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5
5화 공짜로 아파트가 생겼다
치이익-!
우리는 불판 위에 삼겹살을 올리며, 술잔을 기울였다.
“크으. 이거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고 싶었지만, 녀석은 소고기보다 삼겹살을 더 고집했다.
“더 비싼 거 먹어도 되는데.”
“됐어. 돈도 없는 놈이 뭔 비싼 거 타령이야.”
나 이제 돈 많은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내뱉지는 않았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돈 때문에 틀어지는 일이 허다하다고 들었으니까.
‘가끔 맛있는 거나 사주고, 금전적으로 급할 때는 몰래 도와주면 되겠지.’
녀석은 고기를 뒤집으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한국 삼겹살이 너무나 그리웠단 말이다.”
“미국에는 삼겹살집이 없냐? 요즘엔 한류다 뭐다 해서 많이 생겼다던데.”
“있기야 하지. 정 그리우면 코리아타운에 가도 되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에서 먹는 것만큼의 맛이 안 난단 말이야.”
“하긴. 원조가 최고지.”
“그런 의미에서 한잔 더?”
“좋지.”
짠.
이어서 또 짠.
소주잔이 부딪치는 맑고 청량한 소리가 두어 번 정도 더 들렸을 때, 녀석은 내게 물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왜? 내 근황이 궁금하긴 했었나 봐?”
“그야 당연하지. 그동안 우리 서로 바빠서 연락 못 했잖아.”
“우리가 바쁜 게 아니라 네가 바빴던 거겠지. 너 무슨 비밀 프로젝트 들어간다고 반년 전부터 연락 끊겼었잖아.”
26살.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녀석은 미국으로 건너가 버렸지만, 우리는 종종 연락을 주고받곤 했었다.
하지만 얼마 전, 무슨 프로젝트에 녀석이 참여하게 되면서 한동안 연락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덕분에 녀석은 내가 죽을 뻔했다는 것도 아직 모르는 상태였다.
“말해봐.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4달 전이었어.”
나는 녀석에게 지난 4달간의 일들을 간략하게 말해주었다.
“뭐? 교통사고?! 야! 그런 일이 있으면 메시지라도 남겼어야지!”
“그러려고 했는데, 중요한 프로젝트 중인 너에게 괜히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다.”
“하아…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몸은 어때? 후유증은 없어?”
“입원해있던 4달 중 3달 동안 후유증으로 고생 좀 했지. 그래도 지금은 완벽히 부활했다.”
“…그 개자식은 어디 있어?”
“누구?”
태평한 내 말투에 녀석이 버럭 소리를 질러왔다.
“너 사고 낸 놈! 아니 눈깔이 달렸으면 운전을 똑바로 해야지!”
“아니, 내 잘못이라니까?”
“잘못은 무슨 잘못! 원래 도로에서 난 사고는 무조건 자동차 잘못이야!”
나는 상필이에게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려 했지만, 화가 치밀어 오른 녀석은 내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니, 잠깐. 너 설마 호구처럼 우물쭈물하다가 보상금도 제대로 못 받은 거 아니야? 안 되겠다. 그 자식한테 전화 걸어. 내가 대신 얘기해줄 테니까!”
“전화를 걸긴 뭘 걸어. 어서 먹기나 해라. 고기 식는다.”
“앙뭉틍 넝능 옛낭부텅 창행빠졍서능…!”
“…다 먹고 얘기해라.”
“꿀꺽! 아무튼 너는 옛날부터 착해빠져서는. 맨날 그렇게 손해 보면서 사냐. 이 답답아.”
“글쎄 그런 거 아니래도 그러네. 그리고 구상민 씨 좋은 사람이야.”
“구상민?”
“사고 낸 사람 이름.”
“하! 너 가해자랑 친구까지 먹었어? 내가 돌겠다. 아주.”
“됐어, 나 아무런 문제 없으니까 이제 그만해.”
녀석은 화를 식히듯 연거푸 소주잔을 들이켰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녀석이 진정되는 적당한 타이밍에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그나저나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냐? 프로젝트는 이제 다 마무리한 거야?”
녀석은 눈에 띄게 침울해지기 시작했다.
“왜? 잘 안되었어?”
“…어. 그 프로젝트 완전히 망해 버렸다.”
“망했다고? 왜? 개발이 어려웠어?”
“아니, 개발 자체는 순조로웠는데, 다른 문제가 있었지.”
상필이는 검지와 엄지로 동그란 모양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돈?”
“그래. 이거 개발 비용이 만만찮아서, 회사에서 개발 중지 명령 떨어졌다.”
“아니, 그 구골인데도 돈이 부족하다고?”
“그 정도로 개발에 들어가는 돈이 워낙 많아서 그래. 프로젝트가 완성되어도 수익 나기 힘든 구조라나 뭐라나.”
나는 궁금증이 일었다.
“대체 무슨 프로젝트였는데? 이제는 말해줘도 되지 않아?”
“…안돼. 개발 중지된 프로젝트라도 1년은 비밀 유지를 해야 한다고. 정 궁금하면 나중에 말해줄게.”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섭섭하진 않았다. 녀석이 이런 부분에선 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짠!
이후 몇 번의 술잔을 더 부딪치며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던 중. 취기가 오른 상필이가 큰 소리를 내었다.
“아! 복권 당첨되고 싶다!”
움찔.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나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물었다.
“갑자기 웬 복권? 연봉도 굉장한 놈이?”
“일하기 싫단 말이다! 불로소득으로 먹고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
“복권 당첨된 운 좋은 놈들은 다 그러고 살겠지? 너무 부럽다!”
‘…상필아, 그 운 좋은 놈이 바로 눈앞에 있다.’
나는 문득 녀석에게 묻고 싶었다.
“만약에 복권에 당첨되면, 제일 먼저 뭘 하고 싶어?”
“나?”
상필이는 진짜 자기가 복권에 당첨이라도 된 것처럼 신나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게임! 남들 출근할 때, 게임 실컷 할 거야! 그리고 매일 비싼 음식도 먹고, 아! 다른 부자들처럼 호화로운 요트도 타봐야지! 예쁜 언니들을 잔뜩 태워서…!”
나는 상필이의 헛소리에 고개를 끄덕여주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괜히 물어봤나.’
통장의 17억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상필이의 이야기를 참고하려 했지만.
‘별로 도움은 되지 않네.’
그렇게 계속해서 떠드는 상필이에게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도 지쳐갈 때쯤. 상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눈치 못 챘어?”
“뭐를?”
“이 자식 이거, 진짜 모르는 얼굴이네. 얌마, 방금 내가 말했던 것 모두 우리가 어릴 때 작성했던 버킷리스트들이잖아.”
버킷리스트?
‘아!’
기억났다. 보육원 시절, 녀석과 나는 TV 속에 나온 부자들을 보고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것들을 적으며 놀았다.
“내 기억이랑 좀 다른데?”
“뭐가?”
“그거 각자 적지 않았냐? 내 버킷리스트에는 요트에 미녀는 없었는데.”
상필이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혹시라도 너 돈 많이 벌면, 요트 사게 만들어서 무임 승차하려고 했는데. 까비.”
이 자식이?
아무튼 상필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잘 알겠다.
‘복권에 당첨되면, 버킷리스트를 이루고 싶다는 거잖아.’
“버킷리스트라… 나쁘지 않을지도.”
“그치? 역시, 요트에 미녀는 부자의 왕도….”
“아니, 그거 말고.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이뤄보는 거. 괜찮을 것 같다고.”
‘이제 나는 17억이 있으니까.’
앞으로 나는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지기 위해, 이 17억의 자본금으로 더 많은 재산을 축적해나갈 것이다.
하지만 돈만 많이 벌고,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지는 것이 진짜 행복한 삶일까?
‘정신적인 가치도 중요해.’
돈은 행복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상필이가 언급한 버킷리스트는 아주 훌륭한 의견이었다.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이루어 나가면, 분명 성취감과 만족감을 모두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게 행복이지.’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버킷리스트를 새로 작성해봐야 하나.’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던 것은 아주 어릴 적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 종이가 지금까지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라고 생각했다.
“네 버킷리스트? 내 노트북에 있는데?”
“…그걸 왜 네가 가지고 있는데? 그것도 디지털화까지 해서.”
“글쎄? 기억이 안 나. 술 먹고 그랬나?”
“…….”
뭐 어쨌거나. 잘된 일이었다.
비록, 어린 시절에 작성한 리스트였지만. 참고는 할 수 있을 테니까.
“회사에서 얻어 준 집에 노트북 있지? 이따 들러서 확인 좀 해보자.”
집에 들르자는 말에 상필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놈의 집 때문에 나 진짜 귀찮게 되었어.”
나는 아까 상필이와 전화로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한 달에 한 번 그 집을 관리해야 한다고 그랬었나?”
“어.”
“그런데 그걸 꼭 네가 해야 하는 거야? 한국에도 구골 지사가 있잖아. 거기 직원이 관리하면 안 되는 거야?”
상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사실 그게 효율적이지. 그런데 그게 좀 힘들게 되었어.”
“어째서?”
“요즘 한국 지사 쪽에서도 어떤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거든. 그래서 그쪽도 많이 바쁜 모양이야. 그런데 나 때문에 집 관리를 부탁해버리면 그 사람들에게 업무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잖아. 아무리 한 달에 한 번만 관리하면 된다지만….”
“…신경이 쓰이겠지.”
상필이는 그 아파트의 보안 카드는 한 달을 넘기는 순간. 굉장히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복구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런 게 또 은근히 스트레스를 많이 주지.’
“게다가 한국 지사 직원들하고는 완전 관계가 없는 집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내가 관리하기로 한 거야. 어차피 그 집을 사용할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그렇구나.”
나는 소주를 들이켜며 별생각 없이 중얼거렸다.
“계속 비어있는 집이라면. 그냥 내가 들어가면 좋을 텐데.”
상필이는 대신 관리해줄 사람이 생기고, 나는 곰팡내 나는 반지하에서 탈출할 수 있으니 서로 윈윈일텐데.
“방금 뭐라고 했어?”
“응? 들었어? 아냐, 그냥 혼잣말. 어차피 안 될 게 뻔하잖아.”
“…….”
“…상필아?”
이상하게도 상필이는 제 턱을 어루만지며 깊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어쩌면 가능할지도?”
“뭐?”
“나 잠시만 통화 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상필이는 허둥대며 가게 밖으로 나가 전화 통화를 시작했다.
잠시 후 돌아온 상필이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피어있었다.
“현민아. 이 형님에게 큰절 한 번 해라.”
“…뜬금없이 웬 헛소리야. 취했냐?”
“그 집 말야. 구골에서 나 쓰라고 마련해준 아파트.”
“어, 그게 왜.”
“거기 너 써라.”
“…뭐?”
겨우 소주 1병에 취하기라도 한 걸까. 나는 눈을 끔뻑이며 녀석에게 되물었다.
“아파트? 무슨 아파트?”
“회사에다 물어봤어. 어차피 계속 비어있는 집이니까 한국에 있는 가족이 써도 되냐고.”
“…가족?”
“임마, 너랑 나랑은 가족이나 다름없잖냐.”
가족이라는 단어에 순간, 울컥했다. 그리고 동시에 미안했다.
‘복권 당첨된 거 솔직하게 밝히지 못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복권 당첨 사실은 가족 간에도 다툼을 불러들이는 화근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미안한 감정을 잠시 접어둔 채, 순수하게 녀석이 말한 아파트 이야기에 집중했다.
‘이 흐름대로라면, 설마…’
꿀꺽.
나는 침을 크게 삼켰다.
“…그래서?”
“1년간 관리도 해야 하고, 쓸 사람도 나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된대.”
“진짜?!”
“너무 좋아하지는 마라. 회사에서도 1년만 허가해 준 거니까.”
1년 만이라지만, 이게 웬 떡이지 싶었다.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아파트 위치는?”
“잠실, 한강 근처.”
“…내가 지금 너한테 주고 싶은 게 있는데 줘도 될까?”
“해봐.”
나는 주머니에서 손가락 하트를 꺼내 들며 말했다.
“사랑한다, 친구야.”
“네 사랑은 필요 없으니, 이따 집구경 가서 큰절이나 해보아라.”
큰절?
그 정도야 원한다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더한 것도 줄 수 있었다.
‘나중에 돈 많이 불리면, 그때 원하는 것 하나 이뤄주마.’
요트에 미녀만 빼고.
그렇게 다짐하며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럼 저녁 다 먹고 집 구경하러 가자.”
그렇게 한참 뒤, 우리는 아파트를 구경하러 갔고.
‘이, 이게 무슨…’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나는 턱이 빠질 듯, 입을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