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208
8화 – 따듯한 소고기 뭇국 (1)
“여러분 다음에 또 만나요!”
콘서트의 마지막 날. 아일라는 끝까지 함께 해준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며 무대를 내려갔다.
“아일라! 오늘도 기운이 넘치는 공연이었어!”
“나는 아일라의 지치지 않는 에너지가 부러워. 대체 비결이 뭐야?”
“우리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며칠씩 연속으로 공연하면 죽겠더라고.”
안토니오, 조반니, 그리고 피에트로가 차례차례로 아일라에게 장난스레 말을 걸어왔다. 그런 멤버들에게 아일라는 활짝 웃으며 한마디 했다.
“나는 프로니까.”
“오오! 아일라!”
“멋지다, 아일라!”
“역시, 리더는 리더야.”
아일라의 대답에 만족한 세 사람이 왁자지껄 떠들며 웃기 시작했다.
“아일라! 그런 의미에서 한잔 어때?”
“그래! 오랜만에 좋은 생각이야!”
“요즘엔 우리랑은 안 놀아 줬잖아. 가끔은 우리랑도 시간을 보내주라고.”
세 사람이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자, 아일라는 매우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안 돼. 내일 이웃 주민들을 우리 집 저녁 식사에 초대하기로 했거든.”
아일라는 지금 집으로 돌아간다 해도, 내일 아침에나 도착할 테니. 놀 시간은 없다고 설명해 주었다.
‘게다가 이젠 술을 마시면 안 되기도 하고….’
아일라는 자신의 배를 살짝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오오! 파티야?”
“우리도! 우리도 갈래!”
“새로 얻은 신혼집이 할리우드에 있다고 했었지? 당장 출발하자!”
점잖은 분위기의 저녁 식사를 어느새 파티로 만들어 버리는 세 사람을 보며 아일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이제는 파티라고 부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네.’
아일라는 아까 낮에 받았던 윤현민의 문자를 떠올렸다.
[아일라, 아무래도 저녁 식사에 초대할 사람이 좀 많아질 것 같아. 준비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걱정하지 말고. 그럼, 공연 잘해! 사랑해!]원래라면 스티븐 에필버그 감독과 몇몇 이웃들만 초대할 계획이었으나, 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여러 가지 일이 생긴 듯 보였다.
‘올 사람이 많아졌다고 했으니, 파티라고 봐도 되겠어. 그렇담….’
아일라는 멤버들을 향해 말했다.
“그래, 너희들도 와.”
“우오오!”
“가자! 아일라의 집으로!”
“굿 초이스! 우리가 파티의 흥을 더욱 띄워줄게!”
아일라는 나이를 먹어도 여전한 멤버들의 유쾌함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먼저 대기실에 가 있어. 나는 화장실 좀 들렀다 갈 테니까.”
“오케이.”
그렇게 멤버들을 보내고, 아일라는 화장실로 향하여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지?’
텅 빈 화장실임을 확인한 아일라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세면대를 짚었다.
“…힘들어.”
아일라는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뱉었다.
멤버들 앞에서 이런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던 그녀는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대로인 것처럼 연기를 하였던 것이었다.
‘임신해서 그런가…. 몸이 무거워.’
사실 이번 콘서트는 무리한 일정이긴 했다. 임신 사실을 조금만 빨리 알았어도 일정을 취소했을 테지만, 이번 공연은 몇 달 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것이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괜찮다고 했지만, 생각보다도 더 힘든데….’
혹시라도 배 속의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이 미친다면, 아일라는 억지를 부려서라도 당장 공연을 취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아직 임신 초기이니, 컨디션 조절만 한다면. 공연 일정엔 무리가 없을 거라고 말씀하셨었다.
‘대신 이후 공연은 모두 취소하라고 신신당부하셨지.’
아일라는 지금 몸 상태로 보아, 그 말을 순순히 따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매니지에서 잘 이해해주는 눈치라 다행이야.’
현재 그녀의 임신 소식은 매니지 사람 중에서도 일부만 알 정도로 극비였다.
‘조만간 밝혀지긴 하겠지만, 이번 공연이 마무리될 때까지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하셨지.’
아무래도 그녀의 임신 소식이 알려지면, 매니지에서도 여러 가지로 곤란한 눈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매니지에선 그녀에게 오히려 축하 인사와 함께 육아에 필요한 선물까지 해주었다.
‘이제 공연도 끝났으니, 멤버들에게 임신했다고 밝혀야겠지?’
아일라는 이번 저녁 파티에서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굽혔던 상체를 일으켰다.
휘청-
가벼운 현기증을 느낀 아일라가 벽면을 짚었다.
‘…얼른 돌아가서 쉬어야겠어.’
당장 남편이 준비해준 전용기의 편안한 좌석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대기실로 돌아가자, 안토니오가 자그마한 선물상자를 내밀었다.
“아일라, 이거.”
“뭐야? 웬 선물? 안토니오, 네가 준비한 거야?”
“설마. 그 왜 있잖아. 우리 콘서트에 자주 오는 꼬마 친구. 걔가 대기실로 찾아와서 너에게 전해주라던데?”
그런 안토니오의 말에 아일라는 며칠 전 우연히 마주쳤던 남학생을 떠올렸다.
‘얘는 학교에 안 가나? 어떻게 매번 우리 콘서트에 올 수 있는 거지?’
고개를 갸웃한 아일라가 선물상자를 열어보았다.
‘오!’
상자에는 한 통의 편지와 함께, 이전에 아일라가 사고 싶어 했던 자그마한 분홍색 아기 신발이 들어있었다.
아일라는 이 뜻하지 않은 선물이 마음에 쏙 들었지만, 이내 황급히 뚜껑을 닫았다.
“… 아일라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멤버들에게 임신 사실을 밝히기로 하였지만, 이런 식으로 밝히고 싶진 않았기에. 아일라는 슬며시 선물상자를 등 뒤로 숨겼다.
“안토니오, 떠날 준비는 다 했어?”
“음… 나는 끝났는데, 다른 녀석들은 아직인 것 같네.”
“그럼, 네가 다른 두 사람 짐 싸는 걸 도와주는 건 어때? 조금이라도 빨리 전용기에 타고 싶다면 말야.”
“오! 그것도 그렇겠군!”
그렇게 안토니오가 다른 두 사람에게로 향했을 때, 아일라는 남학생이 적은 편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
편지의 내용은 가끔 팬분들이 보내주시는 것과 비슷했다. 공연을 잘 보았고, 늘 응원한다는 내용.
하지만 편지에 담긴 아직 서툰 말투와, 얼마나 고심하며 적었는지 수없이 썼다 지운 흔적을 보며. 아일라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다음에 만나면 앨범이라도 한 장 줘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편지의 마지막 줄을 읽었을 때, 아일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는 아이작 로저스 셰프의 음식을 무척 좋아하는데요, 아일라 님도 그의 음식을 좋아하실까요?] [부디, 아이작 로저스 셰프의 음식이 입맛에 맞으셨으면 좋겠네요.]아이작 로저스라면 결혼을 두 달 앞두고 있었을 때 출연한 TV 쇼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사람의 음식을 맛볼 기회가 있었지.’
그의 요리는 환상적이었다. 미국 음식답지 않게 기름지지 않았으며, 끝맛이 개운하고 산뜻했다.
특히, 당시에 아일라는 결혼 준비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았었는데. 그가 만든 따듯하고 포근한 느낌의 치킨 스프 덕분에 컨디션이 회복되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렇기에 편지에 적힌 남학생의 질문에 대한 답은 YES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말은 대체 무슨 뜻이지?’
아이작 로저스 셰프의 음식이 입맛에 맞으셨으면 좋겠다니. 이것은 조만간 아일라가 그의 음식을 먹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에이… 그냥 잘못 적은 거겠지.’
그렇게 아일라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일라, 우리는 준비 끝났어.”
“그래? 그럼, 잠시만. 남편한테 너희도 저녁 파티에 함께하게 되었다고 문자를 보내야 해서.”
아일라는 윤현민에게 곧장 출발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에게서 돌아오는 답장은 없었다.
‘…이상하네.’
평소라면 곧바로 답장했을 그이지만, 어쩐지 오늘은 한참이 지나도 답장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 내내 연락이 드물었었지?’
틈만 나면 문자를 보내오던 그가, 오늘은 이상하게 드문드문 연락해왔다.
‘…뭐지?’
어떻게 보면 사소한 일이었지만, 아일라는 왠지 모를 섭섭함을 느꼈다.
‘…바쁜 일이 있었나 보지.’
아일라는 자신이 공연과 스트레스 때문에 예민해진 것 같다고 속으로 되뇌며, 안토니오에게 말했다.
“이제 출발하자.”
그렇게 멤버들을 데리고 공항으로 향한 아일라는, 윤현민이 대기시켜둔 전용기에 오르자마자 좌석에 드러누워 잠을 청하였다.
하지만 1시간이 지나도록 아일라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잠이 안 와.’
몸은 무척이나 피곤했지만, 이런저런 생각에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부스럭-
아일라는 잠든 다른 멤버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히 핸드폰을 꺼내어 메시지를 확인해 보았다.
[미안, 아일라. 메시지를 늦게 봤네.] [당연히 초대해도 되지. 오히려 다른 멤버들이 와주는 게 우리에게도 좋을 것 같아.] [그럼 조심히 오고, 나중에 다시 연락하자. 사랑해~]어느새 남편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지만, 평소보다 짧았으며, 뭔가 급하게 작성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내가 왜 이러지?’
임신을 하게 되면, 호르몬의 변화 때문에 예민해진다던데. 자신도 그런 경우인 건지 아일라는 혼란스러웠다.
‘후우… 우울해.’
아일라는 속으로 생각한 말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우울하다고?’
지난 몇 년간. 아니, 과거 그녀의 삶 중에 우울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늘 밝았으며, 주위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었다.
‘나, 진짜 왜 이러지.’
남편의 평소와 다른 메시지를 보며 짜증과 의심이 생기고, 그렇게 좋아하던 무대가 힘들어진다.
그러한 자신의 변화에 아일라는 깊은 수렁에 빠지는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휴식이 필요해.’
데뷔 이래 그녀는 거의 쉬지 않고 달려왔었다. 늘 팬과 소통하였고, 그 힘들다던 세계 투어공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녀도 나이가 들었으며, 이젠 임신까지 한 몸이었다.
‘그래, 임신한 상태에서 며칠이나 공연하였으니. 몸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아일라는 매니지에서 임신 사실을 밝히는 대로, 장기 휴가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니지의 발표는 아직 시간이 조금 더 걸릴 터였으므로. 아일라는 지금 당장 힘이 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저녁 파티고 뭐고, 그냥 쉴까.’
윤현민은 자상한 남편이다. 그러므로 사정을 얘기한다면,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줄 것이 분명했다.
‘그래. 그이에게 미안하지만, 저녁 파티는 도저히 참석할 수 없을 것 같아. 적어도 이런 기분으로는.’
그렇게 마음먹은 아일라는 다시 잠을 청하려 했다. 하지만 할리우드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는 뒤척이며 한숨도 잘 수 없었다.
***
멤버들을 일단 호텔로 보낸 뒤, 집으로 도착한 아일라는 눈앞에 펼쳐진 난장판에 입을 벌렸다.
“이게 다 뭐야?”
“뭐긴. 저녁 식사 준비 중이지.”
마당에 설치된 거대하고 기다란 테이블, 수많은 접시와 바비큐 그릴들. 그리고 각종 장식과 음향 장비까지.
“이걸 전부 자기가 혼자 준비했다고?”
“아니, 올리버 씨가 도와주셨지.”
아일라는 집안에서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올리버를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조금 기다렸다가 나랑 같이하지….”
두 사람이 준비했다고 해도 엄청난 양의 일거리를 보며, 아일라는 도저히 쉬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았던 걸까.
“에이, 공연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자기는 쉬어야지.”
“하지만….”
“게다가 자기는 지금 임신 중이잖아. 아무리 초기에는 가벼운 일은 괜찮다고 해도, 조심해서 나쁜 것은 없으니. 아내님은 어서 올라가서 쉬세요~”
“…….”
그런 윤현민의 자상한 배려에 아일라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올 뻔했다.
“고마워….”
“뭐가 고마워. 당연한 건데. 자자, 이러지 말고 얼른 씻고 올라가서 좀 자.”
아일라는 윤현민의 배려를 받아들였다. 조금이라도 일을 돕고 싶어도, 도저히 몸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몸이 너무 무거워….’
뜨끈한 물에 몸을 씻고, 윤현민이 준비해둔 폭신한 침대에 몸을 맡기자. 그렇게 노력해도 오지 않던 잠이 솔솔 들기 시작했다.
‘정말 고마워… 내 사랑….’
그렇게 아일라가 잠이 든 지 8시간 뒤. 그녀는 바깥에서 두런두런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몇 시지?’
시계를 확인해 보니 벌써 저녁 6시였다.
‘이런…!’
잠깐만 눈을 붙인다는 게 너무나 푹 자버리고 말았다. 아일라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에서 기본적인 몸단장을 한 뒤. 옷을 갈아입고 침실 밖으로 나왔다.
다다다다-
계단을 빠르게 뛰어 내려간 아일라는 주방에서 접시에 요리를 담고 있는 윤현민의 모습을 발견했다.
“자ㄱ…!”
윤현민을 부르던 아일라가, 주방에 같이 있던 사람의 얼굴을 보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저 사람들이 왜 여기에?’
그곳에는 아이작 로저스 셰프와 나영준 셰프가 즐겁게 요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 자기 깼어?”
놀란 아일라를 발견한 윤현민이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와 접시를 내밀었다.
“자, 배고프지? 이것 좀 먹어.”
그것은 나영준 셰프의 레시피로 윤현민이 만든 요리였다.
‘설마, 그때 내가 농담 삼아 했던 말을 진짜로 해준 거야?’
나영준 셰프의 레시피로 만든 한국 요리를 먹고 싶다고 말했던 것을, 윤현민은 잊지 않았던 것이었다.
달칵.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든 아일라가, 손에 들린 소고기 뭇국을 맛보았다.
‘따듯해.’
뜨끈한 국물이 몸속에 들어오자, 온몸의 피로가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마치, 어릴 적 아팠을 때 엄마가 끓여주던 스튜를 먹는 것 같아.’
후루룩-
그렇게 아일라가 정신없이 소고기 뭇국을 맛보고 있었을 때, 윤현민이 말했다.
“맛이 어때?”
“응… 맛있어… 최고야….”
마치, 아일라가 우울하다는 것을 알고 따듯하게 안아주며 위로해주는 것 같은 맛이었다.
주륵.
“정말 고마워, 자기.”
“아일라?”
갑자기 눈물 한 방울이 아일라의 뺨에 흐르는 것을 본 윤현민은 매우 당황하기 시작했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