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33
33화 행운의 피아노 (1)
오전 아홉 시.
다른 이들은 초췌하게 사무실로 출근했을 시간에, 나는 개운하게 눈을 떴다.
“으음…!”
기지개를 쭉 한 번 펴고, 평소엔 바빠서 내버려 두었던 이불도 개었다.
그리고 느긋하게 화장실로 걸어가,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쏴아아-
머리를 다 감은 나는 뽀송뽀송한 새 수건을 꺼내, 물기를 닦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아침엔 과일을 먹어줘야지.’
그동안 챙기지 못했던 건강도 챙기기 위해, 냉장고에서 사과와 바나나를 꺼내 믹서기에 곱게 갈아 주스로 만들었다.
꿀꺽꿀꺽.
크으.
벌써부터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이거지.’
내가 바랐던 여유로운 삶이 바로 이거였다. 회사에 다녔다면 절대로 하지 못할 아침 일상이었다.
‘평화롭네.’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 속에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다.
‘자, 그럼 이제 나갈 준비를 해볼까.’
옷장으로 향한 나는, 평소에 입던 정장이 아닌 편안한 에르마스 추리닝 바지에 후드 집업을 입었다. 그리고는 곧장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부릉-
벤츠를 이끌고 내가 향하고 있는 곳은 가정 살림살이에 필요한 물건들이 모여있는 모던 라이프 매장이었다.
나는 오늘 이곳에서 가게에 필요한 식기를 구매할 생각이었다.
“으흠흠~”
자동차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따사로웠다. 살짝 열려있는 창문으로 바람이 살랑이며 들어온다.
따스했으며, 동시에 시원한 느낌에 나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졌다.
‘도로가 한산하네.’
주말이었다면 절대 느끼지 못할 여유로운 도로의 풍경이었다.
그렇게 잠시 후. 나는 장지동에 있는 가든 식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던라이프 매장이 2층에 있다고 했었지?’
나는 가든식스의 내부로 들어가 에스컬레이터에 탑승했다.
‘역시 한산해.’
주말이었다면, 넘쳐나는 사람들로 인해 벌써부터 피곤했을 것이다.
아주 잠깐의 기다림으로 2층에 도착한 나는, 곧장 접시와 식기들이 진열된 곳으로 향했다.
‘어디 보자…. 가게에 쓸만한 접시가 있나….’
‘아우라’에서 원래 사용하던 접시와 식기를 그대로 써도 되었지만, 나는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가게의 낡은 것을 새것으로 바꾸고 싶었다.
‘오!’
눈앞에 진열된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접시들에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이것도 이쁘고, 저것도 괜찮네.’
접시를 몇 개만 골라야 하는데,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접시가 다 마음에 들었다.
‘아, 모르겠다. 그냥 다 사자.’
나는 마음에 들었던 접시들을 모두 쇼핑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그럼 다음으로.’
수저들이 진열된 곳으로 눈을 돌렸다.
‘역시나 다 이쁘긴 하지만.’
나는 특히나 마음에 들었던 수저세트 두 개를 골랐다. 두 세트는 각각 블랙과 로제 색상이었다.
‘깔끔한 스테인리스에 손잡이 부분이 모던한게 마음에 들어.’
손잡이 부분의 재질은 뭐로 만들었는지, 손에 닿는 감촉이 쫀쫀했다.
‘실리콘인가?’
재질이야 어쨌든. 내 마음에 들었으니, 이것도 내 쇼핑 바구니 안으로 들어갔다.
‘자, 그럼 필요한 게 또 뭐가 있나….’
나는 매장을 둘러보며, 천천히 가게에 필요한 물건을 하나하나 골라 쇼핑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꼬르륵.
‘응? 점심시간은 아직 멀었을 텐데…’
나는 왼손목의 롤렉스 시계를 확인해보았다.
‘어? 벌써 1시라고?’
쇼핑이 얼마나 재밌던지, 나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던 것이었다.
‘일단 계산부터 하고, 간단히 밥을 먹으러 가자.’
곧장 계산대로 향한 나는, 쇼핑 바구니를 계산대 위에 올리며 물었다.
“택배 되나요?”
“네, 가능합니다만. 부피가 큰 것만 가능해서, 이것들은 배송 서비스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것들 대부분 50개씩 주문할 건데 그래도 배송이 어렵나요?”
“…예?”
내 말에 점원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접시 깔 별로 50개씩 총 550개 주문할 거고요. 수저 세트도 50개씩 총 100세트. 그리고 이 보관대는 많이는 필요 없으니까 10개만, 또….”
“자, 잠시만요!”
나는 점원이 불러온 매니저에게 다시 한번 같은 주문을 반복했다.
“다 적으셨나요?”
“…네, 다 적었습니다. 배송은 어디로 해드릴까요?”
나는 일단 우리 집 주소를 불러주었다.
마음 같아선 바로 매장으로 배송시키고 싶었지만, 인테리어 공사가 언제 끝날지 몰랐기에 일단 집에 보관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럼, 결제해드리겠습니다. 할부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일시불로 해주세요.”
한 번의 긁힘으로 무려 천 오백만 원이 결제되는 광경에, 나는 왠지 모를 쾌감을 느꼈다.
‘왜 사람들이 쇼핑에 중독되는지 알겠어.’
그렇게 나는 천 오백만 원짜리 영수증을 받아들고, 곧장 푸드코트로 향했다.
누군가 나를 관찰하는 이가 있다면, 더 비싸고 좋은 음식을 먹을 수도 있는 주제에 왜 싸구려 푸드코트에서 점심을 먹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바로 그 음식이 있기 때문이지.’
가끔 가든식스에 올 때마다, 나는 항상 먹는 푸드코트 메뉴가 있었다.
“알탕 하나 주세요. 아, 그리고 공깃밥도 하나 추가해주시고요.”
푸드코트의 구석진 곳에 위치한 회전 초밥집. 거기에서 판매하는 알탕이 아주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잠깐의 기다림 끝에 내가 주문한 알탕이 나왔다.
보글보글-
뜨거운 뚝배기 그릇에 담긴 빨간 국물이 용암처럼 부글거렸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미나리와 통통한 동태알이 아주 먹음직스러웠다.
‘일단 국물부터.’
후… 후….
후루룩!
“크으-!”
이거다. 바로 이 맛이었다.
온갖 산해진미와 고급음식을 먹더라도, 주기적으로 생각나는 이 얼큰한 맛은 그 무엇도 따라올 수 없었다.
‘그럼 이번에는….’
뜨끈한 흰쌀밥을 푹 떠서, 알탕 국물에 충분히 적신 뒤. 그 위에 미나리와 곤이(이리)를 얹어 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후… 후… 후루룩 쩝쩝.
알탕의 하이라이트 통통한 알을 밥에 살짝 으깨어 비벼 먹고, 흰쌀밥 위에 밑반찬으로 나온 오징어젓갈을 얹어 먹다 보니. 어느새 알탕 한 그릇이 뚝딱이었다.
‘후아…! 잘 먹었다!’
나는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운 곳에 위치한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지.’
사람이 없는 평일이라서 빠르게 나온 커피를 쭈욱 빨아 당기니. 얼얼했던 입안이 금세 개운해졌다.
‘자, 그럼 이제 쇼핑도 마쳤으니 집으로 돌아가 볼까.’
‘인테리어 업체도 알아봐야 하고, 피아노도 어떻게 할지 생각해봐야 해.’
명색이 피아노 카페라면, 그랜드 피아노 한 대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브랜드의 일률적인 그랜드 피아노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왕이면 무언가 특별한 피아노를 가지고 싶어.’
나는 이따 집에 가서 그런 특별한 피아노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내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떼었을 때, 나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더 구경하다 갈까.’
오래간만에 평화롭게 외출한 터라, 이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 딱 한 시간만 더 구경하다 가는 거야.’
그렇게 마음먹은 내가,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발걸음을 떼었을 때였다.
우우웅-
누군가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지? 모르는 번호인데.’
통화 수신 버튼을 누르자,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그… 아, 그때 이름이 뭔지도 안 물어봤었네. 아무튼 저 이지현인데요.
“…누구요?”
-아니, 이삭 보육원에서 만났던 이지현이라고요.
“이삭 보육원? 아! 그 이상한 여자…!”
-… 저기요, 그거 실례 아니에요?
“아, 죄송합니다. 속으로 말한다는 게 그만.”
-아니, 나를 어떻게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할 수가 있… 아니, 잠시만요. 설마, 아직도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는 건 아니겠죠?
“…제가 그쪽이 누군지 어떻게 압니까. 이름도 지금 처음 들었는데.”
-…….
여자, 아니. 이지현 씨는 충격을 받았는지 잠시 말이 없어졌다.
-…아무튼, 그때 얘기했던 대로 전화를 걸었으니까. 이제 말해줘요.
“뭘 말이죠?”
-근형이의 마음을 열었던 방법이요!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가긴 했었다. 다만, 그 대화가 거의 일방적이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어쨌거나 굳이 숨길 이유도 없으니, 나는 이지현 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 얘기가 진짜예요?
“네. 제 그림으로 근형이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겁니다.”
-아니, 그… 하아아….
전화 너머에서 이지현 씨의 큰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것이라면, 제가 쓸 수 없겠네요.
어떤 사정인지는 몰라도, 이지현 씨는 근형이와 어떻게든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근형이를 도와주려는 사람은 많을수록 좋아.’
어쨌거나 이 여자도 근형이를 돕고 싶다는 순수한 의도가 보였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이지현 씨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굳이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셔도 될겁니다. 한 번 마음의 문을 열었으니, 근형이는 이제부터 차차 나아져 갈 테니까요.”
-정말… 그럴까요?
“네. 장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내 말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지현 씨는 다시 기운을 되찾으며 말했다.
-어쨌거나 근형이랑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를 알려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별 도움이 안 된 것 같은데요.”
-그건 맞지만, 어쨌든요. 그럼 전 바빠서 이만 전화를 끊을게요. 아, 그리고 이 번호는 저장해도 소용없어요. 매니저 폰이거든요.
“저장 안 합니다.”
그렇게 전화가 끊기고,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30분이 지나버렸네.’
달리 말하면, 내가 정한 휴식 시간이 앞으로 30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얼른 돌아다니자.’
나는 눈에 보이는 매장은 족족 방문하며 아이쇼핑을 즐겼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옷이나 물건이 있으면, 하나씩 구매하기도 했다.
‘역시 재밌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열심히 돌아다니며 구경하던 나는, 전자제품 판매장 앞을 지나게 되었다.
‘오…! TV 화면이 굉장히 크네!’
100인치의 대형 화면에는 여러 가지 광고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괜찮네. 나중에 이사 가게 되면, 하나 사야겠어.’
그렇게 한참 TV를 구경하던 그때, 대형 화면에 익숙한 얼굴이 떠올랐다.
“…어?”
그것은 조금 전 통화했던 이지현의 얼굴이었다. 화면 속 그녀는 일성 전자의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도발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사람이 왜…’
나는 그제야, 이지현이 그토록 자신을 모르겠냐는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검색해보자.’
나는 인터넷에 이지현을 검색해보았다.
‘…배우?’
이지현은 아주 유명한 배우였다. 얼마 전엔 넷플리스에서 대박 난 한국 드라마 문어 게임에도 출연했고, 외국 히어로 영화에도 출연하여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여자였다.
‘그러니 왜 못 알아보냐고 반응할 만하지.’
나는 이지현에 대해 조금 더 검색해보았다.
‘출연했던 작품이 꽤 많네.’
아역부터 활동했던 그녀는 나이에 비해 연기 경험이 많은 배우였다. 그런 그녀가 출연했던 작품 중엔, 어릴 적에 내가 가끔 보던 드라마도 있었다.
‘아, 이 사극에 나온 아역이 이지현 씨였구나.’
그렇게 스크롤을 올리며 그녀가 나온 작품을 살피던 중, 나는 어느 하나의 작품에 손가락을 멈칫했다.
‘피아노의 꿈?’
피아노라는 제목에 이끌린 나는 곧장 영화 줄거리를 읽었다.
피아니스트의 꿈은 사고로 손을 다쳐 좌절한 천재 피아니스트가 지하실에 봉인된 피아노를 발견하게 되며, 다시 피아니스트의 꿈을 이루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였다.
‘지하실?’
지하실과 피아노. 마치 지금의 곤란한 내 상황에 딱 맞춘 듯한 두 키워드에, 나는 홀린 듯이 영화 속 이미지를 검색했다.
그리고.
‘…이건?’
떠오른 이미지엔 굉장히 영롱한 모습의 수제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