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44
44화 LA 관광 (1)
아까의 일들을 이야기해주자, 루카스 씨는 같은 미국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며 탄식했다.
“그런 시대착오적인 놈들은 미국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던 루카스 씨는 인종차별을 당한 당사자인 내게, 미국인을 대표해 뭔가 보상을 해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항공기 내에선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었다.
“미스터 윤, 언젠가 뉴욕에 올 일이 있다면 저를 찾아오시죠. 제가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뒷면에 개인비서의 연락처를 적어, 다시 명함을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이후, 나는 그와 여러 가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나는 그가 왜 한국을 방문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저는 대중음악을 사랑합니다. 클럽에서 직접 디제잉을 할 정도죠. 특히, 요즘 한창 빠져있는 밴드 그룹이 있는데. 그 밴드가 최근 한국의 작은 카페에서 공연했다더군요.”
나는 작은 카페라는 말에 멈칫했다.
“…그런데요?”
“요즘 가장 핫한 밴드가 그 좁은 무대 위에서 과연 어떤 공연을 보여주었을지, 저는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나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생각했다.
‘이거, 우리 가게 이야기는 아니겠지?’
그리고 이어지는 루카스 씨의 말에, 나는 하마터면 사레가 들릴 뻔했다.
“그런데 그 밴드가 웬 동양인 남성과 함께 공연했다는 소문이 들려오더군요.”
그 공연이 너무나 보고 싶었던 루카스 씨는, 한국에서 그 공연의 영상 데이터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한국에 직접 왔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에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건 직접 오실 필요 없이, 비서를 시키면 되지 않나요?”
“하하. 그건 제 오랜 습관입니다. 저는 뭐든 직접 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마침 휴가 기간이기도 했고요.”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는 취미생활에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그 영상은 다 보신 건가요?”
“네. 그런데 앞부분만 확인했습니다. 나머지는 집에서 대형화면으로 영접… 아니, 감상할 생각입니다.”
“…….”
뭘까.
왜 세계적인 투자은행의 CEO에게서 한국의 아이돌 덕후의 향기가 나는 것일까.
‘어쨌든, 다행히 내가 나오는 부분은 보지 못한 것 같네. 괜히 알게 되면 어색한 상황이 생길 것 같으니까 굳이 밝히지는 말자.’
어차피 나중에 영상을 보게 되면, 알게 될 일이었다.
그렇게 그와 이야기를 한창 나누던 도중, 우리에게 승무원이 다가와 물었다.
“기내식 준비해드릴까요?”
시간을 확인해보니 벌써 저녁 8시였다.
“네,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메인요리를 선택하셔야 하는데, 한식과 스테이크 그리고 생선요리가 있습니다.”
“스테이크로 할게요. 와인은 페리에 주에 벨에포크 로제로 주세요.”
육류엔 레드 와인이 어울렸지만, 알게 뭔가. 나는 지금 스파클링 와인이 마시고 싶었다.
그렇게 잠시 후, 하나씩 등장하는 기내식에 나는 감탄했다.
‘이게 퍼스트 클래스인가…!’
에피타이저로 나온 관자 요리가 일품이었다. 그 쫄깃한 식감 사이에 느껴지는 버터의 풍미가 너무 좋았다.
또 뒤이어 나온 비싼 캐비어가 들어간 까나페도 예술이었다. 겨우 3개밖에 없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트러플이 들어간 스프와 샐러드는 생각보다 평범했지만, 이후에 나온 딸기 셔벗이 굉장히 맛이 있었다.
그리고 메인인 스테이크는 두말할 필요가 없이 최고로 맛있었다. 다만, 나는 식사를 마치고 이 선택을 조금 후회했는데. 옆좌석의 루카스 씨가 주문한 생선요리가 더 맛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와 눈이 마주친 루카스 씨가 와인잔을 들어 올렸다.
“미스터 윤. 건배할까요?”
“좋죠.”
치어스.
조용한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안.
와인잔이 부딪히는 맑은소리와 함께, 꿈같은 시간이 흐른다.
‘이게 인생이지.’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를 만끽하며 나는 그날 하루를 마무리했다.
***
총 14시간의 비행 후. 나는 마침내 LA에 도착했다.
“그럼 또 인연이 되길 바랍니다. 여행, 재밌게 즐기세요.”
루카스 씨와 헤어지고, 나는 입국 절차를 위해 퍼스트 클래스 전용 통로를 걸었다.
“LA에 방문한 목적이 무엇인가요?”
“관광입니다.”
입국심사자는 내 여권과 항공권을 유심히 보곤, 이내 도장을 찍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그렇게 밖으로 나오자마자 펼쳐진 광경은 너무나도 생경했다.
‘온통 외국인들 밖에 없어…! 아니, 이 경우엔 내가 외국인인 건가?’
다양한 머리색과 피부색의 사람들이 주위 곳곳에 보이는 낯선 풍경에, 나는 비로소 내가 외국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두근두근.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보다 더 심장이 두근거렸다.
‘첫 해외여행, 시작해보자.’
그렇게 내가 첫 해외여행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저 멀리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아일라의 모습이 보였다.
“현민! 여기야!”
나는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다른 세 사람은?”
“셋 다 바쁜 일이 있어서 못 온대. 그래서 미안하다고 전해달래.”
미안할 것까지야.
“시간이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나저나 용케 마중을 나왔네? 이른 시간이라 어쩌면 못 올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는데.”
그런 내 말에 아일라가 과장되게 힘든 척을 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아침 8시에 도착한다길래 새벽 6시부터 일어나 준비하고, 하필이면 또 출근 시간이랑 겹쳐서 도로가 얼마나 막힌 줄 알아?”
말과는 다르게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아마도 바라는 게 있는 눈치였다.
“그래, 내가 뭘 해줄까?”
“한국에 이런 속담이 있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너는 기내식을 먹었을 테니, 괜찮겠지만 나는 급하게 나오느라 아침을 못 먹었단 말야.”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틀렸어. 나는 현지 음식을 먹기 위해, 아침 기내식을 먹지 않았어. 그러니까.”
꼬르륵.
“밥부터 먹자.”
“예스!”
그런 나의 말에 아일라는 굉장히 좋아하며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자, 이쪽으로 따라와.”
그녀를 나를 레트로 스타일의 튼튼한 자동차의 앞까지 안내해주었다.
“자, 타!”
“이거, 지바겐이잖아?”
“응, 내차 멋있지?”
여성이 몰기엔 다소 험악한 인상의 지바겐이었지만, 의외로 자유분방한 그녀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트렁크 비었으니까, 짐은 뒤에 실어둬.”
“아침은 뭐 먹으려고?”
그러자 아일라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당연히 집밥이지.”
그렇게 나는 아일라의 차에 올라타, 그녀가 안내하는 식당으로 향했고. 말로만 듣던 아메리칸 블랙 퍼스트를 먹어볼 수 있었다.
“아침이니까, 가볍게 먹자고.”
나는 눈앞에 놓인 시럽이 듬뿍 뿌려져, 겹겹이 쌓인 블루베리 팬케이크와 마카로니 샐러드. 그리고 굉장히 두꺼운 두 개의 소시지와 토스트를 보며 생각했다.
‘이게 가볍게 먹는 거라고?’
참고로 방금 설명했던 구성이 1인분이었다.
그렇게 내가 어이없어하는 사이, 아일라는 커피를 홀짝이며 열심히 팬케이크를 썰어 먹고 있었다.
“음…! 이게 얼마 만이야! 그동안 일 때문에 이런 걸 전혀 먹지 못했거든.”
“…여행은 내가 왔는데, 어째 즐기는 건 너인 것 같다?”
아일라는 검지를 좌우로 흔들며 답했다.
“놉! 그럴 리가. 현민, 너의 착각이야.”
그녀는 배만 채우고 여러 관광지를 안내해줄 테니, 얼른 식사를 끝내자는 말을 덧붙였다.
‘…확실히 맛은 있네.’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지만, 본고장의 맛이라 그런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아침은 역시 한식이 최고인 것 같아. 이건 달아도 너무 달잖아.’
그렇게 짧은 아침 식사가 끝나고, 나는 기대감 가득한 목소리로 아일라에게 물었다.
“제일 먼저 어디를 가볼 거야?”
“…음.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지. 네가 저녁에는 코리아타운에서 친구를 만난다고 했으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겨우 반나절뿐이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자, 아일라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겨우 반나절로는 LA의 모든 것을 구경할 수 없어. 그러니까, LA하면 떠오르는 가장 핵심적인 것 두 가지만 체험해보는 게 어때?”
LA 하면 떠오르는 것?
“그게 뭔데?”
아일라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건 바로….”
.
.
.
후웅-!
아찔했다.
당장이라도 날아갈 것만 같은 강한 바람이 얼굴을 두드린다.
꺄아아아악!
주위에서 들려오는 난무하는 비명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이게 핵심이라고?’
지상으로부터 38미터의 높이에서 92Km/h의 속도로 떨어지는, 이게?
“으아아아악-!”
꾹 다문 입술 사이에서 결국 비명을 터뜨린, 나는 자꾸만 중력이 사라지는 느낌에 손이 새하얘지도록 안전 바를 움켜쥐었다.
“꺄아-! 현민! 그렇게 안전바만 잡고 있지 말고, 팔을 들어 올려봐! 기분 최고야!!”
두 손을 높이 들라니.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죽더라도 연금복권 당첨금은 다 수령하고 죽어야지.’
그렇게 약 2분의 지옥 체험이 끝나고,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진정하며 열차에서 내렸다.
“재밌지?”
“…너. 관광 안내는 핑계고, 그냥 네가 즐기는 게 맞는 것 같은데?”
그런 내 말에 아일라가 빙긋 웃으며 답했다.
“Smooth seas do not make skillful sailors. 잔잔한 바다에선 능숙한 선장이 탄생할 수 없는 법. 다양한 경험은 중요한 거야, 현민.”
“…그러니까, 네가 즐기려고 나를 여기에 데려온 게 맞다는 거네?”
“빙고! 하지만 여기가 LA의 대표 관광지인 것은 맞아!”
그야 그럴 것이다. 전세계 여행객 중에서 디즈니랜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니까.
“히히! 다음엔 뭘 타볼까?”
“…되도록 덜 무서운 걸로.”
“그럼, 저거 타러 가자!”
아일라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나도 잘 아는 고고학자 캐릭터가 그려진. 모험 롤러코스터의 입구가 있었다.
‘인디아나 존스 어드벤처?’
설명을 읽어보니, 이곳은 영화를 모티브로 만든 곳으로. 그냥 가만히 열차에 타고 구경만 하면 되는 비교적 잔잔한 놀이기구였다.
‘이런 거라면, 나쁘지 않지.’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바로, 줄이 길어도 너무 길다는 것.
‘아까 롤러코스터를 탈 때도 그러더니.’
이른 평일 아침인데도, 놀이기구 앞의 줄은 엄청나게 길었다.
‘또 그 긴 줄을 기다리긴 싫은데.’
내가 비록 무서운 놀이기구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왕 디즈니랜드에 왔으니 제대로 즐기고 싶었던 나는. 아까부터 생각하고 있던 그것을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일라, 그거 구매하자.”
“그거? 아, 설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디즈니 맥스 패스가 있어야겠어.”
디즈니 맥스 패스는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원격으로 놀이기구를 예약하는 서비스였다.
“기껏 이 먼 나라에 놀러 왔는데, 줄 선다고 시간을 다 보내고 싶진 않아.”
“탁월한 선택이야. 그런데, 현민. 그 선택을 아까 입장했을 때부터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
“…그땐, 놀이기구 한두 개만 타고 나올 생각이었으니까.”
나는 곧바로 추가 요금을 결제한 뒤, 곧바로 맥스 패스로 놀이기구를 예약했다.
‘90분에 한 번만 예약이 가능하지만… 그래도 모든 놀이기구에 줄을 서는 것보단 이게 나아.’
그렇게 나는 아일라와 함께 인디아나 존스 어드벤처에 탑승했다.
그리고 잠시 뒤.
‘…재밌잖아?’
솔직히 미국까지 왔는데 이런 놀이동산 따위를 구경한다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테마 열차를 타고, 나의 그런 생각은 조금 바뀌었다.
이미 영화로 익숙한 설정의 모험 롤러코스터는, 마치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모험을 떠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규모도 상당히 크고, 무엇보다 주변에 돌아다니는 저 캐릭터들.’
미키마우스, 도널드 덕, 엘사, 베이맥스, 닉과 주디등. 디즈니 만화에서나 볼 수 있던 그들이 이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러한 요소 하나하나가 삶에 지친 사람들을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았다.
게다가.
“현민, 다음에는 뭘 타볼래?”
저런 미인과 함께 놀고 있는데, 무엇을 하던 즐겁지 않을 리가 없었다.
“현민! 이번엔 저거 타러 가자!”
아일라의 손끝이 가리킨 곳에는. 높은 건물에서 떨어져, 급격하게 하강하고 상승하며 회전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라는 이름의 롤러코스터가 있었다.
“…Too many roller coasters….”
“현민? 방금 뭐라고 했어?”
“…아니야.”
이후로 나는 무서운 놀이기구들을 몇 개 더 체험하고 나서야, 늦은 점심을 먹으러 올 수 있었다.
“재밌었지?”
어찌나 용을 썼던지. 나는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섭긴 했는데, 막상 타면 또 재밌긴 했지.’
아마 아일라를 따라 계속 무서운 열차를 탄 덕분에, 적응된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일라, 밥 먹고 어디로 갈 생각이야? 디즈니랜드도 좋지만. 아까 LA의 핵심적인 관광지가 둘이라고 했었잖아.”
나는 마치 닭이 날개를 펼쳤을 때 잡아 튀긴 것같은, 거대한 비주얼의 치킨 윙을 뜯어먹으며 물었다.
“그야 뻔하지. LA 관광하면 당연히 그곳을 안 가볼 수가 없지.”
피융!
입으로 소리를 낸 아일라가 양 손가락을 권총처럼 발사하는 시늉을 했다.
“할리우드. 우린 그곳으로 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