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75
75화 그게 겨우 1,000억 짜리인 것 같아?!
‘…괜찮은데?’
무더운 여름밤의 하늘. 그 한 가운데 떠 있는 달을 담은 그림에서, 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카페 드리머에 걸어 두면 딱 좋겠어.’
안 그래도 장식할 그림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던 참이었다.
카페 벽면에는 내가 그린 그림을 걸어 두기로 정하였지만, 이런 괜찮은 그림 한두 점 정도는 걸어놓아도 괜찮을 듯싶었다.
‘색감도 훌륭하고, 구도도….’
그림을 감상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그러다 문득.
“#@$%?”
“%@#$@@!”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케빈의 할아버지가, 손짓과 발짓을 섞어가며 내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림을 감상하느라, 할아버지께서 얘기하시는 줄도 몰랐네….’
뭐, 다소 이야기를 놓친 것은 상관없었다. 어차피 할아버지의 독일어는 알아들을 수 없었고, 케빈의 통역을 기다려야만 했으니까.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이윽고 시작된 케빈의 설명에 따르면, 이 그림은 약 두 달 전쯤에 케빈의 할아버지가 어떤 여행객에게서 매입한 것이었다.
“사실, 할아버지는 이런 그림이 필요 없으셨지만, 한눈에 보아도 경비가 모자라 보이는 여행객의 사정이 딱하여 71프랑을 주고 이 그림을 사셨대요.”
71프랑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약 10만 원 정도였다.
‘그림은 굉장히 마음에 들지만, 비싼 거였으면 정중히 거절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네.’
적당한 가격대의 선물을 받는 것이, 오히려 할아버지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릴 수 있을 것이다.
‘마침 할아버지께서도 필요 없는 물건이라고 하셨으니, 잘되었어.’
“케빈, 할아버지께 선물 감사하다고 전해줄래?”
“네.”
케빈이 할아버지에게 내 말을 전달하였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또다시 무언가 길게 말하기 시작하셨다.
그런데 이번엔 케빈도 무척이나 놀라고 있었다.
“왜? 뭐라고 하시길래 그래?”
“하, 할아버지께서 그 그림은 전에 형을 지팡이로 때린 것에 대한 사과의 선물이래요.”
며칠이나 지났는데, 그걸 기억하고 계셨다니. 나는 조금 놀랐다.
“그래서 진짜 선물은 따로 있다고, 잠시만 손을 내밀어달라고 하시네요.”
“…그래?”
나는 할아버지의 말대로 두 손을 공손히 내밀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네주셨다.
“이건?”
그것은 아름다운 광택이 나는 한 쌍의 은반지였다.
“이건 우리 집안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행운의 반지예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거라면, 가보 아니야? 이런 걸 내게 선물로 주신다고?”
나는 이번에야말로 선물을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케빈이 고개를 저으며, 나를 말렸다.
“아뇨, 어차피 우리 집안은 이 반지가 더는 필요하지 않다고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어요.”
“필요가 없어지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이 반지를 소유한 가문은 행운을 불러들이지만. 그 유효기간은 3대까지며 그 이상 반지를 소유하게 되면, 오히려 불행이 찾아온대요.”
“할아버지는 몇 대이신데?”
“할아버지가 4대 세요.”
할아버지도, 케빈도 진지한 분위기로 설명하였지만. 나는 솔직히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아무리 내가 죽다 살아나며 운이 좋아졌다지만, 물건 하나에 행운과 불행이 깃든다니….’
어쨌거나 이 또한 할아버지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라고 하시니, 마음 편히 받아도 될듯싶었다.
“그런데 불행이 찾아올 것을 알고 계셨으면서, 왜 이 반지를 보관하고 계셨던 거야?”
“그 반지가 바로 할아버지의 결혼반지였대요. 할아버지는 떠나버린 할머니를 잊지 못하셔서, 계속 간직해왔다고 전에 들은 적이 있어요.”
“아….”
나는 정말 이걸 가져도 되는지 생각해보았다.
‘…할아버지는 이 반지를 버리지 못하셨기에, 지금까지의 불행이 찾아온 것이라 여기시는 것이겠지?’
아내가 떠나고, 아들 내외가 먼저 죽고, 마지막엔 손자까지 잃을 뻔했으니. 아무리 미신이고 하더라도, 충분히 이 반지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내가 이 반지를 가져가는 것이, 할아버지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방법이겠지.’
나는 손에 들린 은반지를 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케빈에게 말했다.
“할아버지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전해줄래?”
할아버지는 내 말을 전해 듣고, 인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들그락-
그렇게 나는 스위스 여행의 마지막 날, 행운을 가져다주는 반지와 마음에 드는 그림 한 점을 선물로 받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받기만 해서는 안 되겠지.’
나는 가게를 둘러보며, 다시 케빈을 불렀다.
“케빈, 가게에 있는 골동품 중에 아이들과 수녀님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을 좀 추천해 줄래?”
소중한 선물을 받은 만큼, 오늘 가게 매출액은 내가 책임져 볼 생각이었다.
.
.
.
“…괜찮으시겠어요?”
케빈이 내 양손 한가득 들린 가방을 보며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너무 많이 산 것 같긴 하네.’
처음에는 보육원 아이들과 수녀님에게 선물할 것만 사 가려 했으나, 생각해보니 내가 없는 동안 수고해준 직원들도 챙겨야 했다.
‘한 명당 하나씩만 선물해도 몇십 개이니. 이렇게 될 수밖에.’
나는 피식 웃으며, 캐빈의 물음에 답했다.
“괜찮아. 요즘 비행기 화물칸이 잘 되어 있어서, 파손 염려는 없어.”
“…아니, 저는 그걸 말한 게 아니었는데….”
“응? 뭐라고?”
“…아니에요.”
“짜식, 싱겁긴.”
나는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거예요?”
“그래야지.”
“스위스도 살기 좋은데….”
“그래 보여. 물가는 비싸지만.”
“…….”
내가 떠난다니 케빈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나는 한쪽 무릎을 꿇어, 그런 케빈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또 놀러 올게.”
“…정말요?”
“그럼! 그리고 형이 전화번호도 알려줬잖아. 보고 싶으면, 언제든 연락해.”
“네!”
활짝 웃는 녀석의 얼굴을 보니, 내가 한 가지를 까먹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아, 케빈. 갑자기 갈 곳이 생각났는데, 잠시만 따라와 볼래?”
“갈 곳이요? 거기가 어딘데요?”
케빈의 물음에 나는 장난스러운 미소로 답했다.
“가보면 알아.”
잠시 후, 케빈을 데리고 도착한 곳은. 일주일 전에 들렸던 초콜릿 상점이었다.
“자.”
“이건…”
내게서 축구공 모양의 초콜릿을 받아 든 케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때, 초콜릿 다시 사주기로 약속했었잖아. 이번엔 두 개 사줬으니까, 할아버지랑 사이좋게 하나씩 먹어.”
“…훌쩍.”
“오잉? 설마, 우는 거야?”
“…안 우는데요.”
“아닌데 우는 것 같은데?”
“하아암… 하품해서 그래요.”
어디선가 들어본 대화가 반복되니, 케빈과 나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잘 지내라.”
“네, 형도 건강하세요.”
나는 그렇게 케빈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곧장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놔둔 짐을 챙겨서 곧바로 공항으로 가자.’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야, 이 미친 새끼야!”
스위스의 어느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한 여성의 고함이 울려 퍼졌다.
쨍그랑!
뒤이어 접시가 깨지는 소리와 테이블 들의 가구가 작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 미안해.”
사건의 발단은 모두 이 남성의 잘못이었다. 그는 자신의 애인에게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용서를 구했다.
“줄리아, 난 창고에 처박혀 있길래, 그렇게 대단한 작품인 줄 몰랐단 말이야….”
그런 남자의 말에 줄리아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그걸 암거래 시장에서 어떻게 손에 넣었는데…!”
“아니, 그러니까 그런 소중한 그림을 왜 창고에 처박아 뒀어….”
“뭐야?!”
줄리아가 도끼눈을 치켜뜨며 남자에게 삿대질을 해대었다.
“그래야 혹시 도둑이라도 들었을 때, 그 그림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
평소 암시장에 관해 안 좋은 인식이 있었던 그녀는. 어쩔 수 없었다지만, 그곳에서 그 그림을 구매한 이후로 줄곧 불안에 시달려 왔다.
‘혹시라도 그 그림을 노리는 놈들이 나타날까 봐, 일부러 싸구려 그림들 사이에 놔뒀던 건데. 하필이면 그걸 쏙 골라 뽑아가서 사고를 쳐?!’
줄리아는 눈앞의 남자친구를 죽기 직전까지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
“…줄리아, 그래도 내가 그 그림을 비싸게 팔긴 했어.”
“뭐야?!”
덥썩.
이번엔 6번 아이언을 들어 올린 줄리아의 모습에 기겁한 남성이 얼른 말을 이었다.
“1,000억! 무려 1,000억에 그 그림을 팔았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치켜 들렸던 6번 아이언이 다시 내려가는 모습에, 남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설명했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한 재벌가와 인연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지? 그 재벌가 회장이 저번에 내게 부탁을 해왔었어. 비자금을 은닉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말이야.”
“…….”
잠자코 자신의 설명을 듣는 줄리아의 모습에 남자친구 이기형은 살았다는 생각에 씨익 웃으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비자금으로 고가의 미술품을 내 명의로 구매해달라는 제안이었는데, 무려 10억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었어. 그런데, 줄리아도 알다시피 이런 일에 잘못 끼어들었다가는 덤터기를 쓰기 일쑤잖아?”
“…그래서?”
“그래서 진짜로 그림을 구매하는 대신, 그 창고에 있는 그림을 하나 골라서 가져갔던 거야.”
“그 사람들이 멍청이가 아닌 이상, 구매 계약서를 보여달라고 했었을 텐데?”
그 말에 이기형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한국에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어. 내가 우리 줄리아 애인 경력이 벌써 몇 년인데, 어깨 너머로 구매 계약서 작성하는 법은 진작에 배웠었지.”
“…그러니까, 위조를 하셨다? 그것도 우리 갤러리 이름으로?”
“어….”
착 가라앉은 줄리아의 목소리에 이기형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아니, 들어봐. 내가 두 달 전 사고를 당해서 그 그림을 잃어버린 덕분에, 다시 돌려줬어야 하는 1,000억이 고스란히 내 방에 현찰로 남아있다고. 그런데 그 재벌가에서도 이번 일을 어쩔 수 없는 사고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라, 그냥 스리슬쩍 이 돈을 우리가 꿀꺽할 수 있을 것 같아!”
“…….”
“줄리아가 그 그림을 얼마나 아끼는지는 이제 잘 알겠지만, 그래도 1,000억이면 그런 그림 10개는 넘게 주고 살 수 있지 않겠어?”
숨이 찰 정도로 빠르게 말을 마친 이기형은 말이 없는 줄리아의 눈치를 살피며 침을 꿀떡 삼키었다.
“…….”
“…….”
그렇게 숨 막히는 정적이 얼마나 흘렀을까.
“하아…!”
줄리아의 깊은 한숨이 들려왔다.
“야.”
“응? ㅇ, 왜?”
“너 폴 고갱이라고 들어봤어?”
“아니, 그게 누군데?”
줄리아는 더욱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반 고흐를 모르는 사람이 있어? 당연히 알고 있지.”
“폴 고갱은 그 반 고흐의 친구였었어. 물론, 대단한 화가였기도 했고.”
“…그래?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6번 아이언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이 멍청아! 네가 1,000억에 팔아먹은 그 그림이 바로, 새로 발견된 폴 고갱의 그림이었단 말이야! 그것도 내가 암시장에서 1억 2천만 프랑을 주고 구매한!”
“허억…!”
1억 2천만 프랑이면 한국 돈으로 1,800억 정도 되었다.
“가지고만 있어도 그 가치가 껑충 뛸 그림을, 겨우 1,000억에 날려 먹고 좋아하고 있어?!”
“그, 그게….”
“그래, 오늘 너 죽고 나 죽어보자. 이리 와!”
“으아아악!”
다시금 집안 살림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던 바로 그 시각.
‘여기에 걸어 둘까?’
암시장에서 구매한 바람에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된 폴 고갱의 그림은, 한국의 한 라이브 카페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