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7
7화 자동차를 뽑아볼까?
한유경은 깜짝 놀랐다.
‘아, 이런 모습으로 회사 사람과 마주칠 줄이야.’
최악이었다.
이곳 아파트 근처에서 회사 사람을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어서 방심하고 말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복장에, 이런 모습을 들켜버리다니.
그녀는 늘 완벽한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으므로. 지금 상황은 한유경의 멘탈이 흔들리기에 충분했다.
‘…진정하고 평소대로 행동하자.’
수습하기에도, 변명하기에도 늦은 상황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인사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으나.
‘그런데 누구지?’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눈앞의 남자가 누구인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저, 영업 3팀의 윤현민 대리입니다.”
기억났다.
영업 3팀의 불운하기로 유명하고, 가끔 지나가다 마주칠 때면 눈길을 피하던 그 소심한 남자.
“…감사합니다. 그런데 윤현민 대리님이 여기는 어떻게…”
“아, 저도 곧 이곳 주민이 될 예정이라서요.”
“…네? 설마, 여기로 이사 오신다는 말씀이신가요?”
윤현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유경은 속으로 매우 놀라고 말았다.
잘난 척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 아파트 단지는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하지만 윤현민 대리는 회사에서 어렵게 생활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로 이사를 온다는 거지?’
그것은 순수한 의문이었다.
“하하. 운이 좋았죠. 덕분에 이런 곳에서 다 살아보게 되었네요. 한유경 씨도 여기 근처 사시는 거죠? 앞으로 종종 마주치겠네요. 잘 부탁드려요.”
“아, 네.”
한유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윤현민은 방긋 웃으며 잡담을 이어나갔다.
“여기는 살기 어때요? 겉보기엔 아주 좋아 보이는데, 막상 살아보면 다를 수도 있으니 좀 걱정되어서요.”
“살기 좋아요. 관리 아저씨도 친절하고, 여러 가지 편의성도 좋고….”
‘…뭐지?’
대화를 이어나갈수록 한유경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왜냐하면,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으니까.
‘내가 아는 윤현민 대리가 맞아?’
그의 목소리엔 힘이 있었고, 눈빛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늘 구부정했던 어깨와 허리는 당당하게 펴져 있었으며, 대화도 막힘이 없었다.
회사에서 보아왔던 그의 모습과는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
‘뭔가 아우라가 달라졌달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람 자체가 달라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느낀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나 어떻게 된 거지?’
윤현민 본인도 자신의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내가 주눅 들지 않고, 남들과 자신감 있게 대화를 나누다니.’
이곳이 회사가 아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윤현민이라는 사람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일까.
‘이런 기분… 처음이야!’
너무나도 기분 좋은 변화였다.
“그래도 의외네요. 한유경 씨는 와인에 과일 치즈만 먹을 것 같았는데, 맥주에 오징어 다리라니.”
“아, 이건 부모님 심부름으로… 그래서 급하게 나오느라 복장도 이렇게 대충 입었던 거예요….”
묻지도 않은 것까지 변명하던 한유경이 말끝을 흐렸다.
이미 본의 아니게 통화 내용을 들은 현민은, 그녀가 거짓말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요즘 회사 분위기는 어떤가요?”
“똑같죠 뭐. 늘 따분하고 지루한 분위기. 아, 그러고 보니 윤 대리님 몸은 괜찮으세요? 사고를 당하셨다고 들었는데….”
“네, 덕분에 4달이나 유급으로 쉴 수 있었네요.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에요. 3일 뒤에 다시 출근하라고 오늘 문자 받았거든요.”
“저런.”
생소한 기분이었다.
늘 회피성 대화를 하던 그가 누군가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간다는 것은.
그리고 이상했다.
‘왜 대화가 끊어지지 않지?’
이전의 현민은 친하지 않은 사람과의 대화를 어려워하곤 했다.
‘내 가난함을, 초라함을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랬던 그가 갑자기 이렇게 즐겁고 자신감 있게 대화할 수 있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로또.’
그것은 바로 그가 이제 더는 가난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두꺼워진 지갑만큼 현민에게도 여유라는 것이 생겨났고, 그 여유는 그도 모르는 새 자신감으로 변한 것이다.
“그럼 저 먼저 가볼게요.”
“그래요. 맥주 맛있게 먹어요.”
먼저 계산을 마친 그녀가 편의점 밖을 나서려다, 다시 고개를 돌려 현민에게 말했다.
“윤 대리님. 입, 무거우시죠?”
현민은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것 같았다.
‘회사에서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차이가 크긴 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같은 동네 주민으로서 한유경 씨 이미지는 꼭 지켜드릴 테니까요.”
“…그럼 사흘 뒤 회사에서 봬요.”
그녀가 떠난 뒤, 계산을 마치고 나온 현민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나 방금 구상민 씨 같지 않았나?’
현민은 구상민 씨처럼 당당하게 대화한 것이 너무나 뿌듯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니까 성격도 변하는 건가?’
현민은 곰곰이 과거의 자신을 떠올려보았다.
‘나는 늘 치열하고 예민하게 살아왔던 것 같아.’
빈약한 통장의 0의 개수만큼. 여유가 없으니 늘 자존감은 떨어졌고, 신경질적으로 살아왔다.
‘…이런 삶을 언제나 누리고 싶어.’
현민은 지금의 이 여유를 절대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돈을 벌자. 내가 가지고 싶은 걸 모두 가지고, 늘 자신감이 넘치게 행동할 수 있으며, 버킷리스트를 완성할 수 있을 만큼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로또 당첨금 17억은 절대로 줄어들게 하지 않을 것이다.
‘투자하더라도 안전하고, 확실하게.’
현민은 그렇게 다짐하며 집으로 향했다.
***
다음날.
나는 어제 만난 한유경 씨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럼 사흘 뒤 회사에서 봬요.
내가 아침부터 그녀의 말을 곱씹는 이유는, 어떤 이성적인 설렘이나 끌림이 생겨서가 아니었다.
‘이제 이틀 남았네.’
그저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48시간 뒤면 나는 회사로 복귀하게 된다. 그 전에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래, 청승 그만 떨고. 할 일이나 하자.’
나는 잠시 오늘 할 일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리하고, 곧장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주인아주머니. B105호 세입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제 곧 방을 빼야 할 것 같아서요. 네, 되도록 빨리요.”
어떻게든 나를 붙잡으려는 주인아주머니에게 단호히 계약 종료 의사를 밝힌 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짐을 정리했다.
‘옷도 이불도 식기도 전부 버리자. 나중에 필요하게 되면 새로 사면 되니까.’
상필이 집에는 웬만한 것들이 다 갖춰져 있어서, 거의 몸만 들어가면 되는 수준이었기에. 나는 꼭 필요한 것들만 챙기고, 나머지는 전부 일반 쓰레기봉투에 집어넣었다.
‘컴퓨터도 상필이네 집에 있으니, 클라우드에 데이터만 백업하고 버리자.’
개발자답게, 녀석의 집에는 최신형 컴퓨터가 이미 설치되어 있었다. 그것도 무려 세 대씩이나 말이다.
‘한 대는 회사에서 제공해 준 거고, 나머지 두 대는 상필이 녀석이 사비로 샀다고 했었지.’
나머지 두 대는 개발에 필요한 장비가 아니었다. 오로지 취미활동을 위해 녀석이 마련했던 것이었다.
‘나도 상필이도 게임을 좋아하니까.’
학창 시절.
우리는 먹고 싶은 것도 참아가며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PC방에 갔을 정도로 게임을 좋아했다.
‘어젯밤에도 간만에 즐겼었지.’
편의점에서 사 온 술이 거의 동날 때쯤. 우리는 자연스레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플레이했다.
‘한판만 한다는 게, 거의 밤을 새우고 말았네.’
어쨌거나, 상필이의 집에 컴퓨터가 여러 대 있으니. 지금의 낡은 컴퓨터는 버려도 상관 없었다.
‘나중에 필요하면 노트북이나 한 대 사지 뭐.’
그렇게 컴퓨터까지 쓰레기로 내어놓으니, 집안에 남은 물건이 거의 없었다.
‘곰팡내 나는 물건들 싹 다 버리고 나니까 남은 게 없네. 진짜 맨몸으로 이사 가도 되겠는데?’
이삿짐이라고 해봐야 배낭 하나에 다 들어갈 정도이니 말이다.
‘보증금은 늦어도 한 달이면 입금될 거고, 그럼 오늘은 이 배낭만 집에 가져다 두고 쇼핑이나 해볼까.’
나는 머릿속으로 당장에 필요한 물건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옷이랑 신발은 사야지. 당장에 입을 게 없으니까. 그리고….’
곧 다시 회사에 출근해야 하니, 그때 팀원들에게 줄 선물도 필요할 듯싶었다.
‘불가항력이었다고 해도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으니 선물 정도는 주는 게 도리겠지.’
출근.
출근이라.
부르르-
이른 아침에 일어나 억지로 씻고 나가, 그 비좁은 만원 버스와 지옥철에 다시 몸을 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으으 너무 싫다.’
아무리 내 선택이었다지만. 로또 1등이나 되었는데 또 그렇게 괴롭게 살아가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냥 눈 딱 감고 사표 내버릴까.’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약해지지 말자.’
비록 1년간 친구의 집에 신세 질 수 있게 되었다지만. 주위 사람들의 눈도 있고, 앞으로의 계획도 아직 세우지 않았으니 아직은 회사에 다니는 게 옳았다.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면, 주위에서 의심할 테니까.’
하지만 눈앞에 다시 떠오른 지옥철의 풍경에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참에 나도 차나 한 대 뽑아볼까.’
30년 평생, 나는 내가 자동차를 구매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자동차 가격도 만만찮고, 보험이랑 유지비도 무시 못 하니까.’
물론, 중고 경차를 산다면 그리 큰 부담은 안 되었겠지만.
‘그때는 굳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았으니까.’
그 곰팡내 나는 반지하 방의 유일한 장점은 회사와 굉장히 가까웠다는 것이었다.
지하철로 20분이면 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잠실에는 직장까지 단번에 가는 대중교통이 없었으니까.
‘계산해보니 잠실에서 직장까지 대략 한 시간 정도가 걸리네.’
지하철은 3번이나 갈아타야 하니 자칫 잘못하다간 열차를 놓칠 게 뻔했고, 버스는 너무 빙 둘러 간다.
상황이 이러하니 아침 출근길이 지옥이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차가 있으면 얘기가 달라.’
자동차는 최단 루트로 달릴 수 있었고, 그렇게 계산한다면 직장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30분.’
원래보다 10분 정도 더 걸리기는 하지만, 잠실 한강 아파트에 사는 조건으로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주식으로 2,500만 원의 수익을 내기도 했고, 집을 얻을 돈도 굳은 데다가….’
무려 로또 1등이나 당첨이 되었는데, 자동차 한 대 정도는 뽑아줘야 인지상정 아닐까.
‘보증금으로 돌려받을 500만 원을 더 해서 최대 3,000만 원짜리 자동차를 찾아보자.’
투자 목적을 제외하고, 원금은 건드리지 않을 생각이었으니. 내가 살 수 있는 차량의 가격대는 3,000만 원까지가 한계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최댓값이 3,000만 원이라는 것이지. 진짜 3,000만 원 전부를 다 쓸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임시로 출퇴근 용도로 사용할 자동차를 구하는 거니까.’
적당히 저렴한 자동차면 충분했다.
‘그런데 뭘 어떻게 사야 하는 거지?’
지금까지 자동차는 생각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나는 유명한 차량 종류만 겨우 알지 자세한 사항들은 알지 못했다.
‘이대로 매장에 가면, 나 호구 되는 거 아니야?’
그것만큼은 죽어도 싫었다. 하지만 주위에 자동차에 빠삭한 사람이 없었다.
‘상필이 녀석도 자동차엔 관심이 없으니까.’
회사 동료 중에는 자동차광들이 있긴 했으나, 별로 친하지 않아 물어보기 좀 그랬다.
‘그냥 인터넷으로 자동차 구매 시 주의사항 같은 거나 읽고 가야 하나.’
검색창을 열어, 중고 자동차 거래 주의사항과 시세 등을 검색해보았다.
‘어디 보자. 쓸만한 중고차가….’
나는 랭킹이 급상승한 중고차 어플도 다운받으며 여러 매물을 살펴보았고, 마침내 적당한 차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레이나 모닝 정도면 괜찮을 것 같네. 어차피 출퇴근 용도에, 잠시 사용할 자동차를 구하는 거니까.’
둘 다, 주행거리 50,000KM 이하에 별다른 하자도 없어 보였다.
“여보세요? 어플보고 연락드렸는데요. 지금 바로 구경 좀 할 수 있을까요?”
나는 오후 두 시에 중고차 사장님과 약속을 잡고, 곧바로 나갈 채비를 하였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대로. 절대 상술에 당하지 말자.’
그돈씨.
그 돈이면 X발 00을 사고 말지. 라는 속어가 있다.
어떤 차를 산다고 말하면, 조금 더 보태서 비슷한 가격대의 상위 라인업의 차를 추천하는 것을 말했다.
‘그러다가 결국에 예산을 오버해서 구매한다고 했던가.’
물론, 나는 그런 상술에 넘어가도 좋을 만큼의 재산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돈을 아낄 생각이었기에, 절대 오버해서 자동차를 구매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럼 출발해볼까.’
나는 비장한 각오로 중고차 판매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때의 나는 내 인생 최초의 차가 외제 차, 그것도 원래 시세보다 반값이나 저렴하게 구매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