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3
3화 이게 말이 돼?
큰일이었다.
입꼬리가 내려가질 않는다.
한 달이라는 영겁과 같은 시간을 기다려 퇴원하자마자. 나는 깁스를 벗어 던지고, 당첨금을 찾으러 갔다.
그리고 그 결과.
[1,720,532,550원.]통장에 찍혀있는 돈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아야.”
세게 볼을 꼬집어보았지만, 역시 현실이었다.
“흐흐흐…!”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그럼에도 나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17억.
무려 17억이다.
내가 직장을 정년까지 다닌다 해도 만질까 말까 한 액수이다.
‘한 푼도 안 쓰고 모으거나, 재태크를 무지막지하게 잘해야 만져볼 수 있는 돈이지.’
그것도 운이 좋은 경우에 한해서였다. 나처럼 운이 나쁜 인간은 절대로 꿈꿀 수 없는 돈이란 것이다.
‘그런 돈이 내 통장에 들어와 있다니!’
벼락을 맞고 살아날 확률 60만 분의 1.
로또에 당첨될 확률 825만 분의 1.
나는 세상에서 가장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더는 불운한 남자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동안 불운했던 것은 모두 이 순간을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어.’
30년 치의 행운을 한꺼번에 터뜨리기 위해서, 나는 그동안 불운하게 살아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돈으로 제일 먼저 무얼 해볼까.’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백화점에서 카드로 톱질을 해볼까?
나만의 드림카를 구매할까? 아니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어볼까?
두근두근.
이상한 기분이었다.
가슴 속에서 평생 느껴보지 못한 세찬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뭐든 할 수 있어.’
지금껏 남의 눈치를 보며 소극적으로 살아와 굽혀져 있던, 어깨와 허리가 곧게 펴졌다.
몸이 뜨거워진다. 심장에서 이유 모를 자신감이 계속해서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꼬르륵.
당첨금을 수령 받을 때 긴장을 많이 해서였을까. 벌써 배가 고파왔다.
‘뭐를 하든, 일단 배를 채우고 시작하자. 돈도 생겼으니, 아주 비싼 걸로.’
17억이 생긴 기념으로 아주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자, 그럼 무얼 먹어볼까.
‘토마호크? 랍스터? 오마카세? 캐비어?’
나는 한참 동안 내가 아는 모든 비싼 음식들을 떠올렸지만, 선뜻 결정할 수 없었다.
‘대체 뭐가 맛있지?’
모르겠다.
내가 언제 먹어본 적이 있어야지.
‘돈도 써본 놈이 잘 쓴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우우우웅-
내가 머릿속으로 저녁 메뉴를 고르지 못하고 있던 그때, 누군가의 전화가 걸려왔다.
[구상민.]발신자를 확인한 나는 곧장 수신 버튼을 눌렀다.
“네, 구상민 씨. 어쩐 일이신가요?”
-퇴원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얼굴 뵈러 갔어야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러질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전화 너머로 느껴지는 여유롭고 중후한 목소리에는, 나를 존중해주는 느낌으로 가득했다.
“아닙니다. 지금까지 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요.”
-그래도 얼굴 뵙고 이야기 나누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요. 아, 혹시 지금 어디십니까?
나는 서대문역 근처라고 대답하려다가 급히 말을 바꾸었다.
“지금… 볼 일 있어서 종로 근처에 와 있습니다.”
‘굳이 곧이곧대로 말할 필요는 없겠지.’
퇴원하자마자 서대문역에 갔다고 말했다가, 만에 하나라도 구상민 씨가 내 당첨 사실을 눈치챈다면.
‘지금의 좋은 관계가 틀어질지도 몰라.’
물론, 구상민 씨는 이미 부자이지만. 아무리 적더라도 돈 앞에서는 그 누구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조심하는 것이 맞다.
-오! 마침 잘 되었네요. 저도 그 근방에 있습니다. 이후 일정이 없으시다면, 같이 식사 어떠십니까? 퇴원 기념으로 제가 맛있는 걸로 사겠습니다.
평소였다면 좋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뇨, 그동안 받은 것도 많은데, 감사의 의미로 오늘은 제가 사겠습니다.”
-윤현민 씨가요?
통장에 17억도 생겼겠다.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에게 거하게 쏘고 싶었다. 물론, 적정선은 지켜서.
‘너무 비싼 걸 사드리면 의심할지 모르니까.’
하지만 그는 완고했다.
-그래도 오늘은 제가 사겠습니다. 제가 방금 어려운 계약을 따내어서 곧 보너스를 받을 것 같거든요.
“보너스요?”
-네, 명동에 제가 아는 맛집이 있는데, 그리로 오시겠습니까?
“정 그러시다면야…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 뵙죠.
통화를 종료한 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어떤 맛집일까?’
구상민 씨가 추천하는 곳이었으니 분명 엄청 비싸고 화려한 곳일 것이라 생각했다.
.
.
.
부릉-
고급스럽게 잘 빠진 자동차. 롤스로이스 팬텀이 내 앞에 멈추어 섰다.
“윤현민 씨, 어서 타세요.”
나는 속으로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차량에 올랐다.
‘이거 몇억은 할 텐데.’
새 차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을 보니, 23년식 롤스로이스가 분명했다.
‘대체 연봉이 얼마길래 이런 걸 타고 다닐 수 있는 거지…’
자동차뿐만이 아니었다. 병문안을 올 때도, 지금도.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고급스러운 명품을 걸치고 있었다.
“배고프시죠? 예약해둔 가게는 그리 멀지 않으니 조금만 참아주세요.”
“예….”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17억의 자산가라 자부하며 들떠있었다. 하지만 진짜 부자인 구상민 씨를 보니, 왠지 모를 초라함이 느껴졌다.
“자, 다 왔습니다.”
도착한 곳은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어느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어서 오세요. 예약석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오는 곳에서 약간 어쩔 줄 모르던 나는, 구상민 씨의 행동을 곁눈질로 따라 했다.
“에피타이저 먼저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웨이터가 들고 온 음식은 검은 색의 알. 캐비어였다.
“맛있네요.”
“…예, 그렇네요.”
열심히 구상민 씨가 먹는 것을 따라 하기 바빠서, 솔직히 맛은 잘 느끼지 못했다. 뒤이어 나오는 음식들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는 먹어보기 힘든 비싼 음식들이었지만,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아무런 맛을 느낄 수 없었다.
‘여유롭네.’
구상민 씨는 달랐다. 이런 곳이 익숙한 것인지 그는 느긋하게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역시 나와는 달라.’
진짜 부자와 졸부의 차이가 명확하게 느껴졌다.
‘궁금해.’
그래서 나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부자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행동하는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무엇을 사고, 무엇을 입는지.
‘저 여유를 닮고 싶다.’
내가 동경하는 삶을 사는 눈앞의 남자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듣고 싶었다.
그랬기에,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
“질문 하나… 아니, 몇 가지 해도 될까요?”
구상민 씨는 흔쾌히 대답해주었다.
“얼마든지요.”
나는 그에게 여러 가지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평소 생활 루틴이요?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 전에 조깅을 갔다 와서 간단히 아침을….”
“어떻게 부자가 되었냐고 물으신다면… 젊을 때는 열심히 저축하여 시드 머니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재태크와 투자를 병행하며….”
“좋아하는 브랜드는….”
대답하기 귀찮을 사소한 질문들도, 구상민 씨는 개의치 않고 대답해주었고. 몇 가지 조언도 해주었다.
“투자는 여유롭고, 대담해야 합니다. 잠깐의 손해에 일희일비해선 안 돼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되, 판단은 본인 스스로 해야 합니다.”
“욕심을 부려선 안 됩니다.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팔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니까요.”
“주식 투자는 올인해선 안 됩니다. 항상 가용할 수 있는 금액의 10분에 1 정도만 투자하세요.”
내게 계속 설명해서 목이 탄 것인지, 구상민 씨는 물잔을 자주 들이켰다.
‘지금의 말들을 잊지 말자.’
나는 구상민 씨의 조언을 허투루 흘려듣지 않았다.
‘구상민 씨는 시드 머니를 모으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나는 이미 시드 머니가 있으니까.’
곧바로 투자에 손을 댈 수 있는 조건이 완성된 셈이다.
“조언 정말 감사드려요.”
“제 잡담이 윤현민 씨 인생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그럼 저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습니다.”
우우우웅-
그가 자리를 떠나자마자, 테이블에 올려둔 그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무심코 발신자를 확인한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루멘 부사장?’
주식회사 루멘. 국내 최대의 백신 개발사였다.
‘한국형 코로나 백신을 개발했지.’
비록 선두 주자들에 비해, 많이 늦고 말았지만. 추후에 밝혀진 루멘 백신의 효과에 주가가 폭등했다는 뉴스를 며칠 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백 퍼센트 해결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했을 줄이야.’
덕분에 세상은 드디어 마스크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그런 엄청난 회사의 부사장님이 왜 구상민 씨에게 연락하는 거지?’
문득, 아까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래도 오늘은 제가 사겠습니다. 제가 방금 어려운 계약을 따내어서 곧 보너스를 받을 것 같거든요.
‘설마?’
그때, 구상민 씨가 자리로 돌아왔다.
“조금 전에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요? 혹시 누구의 전화인지 보셨습니까?”
“아뇨, 못 봤습니다.”
“그래요?”
구상민 씨는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더니, 다시 자리를 비워야겠다며 내게 양해를 구하였다. 그렇게 잠시 후, 돌아온 그에게 나는 넌지시 물었다.
“업무 전화였나 보네요.”
“네. 아까 계약했던 회사의 직원입니다. 무언가 문제가 생겨 전화한 것 같았는데, 다행히 그냥 안부 전화였답니다.”
“그렇군요.”
“자, 그럼 다시 식사를 시작해볼까요? 아, 혹시 저에게 더 궁금하신 게 있으신가요?”
“한 가지 궁금한 게 더 있긴 합니다.”
“네, 무엇이죠?”
“혹시 직업이 어떻게 되시는지 여쭤도 될까요?”
그동안 구상민 씨는 본인의 직업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나는 굳이 그의 직업을 묻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알아야겠어.’
다소 무례할지라도. 꼭 알고 싶었다.
“음… 저는….”
구상민 씨는 흔쾌히 명함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상록 제약의 전무라고?!’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상록 제약에 대해 검색하였다.
‘몇십 년간 국내 제약회사 1위였으나, 몇 년 전에 5위로 밀려남. 현재는 다시 1위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록 제약은 누구나 알아주는 제약회사였다. 하지만 처음 코로나 사태가 터졌을 때, 불운하게도 사고가 발생하였고.
‘그 사고로 인해 주가가 폭락하고 말았지. 그래서 지금까지 회복을 못 하고 있다고 했어.’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구상민 씨가 오늘 계약했다는 회사는 루멘사가 확실해.’
상록 제약의 전무가 루멘사의 부사장을 직접 만나 체결한 계약이라면 무엇이겠는가.
‘백신의 제작 및 유통에 대한 계약일 확률이 높다.’
굉장한 백신을 개발한 루멘사가 유통회사를 찾고 있다는 뉴스를 얼핏 본 기억이 있었다.
‘그렇다면….’
내 예상이 맞다면, 5위로 밀려났던 상록 제약이 단숨에 1위의 왕좌를 되찾게 될 것이다.
‘투자를… 해볼까?’
느낌이 왔다.
그동안 불운했던 자 특유의 감이랄까.
‘이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
17억의 당첨금을 더욱 불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막상 주식에 투자한다고 생각하니,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김 대리를 따라 주식을 매수하려 했다가 거하게 망할 뻔했었지.’
나는 불안했다. 비록, 엄청난 행운으로 로또에 당첨되었지만.
‘그게 혹시 내 평생의 운을 다 썼던 것은 아닐까?’
만약 다시 내가 불운해졌다면.
기껏 당첨된 17억을 모두 날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좋은 기회를 놓친다는 것은 말이 안 돼.’
그때, 구상민 씨가 해주었던 조언이 떠올랐다.
-주식 투자는 올인해선 안 됩니다. 항상 가용할 수 있는 금액의 10분에 1 정도만 투자하세요.
‘그래. 조금만 해보는 거야. 대신, 조금 더 정보가 확실한지 조사해본 뒤에.’
주식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밤을 새워가며 ㈜루멘과 상록 제약의 정보를 모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안했던 나는, 아예 주식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차트를 보는 법, 용어, 경제 지표 등. 그동안 관심도 없었던 것들에 대한 지식을 대충이나마 머릿속에 욱여넣었다.
그렇게 팬더처럼 다크 서클이 진해지기 시작한 지, 사흘 후.
‘이제 슬슬 시작해보자.’
[매수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예.’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약 5천만 원 상당의 상록 제약 주식을 매수했다.
‘와… 심장 떨려서 못 누를 뻔했네.’
내 연봉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클릭 한 번으로 투자해버렸으니. 내 심장이 튀어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주사위는 던져졌어.’
이제는 기다려야 할 때였다.
그렇게 또다시 며칠 후.
[상록 제약 +48.95%]‘이, 이게 말이 돼?’
나는 주식 창을 보며 턱이 빠질 듯이 입을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