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71
71화 불길 속으로 (2)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 오후 여섯 시.
콰앙-!
스위스 최대 도시인 취리히의 한 가정집에 시뻘건 불길이 솟아올랐다.
-불이야!
가스 누출이었을까 아니면 전기 장치가 과부하가 된 것이 원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의 악의적인 방화였을까.
그 원인이 무엇이었든, 방금의 폭발로 인해 평화로웠던 도시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헉… 헉…!”
폭발로부터 도망치는 인파가 너무나 많았다. 아무래도 사고가 일어난 곳이 취리히 주립 박물관 근처였다 보니, 근처에 관광객들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덕분에 인파를 헤치며 불길이 치솟는 곳까지 도달하기가 너무나 힘겨웠다.
‘케빈…!’
여행 도중 아주 잠시 스쳐 간 인연일 뿐이었다.
내가 외면한다고 해도. 그 누가 비난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 아이가 저 폭발에 휘말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무사할 확률이 훨씬 높았다.
‘지금쯤 할아버지와 함께, 멀리 떨어진 식당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는 것은, 아주아주 쓸데없는 행동이 될 확률이 아주 높았다.
하지만.
‘불안해.’
예감이 좋지 않았다.
속이 메스꺼웠고,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오늘 처음 만난 그 아이가 위험에 처한 것 같은 느낌을 나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이대로 무시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
그렇기에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 나갔다.
“헉… 헉…!”
그리고 마침내 어느 골동품 가게의 앞에 도달한 나는, 화염에 휩싸인 두 개의 집을 마주할 수 있었다.
“케비이이인-!!”
“안 됩니다! 위험해요!”
아까 내게 지팡이를 휘둘렀던 케빈의 할아버지가 사람들에게 붙잡혀, 골동품 가게 건너편의 활활 타오르고 있는 두 번째 집을 향해 울부짖고 있었다.
‘이런…!’
웅성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첫 번째 집에서 일어난 폭발로 케빈의 집까지 불이 옮겨붙은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지금 활활 타오르는 저 집에 아직 케빈이 있다고?’
불길한 예감이 맞았음을 확인한 나는,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비록, 이야기를 나눈 것은 단 몇 분뿐이었지만. 심성이 고왔고, 영특했던 아이가 저런 사고에 휘말려 버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쩡-!
거센 불길에 창문이 터져나간다.
무섭게 활활 타오르는 불은, 2층짜리 집을 순식간에 집어삼키는 중이었다.
그 참혹한 광경에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저 불길에 뛰어들어 아이를 구출하고 싶었다.
하지만 집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아이를 구출하러 들어가기에는, 위험이 너무나 컸다.
나는 고작 일반인이었고, 저런 불길 속에 뛰어들 정도로 희생정신이 큰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소방차가 빨리 나타나길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케비이이이이인-!”
지팡이도 내팽개친 채, 저 거센 불길을 향해 손을 허우적대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주변의 모두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콰앙-!
화재의 원인이 된 집이 다시 폭발하며,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쏠렸다.
‘…어?’
하지만 이 자리에 오로지 나만이 케빈의 집을 주목하고 있었고, 그렇게 볼 수 있었다. 깨어진 2층 창문에서 튀어나온 축구공 모양의 초콜릿을 말이다.
파삭.
‘이건…’
바로 내 앞에 떨어져 산산이 조각나 버린 그것은 분명, 내가 아까 케빈에게 사 주었던 바로 그 초콜릿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케빈이 아직 무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녀석은 2층에 있는 거야!’
2층의 깨어진 창문은, 아직 불길이 그리 거세지 않았다. 조금 다치긴 하겠지만, 충분히 탈출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케빈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설마, 창문을 뛰어내릴 수 없는 상황인 건가?’
물론, 어린아이라 겁에 질려 시도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영특한 케빈이라면 그러진 않을 것이다.
아마 발을 다쳤거나, 아니면 어딘가에 몸이 끼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일 확률이 높았다.
‘그럼 창문 밖으로 초콜릿을 던진 이유가 설마?’
소리를 지를 힘도 없는 녀석이, 있는 힘을 쥐어짜 초콜릿을 던져 도움을 요청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케빈은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황일 것이다. 어쩌면 소방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떡하지? 대체 어떻게 해야…!’
나는 영웅이 아니다. 타인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성인군자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저 평범한 일반인일 뿐인 내가, 저 불길 속을 뛰어들 수 있을 리 없었다.
파삭-
그때, 발에 뭔가가 밟혀 부서졌다. 확인해보니 그것은 아까 깨어진 초콜릿의 파편이었다.
신발에 의해 짓이겨진 초콜릿을 보니, 나는 아까 케빈과 나누었던 대화들이 생각났다.
-어서 먹어보렴. 엄청 맛있는 거라며?
-아뇨, 집에 가서 할아버지와 나누어 먹으려고요.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할아버지와 함께 먹을 초콜릿을 들고 집으로 달려가던 케빈의 뒷모습이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꾸욱.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것 좀 빌리겠습니다.”
“엇…!”
마침 근처에 있던 구경꾼의 배낭 주머니에서, 나는 물병 두 개와 손수건 하나를 꺼내었다.
그리곤 그 구경꾼이 말릴 새도 없이 물병 뚜껑을 열어, 손수건과 내 몸을 물로 적시기 시작했다.
“…어?”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눈치를 챈 걸까. 구경꾼이 입을 뻐끔거리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잠시 구경꾼과 눈이 마주친 나는, 고개를 한 번 까딱하곤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타앗-!
“어어…! 저 사람, 붙잡아요! 빨리!”
“안돼!!!”
이성적인 판단이고 뭐고.
그렇게 나는 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
.
.
화르륵-!
나는 젖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으며, 불길에 휩싸인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피어오르는 검은색 연기와 뜨거운 열기로 인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계단을 찾아야 해.’
한시가 급했다.
지금도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해질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탈출할 기회를 놓치게 돼.’
마음이 급해진 나는 손을 휘저어 연기를 걷어내 가며 계속해서 계단을 찾아다녔다.
쨍그랑!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에 나는 무심코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찾았다!’
식탁이 놓여 있는 부엌의 오른쪽에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다.
다행히 계단은 불길로부터 아직 무사했지만, 불길이 번지는 속도로 보아. 곧 화염에 휩싸일 듯 위태로워 보였다.
‘서둘러야 해.’
그렇게 내가 계단을 뛰어 올라가려던 찰나, 주방 바닥에 널브러진 각종 공구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 모르니 저걸 챙겨가야겠어.’
나는 여러 공구 중, 장도리와 실톱을 집어 들었다. 다행히 두 공구 모두 손잡이가 나무로 되어 있던 덕분에, 그리 뜨겁지는 않았다.
그렇게 두 공구를 모두 챙긴 나는, 황급히 계단을 올랐다.
‘이런…!’
2층에 도착하자, 1층보다도 더 거센 불길과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아까 밖에서 보았던 창문의 위치를 생각하면, 일단 이 복도 끝으로 가야 하는데….’
하필이면 위층 다락방의 일부가 무너지며 복도가 막혀있었다.
‘…젠장.’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시간이 많지 않아.’
젖은 수건으로 코를 막고 있는데도 머리가 어지럽고 아팠다. 건장한 성인 남성인 내가 이럴 정도인데, 열 살짜리 꼬마애가 오래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하는 수 없지…!’
나는 가지고 온 장도리를 있는 힘껏 휘두르며, 전방의 방해물들을 어떻게든 치우려 했다.
우지끈-
그때, 천장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소리에 나는 즉시 계단으로 몸을 던졌다.
와르르-! 쿠웅-!
직후, 천장이 완전히 붕괴하며 복도에 큼지막한 파편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콜록콜록!”
다행히 전조를 미리 감지하고 피한 덕에 나는 다치지 않았다. 다만, 갑자기 천장이 붕괴하여 안 그래도 지나가기 힘든 복도가 더….
‘…어?’
눈앞에는 조금은 지나갈 틈이 보이는 복도가 있었다.
천장이 추가로 붕괴하며 떨어진 파편들의 무게 덕분에, 복도 양옆에 약해진 벽이 무너지며 복도를 막고 있던 자재들이 어느 정도 흩어져 분산된 덕분이었다.
‘길은 여전히 막혀있긴 하지만.’
완전히 막혀있던 아까와 다르게 조심조심 징검다리처럼 건너갈 정도는 되었다.
‘역시 나는 운이 좋아.’
화륵-!
금방이라도 나를 잡아먹을 듯 타오르는 불길을 피해, 나는 서둘러 복도를 지나기 시작했다.
“케빈-!”
복도의 끝에 다다를수록, 나는 케빈의 이름을 목청껏 불렀다. 녀석이 혹시라도 의식을 잃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의식까지 잃으면 정말 위험할 테니까.’
그렇게 계속 케빈을 불러가며 나는 마침내 복도 끝 방에 도달했다.
“앗, 뜨거!”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대기 전에 열기를 느껴서 망정이지, 생각 없이 무심코 잡았다가 심각한 화상을 입을 뻔했다.
나는 겉옷을 벗어 손잡이를 감싸, 문고리를 돌렸다.
‘제발 잠겨있지 마라.’
덜컹.
다행히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케빈!”
온통 붉게 타오르는 방에 들어서며, 나는 녀석의 이름을 외쳤다.
***
사방이 붉었다.
자신의 방에서 할아버지가 돌아오시길 기다리고 있었던 케빈은, 지금의 상황이 마치 꿈과 같다고 여기었다.
하지만 다리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고통은, 이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으으…!”
시간이 지날수록 쓰러진 책장에 짓눌린 다리의 고통은 심해져 갔다.
책장을 들어 올리는 것은 진작에 포기했다. 지금보다 더 정신이 또렷했을 때도 꿈쩍하지 않던 책장이었으니 말이다.
‘죽는건가…’
열 살 소년에게 죽음이란 아직은 머나먼 이야기여야 하건만. 삼 년 전에 이미 부모님을 잃어본 케빈은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죽음은 언제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거야.’
무섭지 않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케빈은 소리를 지르며 울음을 터뜨리진 않았다.
혹시라도 자신의 울부짖음이 바깥에 새어 나가, 할아버지의 귀에 들어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분명 걱정하시겠지.’
안 그래도 부모님의 죽음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는 할아버지였다. 거기에 자신의 고통스런 비명까지 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뜨거워….’
머리가 잘 돌아가질 않는다.
산소가. 부족해. 머리가. 어지러워.
의식이. 더욱. 흐려진. 다.
시야. 가. 점점. 좁아. 진다.
그러다.
바닥에. 떨어진. 초콜릿. 이. 보였다.
‘초콜릿. 할아버지. 드려야….’
좁은 시야 속, 깨어진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바깥에는 분명 할아버지가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 드셔야….’
케빈은 부들거리는 손을 내뻗어, 초콜릿을 집으려 했다. 하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자꾸만 놓치게 되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초콜릿을 집어 든 케빈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있는 힘껏 초콜릿을 창밖으로 던졌다.
“맛있. 게. 드. 세요. 할아. 버지.”
더는 눈을 뜨고 있을 힘도 남아 있지 않은 케빈은 그대로 쓰러져 미동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은 끊어질 듯 말 듯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환청인가…’
소리는 문밖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래, 환청이 분명했다. 이 불길을 뚫고, 자신을 구하러 들어올 사람이 있을 리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쾅! 쾅! 쾅!
콰직!
문이 부서지며, 다급한 표정의 누군가가 나타났다.
“케빈!”
“…”
낮에 할아버지가 민폐를 끼쳤던 바로 그 아저씨였다.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아저씨가 다급히 자신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꿈인가?’
케빈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윤현민의 모습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 느꼈다.
화륵-!
쾅-!
거센 화염과 천정에서 떨어진 커다란 나무 조각이 방금 그가 있던 자리를 덮쳤다.
콰직!
그가 지나온 자리가 폭 주저앉으며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단 1초라도 늦었다면 발이 빠지며 큰일이 났을 것이다.
그 후에도 윤현민는 마치 신의 가호라도 받는 듯, 그를 덮치는 모든 위협 요소를 우연히 피하며 케빈에게 다가갔다.
“괜찮니?”
그 사실을 본인은 모르는지, 그는 그저 태연하게 케빈의 안부를 물었다.
케빈은 가만히 고개를 들어 올려 그런 윤현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검게 그은 얼굴에는 안도의 미소가 피어올라 있었다.
“…네.”
대답하는 자신의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했다. 누군가 자신을 구하러 와줬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던 것이었다.
“조금만 참아라.”
그는 아까 챙겨온 망치와 실톱으로 쓰러진 나무 책장을 자르고 부수기 시작했다.
케빈은 땀이 송골송골 맺혀가는 아저씨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스윽스윽! 콰직!
마침내 케빈의 발을 짓누르고 있던 책장이 사라졌다.
윤현민은 즉시 케빈을 안아 올리며 말했다.
“초콜릿 먹지 못했지? 밖에 나가면 또 사 줄게. 그러니 조금만 참아.”
“…흐윽!”
살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된 그 말에 케빈은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흐아아앙-!”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제 나이 또래의 아이 다운 울음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