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6
6화 나의 버킷리스트
“우와…!”
나는 오늘 많은 집을 구경하였다.
하지만 단언컨대, 여기만큼 마음에 드는 집은 없었다.
“25층 가장 꼭대기 층이라 전망이 좋지?”
녀석의 말 대로, 탁 트인 전망에 보이는 한강의 야경이 너무나 이뻤다.
“뭐, 지내는 데 문제는 없을 거야. 침대, 옷장, 책상, 세탁기 등등. 가구는 다 비치되어있고, 식기도 다 있어. 한 가지 문제라면, 네가 원래 사용하던 물건들은 거의 다 버리고 와야 한다는 거?”
그 정도쯤이야 괜찮았다. 어차피 이사할 때 전부 새로 살 예정이었으니까.
‘곰팡내가 스며든 물건을 이런 좋은 집에 들고 올 수는 없지. 그건 죄악이야.’
비록 내가 얻고 싶었던 30평대의 아파트가 아닌 27평짜리 집이었지만. 한강 주변에 공짜로 살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이 집에는 오늘 구경했던 집들의 장점들이 모두 다 있었다.
“아, 그리고 여기가 좋은 게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더라고. 헬스장, 카페, 수영장이 아파트 안에 있고. 바로 앞에 상가가 있어서 편의점 갔다 오기도 좋아.”
특히, 주변에 필요한 것들이 모두 가까이에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친구야.”
“왜.”
“절 받아라.”
나는 대뜸 녀석에게 큰절을 올리는 시늉을 했다. 물론, 녀석은 거절하지 않았다. 결국, 내 절을 받아내고야 만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냐. 그럼 나는 뭐 좀 가지러 갈 테니, 집 좀 둘러보고 있어라.”
녀석이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천천히 집 안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집이 진짜 깔끔하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아파트여서 그런지, 구조나 디자인 자체가 현대적이었다.
‘진짜 최고야!’
당연한 소리였지만, 곰팡내 가득한 반지하와는 천지 차이였다.
‘앞으로 1년간 내가 여기에서 살게 된단 말이지?’
그것도 월세도 전세도 아니라 관리비만 부담하면 된다니. 정말이지 꿈만 같았다.
‘냉장고, 세탁기, TV에 가구는 기본이고. 살균기에 식기 세척기까지 있어?’
청소기도 있었다. 그것도 무선에 유선. 심지어 로봇 청소기까지 무려 3대나 있다.
게다가 그 모든 살림이 전부 일성, IG와 같은 브랜드였다.
‘구골 복지가 좋은 거야? 아니면 저 녀석이라 이만큼 대우해 주는 거야?’
잠시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후자인 듯싶었다.
‘아무리 복지가 좋아도, 일개 직원에게 이 정도 편의를 봐준다는 것은. 그만큼 녀석이 없어서는 안 될 인재라는 뜻이겠지.’
누구나 알아주는 글로벌 대기업에서 친구의 가치가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나는 괜스레 뿌듯함을 느꼈다.
‘자식, 그렇게 끈질기게 프로그래밍만 파더니. 성공했구나.’
현실에 타협한 나와 달리, 녀석은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보다시피였다.
‘나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너처럼 성공할 수 있었을까.’
잠시 생각해본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성공했을 리가 없지.’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 모든 일은 운이 7할, 노력이 3할이란 뜻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7할은 지고 들어가지. 운이 더럽게 없었으니까.’
그러므로,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한들. 나는 또다시 현실과 타협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그대로 살아갔다면, 계속해서 불행했을 거야.’
복권에 당첨되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당첨금만 잘 관리하고 날려 먹지 않는다면, 내 인생은 여유를 잃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 상필이 녀석이 돌아왔다.
“받아.”
휙!
나는 회사 생활로 단련된 반사신경으로 날아온 서류를 낚아채었다.
“이게 뭔데?”
“네 버킷리스트. 방금 출력해왔어.”
“오!”
나는 곧장 녀석에게 건네받은 내 버킷리스트를 읽어보았다.
1. 초호화 요트 사기.
2. 슈퍼 모델 미녀들과 요트 여행.
…
아무리 기억이 가물가물하다지만, 내가 이런 것을 적었을 리 없었다.
꾸깃.
나는 곧장 종이를 구겨 버렸다.
그러자 상필이 녀석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까비.”
“장난치지 말고 뒤에 감춘 거 내놔.”
“쳇, 옜다! 재미없는 놈의 재미없는 버킷리스트.”
상필이가 구시렁대든지 말든지, 나는 곧장 내 버킷리스트를 읽어보았다.
1. 내 집 마련(아파트).
…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버킷리스트가 어딘가 익숙했다. 나는 그다음 리스트를 읽어보았다.
2. 내 자동차 가지기(중고 X).
‘나,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지독히도 현실적이었나 보네.’
나는 피식 웃으며 계속 목록들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그중에는.
3. 어깨 펴고 당당해지기 (자신감!).
4. 사교적인 사람 되기 (인사성 밝게!).
30년 동안 바라왔던 나의 모습도 있었으며.
5. 유명한 화가 되기.
6. 여러 사람 앞에서 피아노 연주하고 박수받기.
7. 노래 공연하기.
살기 바빠 포기하고 잊어버렸던 지난 꿈도 있었다.
‘그래, 맞아. 나 예전에 예술 쪽으로 재능이 있었는데.’
한때는 TV 속에 나오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고, 누군가를 위로해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한 꿈들은 모두 이룰 수 없는 허상에 불과했다.
‘…가난했으니까.’
예술은 돈이 많이 든다. 웬만한 중산층 가정도 쉽게 도전할 수 없는데, 일개 보육원 출신의 고아가 꿀 수 있는 꿈이 아니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천재.
개천에서 용이 될 만큼의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랐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 정도의 천재는 아니었다.
‘예술이라… 이제 와서 도전하기에는 많이 늦었지. 하지만 취미 정도라면 지금이라도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예전과 달리, 이제 나도 여유가 있으니까.’
두근두근.
다시 붓을 잡고, 마이크를 잡으며, 피아노 의자에 앉는 상상을 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좋아, 해보자.’
그렇게 조용히 결심한 나는 계속해서 버킷리스트를 읽어나갔다.
‘영국에서 축구 관람하기, 아우토반에서 질주하기?’
그 밖에도 스카이다이빙 하기, 패러글라이딩하기, 빙벽 등반하기, 헬기 운전 배우기 등.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없는 것들도 많이 적혀 있었다.
‘…따로 수정할 필요가 없겠는데?’
오히려 아이이기에 떠올릴 수 있는 발상이 많았다. 나이를 먹은 지금이라면 ‘열기구 타고 하늘 여행’과 같은 것은 당장에 겁을 먹고 지웠을 테니 말이다.
‘…하자.’
버킷리스트를 쭉 읽은 나는 결심했다.
‘여기에 적힌 100가지 버킷리스트를 모두 해보는 거야.’
느낌이 왔다.
이 리스트를 모두 끝내면, 나는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지금까지 나는 늘 쫓기듯 살아왔다. 여유가 없었고, 당장 살아남기에도 급급했다.
그 때문인지 나는 늘 움츠러들어 있었다. 자신감을 키울 시간이 없었고, 노력하지만 언제나 제자리걸음인 삶에 지쳐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커다란 행운이 내게 찾아왔고, 지금까지의 삶을 변화시킬 기회가 생겼다.
그 기회를 이번에는 꼭 붙잡고 싶었다.
‘꼭 이뤄보자.’
내가 마음속으로 다짐하던 그때, 상필이 녀석이 갑자기 헛기침을 해대었다.
“커허음.”
“…”
“커허허으음!”
그 인위적이고 다분히 목적이 있는 액션에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뭐, 왜?”
“버킷리스트 찾느라 고생했더니 목이 마르구나. 콜록콜록.”
다분히 인위적인 기침 소리.
당장 나가서 마실 것 좀 사다 달라는 뜻이었다.
나는 집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기에 매우 귀찮았으나.
‘그래, 공짜 거주지에 앞으로의 목표를 설정하는 데 도움을 줬으니까.’
이 정도는 당연히 해줄 수 있었고. 해줘야 도리다.
“물? 콜라? 사이다?”
“그런 것들 말고, 더 시원한 걸 먹고 싶은데.”
녀석이 입으로 딱! 소리를 내며 소주잔을 들이키는 시늉을 했다. 나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기다려, 소주랑 맥주 사 올게.”
“간단한 안주도 사 오너라!”
“네이, 분부대로 합죠.”
나는 곧바로 아까 아파트로 들어오면서 보았던 편의점으로 향했다.
.
.
.
딸랑딸랑.
“어서 오세요. 행복을 드리는 AU입니다.”
역시 비싼 아파트 단지 내의 편의점이라 그런지, 그 크기가 웬만한 소형 마트 정도는 되어 보였다.
“술은 어디에 있나요?”
“네 번째 진열대를 따라가시면 보이실 겁니다.”
나는 입구에 비치된 장바구니를 하나 들고, 진열대를 따라 걸었다.
아르바이트생이 말한 네 번째 진열대에는 다 늘어진 후드 티를 입은 여자 손님이 과자를 고르고 있었다.
‘맥주랑 땅콩, 오징어 다리, 치즈 육포….’
여자 손님의 장바구니에는 가득 차다 못해 삐져나온 맥주 안주들이 가득했다.
‘맥주에 오징어 다리라. 맛있겠네. 나도 좀 사 가야겠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지나쳤을 때, 여자 손님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왜? 지금? 잠깐 카페 왔어.”
통화 중인 여자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낯이 익은 목소리인데?’
나는 술이 진열된 냉장고의 문을 열며 다시 슬쩍 고개를 돌려 다시 여자 손님이 있는 쪽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응. 아, 밥은 내가 알아서 잘 챙겨 먹는다니까!”
여자는 통화를 이어나가며, 집어 든 새우과자의 칼로리를 확인하며 고민하고 있었다.
‘누구지? 분명 들어 본 목소리인데.’
나는 장바구니에 술을 담으며 목소리의 주인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리고 오징어 다리를 집어 들었을 때, 그녀가 누구인지 생각났다.
‘…아! 설마?’
나는 근처의 과자를 고르는 척하며, 여전히 새우과자의 칼로리를 보며 고민하는 여자의 얼굴을 살폈다.
‘맞네, 한유경 씨.’
한유경 대리.
그녀는 회사에서 단아한 외모와 일 잘하기로 소문난, 그야말로 완벽한 사람이었다.
‘그런 한유경 씨가 다 늘어진 후드티에 신경질적으로 통화를 하며, 편의점 안주를 고르고 있다고?’
이러니 처음에 내가 알아보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이 근처에 사나 보네.’
집 근처도 아닌데 저렇게 편한 복장으로 돌아다닐 리 없었으니까.
‘어쩐지. 한유경 씨가 평소에 입고 다니는 복장을 보면 귀태가 나더라니.’
아무래도 그 소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회사에선 암암리에 한유경 씨가 있는 집 자식이 아닐까 하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로 이런 비싼 동네에 사는 것을 보면, 있는 집 자식이라는 게 가능성이 영 없지는 않아 보였다.
‘아는 체해야 하나?’
평소라면 모른 척 피했을 것이다.
어색하기도 했고, 더럽게 운 나쁜 내가 인기 많은 여직원과 친한 척했다가 어떤 귀찮은 일이 벌어질지 몰랐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이웃 주민이 될지도 모르니까.’
앞으로 1년간은 오며 가며 마주칠 일이 종종 생길 수도 있었다. 그때마다 어색해하며 피해 다닌다?
‘이제는 그렇게 찌질하게 살고 싶지 않아.’
내 통장에 찍혀있는 0의 개수가 몇 개인데, 뭐가 무섭고 두려워서 몸을 사릴까.
‘게다가.’
나는 아까 읽었던 내 버킷리스트를 떠올렸다.
4. 사교적인 사람 되기 (인사성 밝게!).
이제 막 버킷리스트를 이뤄보자고 마음먹어놓고, 막상 버킷리스트와 관련된 상황이 생겼는데 회피할 수는 없었다.
툭.
마침, 계산대로 향하는 한유경 씨의 장바구니에서 새우과자 한 봉지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한유경 씨, 과자 떨어졌습니다.”
나조차 놀랄 정도로, 내 목소리에 자신감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