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29
29화 무모해도 돼
드르륵-
나는 화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화실에는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와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숨소리, 그리고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음식에 손도 안 댔네.’
녀석의 오른편 테이블 위에는, 아이들이 정성스레 담아준 치킨과 피자가 접시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창 배고플 때인데….’
속으로 혀를 찬 나는 일단 근형이에게 다가가 인사하려 했다.
하지만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녀석에게선, 마치 온몸으로 소통을 거부하는 듯한 분위기가 풍겨오고 있었다. 선뜻 말을 걸기 힘들 정도였다.
사각사각.
“…….”
아마, 잘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이 정도로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가 기특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공부를 좋아해도, 맛있는 음식과 친구와 사람을 거부하면서까지 저렇게 필사적으로 하진 않는다.
‘…어릴 때의 나와 같아.’
그리고 나는 저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저 공부만이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해, 어쩔 수 없이 하는 목적 없는 노력.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어, 그 좌절감에 이를 악물고 연필을 쥐는 것.
그렇게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억지로 읽어 넘기는 모습까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가진 것이 없어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내가, 지금 내 눈앞에 오버랩 되고 있었다.
‘아니, 저 녀석이 오히려 더 심하지. 내가 방황했던 것은 고등학생 때였으니.’
이제 겨우 중학생인데, 현실에 짓눌려 꿈꾸는 것을 포기하다니. 나는 그런 녀석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인생에서 공부만이 전부인 것은 아니니까.’
그것을 녀석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안녕?”
“…….”
“형은 윤현민이라고 해. 네가 근형이지?”
“…….”
겨우 인사를 건네었지만, 역시나 녀석은 내게 대꾸는커녕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역시 무시하는구나. 어쩜 이런 것까지 똑같은지.’
나는 저 녀석이 저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대화할 시간조차 아깝다고 생각하는 거야.’
녀석에게 말을 거는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야 뻔할 테니 말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그런데 너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니?
-뭐? 하고 싶은 게 없다고?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면 족하다고?
-네 나이 때는 꿈을 꿔야 해. 공부도 좋지만, 먼저 이루고 싶은 게 뭔지부터 정해보렴.
고등학생 때의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른들이 참 한심해 보였다.
‘꿈을 꾸는 것은 사치라 생각했으니까.’
어렸던 나는, 꿈은 가진 자들이나 꿀 수 있는 것으로. 돈도 빽도 부모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판단했다.
‘그렇기에 이룰 수 없는 꿈에 도전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라 생각했지.’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얼마 전에 깨달을 수 있었다.
-로망을 이루는 것은 멋진 일이야. 하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도 무척이나 멋지지. 아니, 오히려 더 빛날지도 몰라.
-과정이 더 빛이 난다고?
-그래, 그러니까 나는 내가 이루고픈 로망들에 계속 도전할 거야. 도전할수록, 우리는 더욱 빛날 테니까.
아일라는 말했었다. 꿈에 도전하는 것은 그 자체로 멋진 일이라고.
‘나도 이것을 진작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공부는 물론 중요했다. 가진 것이 없는 우리가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도 맞았다.
하지만 인생에 단 한 번뿐인 10대의 청춘을,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하며 보낸다는 것은. 너무나 아까운 일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저 녀석이 잃어버린 꿈을 다시 꿀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저 녀석의 꿈이 뭔지를 알아야 하는데….’
뭐라도 단서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녀석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공부방이 따로 있는데, 녀석이 굳이 화실에 와서 공부하는 이유.’
내 생각이 맞다면, 녀석은 그림과 관련된 꿈이 있으며. 여전히 그 꿈에 미련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럼, 가볼까.’
나는 일단, 원장님을 찾아 녀석에 대한 내 생각이 맞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지금까지의 내 생각이 오해라면. 괜히 오지랖을 부려 저 녀석에게 민폐를 끼치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드르륵-
화실 밖으로 나온 나는, 곧장 원장님을 찾아갔고. 녀석에 대한 내 생각들이 모두 맞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담 어떻게 해야, 녀석에게 다시 꿈을 심어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내 머릿속에 한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별이 쏟아지던 밤.
낭만을 노래하던 스타더스트 밴드의 모습을 보며, 다시 꿈꿀 용기를 얻었던 나의 모습을 말이다.
‘좋아, 그렇게 한 번 해볼까?’
나는 원장님에게 부탁해 종이와 연필을 받아, 다시 화실로 돌아왔다.
***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근형은 인상을 찌푸렸다.
‘또 왔네.’
짜증이 났다.
생각 없이 먹지도 않을 피자와 치킨을 잔뜩 그릇에 담아온 아이들에게도 짜증이 났지만, 아까부터 계속 화실을 오가며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저 아저씨가 무척이나 거슬렸다.
‘이해할 수가 없네.’
남의 일에 왜 그리들 관심이 많은지, 또 그럴 시간은 대체 어떻게들 내는지 모르겠다. 자기 할 일 하기에도 바빠 죽을 텐데 말이다.
‘또 말을 걸겠지?’
아마 저 아저씨도 지금까지 찾아온 자원봉사자들처럼 헛소리를 늘어놓을 게 뻔했다.
-그렇게 공부만 하지 말고, 좀 놀기도 하렴.
이따위의 쓸데없는 말을 또 들을 것을 생각하니, 안 그래도 공부하느라 아픈 머리가 더욱 지끈거렸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근형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책에 시선을 고정했다.
‘계속 무시해야지.’
반응하지 않으면, 말을 걸던 사람들 대부분은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간다. 이는 방해꾼들을 상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 노하우였다.
저벅저벅.
마침내 다가온 아저씨가 옆자리 테이블에 앉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근형은 이를 악물고 책에만 시선을 고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뭐지?’
아무리 기다려도 아저씨는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를 긋는 연필 소리만이 들려왔다.
스윽- 스윽-
대체 무얼 하고 있길래, 굳이 옆자리에서 저러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차라리 빨리 말을 걸고 가버렸으면 좋겠는데.’
옆에서 뭘 하는지 그냥 조용히만 있으니, 근형은 오히려 아저씨가 신경이 쓰여 공부가 되지 않았다.
‘차라리 뭘 하는지 확인하는 게 더 낫겠어. 이대로면 궁금해서 공부가 안될 것 같아.’
그렇게 근형은 아저씨에게 들키지 않도록, 눈만 살짝 돌려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림?’
아저씨는 여러 장의 종이와 기다란 4B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스윽- 쓱- 쓱-
연필을 잡는 폼이, 그림을 좀 그려 본 사람인 것 같아 보였다.
‘…기본은 있으시네.’
그렇게 근형은 자기도 모르게 그림이 완성되는 것을 넋 놓고 지켜보게 되었다.
잠시 후, 그림이 완성되었다.
‘…저건 나?’
그것은 방금까지 공부를 하고 있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팔락.
아저씨는 종이를 한 장 넘기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저씨의 손놀림이 매우 빨라졌다.
‘크로키?’
그것은 움직이는 사람이나 동물의 형태를 빠르게 그리는, 크로키에 가까운 낙서였다.
‘대체 뭘 그리려고…’
약 1분 후, 아저씨의 낙서가 완성되었다.
앞선 그림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볼품없고 단순한 그림이었지만. 근형은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나잖아?’
그것은 기다란 연필을 쥐고 공책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팔락팔락팔락.
다시 종이가 넘어가고, 또 넘어가고, 또 넘어가며. 아저씨의 낙서는 계속되었다.
‘이…건…’
연필을 쥔 그림 속 자신이 울고 있었다. 흘러내린 눈물은 공책을 적셨지만, 자신은 멈추지 않고 젖은 종이 위에 글을 적어나가며 공부를 계속했다.
그렇게 공책이 찢어지자, 그림 속 자신은 새로운 공책을 꺼내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찌익-
찢어지고, 또 찢어져. 자신의 주위에 책이 수북이 쌓여갈수록. 그림 속 자신의 얼굴은 점점 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팔락.
그렇게 다음 그림이 시작되었을 때. 그림 속 자신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젖은 공책에, 들고 있던 연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
그림 속 자신이 웃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려나갈수록 점점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었고, 젖은 공책이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행복해 보여.’
팔락.
마침내 어른이 된 그림 속 자신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려주는 화가가 되어있었다.
모자를 쓴 채, 연필을 들어 올려 한쪽 눈을 감은 자신의 모습이 썩 멋있게 보였다.
그림 속 자신은 많은 사람에게 그림을 그려주었다.
어느 연인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그리기도 했고, 한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그리기도 했으며, 두 손을 꼭 잡은 한 노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한 장 한 장.
그림 속 자신이 그림을 나눠줄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연필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던 그림 속 자신은, 이제 그 연필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주고 있었다.
팔락.
마지막 종이였다.
아저씨의 손놀림이 조금 진지해졌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선 하나하나에 신중을 가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번 그림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었다. 첫 장의 그림처럼. 아니, 그것보다도 더 정밀한 소묘였다.
스윽- 쓱.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완성된 그림을 보게 된 근형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것은 꿈을 이룬 그림 속 자신이 환하게 웃고 있는 그림이었다.
“어때?”
완성된 그림을 내밀며, 아저씨가 물어왔다.
“뭐…가요….”
“지금까지 내 그림들을 봤잖아. 뭘 느꼈는지 궁금해서.”
뭘 느꼈냐고?
‘부러웠어.’
꿈을 이룬 그림 속 자신이 너무나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었는데.’
하지만 그것은 이룰 수 없는 이상이었다. 현실은 그림 속 세상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근형은 자신이 느낀 이 감정을 애써 부정하며 대답했다.
“현실과 이상은 달라요.”
“그러나 이상 없는 현실은 비참할 뿐이야. 그림 속에서 울고 있던 너처럼.”
비참하다고?
그 말에 근형은 필사적으로 공부를 해왔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그 나날들이 즐거웠어?”
아니었다.
“아니면,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을 때가 즐거웠어?”
당연히 그림을 그렸을 때가 즐거웠다.
근형은 저 이름 모를 아저씨에게 점점 설득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이러면 안 돼.’
저 말에 넘어갔다간, 자신의 미래는 불확실해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조금 더 꿈꾸면서 살라는 거지.”
그 말에 근형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건 아저씨가 내 상황을 잘 알지 못해서 할 수 있는 소리잖아요! 아저씨가 내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사는지 알아요?!”
그러자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 나도 이곳 보육원 출신이었으니까.”
“…네?”
“너처럼 꿈을 포기하고 공부한 결과가 바로 나야. 그래서 확신할 수 있다. 너, 그렇게 살다간 나중에 후회하게 될 거야.”
“거짓말…!”
근형은 부정하고 싶었다.
“그딴 거짓말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마세요! 내가 얼마나….”
“됐고.”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다가왔다. 그리곤 방금까지 그림을 그렸던 4B연필을 근형의 손에 쥐여주었다.
“방금, 이 연필을 쥐었을 때. 가장 먼저 뭐가 하고 싶었는지 말해 봐.”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근형은 손이 새하얘지도록, 연필을 꽉 움켜쥐었다.
“꿈을 꿔도 된다. 도전은 그 자체로 빛이 나는 거니까.”
“…너무 무모하잖아요, 그건.”
“너는 무모해도 되는 나이야. 마음껏 도전해도 되는 나이고. 실패를 해도 되는 나이지.”
그 말에 근형은 울먹이기 시작했다.
“정…말요?”
“그래.”
“나 그림 그려도 되는 거예요?”
“그렇다니까. 그래도 정 불안하다면.”
아저씨… 아니, 이름 모를 형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가 좀 도와줄게. 나 이래 보여도 돈이 좀 많거든.”
주륵.
근형의 얼굴에 눈물 한줄기가 흘렀다. 그리고 이내 폭포수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흐어엉-!”
하염없이. 하염없이.
***
나는 근형이와 그림을 그리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녀석에게 내 번호를 알려주었다.
“형, 꼭 연락할게요!”
“그래, 그림 연습 열심히 하고! 그렇다고 공부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네!”
아까보다 밝아진 녀석의 모습에, 나는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화실을 나섰다.
“저기요.”
그런데, 화실 밖에선 챙 넓은 모자를 쓴 어떤 여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
“어떻게 한 거예요?”
여자는 다짜고짜 다가오며 내게 물어왔고, 당황한 나는 한 발자국 물러나며 대답했다.
“어떻게 하다니요? 뭘요?”
“근형이 말이에요! 어떻게 대화할 수 있었냐고요.”
여자의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가득 묻어있었다.
“나는 그렇게 노력해도, 눈길 한번 안 줬었는데…!”
그 모습에 나는 이 여자도 근형이를 위해 노력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그렇게 내가 여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려던 찰나.
우우웅-
누군가에게서 문자가 왔다.
“…응?”
문자의 내용을 확인한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진짜로?’
그것은 가로수 길 라이브카페 ‘아우라’의 사장님이 보낸 문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