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73
73화 나보고 연기를 하라고요? (1)
예전 LA 여행에서, 나는 아일라에게 미션임파서블의 한 장면을 보고 톰 크루거의 팬이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까딱했다간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촬영을 늘 스턴트 없이 직접 하는 바람에, 자연사하길 간절하게 바라게 되는 최고의 액션 배우.
‘바로 그 톰 크루거가 내게 길 안내를 해주고 있다니.’
나는 이 환상적인 상황 속에서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말문이 막혀 버렸다.
하지만 다행히 내게 관심을 보이는 톰 크루거가 계속해서 말을 걸어준 덕분에 어색한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불길로 뛰어들었을 때, 무섭지는 않으셨습니까?”
“대체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가요?”
“그 불길 속에서 다친 곳이 하나도 없으셨다고요? 정말 운이 좋으시네요.”
저 외에도 많은 질문이 톰 크루거에게서 쏟아졌지만, 당장 기억이 나는 것은 저 정도가 다였고. 그마저도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나는 톰 크루거와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의 순간에 감격했다.
“자, 여기입니다.”
어느새 도착한 감독실에 나는 너무나 아쉬웠다.
“안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미스터 크루거.”
“별말씀을요. 그리고 그냥 톰이라고 불러요.”
“알겠어요, 톰.”
‘조금 더 대화하고 싶은데….’
연락처라도 묻고 싶었지만, 할리우드 대스타의 연락처를 대뜸 묻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기에.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목소리를 삼켜버렸다.
‘그래, 잠시나마 이야기를 나눠본 것만 해도 보통 사람은 꿈도 못 꿀 일이야.’
그러니 이 이상 욕심을 부려선 안 될 것이다.
…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현민, 연락처 좀 알려주시죠.”
“…네?”
“취리히의 영웅과 많은 대화를 해보고 싶었는데, 촬영장 입구에서 감독실까지의 거리가 너무 짧았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떻냐고? 당연히 좋았다.
나는 냉큼 톰의 핸드폰을 넘겨받아, 연락처를 교환하였다.
“그럼, 나중에 또 보죠.”
톰 크루거가 영화 같이 웃으며 떠나간 후, 나는 방금의 일이 꿈이 아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내 볼을 꼬집어보았다.
“아야.”
아팠다. 그러므로 현실이었다.
‘내가 톰 크루거와 연락처를 교환하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꿈 같은 일이 남아있었다.
‘이 방에 스티븐 에필버그가 있다는 거잖아.’
어쩌면 톰 크루거보다 더 엄청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그가, 이 문 너머에 있었다.
‘아까 병원에서 한 번 만나긴 했지만, 그때는 시장님까지 있어서 정신이 없었지.’
정확히는 시장님의 존재에 정신이 팔려, 놀랄 틈이 없었다고 할까.
“흐읍… 후우…!”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감독실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덜컹.
문을 열자, 둥근 반 뿔테 안경을 쓴 스티븐 감독이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보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아마 그도 시장님 때문에 조심스럽게 행동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아니면, 홍차?”
“홍차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티백을 뜯은 스티븐 감독은, 미리 데워 놓은 커피포트로 곧장 컵에 뜨거운 물을 따라 주었다.
“여기 있습니다.”
블록버스터의 전설이 타주는 홍차라니. 나는 감개무량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나저나 놀랐습니다. 아까 보았을 때, 상태가 괜찮아 보이긴 했었지만. 그래도 하루 정도는 그냥 쉬실 줄 알았는데 말이죠.”
“쉬는 건 병원에서 충분히 했거든요. 호텔에 있어봤자 달리 할 일이 없기도 했고요.”
“그렇군요. 여자친구랑 같이 오셨으면, 같이 관광다니느라 바쁘셨을 텐데…. 아, 여자친구는 있으시죠?”
“음… 아직 없습니다.”
“네에? 미스터 윤처럼 멋있는 분께서 여자친구가 없다니, 의외네요.”
보아하니, 스티븐 감독은 약간의 잡담으로 분위기를 풀려고 하는 듯 보였다.
‘그럴 필요 없는데.’
톰 크루거와 대화를 나누고 온 덕분일까. 막상 스티븐 감독과 단둘이 하는 대화에도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감독님, 이제 슬슬 저를 스위스까지 부르신 이유를 알려주시겠어요? 대체 어떤 장면에서의 연출이 막히셨길래, 먼 나라의 저에게까지 연락하셨는지 궁금하네요.”
그런 내 말에 스티븐 감독이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럴까요. 그럼 일단 현재 제가 어떤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지부터 설명해드려야겠군요.”
스티븐 감독은 현재 촬영 중인 영화가 근미래 배경이며, 로봇과 인간의 갈등에 관한 것이 주제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 영화에서 톰은 인간에게서 로봇들을 해방하고자 하는 로봇들의 우두머리입니다. 또한 그는 인간이 지구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여기기도 하죠.”
“…굉장히 과격한 인물이겠네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 인간 여자를 만나게 되고, 점점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마음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닌, 정말로 감정을 깨우치게 되는 거죠.”
지금까지의 설명만 들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였다.
“상당히 재밌을 것 같은 내용인데요?”
“그렇죠. 언제나 그렇듯, 저도 시나리오에 대해선 자신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딱 한 장면에 대해선 확신이 서질 않아요.”
스티븐 에필버그가 애를 먹는 장면이라니. 너무나 궁금해진 나는, 그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그게 어떤 장면인데요?”
“바로 주인공 로봇이 처음으로 인간의 마음을 깨닫고 환희하는 장면입니다.”
스티븐 감독은 그 장면에 대한 촬영은 이미 마쳤으나, 다시 살펴보니 연출 자체가 너무 올드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아직 저는 감독으로서 아직도 현역이라 생각하며, 계속해서 트랜드를 따라가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새로운 발상을 하기가 매우 힘들더군요. 그래서 미스터 윤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던 겁니다. 패션쇼에서 새로운 방식의 연출을 생각해낸 당신과 대화를 해본다면, 괜찮은 영감이 떠오를 수도 있었으니까요.”
“…….”
그런 스티븐 감독의 말에 나는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지금 주인공 로봇이 여주인공에게 사랑을 느끼며 환희하는 장면을 찍었다는 거잖아?’
로봇이 인간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아주 전형적인 클리셰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티븐 감독의 말대로 매우 올드한 방식이기도 했다.
‘로봇이 감정을 느끼는 참신한 연출이라….’
나는 스티븐 감독에게 그 장면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물었다.
“생각보다 촬영 시간이 오래 걸린 장면이었습니다. 로봇이 처음으로 환희하는 장면이라, 굉장히 화려한 CG가 들어갈 예정이었거든요.”
‘화려하다고?’
하긴, 로봇이 처음 느끼는 감정의 폭발을 그리기 위해선 화려한 연출이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로봇의 환희가 잔잔할 수는 없는 걸까?’
잔잔한 환희.
괜찮은 아이디어 같이 느껴졌다.
나는 막 떠오른 아이디어를 쉽사리 내뱉지 못하였다. 일평생 영화 촬영을 해온 감독에게, 아무렇게나 떠오른 생각을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스티븐 감독은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편안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뭐든 좋으니,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냥 내뱉어 주십시오. 원래 참신한 아이디어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겁니다.”
“…….”
나는 조금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면 내 아이디어를 그에게 말해주었다.
“이런 것은 어떻습니까? 주인공 로봇이 여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여주인공의 별것 아닌 농담에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겁니다.”
“오호. 발견은 어떻게 하는 거죠? 로봇의 얼굴이 거울에 비치기라도 하는 건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주인공의 눈동자에서 자신의 모습이 보이도록 만드는 거죠.”
인간처럼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여주인공의 눈동자를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추가적인 감정 연출도 들어가면 좋겠네요. 눈동자 속 미소 짓는 자신의 얼굴이 점점 놀라움과 당혹감으로 변화하도록요.”
“…….”
갑자기 정적이 일었다.
슬쩍 바라본 스티븐 감독의 표정이 매우 복잡해 보였다.
‘내가 뭔가 말실수를 한 건가?’
혹시라도 내가 주제넘은 의견을 드린 것은 아닌지 걱정되던 찰나. 스티븐 감독이 활짝 웃으며 말하였다.
“미스터 윤과 대화를 나눈 것은, 제게 굉장한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
“방금 그 아이디어, 괜찮은 것 같습니다. 아니, 당장이라도 찍고 싶을 만큼 상당히 좋았습니다.”
스티븐 감독은 새로운 영감이 계속 떠오른다면서, 주머니에서 꺼낸 수첩에 뭔가를 휘갈기기 시작했다.
‘하하, 환희는 로봇이 아니라 감독님이 하시는 것 같은데?’
내 의견에 기뻐하는 감독님의 모습을 보니, 어떻게든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해졌다.
나는 잠시 감독님의 작업이 끝나길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후우…!”
펜을 내려놓은 감독님은 굉장히 후련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미스터 윤. 덕분에 멋진 장면이 그려질 것 같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지만, 괜찮나요? 혹시 이제까지 촬영한 분량이 많이 날아가진 않나요?”
스티븐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꽤 많이 날아갈 것 같습니다.”
“?!”
“재촬영도 꽤 해야 할 거고, 제작비도 그만큼 많이 들게 될 겁니다.”
“그, 그럼 안되지 않나요?”
어쨌거나 영화도 사업의 일종이었으므로, 제작비가 많이 든다는 것은. 그만큼 제작 기간이 멀어진다는 뜻이었다.
“상관없습니다. 이번 영화는 누군가의 투자를 받아서가 아니라, 제 사비로 찍는 영화니까요.”
“네에?”
나는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마음 맞는 친구들의 투자를 받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들도 손익을 목표로 투자한 것은 아니기에, 제작비가 아무리 많이 들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제 만족이니 말이죠.”
“…….”
그런 스티븐 감독의 활짝 웃는 표정을 본 나는 부러워졌다.
‘그렇게 재밌을까?’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저렇게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너무 신기했다.
‘나만의 영화라….’
내 마음 한구석에 평소에 전혀 관심이 없던 영화 촬영에 대한 흥미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똑똑.
그때 스텝 한 명이 노크와 함께 들어와, 스티븐 감독에게 시간이 다 되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저는 이만 촬영장으로 가야 할듯싶습니다. 미스터 윤과 맥주라도 마시며, 조금 더 대화하고 싶지만. 지금부터 또 야간 촬영에 들어가야 해서….”
“그렇군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조금 구경하고 가시죠. 생각보다 재미는 없으시겠지만, 그래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겁니다.”
나는 스티븐 감독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렇게 잠시 후.
‘우와…!’
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스턴트 연기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역시 톰 크루거야!’
두근두근.
몸을 사리지 않고 위험한 연기를 펼치는 톰 크루거의 모습을 보며, 나는 영화 촬영에 대한 흥미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렇게 내가 눈을 반짝이며 촬영을 지켜보던 중, 갑자기 비명이 들려왔다.
“아악!”
비명의 주인공은 엑스트라였던 한 동양인 연기자였다. 그는 톰 크루거에게 맞고 쓰러지는 역할이었는데, 너무 오버해서 연기를 한 탓에 그만 발목을 접질리고 만 것이었다.
연기자의 상태를 확인한 스텝이 스티븐 감독에게 다가와 물었다.
“연기자가 심하게 발목을 삐어서, 이대로 계속 촬영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촬영장에 동양인 연기자는 저 사람뿐이니까요.”
“흐음… 하지만, 이 씬은 지금 꼭 촬영하고 싶은데….”
스티븐 감독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는 듯 보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나와 눈이 마주친 스티븐 감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미스터 윤!”
곧장 내게로 다가온 스티븐 감독이 물었다.
“혹시, 엑스트라 연기를 해볼 생각 있으십니까?”
“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