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28
28화 꿈을 잃은 아이
집으로 돌아온 나는 선녀 보살의 말을 천천히 곱씹어보았다.
-선행을 하라고요? 뭐, 기부라도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기부도 좋지. 하지만, 진심을 담아야 해. 진심을 담을수록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죽다 살아난 덕분에 바뀐 너의 운명이지.
또 선녀 보살은 주변을 돌아보라고 말했었다.
‘내 주변에서 진심을 담아 선행을 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한 군데 있긴 했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찾아뵌 게 언제지?’
손가락을 접으며, 날짜를 계산하던 나는. 고개를 저으며 곧장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한심한 놈. 아무리 바쁘고 치열하게 살았다지만, 어떻게 몇 년을 찾아가질 않을 수 있냐.’
뚜루루- 뚜루루-
그렇게 몇 번의 신호음 끝에,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원장님! 저예요, 윤현민!”
-현민이… 오! 우리 현민이?! 잘 지냈니?
“네, 저는 잘 지내고 있죠. 원장님은 요즘 어떻게….”
몇 년만의 전화였으나, 원장 수녀님은 나를 바로 어제 만난 것처럼 대해주셨다. 덕분에 나는 원장님과 편안하고 즐거운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원장님, 혹시 이번 주말에 찾아뵈어도 될까요?”
-이번 주말에? 그날은 일정이 있어서 힘들 것 같네. 다음 주 주말은 어떠니?
“당연히 괜찮죠.”
“그럼 다음 주 주말에 오려무나. 그런데 혹시 무슨 일이 있어서 오는 건 아니지?
원장님의 목소리에 걱정이 한가득 묻어있었다.
“그냥요. 보고 싶어서요.”
-어머, 이제 그런 말도 할 줄 아니? 너도 나이를 먹긴 한 모양이야? 호호호!
“…아무튼, 다음 주말에 갈게요.”
-그래~
그렇게 통화를 끝내려던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급히 원장님께 물었다.
“혹시 지금 보육원 아이들이 몇 명이나 있나요?”
“우리 애들? 지금은 열두 명의 아이들이 보육원에서 지내고 있는데, 그건 왜 물어보니?”
“빈손으로 가긴 뭐해서, 선물을 좀 사 가려고요. 그래서 말인데요, 애들한테 가지고 싶은 것 좀 물어봐 주시겠어요?”
-얘는… 그러지 말렴. 너도 살기 바쁜데, 그럴 여유가 어디 있다고 그래.
“여유요?”
나는 씨익 웃으며 답했다.
“저 이제 돈 많아요.”
***
내가 자란 이삭 보육원은 서울 근교의 한적한 작은 마을에 있었다.
아스팔트도 깔려있지 않은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낡은 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 나타나는데. 그곳이 바로 이삭 보육원이었다.
부릉-
나는 보육원의 자그마한 운동장을 가로질러, 차량 두 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간이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음?’
차에서 내리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호기심 어린 눈망울의 아이들 모습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곧바로 몸을 숨기면서도, 고개만 빼꼼 내밀어 나를 관찰하는 게. 새로운 방문자가 어지간히도 궁금했던 모양이다.
‘하긴, 나도 어릴 때는 그랬었지.’
사람이 그립고 사랑이 부족할 때였다.
매일 만나는 익숙한 사람보다, 새로운 얼굴의 다양한 사람에게 다가가 안기고 싶은 마음을.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현민아!”
내가 주차하는 소리를 들은 모양인지, 수녀님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오셨다.
“어머! 너 왜 이렇게 멋있어졌니? 하마터면 몰라볼 뻔했네.”
“키도 좀 큰 것 같은데?”
수녀님들은 오랜만에 만난 나를 격하게 반겨주었다. 그런 수녀님들의 사이에는 어느새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원장님의 온화한 얼굴이 있었다.
‘원장님…!’
나는 그런 원장님에게 다가가 꼬옥 끌어 안아드렸다.
“죄송해요, 이제야 찾아와서.”
삶이 바빠서, 지쳐서 찾아오지 못했다. 라는 것은 핑계였다.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어.’
당신이 키운 아이가, 이렇게 볼품없는 어른으로 자랐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이제는 당당히 자랑할 수 있었다. 당신의 아이가 이렇게나 멋지게 자랐노라고.
토닥토닥.
“오랜만이구나.”
내 등을 토닥이는 원장님의 손길은 어릴 때 느꼈던 그 따스한 손길 그대로였다.
“오는 길이 힘들지는 않았어?”
“전혀요.”
“밥은 먹었고?”
“아뇨, 아직이요.”
나를 걱정해주는 원장님의 목소리에서, 어릴 적의 나를 불러주시던 때가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져 왔다.
‘이런.’
다 자란 녀석이 눈물이나 흘리는 못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기에, 나는 원장님에게서 급히 떨어지며 말했다.
“…제가 먹을 것을 좀 사 왔는데요. 양이 많아서 애들하고 나눠 먹으려고 하는데, 옮기는 것 좀 도와주시겠어요?”
.
.
.
“우와아아-!”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아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치킨이다, 치킨!”
“피자다!”
“햄버거도 있어!”
군침을 꼴딱꼴딱 삼키는 아이들의 좋아하는 모습에 나는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얘들아, 이 음식들 모두 여기 삼촌이 사주신 거니까.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먹어!”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신이 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너는 무슨 돈이 있다고, 음식을 이렇게 많이 사 와.”
원장님의 목소리엔 걱정과 염려, 그리고 감사와 뿌듯함이 서려 있었다.
“애들이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구요. 그리고 저 돈 많다니까요.”
원장님은 내가 돈이 많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 눈치였다.
“애들 것 뿐만 아니라, 우리 수녀들 것도 사 왔으니 하는 소리지.”
보육원의 수녀님들의 나이는 결코 적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수녀님들이 기름진 음식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을 것 같아, 각종 생선 요리와 참치회, 보양 오리백숙, 과일 등을 사 왔다.
“원장님도 얼른 가서 드세요. 음식 식으면 맛없잖아요.”
“아니, 다른 수녀님들이 드실 동안 나는 애들을….”
“애들은 제가 보고 있으면 되잖아요.”
그렇게 내가 계속 설득하자, 원장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참, 현민아. 이따가 자원봉사자 한 분이 오실 수도 있어. 그런데 그분이… 아니다.”
“네? 그분이 왜요?”
“아니야. 그냥 너무 놀라지는 말라고.”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원장님의 의뭉스러운 미소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쨌든 원장님이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 나는, 햄버거를 우물거리며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들 잘 먹네. 한창 자랄 때라 그런가. 남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모자라겠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사 올걸.’
분명 머릿수보다 많이 사 왔는데도, 곳곳에 빈 상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이거라도 줘야겠다.’
나는 내 몫으로 남겨둔 피자와 치킨 상자까지 아이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꺄르르 웃으며 내게 안겨들었다.
“고맙습니다!”
5~8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꾸벅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그래, 맛있게 먹어.”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콜라를 한입 마시며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양손에 치킨과 피자를 든 아이들은 입가에 양념을 덕지덕지 묻히며 재잘거렸다.
“야, 일루와! 그렇게 묻히고 다니면 어떻게 해!”
그런 아이들의 입가를 고등학교 나이대 녀석들이 다가와 닦아주는 모습에, 나는 미소가 절로 피어올랐다.
‘기특하네.’
수녀님들에게 교육을 잘 받은 듯한 아이들의 모습을, 나는 계속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나는 아이들의 머릿수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왜 11명 밖에 없지? 원장님이 분명 12명이라고 했는데?’
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이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아, 그거 근형이에요.”
“근형이?”
“네, 근형이는 원래 밥 혼자 먹어요.”
“밥 먹는 시간이 아깝데요!”
“근형이는 이상해요! 걔는 잠자는 시간 빼고 공부만 하거든요!”
“공부가 좋은가 봐요! 난 싫은데!”
재잘대는 아이들의 말을 종합해보자면, 근형이라는 아이는 지금 따로 어딘가에서 내가 사 온 음식을 먹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인데.’
그것은 현실에 좌절했던 어릴 적의 내가 했던 행동과 비슷해 보였다.
계속 근형이에 대해 재잘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 생각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나는 그 근형이라는 아이가 조금 신경이 쓰였다.
“얘들아, 그럼 그 근형이라는 친구는 지금 어디에 있어?”
“근형이는 그림방에 있어요!”
“그림방? 화실 말하는 거야?”
“네! 근형이는 거기가 제일 공부가 잘된대요.”
고개를 끄덕인 나는, 잠시 후 식사를 마치고 나오신 수녀님과 교대하여 곧장 화실로 향했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나는 추억 속의 모습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복도를 걸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긴 복도를 걷자, 제일 끝에 위치한 화실의 모습이 보였다.
‘저기에 근형이라는 친구가 있다는 말이지?’
원장님은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들의 목록을 내게 보내주었었다. 그중에는 조금 특이한 선물목록이 있었는데, 바로 ‘수학의 정석’등의 참고서들이었다.
‘그걸 요청한 게 바로 저 녀석이겠지.’
한창 놀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이에, 받고 싶은 선물이 참고서라니. 이것은 무언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정말로 공부를 좋아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나는 그 아이가 나와 같은 후회를 하지 않도록, 약간의 조언을 주고 싶었다.
화실에 도착한 나는 창문을 통해 안쪽의 모습을 살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밝은 벽면에는, 삐뚤빼뚤하게 그려진 아이들의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그런 그림들의 앞에는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공예를 할 수 있도록, 원형의 탁자들이 일정 간격으로 비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열심히 책을 보고 있었다.
‘음식에 거의 손을 안 대었네.’
녀석은 그 정도로 공부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에서 기특하다기보단, 안타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가 저랬었지.’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나는, 현실을 깨달은 뒤부터 저렇게 필사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었다.
‘저 녀석도 그런 것일까?’
나는 아이의 모습에서 어릴 적의 내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이상하게도 나는 말 한마디도 나눠보지 않은 녀석에게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들어가서 이야기를 들어보자.’
드르륵.
나는 화실 안으로 들어가, 내게 고개도 돌리지 않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
챙 넓은 라피아햇을 쓴 여자, 이지현이 탄 자동차가 이삭 보육원에 들어섰다.
‘…응? 저 차는 뭐지?’
처음 보는 낯선 차량이 보육원 주차장에 서 있었다.
‘다른 자원봉사자 중에 벤츠를 타는 사람이 있었나?’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자동차에서 내려섰다. 그리고는 뒷좌석에 실려있던 김밥과 샌드위치가 들어있는 비닐을 양손에 쥐어 들었다.
‘애들이 좋아하겠지?’
기뻐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기대하며, 이지현은 걸음을 서둘렀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아이들은 누군가가 사 온 피자와 치킨을 행복하게 먹고 있었다.
‘누구지…’
이곳 보육원에 오는 자원봉사자들은 그녀처럼 사비를 들여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사 오지 않았다.
‘자원봉사자가 새로 왔나?’
호기심이 생긴 이지현은 수녀님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곧장 식당으로 들어가, 막 햄버거를 다 먹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채은아.”
“어! 배우 언니다! 안녕하세요!”
“응, 그래. 그런데 채은아, 이 음식들은 다 뭐야? 누가 사줬어?”
“오늘 새로 온 오빠가 사준 거예요!”
역시, 그녀의 예상대로 새로 온 자원봉사자가 음식을 사 온 것이 맞았다.
“아, 그래? 그럼 그분은 지금 어디에 있는데?”
“오빠는… 음… 아마 그림방으로 갔을걸요?”
“그림방? 거기는 왜?”
“아까 근형 오빠가 혼자 있다는 말을 듣고, 나가셨어요.”
그런 채은이의 말에, 이지현은 속으로 탄식했다.
‘이런, 처음 오신 분이 상처 좀 받겠는데?’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 처음 방문한 날을 떠올렸다.
‘나도 근형이에게 말을 걸어보았지만, 그 아이는 한 번도 대꾸해주지 않았었지.’
근형이는 어떤 이유인지, 마음의 문이 굳게 닫힌 아이였다. 이지현은 그런 근형이가 안타까워 이곳에 올 때마다 그 아이를 찾았지만,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근형이는 피자랑 치킨은 안 먹는데.’
그 아이는 밥을 먹으며 책을 볼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그래서인지, 공부에 방해가 되는 음식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그녀는 그래서 근형이가 간단히 집어먹을 수 있는 김밥을 사 온 것이었다.
‘근형이 배고프겠네. 얼른 김밥 가져다줘야겠다. 겸사겸사 새로 온 자원봉사자의 얼굴도 구경하고.’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화실로 향한 그녀는 곧, 믿기 힘든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어, 어떻게…’
그녀의 눈앞에는, 처음 보는 남자와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근형이의 웃는 모습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