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34
34화 행운의 피아노 (2)
사진 속 유려한 그랜드 피아노의 모습에 나는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피아노의 몸통은 매끈하게 마감된, 멋지고 진한 검은색이었으며, 부드러운 곡선의 우아한 다리가 매우 아름답게 느껴졌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른 그랜드 피아노와는 완전히 달라 보여.’
그것은 당연했다. 사진 속 피아노는 여느 브랜드의 것이 아닌, 수제로 만든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사진 속 피아노의 모습을 계속 보고 있자니, 어떤 이미지 하나가 생각났다.
‘어릴 때, TV에서 보았던 피아니스트가 연주했던 피아노랑 닮았어.’
어렸던 내가 잠시나마 피아니스트의 꿈을 꾸게 해주었던, 바로 그 장면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피아노의 매력에 강한 끌림을 받았다. 마치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굉장한 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과 같다랄까.
‘왠지, 이 피아노를 소유하면 앞으로의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저 사진이 실제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느냐는 것.’
영화의 등장하는 장면이었기에, 여러 보정이 들어갔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정말로 저 피아노의 매력이 대단한 걸까.
그것은 영화 속 등장인물이었던 이지현 씨라면,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확인해보자.’
조용한 장소에서 다시 이지현 씨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나는 주차장에 세워둔 벤츠로 돌아왔다.
뚜르르르-
-여보세요.
“이지현 씨, 매니저 되십니까?”
-그런데요? 누구시죠?
나는 매니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이지현 씨와 통화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다행히 이지현 씨가 언급은 했었는지, 매니저는 나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였다.
-지금 잠시 자리를 비우셔서, 바로 전달해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럼 얼마나 있으면, 통화가 가능할까요?”
-한… 30분쯤이면 될 것 같습니다.
통화가 종료되고, 나는 자동차 안에서 다시 전화가 걸려오길 기다렸다.
그렇게 30분이 지나고, 정확히 15분을 더 기다렸을 때. 이지현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통화를 종료하고 얼마 안 지난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에요?
“물어볼 게 있어서요.”
나는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그쪽이… 아니, 그러고 보니 당신 이름이 뭐죠?
“윤현민입니다.”
-그래요, 윤현민 씨. 그러니까 윤현민 씨는 그 영화의 그랜드 피아노가 실제로 봤을 때도 아름다웠는지를 묻는 거죠?
“네, 맞습니다.”
그것이 연출 때문에 프로그램의 보정을 받은 모습이라면, 나는 바로 통화를 종료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만약, 그 사진이 어떠한 보정도 없는 실제의 모습이라면, 나는 그 피아노를 구할 수 있는 경로를 꼭 알고 싶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지현 씨는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네, 그 피아노는 확실히 아름다웠죠. 촬영장의 모두가 감탄했을 정도니까요.
“혹시, 그 피아노를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알고 계시나요?”
-대충은요. 그게 당시 촬영장에서 꽤 유명한 사건이었는데, 감독님이 어떤 피아노에 꽂혀서, 그 피아노를 만든 장인을 찾아 겨우 구해왔다고 들었어요.
그 말에 나는 약간의 기대감을 안고 물었다.
“혹시 그 장인의 연락처를 알아낼 방법이 없겠습니까?”
“음….”
이지현 씨는 고민하는 중인지, 잠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네, 아마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네요. 당시에 장인과 접촉했던 미술팀 중 한 명이 저랑 절친이거든요. 걔한테 물어보면 아마 알지도 몰라요.
“…그럼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나는 조금 미안했다.
보육원에서 잠깐 마주친,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할 만한 부탁은 아녔으니까.
하지만 이지현 씨는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네, 한 번 알아볼게요.
“…감사합니다.”
-뭘요. 윤현민 씨도 갑작스러운 제 전화를 받아서 근형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잖아요. 이런 간단한 부탁쯤은 들어드려야죠.
“별 도움도 안 되었잖습니까.”
-그건 그런데, 윤현민 씨에게 미안한 것도 있으니까요.
“미안한 거라니요?”
-아까 제가 좀 무례하게 말한 것 같아서요. 이건 매니저 폰이니 번호 저장해도 소용없다고 말했던 거요. 제가 예전에 번호가 노출되서 큰 곤욕을 치뤘던 적이 있거든요. 그때 이후로 좀 예민해져서… 어쨌거나 미안했어요.
그에 대해선 별생각이 없었지만, 미안함이 잔뜩 묻어있는 이지현 씨의 목소리에. 나는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럼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통화가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지현 씨가 보낸 문자를 받을 수 있었다.
[010-5XXX-XXXX]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 428 낙원상가 2층 아우레시아 칸타빌레.] [이름은 성윤복 씨, 나이는 57세.] [실력은 최고인데 성격이 상당히 이상해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 일이나 맡지 않는다고 하네요.] [미술팀 친구가 팁을 알려줬는데, 당시에 성윤복 씨를 설득하러 갔을 때. 선물로 가져간 발렌타인 21년산이 상당히 도움 되었다고 해요.] [상당한 애주가라고 하나 봐요.] [또, 바둑을 상당히 좋아하셔서 같이 몇 판 두면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라고 하네요.]‘…직접 설득해야 한다고?’
그냥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는 골치가 아팠다.
‘귀찮은데.’
하지만 내가 바라는 가게의 모습을 위해선 그 장인이 꼭 필요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뚜루루-
일단 이지현 씨가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하지만 신호음만 갈 뿐, 장인은 전화를 받질 않았다.
‘그냥 찾아가 보자.’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이 지나기 전에 장인을 만나 설득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가든식스의 백화점에서 고급 양주 한 병을 구매하여, 곧장 낙원상가로 향했다.
그리고 이때의 나는, 그 장인의 피아노 덕에 커다란 행운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
“우와! 엄마! 저기, 저기!”
8살짜리 여자아이가 엄마의 손을 이끌며 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피아노가 어엄청 커요!”
여자아이는 생전 처음 보는 크기의 피아노들을 보곤 눈을 반짝였다.
“하은아, 이건 그랜드 피아노라는 거야.”
“그랜드 피아노? 그게 뭐예요?”
“음… 쉽게 설명해주자면, 가장 좋은 피아노를 말하는 거야.”
“가장 좋은 피아노? 그럼 얘가 피아노의 왕이에요?”
“뭐어? 호호호! 우리 딸 표현이 참 귀엽네.”
“헤헤.”
하은이라 불린 여자아이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피아노를 가리키며 물었다.
“나 이거 연주해봐도 돼요?”
“그럼! 되고말고. 얼마 전에 피아노 학원에서 연습한 거 있지? 그거 한번 쳐볼래?”
“바이엘이요? 네!”
그렇게 신이 난 하은이가 피아노에 손을 올리려던 순간이었다.
“하아아암… 또 불청객들이 왔군. 꼬마야, 고작 바이엘 따위나 치면서 내 피아노에 손을 대려는 거냐?”
가게 안에서 들려오는 불쾌한 목소리에, 깜짝 놀란 하은이는 피아노에서 화들짝 떨어졌다.
그러자 하은이의 엄마는 하은이를 자신의 품에 끌어안으며 경계심 어린 눈으로 가게 안을 살폈다.
터벅터벅.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과 언제 감았는지 모르는 떡진 머리의 남성이, 슬리퍼를 질질 끌며 걸어 나왔다.
“뭐야? 손님이야?”
“누, 누구세요?”
“나? 가게 주인.”
하은이의 엄마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서울역에서 몇 년 굴렀을 것 같은 남성의 저 몰골을 본다면. 누구라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 피아노 살 거야?”
“네?”
“방금 만지려고 했던 피아노, 살 거냐고.”
남성의 물음에 하은이의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잘됐네.”
뭐가 잘됐다는 것일까?
하은이의 엄마는 궁금했지만, 왠지 모르게 무서워서 선뜻 물어볼 수는 없었다.
“어차피 사고 싶다고 했더라도, 팔 생각 없었거든. 내 자식 같은 피아노를 코찔찔이에게 맡길 수는 없으니까.”
“그, 그렇군요.”
“뭐, 술이라도 잔뜩 사주면 또 모를까.”
“네, 네?”
“아하아아암… 졸립구만.”
남성은 튀어나온 배를 벅벅 긁으며, 늘어지게 하품을 해대었다.
“뭐해?”
“예…”
“아직도 안 가고 뭐 하고 있냐고.”
명백한 축객령에 여성은 자신의 딸을 데리고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갔다.
“쯧쯧.”
혀를 찬 남성은, 가게 앞에 놓인, 살짝 기울어진 안내판을 똑바로 세웠다.
[만지지 말고, 눈으로만 보세요.]“…하여간, 기본이 안 되어 있어.”
“이봐, 성 씨! 또 손님을 내쫓은 거야?”
가게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남성, 아니 성윤복은 인상을 찌푸렸다.
“손님은 누가 손님이야! 예의도 없는 것들이.”
“예의는 무슨.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손님은 왕이야. 그러니까 그런 예의는 존재하지 않을걸?”
“나 같은 장인을 만나러 오는데, 성의는 보여야 할 것 아니야! 그런데 그냥 동네 구멍가게에 들리는 것 같은 태도라니!”
그 말에 옆 가게 김 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니까 성 씨.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글러 먹었다니깐. 막말로 성 씨가 그렇게 유명한 장인은 아니잖나.”
“왜 유명하지 않아?! 김 씨, 자네 몰라? 내가 옛날에 유명 영화에 나오는 피아노를 만든 사람이 바로 나라고!”
영화라는 말에 옆 가게 김 씨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몸서리를 쳤다.
“또또 그 소리! 대체 언제까지 과거에 사로잡혀 있을 거야!”
“그뿐인 줄 알아? 내가 독일 페르슈타인에 있었을 때는…!”
“알았네. 알았으니까 들어가서 바둑이나 마저 두자고.”
옆 가게 김 씨의 만류에도 성윤복은 자랑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내가 독일에선 말이야! 아주 잘나가는 피아노 회사에서 찾아와 나를 모셔가려고 아주 비싼 술까지 들고 찾아왔었어…!”
“아이고, 또 그 이야기. 귀에 딱지가 앉겠네.”
“자네, 그 세상 귀찮다는 표정은 뭐야? 설마, 내가 지금 거짓말하는 것으로 보여?”
“…솔직히 증거가 없잖나. 게다가 지금 자네 꼴을 봐. 이 꼬라지를 하고 다니는데 내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
“진짜라니까!”
“아니, 그럼 내가 믿을 수 있게. 뭐라도 증거를 보여달라니까?”
그렇게 성윤복이 답답한 가슴을 두드렸을 때였다.
딸랑딸랑.
추리닝 복장의 한 남성이 가게에 들어와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러다 김 씨와 함께 있는 성윤복을 발견하곤 정확히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혹시, 성윤복 장인님이신가요?”
“…그런데?”
“아! 제가 잘 찾아왔네요. 의뢰를 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불쑥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작은 성의입니다.”
성윤복은 남성이 내민 쇼핑백을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술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발렌타인 30년산으로 가져와 봤는데, 좋아하실지 모르겠네요.”
간만에 받는 성의라, 성윤복은 얼떨떨했지만.
“발렌타인 30년산?! 21년산이 아니라?!”
놀라서 외치는 김 씨의 벙찐 얼굴을 본 성윤복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음! 이거지!’
성윤복은 방금 들어온 손님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