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23
23화 잃었던 꿈의 노래
스타더스트 밴드.
미국의 인기 방송 아메리칸 탑 탤런트에 출연해, 압도적인 실력 차로 우승한 라이징 스타 밴드였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관심 없는 나조차 알고 있을 정도로 스타더스트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사람들은 스타더스트 밴드의 음악에 열광했으며, 그들의 새로운 곡은 언제나 빌보드 차트에 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대단한 사람들이 왜 이런 곳에 있냐고.’
나는 게스트하우스의 방을 도미토리로 예약했었다.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방을 쓰는 도미토리실이 버킷리스트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내 생각보다도 더 과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나는 안토니오, 저기 멋들어진 턱수염은 조반니, 그리고 여기 근육 덩어리는 피에트로야.”
“안녕!”
“반가워!”
심지어 그들은 한국어를 꽤 그럴싸하게 구사했다.
“한국어를 굉장히 잘하시네요?”
“우리 모두 한국 문화를 사랑하거든.”
“삼겹살 좋아! 소주 좋아!”
“안전한 밤거리 최고!”
나는 지금도 눈앞의 유명인들이 믿기지 않았지만,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점차 그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현민은 뭐 하는 사람이야?”
“저는… 그냥 회사원이에요.”
“오…!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데?”
“원래는 영업일을 했었는데, 지금은 패션 부서에서 일하고 있어요.”
“패션?! 그럼 혹시 루미에라는 브랜드 알아?”
나는 조금 놀랐다.
대한민국 최남단의 섬에서, 그것도 지구 반대편에서 온 외국인들이 우리 브랜드를 반갑게 언급하다니.
‘기분이 굉장히 묘하네.’
마치 심장을 깃털로 간질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알고 있죠. 요즘 굉장히 이슈잖아요.”
내 입으로 이슈라고 말하려니까, 무언가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피에트로! 안토니오! 들었어? 현민은 패션계에서 일하고 있대! 루미에 패션에 대해서도 잘 아나 봐!”
세 사람은 환호성을 질렀다.
‘갑자기 왜?’
그 이유가 궁금해진 나는, 비교적 차분해 보이는 안토니오에게 물었다.
“아일라가 루미에 패션을 좋아하거든.”
“아일라…요?”
“아, 우리 메인 보컬. 지금은 다른 방에 묵고 있지.”
생각났다. 스타더스트의 멤버는 총 4명이었다.
‘키보디스트 안토니오, 베이시스트 조반니, 드러머 피에트로, 그리고 보컬의 아일라.’
스타더스트는 세 사람의 신들린 연주와 보컬의 몽환적인 보이스로 그 매력을 뿜어내는 밴드 그룹이었다.
“이번 여행도 아일라가 오자고 했던 거야. 직접 옷을 고르고 싶었다나?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던 것 같긴 하지만.”
나는 속으로 매우 놀랐다.
스타더스트처럼 인지도 있는 밴드가, 내가 기획한 브랜드의 옷을 사려고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왔다니.
‘너무 비현실적이잖아.’
부장님이 외국에서 루미에의 인기가 대단하다고는 말씀하셨지만. 말로만 전해 듣는 것과, 이렇게 실제로 보는 것은 그 체감차이가 어마어마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우리는 한국에 왔어. 그런데 하필이면, 아일라가 원했던 옷 하나가 품절이 났지 뭐야.”
나는 그녀가 원했던 옷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비 패턴의 스카프를 가지고 싶었던 거구나.’
루미에 패션쇼에서 꽃과 나비를 표현한 무대가 있었다.
그 무대에서 모델이 착용한 스카프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고, 브랜드가 출시하자마자 품절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다음 주면 재생산이 완료되긴 하지만. 스타더스트 같은 인기 밴드가, 다음 주까지 한국에 머무를 수는 없겠지.’
아마, 지금 온 여행도 꽤 무리하여 온 것이리라.
“그래서 아까 환호한 거야. 루미에 패션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아일라와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았거든.”
“우리는 옷 잘 몰라.”
“옷은 그냥 몸만 가릴 수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 발언, 아일라가 들으면 화낼걸?”
나는 천진난만하게 떠드는 세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아일라라는 사람을 아끼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이따 저녁 먹을 때,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진짜? 현민, 고마워!”
그 후, 우리는 저녁 시간 전까지 잡다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
그날 저녁 메뉴는,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에서 구워 먹는 흑돼지 바비큐였다.
치이익-!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아저씨가 구워준, 노릇노릇하게 익은 흑돼지를 곧장 입에 넣으니.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동안 내가 사 먹은 돼지고기는 다 가짜였구나!’
고기를 씹을 때 터져 나오는 육즙은 가득하다 못해 흘러넘쳤고, 부드럽기는 또 얼마나 부드럽던지, 입에서 스르르 녹아 사라져 버린다.
‘젓가락질을 멈출 수가 없어…!’
그리고 그런 것은 안토니오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한데? 방금 받아온 내 고기가 다 어디 갔지?”
“역시 제주도 흑돼지는 언제 먹어도 최고야!”
“그런데 아일라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이러다 이 돼지들이 돼지고기를 다 먹어 치우겠어!”
“내가 아까 부르러 갔었는데, 아일라가 누구랑 전화 중이던데? 곧 내려올 거래.”
“피에트로, 네가 제일 많이 먹은 건 알고 말하는 거지?”
왁자지껄한 세 사람은 쉬지 않고 고기를 흡입하며, 맥주를 들이켰다.
“현민! 너도 이리 와서 한잔해!”
그 말에 나는 근처 아이스박스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며 그들에게 다가가 잔을 부딪쳤다.
치얼스!
‘이런 게 여행의 묘미인가?’
좋은 경치. 맛있는 음식. 새로운 만남.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우리는 스스럼 없이 웃고 떠들었다.
그래, 즐거웠다.
하루하루가 치열했던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행복이었다.
치얼스.
건배.
다시 또 치얼스.
알코올에 적당히 알딸딸해져, 기분이 좋아졌다.
숲에서 불어오는 살랑이는 바람, 리듬감 있게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그리고 시원한 맥주는 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 주었다.
‘즐겁다.’
맑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 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 순간이, 이 여유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내가 감상에 젖어 있었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빼고 노니까, 재밌어?”
맑고 청량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밤하늘의 별을 닮은 푸른 눈동자의 미녀가 팔짱을 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일라!”
“왜 이리 늦었어?”
“받아! 한잔하고 시작하자고!”
피에트로가 던진 맥주캔을 멋지게 받아든 아일라가, 씨익 웃으며 다가와 세 사람과 잔을 부딪쳤다.
“그런데 이 귀염둥이는 누구야?”
그녀가 묻자, 안토니오가 나를 소개해 주었다.
“어머, 정말로 패션업계에서 일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금발을 찰랑거리며 좋아했다.
“와! 정말 반가워요! 우리 친하게 지내요!”
배시시 웃으며, 내게 악수를 청해 오는 아일라. 술이 들어가서였을까. 묘한 기분을 느끼며, 나는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치얼스!
맥주잔을 부딪치며, 점점 밤이 깊어갔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에이, 설마 내가 옷 하나 때문에 한국에 왔을 거 같아?”
“그럼 왜 왔는데?”
그녀는 맥주 한 모금을 삼키며 말했다.
“루미에 패션쇼 영상을 보고 반해서. 그 연출자를 찾고 싶었어.”
“…연출자? 혹시, 기획자를 말하는 거야?”
“연출자든 기획자든. 그 무대를 설계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
“…….”
아무래도 아일라가 만나고 싶었다는 사람이 나인 것 같았다. 나는 모르는 척 물었다.
“…그 사람을 왜 만나고 싶었는데?”
내 물음에 푸른 눈동자 속 별들이 반짝, 빛을 내었다.
“멋졌거든! 그리고 어떤 사람이길래 그런 이색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는지 궁금했어.”
나는 아일라가 루미에의 옷을 사고 싶어서 한국에 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녀는 옷이 아닌, 내가 만든 무대를 좋아해서 한국에 왔노라 말하고 있었다.
두근.
심장이 두근거린다.
누군가 내가 만든 결과물을 좋아해 주고,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올 정도로 열정을 보인다는 것.
‘그것도 나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유명한, 최고의 밴드 보컬리스트가 말이야.’
그러한 사실들이 내 가슴을 자꾸만 설레게 만들었다.
“…만나게 해줄까?”
“응? 누구를?”
“네가 찾던 그 무대를 만든 사람.”
아일라의 눈동자가 커진다. 새하얀 두 뺨에 홍조가 올라왔다. 나는 그녀가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녀의 대답은 거절이었다.
“싫어.”
“어째서?”
“그건 로망이 없잖아.”
“로망?”
이해하지 못한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아일라는 또 다른 맥주 한 캔을 따며 설명했다.
“아마 공식적으로 요청하면, 그 사람은 곧장 우리를 만나러 올 거야. 딱딱한 정장 차림에 격식을 갖추고서.”
“…….”
“그런데 그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아니잖아. 나는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과 우연히 만나고 싶었어.”
“…하지만 그건 매우 낮은 확률일 텐데?”
아일라는 배시시 웃으며 외쳤다.
“그러니까 로망이지!”
아무런 약속도 없이, 그것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그저 길을 지나다 마주칠 확률이란 대체 얼마나 낮을까.
‘그 낮은 확률을 뚫다니.’
아일라 본인은 모르겠지만, 이미 그녀는 그 로망을 이루었다.
‘이곳에서 나를 만났으니까.’
나는 그녀가 좋아하리라 생각하며, 그 사실을 말해주려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로망을 이루는 것은 멋진 일이야. 하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도 무척이나 멋지지. 아니, 오히려 더 빛날지도 몰라.”
“과정이 더 빛이 난다고?”
“그래, 그러니까 나는 내가 이루고픈 로망들에 계속 도전할 거야. 만나고픈 사람을 우연히 만날 거고,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우리를 좋아해 줄 때까지 노래를 부를 거야. 그 확률이 얼마이든 상관없어. 계속 도전 할수록, 우리는 더욱 빛날 테니까.”
말을 마친 아일라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로망을 이야기하니까, 갑자기 노래가 부르고 싶어졌어.”
그녀는 잔뜩 취한 세 사람에게 외쳤다.
“얘들아, 노래하자!”
오케이!
고개를 끄덕인 네 사람은 일사불란하게 어딘가에서 악기들을 주섬주섬 나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마당을 무대로 만들어 버렸다.
“아아! 시작하자!”
아일라가 마이크를 들자, 연주가 시작되었다.
둥 탁탁 두다둥 탁!
드럼의 리듬에 맞춰, 키보드와 베이스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선율의 위로. 아일라의 몽환적인 목소리가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별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곳
그곳에서 너와 꿈을 꾸고 싶어
별들의 미소는 참 예쁘고
꿈을 꾸는 내 마음도 행복해져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불러볼래, 이 밤의 노래를
하늘은 우리의 무대이고
별들은 우리의 관객이야
우리의 노래는 그들의 노래가 되고
우리의 꿈은 그들의 꿈이 될 거야
꿈과 별들이 함께하는 밤
이 밤이 지나가도 잊지 못할 거야
내 꿈과 별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우리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할게
‘…꿈인가?’
눈앞의 광경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무수히 머리 위로 쏟아지는 무대 위. 그 현실과 이상의 경계선에서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스타더스트.
아름다운 별의 파편들이 그곳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멋졌던지, 나는 눈도 깜빡이지 못하며, 그들의 노래를 감상했다.
‘…정말 멋져.’
노래에 열중하는 아일라의 모습을 보며,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나도 한때는 꿈이 있었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고, 화가가 되고 싶었으며, 가수가 되고 싶었다.
때로는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고,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으며, 사람을 고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지만. 어른이 되어 갈수록, 현실에 짓눌려 그 모든 가능성을 지워버렸다.
‘이룰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꿈에 도전하고 노력하는 삶이, 저렇게나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나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떠올렸을 때.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솟아올랐다.
그것은 사라졌던 나의 로망이었을까. 나는 확인하고 싶어졌다.
“아! 기분 좋아!”
노래를 마친 아일라가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아일라.”
“왜?”
“부탁이 있어요.”
나는 그녀의 마이크와 안토니오의 키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도 불러볼래요.”
무언가를 결심한 나의 눈을 바라본 아일라가 씨익 웃으며 마이크를 넘겨주었다.
“얼마든지!”
그녀의 안내에 따라 안토니오의 키보드 앞에 앉은 나는 마이크를 고정한 후, 연주를 시작했다.
다라라라-
건반은 오랜만이라 손가락이 떨렸고, 음정은 불안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별의 조명이 비치는 조용한 숲의 무대에서 나는 잃어버렸던 꿈을 노래했다.
눈앞에선 관객이 된 안토니오와 조반니, 피에트로. 그리고 아일라가 눈을 감은 채 나의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들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나는 이 비현실적인 광경을 눈에 새기며, 최선을 다해 노래했다.
그렇게 이윽고, 노래가 끝났을 때.
“제법이잖아.”
스타더스트 밴드의 진심 어린 박수를 받으며, 나는 결심했다.
‘더는 재지 말고, 내가 하고픈 일을 도전해 보자.’
그러다 만약 실패해도, 괜찮다.
그 과정은 무척이나 빛날 테니까.
다음 날.
나는 모든 여행 일정을 취소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일단,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을 확보하자. 한… 10억 정도.’
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