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32
32화 이제 시작해 볼까?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샤워를 마친 뒤, 소파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아까의 일을 떠올렸다.
-저는 윤현민 씨가 루미에 브랜드의 마케팅 고문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마케팅 고문이요? 하지만 저는 이제 회사에 다닐 생각이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제 말은 회사에 소속된 고문이 아니라, 외부 마케팅 고문이 되어달라는 뜻이었습니다.
‘외부 마케팅 고문이라….’
조건도 괜찮았다. 루미에 브랜드에 한정으로 가끔 조언이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하겠다는 것이었으니까.
‘조언을 하나씩 해줄 때마다 페이도 넉넉히 챙겨준다고 했지.’
게다가 사장님은 내 조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오늘 받은 선물처럼 괜찮은 보상도 준다고 말했었다.
나는 아까 사장님에게 받은 고급스러운 쇼핑백을 열어, 쇼핑백보다 더 고급스럽게 생긴 자그마한 상자를 꺼내 열어보았다.
‘롤렉스라니.’
롤렉스 서브마리너 논데이트.
시계에 대해서 아예 문외한인 나도 롤렉스라는 이름은 들어봤다.
‘비싼 명품 시계 브랜드잖아.’
예전에 롤렉스 시계는 기본 천만 원이 넘어간다고 들은 기억이 있었다.
‘설마?’
나는 인터넷에 선물받은 시계의 모델명을 검색했다.
‘…1,170만 원?’
그나마 조금 저렴한 모델에 백화점 오픈런으로 매장에서 구매에 성공했을 때가 그 가격이었다.
‘중고가 오히려 프리미엄이 붙어서 더 비싸잖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고작 시계일 뿐인데, 그렇게 비싼 웃돈을 주고 구매한다고?’
나는 반짝 빛나는 롤렉스 시계를 이리저리 살피며, 생각했다.
‘시계를 천만 원이나 주고 사는 것은 미친 짓 같은데.’
나는 고개를 저으며 롤렉스 시계를 왼 손목에 착용해 보았다.
‘음…!’
메탈의 차가운 감촉이 손목에서 느껴진다.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분 좋은 서늘함이었다.
‘이쁘긴 진짜 이쁘네.’
디자인이 주는 효과였을까, 아니면 비싼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가 주는 효과였을까.
나는 착용한 롤렉스 시계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뭐지 이 기분은…’
괜히 만지고 싶고, 늘 착용하고 싶어지며,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 정도면… 천만 원을 넘게 주고도 살만 한….’
나는 나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시계 따위에 천만 원을 쓰는 것은 안 될 말이야.’
언젠가 돈 천만 원 따위는 우습게 쓸 정도가 되면 모를까. 지금은 시계에 돈을 쓰는 것은 사치 중의 사치일 뿐이었다.
그러나 약간의 수고로 이런 시계를 얻을 수 있다면, 그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브랜드도 아니고, 루미에니까.’
안 그래도 퇴사를 하며, 가장 아쉬웠던 게 바로 루미에 브랜드에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사장님의 제안은 나도 바라는 일이었다.
‘이번 여름에 패션쇼를 진행한다고 했었지?’
남은 시간은 4개월 정도. 아마 연락이 온다면, 그 안에 올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나는 핸드폰을 꺼내, 라이브 카페를 인수할 생각이 있다는 장문의 문자를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문자를 완성한 내가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새벽 1시였다.
아마 라이브카페 사장님도 아직은 깨어계시겠지만, 새벽에 문자를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발송될 수 있도록 예약문자를 걸어놓자.’
그렇게 예약 시간까지 설정을 완료한 나는 하품을 길게 하며, 침실로 향하려 했다. 그때, 거실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그것은 며칠 전 휴가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했을 때 받았던, 임예진 디자이너의 신상 스카프 샘플이었다.
‘쓸 데가 있으려나?’
그 당시, 한유경 씨가 샘플을 가져가도 좋다 하길래 받은 것뿐. 사실 쓸모는 없었다.
‘남녀 공용이긴 해도, 거의 여성용에 가까운 디자인이니까.’
스카프는 내가 평소에 입는 옷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랬기에 스카프를 지금까지 거실에 방치되어 있던 것이었다.
‘관상용으로라도 어디에다 걸어둬야 하나.’
그러다 문득, 루미에 브랜드의 스카프를 가지고 싶어 했던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일라에게 보내줄까?’
제주도에서 우리는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했었다.
‘한국과 미국의 시차가 14시간이니, 지금 연락해도 괜찮겠지.’
한국시간 새벽 1시면 미국시간으로 오전 11시쯤 된다. 아마 그쪽에선 지금쯤 점심 메뉴를 고르고 있지 않을까.
‘좋아.’
나는 아일라에게 까톡을 보내었다.
-오랜만이야! 나 누군지 기억해?
까톡을 보내자마자 몇 초도 지나지 않아, 1이 사라졌다.
-윤현민! 당연히 기억하지!
-우리의 뜨거웠던 제주도의 밤이 아직도 생생해.
까톡에서도 느껴지는 아일라의 장난기에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뜨거웠다기보단 열정이 넘쳤던 것 아닐까.
-그 말이 그 말이지.
-아무튼, 보여줄 게 있어서 연락했어.
-오! 뭔데?
나는 스카프가 잘 보이도록 사진을 찍어, 까톡으로 보내었다.
-(사진)(사진)
-루미에의 신상 스카프인데, 어때? 관심있어?
-(잔뜩 흥분한 이모티콘)
-뭐야? 어디서 났어, 그거!
-마음에 드는 모양이네.
-당연하지! 아, 안 되겠다. 또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어야겠어! 당장!
-진정해. 저 스카프 사진을 보여준 이유가 있으니까.
-앗? 설마?
-그래, 원한다면. 택배로 보내줄게.
-(놀란 표정의 이모티콘)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이모티콘)
-너는 최고야.
아일라가 방방 뛰며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마저 까톡을 보냈다.
-그럼 스카프를 받을 주소를 보내.
-오? 당신, 생각보다 대담한데? 자연스럽게 숙녀의 집 주소를 물어보다니 말이야.
-? 뭔 소리야. 택배를 보내려면 주소를 알아야 할 것 아냐.
-엉큼하긴. (눈을 흘기는 이모티콘)
-…뭐래. 싫으면 말든지. 그럼 스카프 선물은 없는 걸로….
-잠까아아안! 장난이었잖아! 이렇게 재미없게 굴 거야?
아일라가 급히 자신의 주소를 까톡으로 보내왔다.
-됐지!
-그래, 내가 내일 택배로 보낼게.
-(당혹스러운 표정의 이모티콘) 잔뜩 달아오르게 해놓고, 이러는 게 어디 있어! 당장 보내!
-안타깝지만, 불가능해. 한국은 지금 새벽이라고.
-아, 맞다. 그럼, 내일 일어나자마자 보내도록!
-일어나자마자 보내는 것도 불가능하겠지만, 어쨌든 최대한 빨리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
-(칭찬하는 이모티콘)(엄지를 척 올리는 이모티콘)
-굿.
-그래.
아일라와의 까톡을 종료한 나는 곧장 침대로 향했다.
‘이틀만 더 다니면, 드디어 퇴사다.’
그렇게 나는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
그로부터 열흘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무사히 퇴사를 마쳤으며, 라이브 카페 사장님과의 계약도 끝낼 수 있었다.
다만, 그 과정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인테리어를 마음대로 바꾸게 해달라고요?
-네, 본 무대 말고 작은 소 무대를 하나 더 설치하고 싶어서요.
-아니, 그건 좀….
나의 요구에 라이브 카페 사장님은 곤란해했었다. 언제라도 가게를 매매할 생각이었던 사장님은, 혹시라도 바뀐 내부 구조에 매매에 악영향을 미칠까 염려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소 무대 설치를 허가해주지 않으면 계약하지 않겠다는 내 강력한 설득(?)에, 사장님은 결국 가게 개조를 허가한다는 특약사항을 추가하여 도장을 찍었다.
도장을 찍은 뒤, 사장님은 내게 이렇게 물었다.
-무대를 설치하는 공사를 하려면. 적어도 한 달은 필요할 텐데. 그럼 직원들은 어쩌실 건가요?
나는 그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쿨하게 답변했다.
-뭐, 한 달간 휴가를 보내주면 되지 않을까요?
-아… 무급으로요?
-아뇨, 당연히 유급이죠.
-…
사장님은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으나, 나로선 당연한 조치였다.
‘그렇지 않아도 사장이 바뀌어서 혼란스러울 텐데, 한 달 동안 돈까지 안 주겠다고 하면 얼마나 황당하겠어.’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직원들에게 이 정도는 당연히 해줄 수 있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앞으로의 운영 계획과 가게 개조를 어떻게 할지 정해야 했다.
나는 텅 빈 가게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일단, 낮에는 기존과 다르게 라이브 피아노 카페를 운영하자.’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내가 어릴 적에 하고 싶었던, 피아니스트의 꿈을 어느 정도는 충족할 수 있었다.
또한 밤에는 기존처럼 밴드 음악 공연을 할 생각이었으므로. 가끔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는다면, 가수의 꿈도 어느 정도는 이룬 셈이 될 것이다.
‘가게에 걸어둘 그림은… 천천히 하자. 당장에는 할 일이 너무 많아.’
나는 일단, 그림을 걸어둘 벽면의 공간만 미리 확보해놓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나중에 하기로 정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가게 메뉴도 추가해볼까? 그리고 또….’
막상 가게를 운영하려니,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았다.
피아노를 놓기로 했으니, 어떤 모델을 구매할지 알아봐야 했다. 또한 낮에 일할 바리스타도 고용해야 했다.
‘일 잘하는 인테리어 업자도 수소문해야지. 혹시라도 공사를 망치면 안 되니까.’
이 모든 계획을 나 혼자 세우고 결정해야 하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재밌어.’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해서 하는 나만의 사업이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결정하고, 내 입맛대로 꾸미는 지금의 순간이 나는 무척이나 즐겁고 색다르게 느껴졌다.
‘좋아, 하는 김에 낡은 자재들도 모두 바꾸자. 간판도 새로 하고, 가게 이름도 새로 짓고.’
내가 이름 지은 가게가 생길 것을 상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초기 비용이 많이 들겠는데?’
인테리어만해도 수천만 원.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 들어갈 수도 있었다.
‘거기에 좋은 피아노와 필요한 물건 몇 개만 사도 돈이 꽤 많이 깨지겠지.’
문제는 지금 내 계좌엔, 투자 목적 외엔 절대 건드리지 않기로 정한 17억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원칙을 깨자.’
회사에서는 하는 일마다 잘 되고, 내가 투자하는 주식은 모두 올라버린다.
그러니 이쯤 되면 이제 인정할 때도 되었다.
‘나는 운이 좋아.’
며칠 전에 만났던 선녀 보살은 내가 죽다 살아나, 운이 좋아졌다고 말했었다. 그러니.
‘당첨금에 집착하지 말자. 내가 뭘 해도, 어떻게든 잘 풀릴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내가 뭘 하고 싶은가야.’
내 삶의 목적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었다. 돈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루는 데 필요한 수단일 뿐.
그러니 나는 이제 당첨금을 유지하는데,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자금이 필요하면 부담 없이 쓰고, 좋은 투자처가 생기면 과감하게 투자하자.’
돈에 신경을 쏟을 시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즐기는 데 더 집중하고 싶었다.
‘그러다 당첨금이 줄어들면, 또 어떻게든 되겠지.’
돈이야 삶을 즐기다 보면 어떻게든 벌릴 것이다.
어차피 나는 운이 좋으니까.
화아악-!
그렇게 마음을 먹자, 어두웠던 텅 빈 가게에 수많은 내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열정적인 나.
얼굴에 여러 물감을 잔뜩 묻힌 채 붓을 휘두르는 나.
눈을 감고 피아노 연주에 심취한 나.
여러 명의 직원을 이끌고 장사 준비를 하는 나.
깊은 바닷속에 뛰어들어 형형색색의 물고기를 관찰하는 나.
낙하산 하나에 의지해 드넓은 하늘을 유영하는 나.
새로운 무언가를 열심히 배우고 있는 나.
수많은 상상 속 ‘나’의 얼굴엔 모두 행복한 미소가 피어올라 있었다.
나는 그 모든 ‘나’의 모습을 지켜보며 다시 한번 결심했다.
‘전부 다 이뤄주겠어.’
그렇게 결심한 나는 더욱 열정적으로 가게를 어떻게 꾸밀지 고민했다.
‘여기는 밝은 톤으로 꾸미고, 저쪽은 반대로….’
즐거웠다. 무척이나.
곧 지나가게 될 지금의 이 순간이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
‘좋아.’
마침내 모든 운영 계획을 정한 나는 빙긋 웃으며, 수많은 ‘나’에게 말했다.
“이제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