.”
“…내 와이프 정말 대단한데?”
내가 감탄하자, 아일라가 히죽 웃었다.
“그래도 굳이 밝힐 필요는 없지 않았어? 아니라고 넘어갔으면, 리스크도 없었을 텐데.”
“음… 그건 싫어. 왜냐면 내 팬에게 거짓말을 하는 셈이잖아. 곧 태어날 이 아이에게 벌써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미소를 짓는 아일라의 모습은, 인자한 어머니의 모습 그 자체였다.
“…아일라, 너는 좋은 엄마가 될 거 같아.”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칭찬해줘서 고마워!”
아일라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깡충깡충 걸으며, 가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자기! 이 소파 좀 봐! 엄청 아늑해 보이지 않아?”
“응, 그러네. 그럼 소파는 이걸로….”
“아니, 잠깐만! 그 옆에 있는 소파는 접었다 펼 수 있잖아?! 이거 되게 실용적인데?!”
“오오! 좋다. 그럼 이걸로 결정….”
“아니, 아니 잠깐만. 저쪽 끝에 있는 소파는 블루투스 스피커가 달려있잖아!”
“…응?”
“게다가 이쪽 소파는….”
아일라는 소파 하나를 고르는 데 많이 고민하였고, 이는 다른 가구를 고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우리는 장장 6시간 동안 가구 쇼핑을 하게 되었다.
***
“으으…!”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쇼핑에 지쳐버린 나는 곧바로 침대로 뛰어들려 했다.
“안돼! 씻고 누워야지!”
“그렇지만… 너무 힘든데….”
“배 속의 아이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 줄 거야?”
그런 아일라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나는, 곧장 욕실로 향하며 말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지! 얼른 씻고 올게!”
쏴아아-!
살짝 뜨거운 물이 몸에 닿자, 온몸의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후우….”
좋았다.
체온보다 조금 높은 따스한 물도,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어여쁜 와이프도, 아이가 생겼다는 행복도, 좋은 집을 얻었다는 기쁨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히죽.
‘이렇게 행복해도 되려나?’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가 내려올 생각을 안 하였다.
‘아일라도 나만큼 행복할까?’
분명 그럴 것이다.
아까 육아용품을 고르던 아일라의 표정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아일라를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지금 당장 그녀를 더욱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좋아. 조만간 아일라가 원하는 것을 해주자.’
분명, 아일라는 농담처럼 말했었다.
-당신이 직접 만든, 나영준 셰프의 레시피로 만든 한국 요리가 먹고 싶어.
‘…며칠 뒤에 스타더스트의 공연이 시작된다고 했었지?’
공연 때문에 아일라는 대략 열흘 정도 자리를 비울 예정이었다.
‘그때, 한국에 가서 나영준 씨를 만나야겠어.’
그의 비법을 배우는 데는 많이 모자란 시간이겠지만,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을 터.
‘그래! 조만간 스티븐 씨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기로 했었지? 그날 내 요리를 선보여 줘야겠다.’
아마 아일라도 예상치 못한 요리를 보고 많이 기뻐할 것이다.
씨익.
아일라의 깜짝 놀란 표정을 상상한 내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조금 임펙트가 부족할 것 같긴 한데….’
그날 저녁 식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초대될 예정이었다.
‘어쩌면 톰 크루거 씨가 올 수도 있겠지.’
그도 비버리 힐스에 산다고 했었으니, 초대에 응할 확률이 아주 높았다.
‘아무리 아일라가 한식을 좋아한다고 해도, 다 같이 하는 식사 자리에 미국 음식이 빠질 수는 없겠지.’
나는 한식은 꽤 자신이 있었지만, 미국스러운 느낌의 음식을 만드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미국의 유명 셰프라도 초대해야 하나.’
그렇게 나는 괜찮은 실력의 셰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누가 좋을지와 어떻게 연락을 걸면 좋을지를 고민했다.
그런데 다음날.
“…미스터 윤?”
잠시 혼자 산책을 나온 나는, 길에서 어제 만난 아일라의 팬이라던 남학생을 마주쳤고. 같이 있던 남학생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성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반갑습니다, 아이작 로저스라고 합니다.”
“아이작 로저스라면… 설마, 그 아이작 로저스 씨인가요?”
그는 최근 마스터 셰프 US에 출연한 우승자였다.
‘얼핏 듣기로, 아이작 로저스 씨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선. 1년 전부터 예약해야 한다고 했었지?’
나는 기대감 가득한 목소리로 그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