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64
64화 구미가 당기는 제안
이희철 씨와의 이야기가 끝난 후, 나는 곧장 세무서로 향했다.
‘시간 끌 것 없이 취·등록세도 바로 내버리자.’
나는 취·등록세 납부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발급받아 제출하였고, 직원이 안내해주는 대로 세금을 납부했다.
“다 되셨습니다.”
직원에게 납부영수증을 건네받은 나는 기분 좋게 세무서에서 나와, 집이랑 가장 가까운 백화점인 고속터미널역 근처의 신미래 백화점으로 향했다.
“이거랑, 이거, 그리고 저거랑 이것도 구매하겠습니다.”
나는 침대와 쇼파, 그리고 냉장고와 주방 용품 등. 집안에 필요한 살림살이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옛날 생각나네.’
처음 가게를 얻었을 때, 각종 접시와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즐겁네, 그때처럼.’
사람들이 왜 쇼핑에 중독되는지 알 것 같았다. 사고 싶은 물건을 구매한다는 행위는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기에, 절대 질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특히.
“할부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일시불이요.”
아무리 큰 금액도 무조건 일시불로 긁을 때의 그 쾌감이 좋았다.
‘이게 톱질하는 맛인가…’
내가 내 돈을 소비하는 것뿐이지만,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배송은 어디로 해드릴까요?”
나는 직원이 건네준 종이에 배송지를 적어주었다.
“꼭 이날에 맞춰서 배송해주세요. 일찍 배송하시면 못 받아요.”
집은 비어있었지만, 아직 도배를 하지 못했으므로. 나는 직원에게 도배가 끝난 날짜를 알려주며 신신당부했다.
이후 나는 맨 꼭대기 층에 위치한 카페로 향했다.
쭈욱.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카페인이 몸속에 스며들자, 정신이 점점 맑아져 왔다.
‘필요한 것은 다 샀나?’
나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하나하나 체크해 나갔고. 제일 중요한 한 가지를 못 샀다는 것을 깨달았다.
‘컴퓨터도 한 대 사야지.’
본래 컴퓨터는 조립식으로 맞춰야 가성비가 좋기에, 나는 핸드폰으로 컴퓨터 조립 업체 사이트에 접속하여 각종 옵션을 커스텀하였다.
‘RTX 5090ti, 32GB 램, 인텔 코어 i9 15세대, M.2 NVMe SSD 2Tb….’
32인치의 커브드 모니터까지 대략 800만 원의 예산이 들었지만, 나는 기쁜 마음으로 결제 버튼을 눌렀다.
‘취미생활은 중요하니까.’
컴퓨터 구매에 열을 올리다 보니 어느새 커피잔이 비어버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집으로 향했다.
삑삑삑삑!
띠리리-!
현관문이 열리자, 텅 비어버린 집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광경에 나는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절로 웃음이 나왔다.
‘여기가 이제 내 집이라는 거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앞으로는 이렇게 넓고 쾌적한 집에서 살 수 있다니 말이다.
저벅저벅.
긴 복도를 지나, 거실로 향한 나는 눈 앞에 펼쳐진 한강의 전경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드디어…!’
나의 로망이자, 버킷리스트 1번이었던 한강뷰의 아파트를 손에 넣었다.
‘꿈은 아니겠지?’
손가락으로 볼을 살짝 꼬집어,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나는.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자랑하고 싶다…!’
나는 곧장 상필이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지금 미국은 한밤중이었지만, 나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의 이 벅찬 기분을 누군가에게 풀고 싶었으니 말이다.
-…왜…
잠에 잔뜩 취한 상필이의 모습에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 집 샀다.”
-…어?
“봐봐.”
나는 핸드폰으로 집안 곳곳을 보여주었고, 마무리로 한강의 모습을 비추었다.
-이야… 성공했구나… 축하한다.
상필이는 졸린 눈을 억지로 뜨며 내게 엄지를 척 들어 올려 주었다.
-그런데 너 그거 자랑하려고 연락한 거야?
“어.”
-…이 미친놈이… 지금 몇 신 줄 알아?
“글쎄? 미국시간으로 자정쯤 되지 않았나?”
-야 이 새끼야…! 지금 새벽 4시다! 이 또라…!
뚝.
나는 녀석의 입에서 더 험악한 말이 나오기 전에 전화를 끊어었고, 아예 전원까지 꺼버렸다.
‘미안. 새벽 4시인 거 알고 있었어.’
그래도 어쩌겠나. 당장 자랑할 사람이 너밖에 없었던 것을.
‘덕분에 기분이 더 좋아졌다. 고맙다, 상필아. 나중에 삼겹살 잔뜩 사줄게.’
그렇게 마음속으로 녀석에게 감사 인사를 한 나는, 집안 곳곳의 벽지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역시 색이 많이 바랬네.’
내가 듣기로 이 벽지는, 전전 집주인이 직접 발라둔 것이라 들었다.
‘전전 집주인이 4년 정도 살았다고 했으니까… 적어도 6년은 넘은 낡은 벽지라는 거지.’
그래서 나는 미리 도배업자와 계약했고, 내일모레 도배를 하러 올 것이다.
‘그다음 날에는 입주 청소 의뢰도 맡겼지.’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 사흘은 지나야 이곳으로 이사 올 수 있는 것이었다.
‘딱 사흘만 참자.’
한강뷰가 코앞이었다.
‘…집안에 더 필요한 것은 없나?’
필요한 가구와 가전제품은 거의 다 구매했다.
‘생활용품이야 차차 구매하면 되고….’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더 필요한 물건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는 문득 벽면이 횡 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집이 크니까 가구가 들어와도 벽면에 빈 곳이 많겠는데?’
나는 그런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려 걸어놓을까?’
그러고 보니 예전에 근형이를 설득했을 때 이후로는 그림을 그린 적이 없었다.
‘한동안 너무 바빴지.’
라이브 카페를 차리고, 연주도 하고, 공연도 했으며. 이후로는 패션 회사까지 차렸다.
‘덕분에 처음 목표한 것 중 그림 그리기만 이루지 못하였어.’
내 버킷리스트 중에는 ‘화가가 되기’라는 항목이 있다.
그 꿈을 어느 정도 이루기 위해서 나는 우리 가게에 내가 그린 그림을 걸기로 마음먹었었지만, 그림 그릴 시간이 없어 아직도 실천하지 못하였다.
‘좋아. 이제 어느 정도 여유를 챙길 수 있으니까, 앞으론 틈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려보자.’
그렇게 마음먹은 나는 곧장 가게 사무실로 향했다.
‘여기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미리 도구들을 사 두었지.’
4B연필부터 본격적인 캔버스와 수채화 물감까지. 나는 그것들을 꺼내 그림 그릴 준비를 하였다.
‘어떤 그림을 그려볼까.’
세팅이 완료된 텅 빈 새하얀 캔버스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역시 집 안에 걸어 둘 그림이라면, 그게 최고겠지.’
내가 가게를 차리고 회사를 세울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바로 그날의 그 순간을 나는 캔버스에 담고 싶었다.
‘제주도에서 꿈을 노래했던 그 날의 밤을 그려보자.’
나는 눈을 감고, 그날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날 밤은 덥지도 춥지도 않았었어.’
숲에서 풍겨오던 풀 내음과 희미하게 들려오던 귀뚜라미 소리. 밤하늘의 별이 머리 위로 쏟아질 것 같았던 경이로웠던 풍경.
그것을 보며 내 심장이 얼마나 두근거렸었는지, 피부에 닿았던 살랑이는 밤공기가 얼마나 기분 좋았었는지.
정말 오랜만에 연주했던 피아노의 감촉과 그 비현실적이었던 공간에서 노래를 부르던 내가 느꼈던 벅찬 심정까지도.
나는 그 모든 것을 세세하게 떠올리며, 새하얀 캔버스에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하나하나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스윽- 슥!
나는 거침없이 스케치하였고, 그 위를 수채화 물감으로 덧칠했다.
‘여긴 조금 더 밝게… 스타더스트의 노래는 빛이 났으니까.’
새하얀 캔버스에 기억이 담겨질 수록, 나는 더욱더 그림 그리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다 그렸다…!’
마침내, 아름다운 꿈과 같았던 그 날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몇 시지?’
시계를 확인하니 아침 6시였다. 나는 무려 12시간을 꼬박 사무실에서 그림만 그렸던 것이었다.
‘그런데 전혀 피곤하지 않아…’
오히려 내 몸에는 활력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나는 방금 완성한 그림을 사무실 책상에 잘 올려두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 재밌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니,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래, 그때도 이런 기분이었어.’
보육원 시절, 나는 한 번 그림을 그리게 되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몰입을 하였었다.
‘수녀님들 몰래 삼일 밤을 새웠을 때도 있었지.’
그림을 그릴 때, 나는 나 자신을 잊어버릴 정도로 몰입하는 그 느낌이 너무나 좋았다.
그것은 내가 어릴 적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된 이유였다.
‘하나만 더 그릴까.’
파릇파릇했던 10대 시절보다야 체력이 모자라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지금 전혀 지치지 않았다.
탁.
나는 어느새 새 캔버스를 준비하였다.
‘이번에는 가게에 걸어 둘 그림을 그려보자.’
어떤 그림을 그리면 좋을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딱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그려보는 거야.’
그날을 추억하기 위해. 그때 느꼈던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새하얀 캔버스를 나의 기억으로 덧칠해 나갔다.
‘정면이 아닌, 후방에서 바라보는 내 시점으로.’
나는 한참 동안 붓을 움직여 그림을 완성하였다.
완성된 그림은 다름 아닌 무대 뒤에서 바라본 루미에 패션쇼의 런웨이 장면이었다.
거침없이 걸어가는 모델의 뒷모습과 관객들의 놀라워하는 표정이 세세하게 드러나 있어, 그때 내가 느꼈던 벅찬 심정을 떠오르게 했다.
그러나 동시에 조금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내가 떠난 이후의 패션쇼는 망했다고 했었지.’
그 덕에 루미에 패션쇼는 가을이 지나고 겨울의 중반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개최되고 있지 않았다.
‘연락이 없으니, 내가 먼저 나서서 도울 수도 없고.’
내가 회사에서 처음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바로 그 브랜드가, 이렇게 몰락해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한숨을 길게 내쉰 나는, 곧장 시간을 확인했다.
“음… 또 12시간이 지나갔네?”
벌써 저녁 6시였다.
꼬르륵.
뱃속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내가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림만 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밥부터 먹어야겠어.’
아니, 잠부터 자야 할까.
눈꺼풀이 너무나 무거웠다.
나는 어떻게든 몰려오는 수마를 이기기 위해 고개를 마구 흔들며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아…!’
그러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새하얀 자태를 뽐내는 나의 전용 그랜드 피아노였다.
‘…젠장.’
그리고 싶었다.
저 피아노를 처음 연주했을 때의 그 황홀했던 심정을.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려 사무실로 돌아갔다.
***
‘…나 미친 건가?’
나는 입주 청소가 끝났다는 전화를 받고 나서야, 내가 사흘 밤낮을 새면서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간중간 사무실에서 졸긴 했지만, 설마 그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을 줄이야.’
나는 지난 사흘간 내가 그려낸 총 네 점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제주도의 밤, 루미에 패션쇼, 피아노 연주, 그리고 뉴욕 그리피스 천문대의 노을까지.
내가 그날 겪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그림 속에 담겨 있었다.
‘조금 아쉽네.’
저 기억들은 내게 가장 소중한 기억들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나는 저 기억을 조금 더 본격적인 그림으로 남기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유화 물감으로 더 큰 캔버스에 그리고 싶어.’
유화는 물감 특유의 질감을 표현하기 수월하며 독특한 효과를 내는데 탁월했다. 다만, 건조시간이 오래 걸려 그림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어쩔 수 없지. 당장은 이 수채화 그림들로 만족할 수밖에.’
나는 액자 속에 다 마른 그림들을 집어넣어,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제주도와 그리피스 천문대 그림은 집으로. 나머지 둘은 가게에 놔두자.’
그렇게 가게의 벽면에 내가 그린 그림이 처음으로 걸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깨끗해진 집안의 모습에 기뻐하며, 벽면에 액자 두 개를 장식했다.
‘그림 두 개를 걸어도, 아직 공간이 많이 남을 것 같지만. 나머진 차차 채워 넣으면 되겠지.’
하아아암.
사흘간 너무 열심히 그림을 그린 탓일까. 절로 터져 나온 하품을 쩍쩍해대며, 나는 다시 잠실집으로 향했다.
‘가구는 내일 배송이 올 테니까… 이곳에서 지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네.’
나는 잠들기 전, 그 사실을 상필이에게 알리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우우웅-!
그와 동시에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고. 발신자를 확인한 나는 너무나 오랜만에 보이는 이름에 두 눈을 끔뻑였다.
‘이 사람이 왜… 설마?’
무언가를 직감한 나는 얼른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강진수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윤현민 씨.
거암물산의 강진수 사장이 내게 개인적으로 연락할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루미에 패션쇼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겠지.’
하지만 이어지는 대화는 조금 뜻밖이었다.
“다시 루미에 패션쇼가 개최되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제안할 것이 있습니다.
“제안이요?”
-…네. 혹시 루미에 패션과 루나리스 패션이 콜라보를 하면 어떨 것 같습니까?
나만의 브랜드와 내가 만든 것이나 다름없는 브랜드의 콜라보라니.
‘당연히 좋지.’
나는 강진수 사장에게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보자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