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35
35화 행운의 피아노 (3)
‘30년 산으로 사 오길 잘했네.’
윤현민은 백화점에서 이지현 씨가 조언해준 대로 발렌타인 21년 산을 사려 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딱 21년 산만 매진되어버린 바람에, 어쩔 수 없이 30년 산을 사 온 건데.’
그 덕에 성윤복 씨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었다.
“김 씨! 봤나? 내가 이 정도라니까.”
“아니, 정말이야? 이봐, 젊은 친구. 진짜로 성 씨를 존경해서 일부러 찾아온 거야??”
“네, 저는 꼭 성윤복 장인님이 만드신 피아노를 꼭 가지고 싶었거든요.”
그 말에 한껏 콧대가 높아진 성윤복 씨는, 기분 좋게 양주를 홀짝이며 웃었다.
“크하하! 봤지? 봤지?”
“이거야 원. 눈앞에서 목격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고….”
“거봐! 내가 이 정도라니까! 흐흐흐!”
한껏 콧대가 높아진 성윤복 씨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윤현민에게 말했다.
“그래, 젊은 친구. 피아노가 필요하다고 했지? 매장을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으면 가져가도록 해.”
“아, 저는 주문 제작을 부탁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주문 제작?”
윤현민은 그에게 영화 ‘피아노의 꿈’에서 나온 지하실 그랜드 피아노에 반했으며, 앞으로 개업할 가게에 그 피아노를 꼭 설치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으음…!”
성윤복 씨가 굉장히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한참을 말없이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될 것 같은데?”
당연히 긍정적인 대답이 나올 줄 알았던 윤현민은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째서요?”
“최근에 열심히 피아노를 만들었거든. 그래서 지금은 휴식 기간이야. 같이 피아노 만드는 놈들도 다 휴가를 갔기도 하고. 그러니 저기, 진열된 녀석들을 가져가든가. 아니면, 나중에 다시 오든지 해.”
“나중이면 얼마나요?”
“한… 두 달 후 쯤?”
‘이러면 안 되는데….’
한 달도 늦는데, 두 달은 안 될 말이었다.
“성윤복 장인님, 제 말을 조금 더 들어주세요.”
윤현민은 성윤복 씨를 계속해서 설득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히 거절이었다.
“그만. 조금 전에 말한 대로, 매장을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아이를 골라 가든가 아니면 이만 돌아가든가 해. 어이, 김 씨. 바둑이나 마저 두러 가지.”
성윤복은 그 말을 끝으로 옆 가게 김 씨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홀로 남은 윤현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다른 피아노를 알아볼까.’
윤현민은 잠시 고민해보았지만, 역시 그 사진 속 피아노가 너무 가지고 싶었다.
그 그랜드 피아노에 앉아 연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면, 심장이 계속 두근거렸다.
‘어떻게든 설득해야 해.’
윤현민은 서둘러 성윤복 씨를 따라, 가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다시 바둑을 두기 시작한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성윤복 씨는 바둑을 상당히 좋아한다고 이지현 씨가 그랬었지.’
딱.
“그런데 새로 안 둬도 괜찮겠어? 아까 손님이 오는 바람에 흐름이 끊겼잖아?”
“됐어. 잠깐 나갔다 왔다고, 가만히 있는 돌이 움직이나? 그냥 이대로 해!”
“크크! 지금 자기가 이기고 있다고, 괜찮다고 말하는 거지? 그치?”
“아니, 내가 그런 몰염치한 사람으로 보여?!”
“전에는 그랬었잖아.”
“그땐 그때고! 지금은 다르지!”
“그래? 그럼 딴소리하기 없기야?”
딱.
바둑판의 형세가 바뀐 것은 그때부터였다.
“어…어… 이게 왜 이러지?”
순식간에 성윤복 씨의 흑돌이 백돌에게 완전히 잡아먹히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크크…! 이거 내기바둑이었던 거 잊지 않았겠지? 3판 2선승으로 내가 자네를 이기면, 우리 손주한테 피아노 한 대 만들어주기로 했잖아. 이번에 자네가 지면, 그 약속 들어줘야 해.”
“크윽. 내 피아노를 그런 코흘리개한테 줄 수는 없어…!”
“그래? 그럼 어디 분발해 보든지.”
성윤복 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영업부에서 일하며, 접대 바둑을 배웠던 윤현민이 보기에도. 흑돌의 역전은 불가능해 보였다.
“어허. 바둑두는 사람 어디 갔나.”
“끄응.”
“방법이 없지? 이만 포기하고 돌을 던져.”
옆 가게 김 씨의 재촉에 성윤복 씨는 다시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그리고 윤현민이 성윤복 씨와 다시 눈이 마주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성윤복 씨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기 위해 윤현민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도 안 가고 뭐 했어? 아, 혹시 마음에 드는 피아노를 찾았나?”
“아뇨,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가게에서 사용할 것이라서요. 그래서 저는 꼭 성윤복 장인님의 손이 필요합니다.”
“그래?”
그런 내 말에 성윤복 씨가 바둑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여기 이거 역전할 수 있으면 내가 다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도록 하지. 김 씨, 오늘은 훈수 좀 받아도 괜찮지?”
훈수를 받아도 절대 역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옆 가게 김 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훈수를 허락해주었다.
“뭐, 그러던가.”
한편, 성윤복은 자신의 순발력에 감탄했다.
‘안 그래도 얻어먹은 술이 있어서, 어떻게 쫓아내나 곤란했는데 마침 잘 되었어.’
이왕 지게 된 내기 판. 이렇게라도 써먹는 것이 이득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요.”
“…뭐가?”
“솔직히 이기기 힘든 판이잖습니까. 이걸 역전하게 해드리면, 의뢰를 받아주시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요.”
윤현민은 나름대로 돌려서 항의한 것이었으나, 그런 불만을 받아 줄 성윤복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흔쾌히 윤현민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래? 그럼 내가 뭘 해줄까. 음… 그래, 내가 의뢰를 받아들이게 되면, 가격도 상당히 저렴하게 해주지.”
“어떻게 저렴하게요?”
“음… 수작업에 따른 프리미엄 비용을 많이 깎아주도록 하지. 어때?”
“좋습니다.”
성윤복에게 확답을 들은 윤현민은 다시 한번 바둑판을 들여다보며 고민에 잠겼다.
‘…….’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역시나 결론은 하나였다.
‘역전은 불가능해.’
이 정도로 밀린 형세를 극복하는 것은 전설의 프로바둑기사가 와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어쩔 수 없나. 일단, 이 판을 마무리하고 다시 설득해볼 수밖에.’
그렇게 윤현민은 흑돌을 집어, 아무 곳에 놓았다.
“오! 드디어 게임이 끝나는군. 보자아아… 그럼 어디 내 승리를 선언해 볼…. 음?”
옆 가게 김 씨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김 씨의 반응에 완전히 포기하고 있던 성윤복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그래?”
“아니, 이게… 어떻게…”
마치 고장 나 버린 듯한 로봇과도 같은 반응에 성윤복은 바둑판을 들여다보았다.
“어?”
그리고 성윤복도 옆 가게 김 씨와 같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고, 곧이어 함성을 질렀다.
“ㅇ… 와하하! 살았어! 살았다고!”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성윤복의 반응에 윤현민 또한 바둑판을 들여다보았다.
‘형세가… 끊겼어?’
윤현민이 아무렇게나 두었던 돌 덕분에 죽어가던 흑돌들이 살아났고, 오히려 반격의 기회를 잡게 되었다. 그야말로 신의 한 수라 할만했다.
딱.
“김 씨! 그럼 다시 시작해 보자고!”
그렇게 잠시 후.
내기바둑은 흑돌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
“다시 설명해봐. 수제로 그랜드 피아노를 제작하려면 여러 가지를 잘 고려해야 하니까.”
나는 성윤복 씨에게 정확한 가게의 크기와 위치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가게의 모습 등을 설명하였다.
그것을 모두 들은 성윤복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따라와.”
나는 서둘러 성윤복 씨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잠시 후, 우리는 낙원상가 근처의 어느 창고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기다려 봐.”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낸 성윤복 씨가 창고의 거대한 문을 열었다.
‘…와우.’
거대한 창고에는 그랜드 피아노를 구성하는 수많은 파츠들이 종류별로 미리 만들어져, 보관대에 진열되어 있었고. 창고의 한쪽 구석에는 완성된 그랜드 피아노가 색깔과 크기별로 나누어져 일렬로 늘어져 있었다.
“여기가 내 작업실이야. 나는 이곳에서 가끔 내킬 때, 마음 맞는 놈들하고 피아노를 만들곤 하지.”
“그렇… 군요….”
나는 그랜드 피아노들의 영롱한 자태에 넋이 나갔다.
성윤복 씨의 피아노는 여느 유명한 브랜드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이미 바라보고 있는데도 자꾸만 더 시선을 끄는 강력한 마성의 매력이 있다고 할까.
‘공장에서 늘 같은 모양으로 찍어내는 양산품과는 질이 달라.’
고급 소재를 쓴듯한 건반은 자꾸만 건드리고 싶은 충동을 일게 했으며,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어 낸 피아노의 몸체는 개성이 넘쳐, 자꾸만 시선을 이끄는 매력이 있었다.
그러면서 수제 특유의 깔끔하지 않은 마감처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또한 직접 깎은 피아노 몸체의 유려한 곡선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뭐해? 얼른 가서 연주해 봐.”
그 말에 나는 아까부터 내 시선을 가장 많이 끌었던 피아노의 앞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따라라라-
내 손길을 따라 아름다운 음율이 창고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일반 피아노와는 달라.’
더욱 웅장했고, 더욱 화려했으며, 더욱 아름다웠다.
태어나 처음으로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하게 된 나는 크게 감동했다.
어릴 적, TV에 나온 피아니스트가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에 얼마나 심장이 두근거렸던가.
‘그날 이후, 나는 종종 사람들의 앞에서 커다란 피아노를 연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었지.’
그러나 어른이 된 나는, 현실에 짓눌려 상상하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이 시작되었고, 재미없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야.’
나는 다시 한번 꿈에 도전할 기회가 생겨났다. 내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이룰 것이다.
‘수입이 어떻고, 효율이 어떤지는 생각하지 말자. 돈이야 하고 싶은 대로 즐기다 보면, 알아서 모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즐겁게 건반을 두드렸다.
따라라라-
“오른손잡이, 앉았을 때, 허리가 10도 정도 틀어져 있고, 연주 시 습관으로는….”
근처에서 내 연주를 듣고 있는 성윤복 씨는 나를 관찰하며 계속 무언가를 메모장에 적어나가고 있었다.
아마도 성윤복 씨는 지금 적어나가는 정보를 토대로 내게 딱 맞는 피아노를 제작해줄 생각인 듯 보였다.
‘나만의 피아노라니.’
이 세상에 오로지 하나뿐인 피아노가 생긴다는 생각에, 나는 기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고. 그것은 내 연주로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따다다 따라~
더욱 경쾌하고, 행복한 연주.
열 개의 손가락이 88개의 건반 위에서 춤을 즐겁게 추었다.
‘행복하다.’
나는 상상했다.
배불리 점심을 먹고, 간단히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손님들의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내 모습을.
‘연주가 시작되면 손님들은 이 아름다운 피아노의 음색에 빠져들기 시작하겠지. 그리고 커피를 마시는 것도 잊은 채, 내 연주를 듣는 거야. 그리고….’
연주가 마무리되었을 때. 내 연주를 감상하던 손님들의 박수를 받는다면.
‘정말 짜릿할 것 같다!’
그런 낭만을 떠올린 나는, 더욱 신나게 연주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다 단.
연주를 마무리 내가 건반에서 손을 떼자, 성윤복 씨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짝짝짝짝!
“생각보다 잘 치는군. 피아노를 만들어 줄 보람이 있겠어.”
“감사합니다.”
“그럼, 나중에 다시 일정 조율을 해보지. 가게에서 내가 작업할 공간도 좀 보고. 아, 아직 소 무대가 설치되지 않았다고 했었나?”
“예.”
“그럼 소 무대 설치가 완료되면, 내게 다시 연락해. 그때까지 나는 먼저 할 수 있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되려는 찰나, 성윤복 씨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내게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혹시 박근화라는 사람을 아나?”
“…그게 누구인데요?”
“…하긴, 지하에 있는 가게에 설치한다고 했으니. 그놈이 보낸 것은 아니겠군.”
나는 성윤복 씨의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뭐, 조사해보면 알겠지. 아무튼 다음에 보자고.”
성윤복 씨와 계약을 마무리한 나는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당장, 소 무대를 설치해 줄 괜찮은 인테리어 업자를 찾아봐야겠어. 그래야 조금이라도 빨리 내 그랜드 피아노를 받아볼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마음먹은 다음 날. 다시 한번 이지현 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장소 협찬을 해달라고요?”
-네, 대신 소 무대 설치는 저희가 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